• [Why] 책과 사람의 닮은꼴 운명
  • 권태현 칼럼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유명작가도 엉성한 책 펴냈다 독자들에 외면당해
    사람처럼 다양한 팔자 타고나는 책 좋은 책을 닮은 사람들과 만났으면…
  • 권태현 소설가·출판평론가
    입력 : 2007.06.29 23:30




    • ▲ 권태현 소설가·출판평론가


    • 십수 년 동안 책 소개를 해오면서 출판계 사정을 훤히 알게 되었다. 알고 지내는 출판 관계자들도 많아졌고, 수많은 책들이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져가는 과정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책과 더불어 생활을 하다 보니 책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선 탄생부터가 그렇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의 큰 틀이 정해지기 때문에 흔히 ‘부모 팔자가 반 팔자’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책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쓰고 어떤 사람이 만들었느냐에 따라 책의 운명이 반 이상 결정된다. 베스트셀러 저자가 쓰고 경험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잘 만들면 그 책은 당연히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힌다. 반대로 이름 없는 저자가 쓰고 솜씨 없는 사람들이 엉성하게 만들면 그 책은 출간되자마자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런데 인생에 여러 가지 변수가 있듯이 책의 운명도 처음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온갖 경우의 수가 개입해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때가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유명한 저자의 책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저자의 책이 각광을 받는 일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저자의 책이 참패를 당하는 경우는 오만과 방심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전에 펴낸 저작물들의 반응이 좋아서 고정독자가 어느 정도 생기고 나면, 저자가 자신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부족한 원고를 그냥 냈다가 그 동안 쌓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 것이다.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한 저자의 책을 잔뜩 기대하며 기다린 적이 있었다. 너무나 멋진 책 제목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든 순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책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수록된 원고의 성격도 일관성이 없는 거의 짜깁기 수준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 얼렁뚱땅 묶어낸 글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형편없는 원고에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 펴낸 무성의한 태도에 너무나 화가 나서 악평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독자들이 그 책을 외면하는 바람에 판매지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후 그 저자는 옛날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져가고 있다.

      앞의 경우와는 달리 무명의 저자가 펴낸 책이 큰 성공을 거뒀을 때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신문기자 출신의 한 소설가가 몇 편 되지 않는 작품으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도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그 소설가가 첫 번째 장편소설을 펴냈을 때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자로는 필명을 날렸지만, 그의 기사를 찾아 읽던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까지 관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소설을 처음 발표해서 별 반응이 없으면 작가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좋은 작품을 쓸 거라고 굳게 믿으며 원고를 써달라고 종용하는 기획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가는 기획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치열하게 매달렸다. 그 결과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작품을 써냈고, 그 후부터 그가 쓰는 작품들은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책의 운명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게 느낄 때는 기막힌 반전과 역전이 나타나는 경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광화문 거리를 지나가다가 시인이자 번역가인 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자신이 번역한 책이 나왔다고 하면서 같이 그 출판사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보게 된 그의 번역서는 표지도 엉성했고, 저자 이름에 다른 단어를 갖다 붙인 제목도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가 솔직한 평을 부탁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 이름을 나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면 일반 독자들이 어떻게 알고 책을 선택하겠어? 그리고 표지가 이게 뭐냐? 이대로는 절대로 안 나갈 테니 두고 봐.”

      내가 말한 대로 그 책은 전혀 나가지 않았다. 초판 4000부를 찍었는데, 나중에 모두 회수해 보니 400부 정도가 팔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이 상태로 끝난 게 아니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표지를 다시 만들었고 제목도 본문 안에 있는 소제목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 다시 붙였다. 그렇게 표지갈이를 해서 서점에 내놓았는데 그 후 이 책은 120만 부까지 나갔다. ‘인생 대역전’에 비견될 만한 ‘책의 운명 대역전’이었다.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언젠가 건강서 기획자와 경제·경영서 기획자를 차례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만나고 나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서 기획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건강서는 이제 나올 만한 책은 다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경제·경영서 쪽으로 진출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경제·경영서 기획자에게 그 말을 들려줬더니 그는 오히려 “경제·경영서야말로 웬만한 책은 다 나왔습니다. 저희는 건강서 쪽으로 진출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올 책의 운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두 기획자의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어떤 분야를 이미 다 알고 있어서 도전할 곳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지 않은가.

      책의 운명만 사람의 운명과 닮아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책을 소개하면서 책과 가까이 지내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을 많이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 시각으로 보면, 책과 사람은 분명히 닮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을 보면서 특별한 사람을 떠올릴 때가 있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알고 있는 특정한 책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내가 책 소개를 계속하는 한 책과 사람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도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개성 있고 특별한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신간 서적을 뒤적인다. 그리고 내가 골라낸 좋은 책들과 닮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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