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대형서점, 잔잔한 문화가 숨 쉬는 곳
  • 컬쳐&산보
  • 조선일보
    입력 : 2007.05.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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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 어디 계세요?”

      “교보로 가는 중이에요. 간만에 책도 둘러보고, 수업에 쓸 DVD도 구해야 해서…”

      “저녁에 별 다른 일 없으시죠? 그럼 조금 있다가 거기서 봬요.”

      출판평론가 표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거기’로 간다. 강의에 필요한 ‘축제’(임권택 감독) DVD를 사고 인문사회 코너에서 책 구경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 기다리는 일처럼 지루한 일도 없는데, 서점에서는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서울의 중심가에는 3개의 대형서점이 모여 있다. 이들은 모두 지하철역과 연계되어 있는데, 교보문고는 광화문역과 직접 통하고, 영풍문고와 반디앤루니스는 종각역과 이어져 있다. 교보문고의 특징은 책도 많고 사람도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책을 살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영풍문고는 언제나 시원하고 쾌적하다. 서가들이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책을 고르는 여유와 즐거움을 한껏 맛볼 수 있다. 2005년 밀레니엄 센터 지하에 자리를 잡은 반디앤루니스는 의자가 많이 배치되어 있고 책과 관련된 이벤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기분이나 취향에 따라 서점의 분위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서울의 중심가에 서점들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시대 이후로 종로가 상업의 중심지였으니 아마도 그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1880년부터 1년 9개월간 한국에 프랑스 대사관의 서기관으로 머물렀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은 그의 저서 ‘한국서지’에서 종로 부근에 책 전문상점들이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상품 가치가 있는 책들은 망건이나 담배와 함께 파는 법이 없었으며 “책점들은 모두 도심지 쪽으로 종각에서 출발하여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꾸부정하게 뻗어 있는 큰 길에 모여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월탄 박종화의 회고에 의하면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지송욱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구식 책사(冊肆)가 있었다고 한다. 책사는 출판사·인쇄소·도소매서점의 기능이 분화되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전면을 유리창으로 바꾸고 신구서림이라는 간판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에 신구서림에서 나온 책에 주소지가 봉래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장사가 잘 돼서 독립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1907년에 문을 열어 2002년에 폐업을 한 종로서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밀려든다. 서적 중심가로서 종로의 역사성을 증언하는 상징이었을 것이고, 지상 5층의 건물에 분산 배치된 대형서점의 또다른 공간성을 맛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대형서점이 있는 종로의 역사성과 공간성을 생각하면 서재(書齋)와 카타콤(catacomb)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먼저, 서점이 있는 종로와 광화문거리는 ‘서울의 서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랑이 많은 삼청동, 전통공예품이 있는 인사동,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벌어지는 세종문화회관을 함께 떠올려 보면 보다 분명해지지 않을까. 그림이 있고 실내장식이 있고 텔레비전 또는 축음기가 놓여있는 거실이 저절로 연상되지 않는가. 대형서점이 그 자체로 복합적인 문화공간을 지향하지만, 서점이 있는 주변공간들 역시 문화적인 다양성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순교자들의 지하묘지이면서 비밀스런 예배장소였던 카타콤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대형서점들이 지하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한 종교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지만 지하의 대형서점을 들어설 때마다 그 어떤 종교성을 느낀다. 지성, 교양, 취향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신(神)을 찾아서 예배를 올리고 지식의 순례를 떠나는 곳.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지식의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서 보다 인간적이며 합리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빠듯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마음껏 책을 사지는 못하지만 서가에 등을 기대고 눈을 반짝이며 마치 해면처럼 지식을 흡수했던 사람들 등등. 서점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도 대형서점에는 처음으로 글자를 익힌 어린이부터 돋보기 너머로 책을 보는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전 세대가 모여서 문화를 만들어 간다.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수험서를 고르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잠시 교과서에서 벗어나 낭만적인 책읽기를 기대하는 학생들, 경영과 처세의 비전을 얻기 위해 책을 고르는 사람들 등등. 서가 뒤편에서는 상품으로서의 책을 다루기 위해서 쉴새없이 주판알이 튕겨지고 있겠지만, 그 문화적 향기에는 결코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는 것 같다. 책은 상품이고, 서점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운영된다. 하지만 책과 서점에는 상품과 자본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aura·특유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나’를 만나는 곳, 그리고 타인(저자)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곳. 시장이면서 밀실이고 또한 광장이기도 한 복합공간이 그곳에 있다.

      차가 막히나 보다. 표정훈 씨가 오면 광교 부근의 구 조흥은행 본점으로 가봐야겠다. 그 부근에는 1897년 고유상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 회동서관(匯東書館)이 있었던 곳을 알려주는 작은 표석이 있다. 거기를 다녀오면 적당히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지 않을까. 어떤 안주가 나오든 맥주가 맛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

      사진=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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