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시대와 역사의 소산”
출판인생 31년 김언호 한길사 사장
 ◇최근 파주 헤이리에서 열린 ‘로마인 이야기’ 완간 기념파티에서 자신의 출판 철학을 밝히는 김언호 한길사 사장.
“책 만드는 일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더욱이 전 제가 간절히 읽고 싶은 책을 만드니까 더욱 기쁩니다.”

출판인생 31년째를 맞은 김언호(62) 한길사 사장.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번역본 15권 완간 기념파티가 열린 파주 문화예술인마을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 자신의 소회대로, 말과 행동으로 행복감을 우려내는 사람이다. 비결이 뭘까. 출판사는 단순한 책 공장이 아니라 인간정신을 일깨우는 문화 인프라라는 확신에다, 자신이 그 복판에 서 있다는 만족감까지 번져 나오기 때문일 게다.

김 사장은 자칭 낙관주의자다. 1970년대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했다가 해직기자가 됐을 때도, 자서전 대필로 겨우 종자돈을 모아 출판한 ‘우상과 이성’(리영희)이 필화사건을 유발했을 때도, ‘민족경제론’(박현채) 등이 판매금지됐을 때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낙관적인 출판 철학은 ‘책은 시대와 역사의 소산’이란 말로 집약된다. “제가 출판을 시작한 70년대와 80년대는 사회과학적 인식의 시대였습니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역사와 세상을 보려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길사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그 시대가 읽힙니다. 요즘 일부 언론이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신문들도 당시엔 ‘해전사’를 극찬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5000부 안팎 나갈 것으로 기대했던 ‘해전사’는 30만부 이상 팔렸고, 사회 인식을 바꿨다.

◇학창 시절 엄청난 독서광이자 문학도였던 김언호 한길사 사장의 뇌리엔 늘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말이 박혀 있다.

한길사에서 낸 2200여권 중 가장 애착 가는 책을 묻자 김 사장은 해전사 대신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함석헌)를 꼽았다.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정신·사상적 영향을 미친 분이 함석헌 선생”이라는 김 사장은 “한 시대에 우뚝 선 사상가의 책을 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출판인으로서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의 마음은 훗날 20권짜리 함석헌 전집으로 구체화됐다.

많은 사람이 망설이던 ‘로마인 이야기’ 출판을 결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가 화두였던 90년대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지요. 일본인이라면 무조건 먼저 손사래를 치는 한국 독자에게 일본 여성작가의 ‘로마인 이야기’는 분명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책을 정직하게 만들자”고 늘 당부한다. 제목부터 양장까지, 독자 눈을 현혹하기 위해 요란을 떨지 말자는 제안이다. 과도한 치장은 불신을 초래할 수 있고, 독자의 불신은 출판계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니 정직하자고 매일 마음을 가다듬는 김 사장이다. 그런 그에게 과연 책은 무엇일까.

“책의 탄생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꿈과 정신을 담아내고 일으켜세우는 한 권의 책은 그 꿈과 정신처럼 아름답습니다. 책은 저자와 편집자, 번역자, 독자가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의 소산입니다. 책은 제 존재의 출발이자 귀결입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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