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거 먹엉 살아야 할지 모르쿠다. 경해도 농사는 해얍주, 어떵?”(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농사는 해야지 어떻게 해요.)
지난 9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강윤범(55)씨의 한라봉 하우스 시설에는 소형 굴삭기가 굉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굴삭기는 5년생 한라봉 나무들을 뿌리채 연신 뽑아냈다. 한라봉은 4년째부터 수확이 가능하고, 5년째는 한그루당 6㎏(3만원) 정도 수확한다. 강씨는 수년동안 고생한 ‘돈’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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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자신의 감귤밭에서 강창이(64)씨가 시름에 잠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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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대학보낸 감귤밭 내버릴 수도 없고…
뽑힌 한라봉 나무를 부지런히 옮기느라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강씨는 “미국산 오렌지류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설 재배한 한라봉은 경쟁이 안된다. 그래서 다른 작물을 심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라봉을 뽑아낸 곳에 망고를 심을 예정이다. 망고는 심은 뒤 4~5년 뒤에 수확한다.
그는 현재 한라봉 1200평, 감귤 750평, 망고 600평 등을 시설재배한다. 경비를 빼고나면 연간 5천만원 정도 돈을 번다. 30년 가까이 감귤 농사만 해왔다는 그는 “지금 상태만 돼도 농사를 해볼만 하지만 미국산 오렌지류의 수입과 한-중 에프티에이까지 체결되면 농촌에는 그야말로 재앙이 닥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설재배는 투자비가 많이 든다. 강씨도 1억3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시설재배하는 농가들은 평당 10만~13만원의 초기 시설투자비가 들어 1500평 이상이면 5천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다들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는데, 신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그는 “정부가 농촌을 위해 믿을만한 대안을 언제 제시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사례도 제시했다. 도지사가 5차례나 에프티에이 협상장을 찾아다녀도 된 것이 하나도 없고, 감귤 재배 역사가 40여년이 되는데도 시장에 팔 정도의 품종을 제주도 자체적으로 개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소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듯 되물었다.
수천만원 빚은 또 어떻게 갚을지 막막
보성리 옆동네인 대정읍 구억리 감귤밭에서 만난 강창이(64)씨는 비닐작업복과 마스크를 쓴 채 혼자서 2500여평의 감귤밭에 창가병 방제용 농약을 뿌리고 있었다. 기자를 만나자 담배부터 꺼내 문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내용을 아느냐’고 묻자, “농사만 짓는 사람이 계절관세니 뭐니 하는 말뜻을 알겠느냐”며 “그래도 감귤은 이제 끝이라고 하니 앞으로 뭐하면서 살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40여년 동안 농사 이외에는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다는 강씨는 그동안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 8천여평의 밭을 소유하고 있다. 노지감귤 2500평과 한우도 12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는 몇년 전에 생산량을 줄여야한다는 제주도의 방침을 받아들여 감귤밭 3500평을 없앴다. 그는 “아들 둘을 대학까지 보낸 감귤밭을 없앤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며 “또 감귤밭을 내버릴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라봉 시설재배 포기도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에서 부인과 함께 농약을 치고 있던 전업농 이동익(50)씨는 지난해 에프티에이 기금 지원을 포함해 3천만원의 빚을 얻어 1천여평의 감귤 비가림 시설을 만들었다. 그는 “비가림 시설 감귤은 3월에 출하되기 때문에 저관세 오렌지류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어쨌든 감귤로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지만 대안이 없어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고 답답해 했다.
현재 제주지역에는 전체 농가의 86%(3만1천여가구)가 감귤을 재배하고 있고 농가 수입의 51%를 차지한다. 그러나 한-미 에프티에이로 감귤농사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만 있을 뿐, 마땅한 대체 작목이 없어 농가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