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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의 이쪽과 저쪽에 있던 최두환-레기네최씨는 시를 매개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여, 독일이든 한국이든 어드메에 산들 상관 있으랴. “내 고향은 종교와 언어 그리고 부부의 인연”이라는 정서는 위와 너머를 지향하는 시 세계에서는 하등 이상할 게 없을 터이다. 70대라고 보기 힘들 만큼 천진스러운 것도 그 탓이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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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21) 독문학자 최두환-레기네 부부
한강에서 상도터널을 지난 뒤에는 그냥 다 잊자. 그렇잖으면 내내 시대착오 증세로 멀미를 할 터이니까. 버스에서 내려 뒤로 돌아. 행길과 나란한 옆 언덕길을 톱아오르고 샛계단을 오르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구조물. 도저히 대문이랄 수 없는 크기의 암청색 철문. 커다란 쇠고리를 부여잡고 탕탕! 이리 오너라, 라고 해야 할 법하다.
최두환(72)-레기네최(71)의 성채.
“독일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좋은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다.’ 한국에서는 남녀의 결혼을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남편은 항상 위에 있고 아내는 항상 아래에 있어야 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남편에게 아내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아내에게도 남편은 하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하늘의 보물, 즉 천보입니다. 국보보다 훨씬 더 귀중한 천보입니다.” (레기네, ‘주례사’, 1999)
이들은 은퇴한 독문과 교수. 남편은 중앙대에서, 아내는 서강대에서 1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5년 독일 괴팅겐에서 서른,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신접살림을 차려 올해로 마흔두 해를 함께 살았다.
독일서 5년 펜팔끝 결혼해 한국서 교수직
김지하 시 독역하고 파우스트 오역 바로잡아
집안 층계참엔 토마스 만, 큰방엔 온통 괴테
“오랫동안 동무처럼 지낼 책만 사죠”
출판사 차려 한국엔 괴테, 독일엔 퇴계 전파
1960년 ‘첫 만남’을 떠올리는 이들의 얼굴은 상기됐다. 독일어를 익혀야 하는 총각과 아시안에 눈 동그란 처녀는 말동무였다. 쾰른 로센몬탁 사육제. 라인 강변을 거닐며 헤르만 헷세의 <싯타르타>를 화제 삼았다. “달이 항상 차 있지 않듯이 사랑도 기운다.” “단지 달라져 보일 뿐, 구름 위에도 달은 빛난다.” 하이쿠식 대화는 본-괴팅겐 편지교환으로 이어졌다. “우정은 평행선처럼 지속된다”는 비유에 “보이지 않는 평행선의 끝은 교차돼 있다”는 화답. 펜팔남녀는 5년 뒤 더 이상 편지교환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서로에게 선물인 이들의 첫 작품은 김지하 시 독역. 구명운동이 전개되던 과정에서 주어캄프 출판사가 그의 시 번역을 맡겨왔다. 2년이 걸려 김지하 시선집 <황토 및 그 밖의 시들>(1983)이 최두환과 샤르 슈미트의 공역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오적’만 제외하고 모두 최씨 부부의 번역이다. 한국어를 아는 남편이 초역을 하고 독일인 아내가 독일어 시 답게 마감했다. 독어본 김지하의 시를 읽어본 한 독문학 전공자는 시편이 운률에 맞고 무척 우렁차다면서 번역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평했다. 레기네는 독역에서 자기 몫은 1/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고, 남편은 레기네가 언어감각이 있으며 외우는 시가 50여편이라고 말했다.
독역땐 남편이 초역 아내가 감수
82년, 84년 각각 입국한 이들은 대학강단에 섰다. 아침에 부부로 헤어진 이들은 저녁이면 다시 연인으로 만났다. 그 사이의 시간은 각자의 제자 만들기. 최씨는 독일시 특히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르쳤다. 1부를 강독하면 한학기가 끝났다. 레기네는 독일원전 강독, 독어회화, 독일문화 등을 가르쳤다. 살가운 성격 그대로 독일어성서 강독, 독일인교회 성가대 등 과외활동도 활발했다. 그들의 교수시절은 독문학과 전성기와 겹친다. 전국 독문과가 72개에 이르렀을 정도. 의욕적으로 가르친 만큼 보람도 컸다. 제자들은 대기업에 쉽게 입사했다.
정원 너머 멀리 아파트군이 보이는 일층 침실. 최씨의 최근 관심사를 반영하는 책들이 서가에 꽂혔다. 풍류도에 관한 책들. “최치원이 쓴 ‘난랑비 서문’에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어 이를 풍류라 하는데 이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 맥은 퇴계 이황에게까지 이어졌어요. 명산대찰을 돌며 쓴 시를 보면 알아요. 퇴계를 근엄한 성리학자라고만 알고 있지만 자기를 벗어나 대자연과 합일하고자 하는 풍류도가의 면모가 숨어 있어요.”
토마스 만 서가가 우두커니 선 층계참을 지나 이층에 오르면 남면한 가장 큰 방이 괴테한테 주어져 있다. 나머지 작은 방은 브레히트, 독일시, 철학 등 기타. ‘괴테의 방’은 창을 뺀 사방이 온통 괴테, 괴테다. 다섯 종의 괴테전집, 자연과학 저작집, 대화집, 샤롯테 폰 슈타인 서간집 등 일차 자료와 동시대를 산 실러의 저작들과 학술논문 등 이차 자료들이다. 1881년 이래 독일의 괴테학회에서 낸 두 가지의 연간 학술지와 1994년 이래 한국의 괴테학회에서 낸 학술지가 나란히 꽂혔다. 전자는 독일 괴팅겐 고서점에서 운좋게 만난 것이고, 후자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1994~98) 간여해 펴낸 것이다. 독어판 괴테전집 중 완결본은 바이마르판. “3대에 걸친 작업인데다 중간에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편집방침이 바뀌고 했지만 유일한 완본입니다. 나머지는 선집이라고 보면 돼요. 일본에서는 학생용 함부르크판을 토대로 번역한 ‘전집’이 있어요. 우리는 물론 전집이 없어요. 60년대 말 ㅎ출판사에서 6권으로 선집이 나왔는데 악명이 높았어요. 역자 이름을 도용하고 번역도 엉망이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는 오역의 예로 <파우스트>를 들었다. 잘못 꿴 첫 단추는 파우스트가 50~60대의 노 교수라는 것. ‘밤’ 장면에 나오는 독백을 노교수의 인생 한탄으로 이해해 ‘아!’ 또는 ‘아아!’로 시작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나이는 30살. 따라서 그 감탄사는 학문과 일상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의 번역은 ‘악!’이다(27쪽, <파우스트>, 시와진실, 2000).
쪽지에 “최두환 선생, 문 다드세요”
다시 일층으로 내려오다 현관 벽에서 맞닥뜨린 커다란 쪽지. “최두환 선생, 문 다드세요.” 삐뚤빼뚤 필체에 낯선 표기법이다. 아무래도 최씨가 꼬리가 길고 레기네는 추위를 타는 모양이다.
“괴테의 ‘은행나무잎’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 것일까/ 하나가 둘로 나뉘어진 것인가/ 그대는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인 것을.’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행잎을 보고 좋은 부부가 어떠한 것인가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쪽은 하나로 되어있고 위 쪽은 둘로 나뉜 은행잎처럼 하나의 가정을 이루되 남편과 아내는 각기 개성을 존중해야 합니다.”(윗글)
각자의 제자 만들기가 끝난 지금 그들은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 공동작업을 한다. 박희진 시인과 이퇴계의 시를 독일어로 옮기는 일. 박 시인의 것 100편은 올해 안 슈트트가르트에서 나올 예정이고 퇴계는 샘플 번역단계다. “퇴계와 괴테의 자연관은 아주 비슷해요. 시인이 자연이고 자연이 시인이죠.” 최 교수는 괴테를 ‘독일의 풍류도인’이라고 말했다. 괴테와 퇴계는 우연하게도 소리값이 거울상이다.
틈새시간. 비스마르크시대, 바이마르공화국시대, 빌헬름시대의 시가지와 생활사를 기술한 <베를린> 3부작, <고딕시대 생활사>. “분단시절 동독에서 나온 책 가운데 민중생활사 연구가 출중해요. 사회주의권이어서 그렇지 싶어요.” <고요아침 나라로 떠난 여름여행>(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테크, 1895). 그 무렵 유행처럼 번졌던 귀족들의 동방여행기 가운데 하니다. “남편은 책 고르는 안목이 뛰어나요. 지금 필요치 않더라도 자료가치가 있거나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사는 편이에요. 나는 꼭 필요하고 오랫동안 동무처럼 지낼 책만을 사고요. 하루살이 베스트셀러를 사지 않는 것은 똑같아요.”
노부부가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눈치없이 오래 머문 것. 시간착오 멀미가 겨우 가라앉자 파우스트의 밤이 창가에 넘실댔다.
유러피언이라고 자칭하던 독일여인이 낯선 땅에서 24년째. 가끔 고향이 그립지 않을까. “내 고향은 나의 남편과, 나의 종교가 있는, 그리고 남편과 일상어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서울입니다.” 그리고 창문밖을 내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집은 20여년전 그대론데 사람과 나무만 늙어갈 뿐이네.”
“재고·반품 쌓였어도 상관없어요”
괴테 컬렉션 출간과 괴테도서관 설립 꿈을 가진 그들은 2000년 괴테자서전에서 따와 ‘시와진실’이라는 출판사 간판을 걸었다. 지금까지 20여권을 냈지만 <파우스트> <서동시집>만 나간다. 대문간 차고를 개조한 창고 가득 재고와 반품책이다. “대부분 박희진 시집이오. 12권으로 내기로 한 전집이 4권까지 나왔어요. 거의 반품으로 되돌아 오고 있지만 개의치 않아요. 괴테의 대작 <서동시집>도 사후 70여년이 지난 1900년까지도 초판이 출판사에 재고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어느 날, 하느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들이 내 희귀한 선물을 잘 유지하였느냐? 너희의 얼굴을 내보이라! 기쁨과 희망이 잘 보존돼 있느냐?”(윗글) 낭만파 노부부의 표정에 그 대답이 담겼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