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중문화 ‘일류 쓰나미’
  • 영화·드라마 등 原作 스토리 수입 열기… “日에 대중문화 종속”
  • 최승현기자 vaidale@chosun.com
    입력 : 2007.03.26 00:38
    • 대하 시대극으로 유명한 40대 드라마 작가 A씨. 최근 일본의 인기 만화 ‘몬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원작)’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 판권 구매에 나섰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국내 유명 드라마 제작사가 한 발 앞서 ‘몬스터’의 판권을 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드라마 PD의 집에 놀러 갔다가 또 한 번 놀랐다. 그 PD 또한 집안에 ‘몬스터’ 만화책을 쌓아놓고 열심히 작품 구상 중이었다.

      지난해 말 개봉, 관객 660만명을 동원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8위), ‘장준혁 신드롬’을 일으킨 MBC 드라마 ‘하얀 거탑’ 등 일본 원작을 토대로 한 대중문화 콘텐트가 잇따라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국내 대중 문화계에 일제(日製) 스토리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DNA를 점령해 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일본 원작 리메이크만이 살 길?

      SBS는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연인이여’를 오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방송한다. 유오성·윤손하가 주연으로 나선 이 드라마는 일본 소설가 노자와 히사시 원작이다. 이 작가는 지난해에 역시 SBS가 방송, 20~30대 마니아 시청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 소설을 쓴 인물이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도 경쟁에 뛰어 들었다. ‘김종학 프로덕션’, ‘JS픽처스’는 각각 3편의 일본 소설·만화 판권을 사들여 드라마 제작에 나설 예정. JS픽처스 이진석 대표는 “작년 말부터 일본 만화, 소설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더 재빠르다. 2002~2005년 아예 전무하거나 1~2편에 불과했던 일본 원작 영화가 2006년에는 3편 이상으로 늘더니 2007년에는 1편(‘복면달호’)이 이미 개봉했고, ‘검은 집’, ‘바르게 살자’ 등 7편 이상이 기획 단계나 제작 중에 있다.

      일본 원작 판권 가격도 치솟고 있다. 현재 판권 가격은 작가 지명도, 작품 완성도 등에 따라 소설은 편당 3000만~1억원, 만화 1000만~7000만원 선. 2005년 말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김종학 프로덕션 박창식 이사는 “2002년만 해도 협상만 잘하면 500만원도 안 되는 헐값에 좋은 일본 작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방송사, 제작사가 몇몇 가능성 있는 작품에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가격이 무섭게 뛰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스토리 시장의 막강 파워

      현 상황에서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트의 ‘일본 편향’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거대한 저변을 확보한 일본의 만화, 소설 시장이 갈수록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한국 소설 시장 규모는 2030억원 선. 일본은 7243억원에 달한다. 일본 출판만화시장 규모는 한국(1242억원)의 약 40배에 달하는 4조원대. MBC ‘하얀거탑’의 극본을 쓴 작가 이기원씨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순수 문학과 대중 문학이 활발하게 교류하며 독특한 서사물을 대거 쏟아내 창조적 스토리 생산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는 국내 시장에서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을 압도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06년 일본 소설의 국내 소설 시장 점유율은 31%로 한국 소설 점유율 23%를 훌쩍 뛰어 넘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 영화 ‘두사부일체’, 드라마 ‘호텔리어’ 등이 리메이크되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대중 문화 스토리 경쟁에서는 한류(韓流)가 일류(日流)에 밀리는 형편이다.

      ◆한국, 일본 문화상품의 2차 시장으로 전락하나?

      전문가들은 일본의 왜곡된 대중문화까지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포될 가능성이 있고 한국 대중문화 상품이 일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콘텐트 기업들이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당장의 수익성만 고려해 보따리 장사하듯 일제 스토리에 의존하는 것은 한국 문화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한국 문화계가 신선한 감각을 지닌 젊은 스토리 작가를 양성하기 위한 경쟁 시스템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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