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이었던가... 아침에 대청마루에서 남쪽 선영을 향해 울던 울음보다도 더 깊은 울음이 김상헌의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김상헌은 뜨거운 미숫가루를 넘겨서 울음을 눌렀다. 이것이 백성이로구나. 이것이 백성일 수 있구나. 김상헌은 허리에 찬 환도 쪽으로 가려는 팔을 달래고 말렸다. 김상헌은 울음 대신 물었다. - 너는 어제 어가를 얼음 위로 인도하지 않았느냐? - 어가는 강을 건너갔고 소인은 다시 빈 마을로 돌아왔는데, 좁쌀 한 줌 받지 못했소이다.-43쪽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 - <청왕의 문서>에서-284쪽
황제께서 끝내 노여움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군사의 힘으로 다스리신다면 소방은 말길이 끊어지고 기력이 다하여 스스로 갇혀서 죽을 수밖에 없으니, 천명을 이미 받들어 운영하시는 황제께서 시체로 가득 찬 이 작은 성을 취하신들 그것을 어찌 패왕의 사업이라 하겠나이까. 황제의 깃발 아래 만물이 소생하고 스스로 자라서 아름다워지는 것일진대, 황제의 품에 들고자 하는 소방이 황제의 깃발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이 돌담 안에서 말라 죽는다면 그 또한 황제의 근심이 아니겠나이까. 하늘과 사람이 함께 귀의하는 곳에 소방 또한 의지하려 하오니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 최명길이 작성한 <인조의 문서>에서..-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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