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딱하면 돌 맞을 소리지만, 전 아마존의 헌책 판매 시스템을 아주 좋아하고 또 애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소비자 처지에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아마존이 들어오덩가, 아니면 아마존처럼 새 책과 헌책을 함께 파는 온라인 서점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요. 아얏!! (정말 돌 날라오네...)
책 사는 데 통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들과, 책을 읽을 의지는 있으나 어지간한 책은 중고로 때우는(사실 절판되어서 중고를 찾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여하튼)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지금 꼭 사봐야할 것 같은, 꼭 사서 내 것으로 삼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출판사는 상당 기간 지속되는 가치를 담은 책, 소비자가 지금 꼭 사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책을 만들어야한다는 결론에 귀착할 것이고, 그게 바로 다매체 시대에 책이 살아남을 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재미있게 읽은 기사 하나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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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비즈니스의 ''화려한 여정''을 예측했건만 ...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지난 3월 월 매출액 103억 원을 달성해 국내 단일서점 사상 최초로 100억원 대를 돌파했다. 3월 한달 동안 교보문고가 판매한 도서는 총 1,615,000권으로, 이 책들을 눕혀 쌓을 경우 여의도 63빌딩의 130배 높이에 달하는 셈인데 이러한 성장세는 여타 서점들의 약진과 맞물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출판 르네상스''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무적인 일이다.
이즈음 뉴욕에서 날아온 뉴스 한토막. 세계 최대의 온라인소매점인 아마존 닷컴이 헌책 판매를 강화하고 있는데 대해 작가들이 발끈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 책으로는 매출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인데 이에 대응하여 미국작가조합은 헌책판매를 강화함으로써 출판사 수입도 줄고 작가 수입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동조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이들의 반발에 대해 "헌책판매는 지난해 하반기 전체 아마존 서적판 매량의 15%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밝히면서 작가와 출판사들이 좀 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독자를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미국작가조합측은 아마존과 맛서서 북센스 닷컴(booksence.com)이나 헌책을 별도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반스앤드노블 닷컴(barnesandnoble.com)과 빅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시 일본으로 가 보자. 얼마 전에 일본의 대표적인 서점프랜차이즈인 ''마루젠''이 직영하는 니혼프레스센터 1층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 비 수익 점포를 정리하려는 일환인데 이렇게까지 쇠락한 가장 큰 이유는 북오프(www.bookoff.co.jp)로 대표되는 중고서점 때문이다. 10여년간의 혈투에서 결국 새것이 중고에게 백기를 든 셈이다.
일본 서점조합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2만여 개의 책방이 있는데 그 가운데 1천여 곳이 최근 3~4년간에 걸쳐 문을 닫았다. 신간서적과 잡지의 매출도 96년에 2조 6천억엔이던 것이 5년 연속 감소추세를 보이더니 2001년에는 96년대비 13%나 줄었다며 업계가 초비상이다. 그렇다면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일본인들이 책을 멀리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마이니치 신문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의 독서율이 87%에 하루 평균 독서시간도 31분으로 지난 49년 조사이래 역대 최고를 나타냈다고 한다. 여기에 잡지를 포하하면 59분이나 책을 본다는 것이다. 독서율이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하는데 이로 따져보면 여전히 일본인들은 책을 많이 읽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신간이 안 팔리는 이유는 이제 간단하게 해명됐다. 헌 책을 사 보기 때문이다.
고서점들이 즐비한 도쿄 간다(神田)에는 평일에도 헌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수 만명에 이른다. 이곳 서점가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홈페이지(book-kanda.or.jp)에는 지난 책이나 고서적을 찾아 읽으려는 독자들의 문의가 게시판을 꽉 채우고 있다. 이러한 중고서적 판매의 호조로 언급한 북오프사는 헌책을 새책처럼 손질하는 기계를 개발했는가 하면 분위기도 새책서점에 못지않게 꾸며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고 이러한 결과로 대표적인 중고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서 보자. 첫 번째 뉴스는 "한국에서 새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 뉴스는 "미국에서 주요 사이트들이 출판사와 작가들과 싸우면서까지 헌책판매를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일본에서 헌책방 때문에 새 책방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뉴스다. 그러니까 결국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헌책이 인기인데 유독 우리나라만 새책을 선호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새 것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나무랄 일은 아니고 더군다나 새 책을 사 줌으로써 저자도 살리고 출판사도 살리고 나아가 문화를 살리는 행위이니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과연 그런 애국적 마인드 때문에 새책을 집착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조금 건너 띄어서 다른 중고 얘기를 해 보자. 지난 IMF 때 필자는 중고비즈니스에 대해서 여러차례 각 매체나 방송을 통해 보도했다. 그 결과 중고 컴퓨터 사업이 멋지게 성공했고 창업자인 이병승씨는 한때 중고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후인 지금, 그 화려한 중고컴퓨터 사업은 빛을 잃었고 결국 컴퓨터 119라는 수리업체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다.
일산의 한 가게에서는 아동의류 중고점이 한 주부에 의해 시도됐다. 아동복은 중고비즈니스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포화상품이고 라이프사이클이 짧은데다 품질은 새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 1년쯤 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97년에 필자는 전국의 YWCA 간사들에게 ''아나바다 운동''에 대해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잘 알겠지만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육순현 관장에 의해 제안됐지만 인기가 시들해 지던 시기여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총본부는 ''금천 일하는 여성의 집''이었는데 다각도로 이 사업을 활성화 시켜보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허사로 끝났다.
미아리에서 한 주부는 98년에 숙녀복 중고점을 오픈했다. 고급 브랜드들이라 손쉽게 안정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6개월도 못 가서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가지 언급한 컴퓨터나 아동복, 여성의류 등은 모두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성공한 대표적인 아이템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쫄딱 망하거나 포기해 버린 상태다.
지금도 가끔보게되는 중고컴퓨터를 판다는 가게들은 가서 상담하면 모두 차라리 컴퓨터를 싸게 조립해 주겠다고 제안하며 유아복이나 숙녀복은 차라리 새벽시장에서 새 옷을 사다가 파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해서 일명 재고(stock)를 판매하는 보세점으로 전환해 버렸다.
지금까지 중고비즈니스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수요를 감당할만한 공급부재''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 사람은 그런대로 있는데 팔만한 제품이 없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내 놓지 않고 버린다는 말이다. 버리긴 버리는데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일정한 장소에 갖다 버리면 오죽 좋으련만 그냥 쓰레기로 버리니 문제다.
얼마 전, 중고제품 수거함이 동네마다 골칫거리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회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설치해 놓은 수거함들인데 쓸만한 중고는 안 갖다 놓고 쓰레기만 잔뜩 넣어놔서 악취만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우리 모두 터득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거함 뉴스가 나던 그 날, 한 중앙지의 인터넷 지면(紙面)에는 인터넷 서점업계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4분기 87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인터넷서점 예스24(yes24.com)가 올 1.4분기 253억원으로 매출이 191% 늘어나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였다는 내용이다. 책은 제품 표준화로 인터넷 구매가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어 고객 층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어서 온라인 서점의 앞날은 밝다는 점도 업계 사람의 코멘트로 처리됐다.
와우북이나 알라딘(aladin.co.kr), 모닝365(morning365.co.kr), 북스포유(books4u.co.kr)도 매출과 회원수가 크게 늘어났다. 모두 새책들이다. 그 어느 곳도 중고 책을 파는 곳은 아직 없다. 출간된지 6개월도 안되서 반품 처리된 책이 연간 9천만 부나 되고 1Kg당 90원씩 팔리는 현실에서도 중고서점은 아직 눈에 뜨지 않는다.
국내 출판유통 시장이 참고서를 포함하면 3조원에 이르고 신간도서가 2001년 기준으로 3만 5천여종에 1억 2천여만부나 발행되며 종(種) 수는 비록 1.9% 감소했지만 그래도 발행부수는 3.7%나 늘어난 이 시점에도 우리는 여전히 신간에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수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책 조차도 중고아이템으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하는 시점에서 여타 중고비즈니스의 정착은 한낱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들보다 우리의 호주머니가 더 두둑해서일까? 남이 쓰던 물건에 혼이 묻어 있다고 생각해서 재활용을 기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중고품을 사용하는 게 챙피해서일까? 쓸만한 중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귀찮아서일까..
나는 IMF를 기점으로 중고비즈니스의 ''화려한 여정''을 예측했건만 정녕 중고비즈니스를 아직도 요원한 아이템이라고 번복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
이형석(hslee@busines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