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동 깊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읽었을까. 올해 호평을 받은 책 가운데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가 네티즌 추천을 받아 ‘2005 올해의 책 10선’을 선정했다. 최다 추천을 받은 책은 ‘블루오션 전략’이었고,
일년 내내 화제를 모은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할 49가지’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도 이름을 올렸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문학작품이 절반을 차지했다.
‘올해의 책’은 총 596개 출판사가 출품한 2855종 도서 가운데 교보문고 북마스터들과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네티즌 의견 9만4000여건을 수렴해 선정했다.
공병호(공병호 연구소장), 조남현(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용수(과학독서아카데미 원장) 등 전문가 14명이 ‘올해의 책 150선’을 고르고,
이 가운데 네티즌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상위 열 권이 ‘올해의 책 10선’에 올랐다.
올해 유일하게 100만부가 넘게 팔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위즈덤 하우스)는 2005 최고 베스트셀러이면서 올해의 책 10선에도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날마다 15분씩 책 읽기’ ‘잊지 못할 쇼 연출해보기’ ‘은사 방문하기’ 등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감동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엮었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을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면서 감동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블루오션 전략’(교보문고)도 올해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김위찬·르네 마보안 교수가 공동 저술한 이 책은 지나친 경쟁으로 이미 피로 물든 ‘레드오션’을 떠나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을 개척할 것을 제안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블루오션 정치”를 언급하는 등 ‘블루오션’이라는 용어가 정치·사회·경제 전반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경제·경영서로서는 드물게 30만부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고, ‘내인생의 블루오션’ ‘나만의 블루오션 전략’ ‘중국을 알면 블루오션이 보인다’ 등 유사 서적도 쏟아져 나왔다.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경제·경영서는 재테크 같은 기교보다는 원칙과 기본을 강조한 책들이었다. ‘2010 대한민국 트렌드’(한국경제신문사)는 LG경제연구원이 2010년 한국 사회를 소비와 산업, 문화 등 7개 영역에서 71개 키워드로 진단하고 전망했다. 최고 수준의 의료·교육·주거 여건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서비스 투어리즘’과 공항과 지하철 등 이동시간 중에 소비를 하는‘트랜슈머’ 등 미래 한국 사회에 나타날 새로운 경향을 간결하고 흥미롭게 제시했다. ‘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외 지음·웅진지식하우스)은 상식과 통념을 깨는 괴짜 경제학자가 ‘스모선수와 교사의 공통점은?’‘마약 판매상은 왜 부모와 함께 살까’와 같은 엉뚱한 질문에 답함으로써 난해한 경제학을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하반기 최대 히트를 기록한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책은 국제 비정부기구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한 저자가 지난 5년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네팔, 라이베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벌인 난민 구호 활동 경험을 에세이식으로 썼다. 전작인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중국견문록’ 등에 이어 히트 행진을 계속함으로써 여행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위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이 밖에는 문학 작품들이 10선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먼저, 인기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오자히르’(문학동네). 제목인 오자히르는 아랍어로 어떤 대상에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나 열정 등을 가리킨다. 아프가니스탄 종군 취재를 하겠다며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부인에 대한 애증을 잘 그리고 있다. 코엘료는 ‘연금술사’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도 베스트셀러 목록 30위권에 올려 놓음으로써 국내에서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는 그의 인기를 보여줬다.
국내 작가로는 세상에게 버림받아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과 열두 편의 판타스틱 단편 소설을 모은 가수 이적의 ‘지문사냥꾼(웅진지식하우스)’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일본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오쿠다 히데오가 엽기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유쾌한 사건들을 모은 ‘공중그네’(은행나무)와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1’(발터 외르스·들녘)도 10선에 뽑혔다.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톱 10’ 목록은 ‘올해의 책 10선’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올해의 책들은 판매 실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살아있는 동안’과 ‘블루오션전략’, ‘2010 대한민국 트렌드’는 교보문고 집계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10위권 안에 들었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오자히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50위 안에는 포함됐다.
올해의 책 10선 목록엔 이름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지만 심리학 관련 책들로 각광을 받았다. 2002년 출간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21세기북스)은 올해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면서 80만부나 팔렸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와 ‘유혹의 심리학’ ‘야심만만 심리학’ 등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들 책의 특징은 심리학이라는 주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과 사랑,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심리학을 이용하도록 하는 처세술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밖에 독자에게 잊혀졌던 책을 다시 펴내는 리메이크 출판도 눈에 띄었다. 우주론의 고전인 ‘코스모스’(칼 세이건·사이언스북스)와 우주의 기원을 다룬 ‘최초의 3분’(스티븐 와인버스·양문)이 다시 출간돼 관심을 모았고, TV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 소개된 ‘모모’가 재출간돼 단 2개월 만에 20만부가 팔렸다. 황우석 파동의 여파는 출판계에도 미쳤다. 연초에 황 교수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린 직후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소를 사랑한 아이, 황우석’ ‘만화 황우석’ 등 올해만 20여종 가까이 출간됐으나, 연말에 논문 조작 파문이 불거지면서 반품·수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