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본 출판계 철저연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03/10

이 기사는 일본의 출판전문지 <츠쿠루創> 편집부의 동의를 얻어 2005년 2월  특집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협력해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_ 편집자 주

출판 불황이 심각해지는 한편, 특정 책만 밀리언셀러가 되는 ‘메가히트 현상’이 눈에 띈다. 오랜만의 잡지 창간 열풍은 광고 수입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시장은 확대되지 못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진 출판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시노다 히로유키篠田博之 _ <츠쿠루創> 편집장

‘출판계가 홍보비를 투자하고 창간 캠페인을 했으니 일시적으로 활기찬 듯 보였지만  서점 사정은 좋지 못해요. 특히 남성지의 부진이 눈에 띕니다.’ 출판과학연구소 주임연구원 사사키 도시하루佐木利春의 말이다. 2004년은 대형 출판사가 잇달아 잡지를 창간해 오랜만에 잡지 창간 열풍이 불었다. 각사의 승패는 판가름났지만 전체적으로 잘 팔리지는 않았다.  특히 여성지의 경우 광고수입을 겨냥한 것이라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광고비도 전체적으로 늘지 않았다. 기업 측은 기존 잡지에 쓰던 광고비를 새로운 잡지로 돌렸을 뿐이다. 즉 창간 열풍은 출판사의 서바이벌 전쟁이었을  뿐 전체적인 파이는 확대되지 않았던 것이다. 창간한 여성지의 타깃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커리어우먼에 집중된 것도 광고를 유치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잡지판매가 저조하니 출판사는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증간호와 별책을 내며 발행 횟수를 늘렸지만 그 역시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잡지의 다품종 소량화는 서점 점두의 과당경쟁을 일으켜 점점 출판계를 압박하고 있다.

출판과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출판계 전체 매출은 잡지가 전년대비 마이너스 2.0퍼센트, 서적이 플러스 4.0퍼센트, 전체적으로 플러스 0.4퍼센트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겨우 플러스 0.4퍼센트지만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로서는 오랜만에 밝은 화제라 할 수도 있다. 2004년 서적 부문에서 잇달아 탄생한 베스트셀러가 간신히 수치를 밀어올린 셈이다.



밀리언셀러가 속출한 것도 2004년 출판계의 특징이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會いに行きます』나 『단호히キッパリ』도 100만 부 돌파가 확실해졌고 『전차남電車男』이나  『머리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말하기頭がいい人、話い人の話し方』  등도 밀리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출판 불황으로 책이나 잡지가 팔리지 않는 한편 특정 출판물에 매출이 집중되는 ‘메가히트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베스트셀러도 50만 부를 돌파하면 가속이 붙어 단숨에 100만 부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잘 팔리니까 사는 사람이 많아요. 잘  팔린다는 사실 자체가 구매동기가 되는 거죠.  예를 들면 『머리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말하기』는 7월에 발행되어 11월에 47만 부,  12월에는 60만 부를 넘었다고 해요. 시간이 갈수록 판매에 탄력이 붙은 거죠. 게다가 이 책은  비교적 수수한 비즈니스 책으로 PHP연구소는 원래 이런 류의  책을 냈으니 유독 이 책만 잘 나가리라곤 예측하지 못했을 거예요.” (사사키) 신서판으로 제목이 과거 밀리언셀러와 엇비슷하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자주 언급되었지만 어차피 주류는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잘 나간다’는 화제로 인해 판매된, 즉  출판물이 문화재로서가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읽혀진 느낌이다.

특정 책을 ‘화제의 책’으로 밀어올리기 위해  대중매체가 해야 할 역할이 커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TV 드라마나 영화 제작이 책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도 대형출판사의 판매 담당자 모두가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서점에  보내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려면 서점에  일종의 배후 장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출판사들에서 강조하는 바이다.



확실히 ‘책’은 변화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든다. 베스트셀러 목록만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인 2채널(www.2ch.com)을 그대로 단행본화한 『전차남電車男』도 그렇고 『단호히!キッパリ!』나 『달링은 외국인ダ─リンは外國人』 등  만화 범주에 들어갈 만한 애매한 책들을 보면 오늘날 책이 과거의 책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도매상이 연말에 발표하는 ‘연간 베스트셀러’는 예전부터 만화 단행본을 제외했는데 요사이 목록에 넣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책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출판사 순위에서도 언급되었다. 출판사 신고소득 순위(25쪽)는 출판사의 실적을 나타내는 지표로 자주 이용되었는데 이것이 거의 의미를  잃고 있다. 예전에는 대형 3사(고단샤講談社, 쇼각칸小學館, 슈에이샤集英社)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상위에서 군림했지만 최근에는 대형 출판사도 순위에서 쉽게 사라진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상위를 차지한 것이 베넷세코퍼레이션이나 리크루트 등 타업종에서 참가한 곳이다.

처음 집계할 때에는 전문출판사가 아니므로 리크루트를 순위에서 제외한 적도 많다. 그렇다면 어째서 베넷세코퍼레이션은 넣은 걸까. 어디까지 출판사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가 애매해졌는데 이는 출판사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출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겨우 이런 근원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 특집에 실린 권두 좌담에서도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



일본은 전후 오랫동안 불황이었음에도 책은 잘  팔린다는 ‘출판신화’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최근 장기화된 출판 불황으로 그 신화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책방은 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이제 모두 옛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점이 급속히 폐업하거나 재편되었음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출판계는 어디로 가는 걸까.

기사게재 : <기획회의 16호> 특집 - 일본출판계 철저 연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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