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 문학에디션 뿔 박상순 대표 冊 - 출판

2006/11/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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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문학에디션 뿔 박상순 대표
등록일 : 2006/10/09
신선한 도전을 꿈꾼다

김민영|<북데일리> 기자 bookworm@pimedia.co.kr

박상순은 세상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6월, 민음사 편집이사였던 그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일이었다. 언론은 "편집장 출신 CEO가 탄생했다"며 전문편집인이 출판사 대표 자리에 오른 '이례적인' 사건에 주목했다. 16년간 민음사라는 한 우물을 판 월급쟁이 편집장의 '성공'에 출판계는 축하의 박수와 우려의 시선을 모두 보내는 눈치였다.

두 번째 사건은 9개월 후에 일어났다. 그가 민음사에 사표를 냈다. 공식적으로는 "민음사 설립자의 후계 체제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유였지만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성공을 자축하던 이들은 그의 퇴진에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행방이 묘연했던 그가 ㈜웅진씽크빅으로 영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 박상순은 웅진의 문학·인문학 전문 단행본 출판사인 '웅진 문학에디션 뿔'의 대표로 다시 출판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례'를 깨고 웅진 본사가 아닌 서교동에 사무실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음사와의 결별을 결정하게 된 속내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문을 두드린 그날, 그는 피로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밝게 웃고 있었다. 그가 내민 새 명함에 길게 드리워진 뿔 모양은 출판을 향한 그의 가열한 열망과 의지가 '투사'된 선전포고처럼 느껴졌다. 첫 책 출간을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민영(이하 김)        9월이 지나면 더 바빠지실 듯해 서둘러 왔습니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세요?
박상순(이하 박)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습니다. 회의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해야 해서 요즘은 목이 좀 아픕니다. (웃음) 앞으로도 한두 달은 이렇게 회의가 많거나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을 듯해요.

김        웅진그룹 본사는 본관, 별관이 따로 있어 취재하러 갔다가 헤맸던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웅진 문학 에디션 뿔은 이렇게 따로 떨어져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네요. 떨어져 있으니 정말 임프린트 느낌이 납니다.
박        본관 분위기가 너무 사무적이고 딱딱하니까 출판사가 많이 있는 서교동에 있는 게 아무래도 문학과 예술에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주장해서 이쪽으로 오게 됐죠. 원칙적으로는 본관에 있어야 하지만.

김        올해 3월 민음사를 나오신 후 박 대표님의 행보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계기로 웅진과 손을 잡게 되셨는지 그 '사연'이 궁금합니다. 먼저 웅진 측의 제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요.
박        민음사를 그만두고 나서 어떤 특별한 계획이 서 있지는 않았어요. 웅진 측과 만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먼저, 제가 한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큰 책임을 맡았었는데 웅진은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맡았던 분야가 경제경영 실용 쪽이 아니라 순수문학과 인문학, 어떻게 보면 제한적인 분야였는데 그것을 계속 할 수 있는 출판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출판사가 있다고 해도 이미 책임을 진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저를 따로 원하지는 않을 거고요. 웅진은 제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의욕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 제가 일할 수 있는 자리도 있었어요. 그것이 수동적인 계기라면 적극적인 계기도 있었지요.
사실 웅진 말고도 몇 군데에서 제의를 받았고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웅진을 선택했으니 일부에서는 웅진이 거대자본이라는 사실에 우려를 했겠죠. 하지만 거대자본이 갖는 장점 때문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20여 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 편집자라면 대부분은 자신의 역량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 규모가 큰 출판사를 생각할 겁니다. 웅진은 그런 규모와 의지가 충분한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세기 동안 한국출판은 놀라운 성장을 해왔고 거의 10년간 매출액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출판사도 많이 생겼고. 주간이나 편집장을 지낸 많은 동료가 출판사를 차리고 독립을 선언했죠. 몇몇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40-50대 전문 편집자들이 역량을 펼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므로 결국 '독립'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20여 년을 한 분야에 몸담아온 저도 조직 안에서 전문성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웅진을 선택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15년, 20년 경력을 쌓은 역량 있는 사람들이 신선한 감각으로 계속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좋지 않겠습니까? 동시에, 우수한 인력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는가도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조건, 더 높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했죠. 지금 와서 보면 회사를 차려 개인적인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선배,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듯싶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규모 있는 조직과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배경들이 웅진과 함께 일하게 한 거겠죠.

신선한 도전과 풍요함
김        '웅진 문학 에디션 뿔'이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상상에디션-웅진'과 '웅진 문학 에디션 뿔'(이하 '뿔')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후문도 들리던데요.
박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게 가장 좋겠다"라고 해서 마음을 정했죠. '뿔'이라는 이름에는 저와 팀원들의 의지가 투사되어 있습니다. 한국이나 동양에서는 '뿔'이라 하면 신라의 금관 같은 영광되고 명예로운 어떤 것을 상징하죠. 또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면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흥부의 박과 비슷한 신화가 있는데요. 동물의 뿔을 열었더니 온갖 풍요한 것들이 쏟아졌다는 이야기죠. 그런 풍요함을 상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광되고 명예로우며 동시에 풍요했으면 하는 기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        저는 뭐랄까… 어떤 '공격성'이 느껴지는데요?
박        (웃으면서) 먼저 정한 의도는 그거였고요.

김        '뿔'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떤 비범한 결의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박        발음이나 상징을 생각했을 때는 훨씬 젊고 도전적이고 힘찬 이미지였으면 좋겠다 싶었죠. 거기에 명예와 풍요의 이미지를 덧붙였고요. 신선한 도전? 그런 것이면 좋겠다는 의지를 뜻하는 이름이죠.

김        '뿔'은 문학·인문학 전문 단행본 출판사입니다.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계신지요? 박        문학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거예요. 한 60-70퍼센트? 문학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까지 어울리면서 생산되고 수용되기 때문에 인문과학 배경의 책들도 출간할 겁니다. 외국문학과 한국문학도 골고루 섞을 예정입니다. 정확한 비율을 말씀드리기는 뭣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의 비중이 더 높기를 기대합니다.

김        '뿔'의 인원 구성은 어떻습니까? 장전하신 총알이 궁금해지는데요.
박        신입사원에서 경력사원까지 고루 있습니다. 대부분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석사를 마쳤거나 박사과정을 공부한 재원들입니다. 문학에 대한 전문적인 학습이나 교육을 충분히 거친 사람들이죠. 학사과정을 마치고 입사한 신입도 있어요. 경력사원 중에는 예전의 인연으로 함께 일하게 된 직원도 있고요. 대부분이 문학 전공자들이죠.

김        웅진에는 여러 개의 임프린트가 존재합니다. 그간 경제경영 실용서 중심으로 입지를 굳혀온 웅진 입장에서는 이미지 재고를 위해서라도 사활을 걸 만한데요. 문학 분야에 대한 웅진의 열의는 어느 정도입니까?
박        웅진그룹의 기업성장 역사를 보면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서비스 시스템이라고 할까. 국내 필자와 연구진을 동원한 전집류, 학습 분야 등에서 이런 의미 있는 작업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열정을 다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회사죠. 문학은 그런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고요. 문학을 하고자 하는 저와 함께 열의를 가지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임프린트에 대한 박 대표님의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박        임프린트는 독립적인 생각을 가진 많은 출판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입장에서는, 편집자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권한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임프린트가 늘어나면 전문편집자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배경이 형성되는 셈이죠. 출판사에 속한 하나의 팀 같은 개념이죠. 각자의 빛깔을 내면서 창의적인 노력을 지속한다는 점에서는 큰 조직의 '긍정적인 힘'이라고 봅니다. 전문편집자들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김        민음사 대표이사가 되셨을 때도 기획·편집 부문은 전권이 있었지만 경영범위 내였습니다. '뿔'의 임프린트 체제와 당시의 체제를 비교하자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박        지금이 훨씬 책임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모든 부담을 내가 지고 가야 하거든요. '재무관점'에서 매출액과 매출액 대비 이익까지 책임져야 하니까 단순히 기획만 하는 게 아니죠. 웅진의 모든 임프린트 대표들은 자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평가합니다.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책임지고 노력해야 하니까 부담스러운 부분은 더 크죠. 하지만 경영범위 그림자 안에 있을 때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순기획자 차원이 아니니 좀더 긍정적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팀원들에게도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한 업무들을 이관하고 공유하는 편이에요. 개개인이 모두 작은 출판사의 경영자이자 기획자라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서죠. 임프린트라는 시스템이 단점도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장점이 있어요. 경영적 측면에서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그 역시 장점이겠죠.

시장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관점
김        랜덤하우스중앙과 웅진 같은 대형출판사들이 '순문학'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문학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너도나도 쉽게 책을 내다보면, 즉 책을 낼 수 있는 활로가 많아지면 문학의 체질이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측면이죠.
박        문학이나 예술을 꼭 돈으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국 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자본이 많아야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그 점에 있어서 규모가 큰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나 문학작품을 대하는 입장과 문학작품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결과는 '똑같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누가 더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는 문제죠. 반대로 생각한다면, 모든 작가와 예술가들은 돈을 많이 주는 사람하고만 손을 잡는다는 전제가 형성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과는 무관하거든요. 때문에 규모가 큰 출판사라고 해서 유리한 건 아니죠. 다만 일을 실행할 때 규모가 있는 곳이 '추진력'은 강하겠죠. 하지만 출발선에 서 있을 때는 동일한 경쟁관계라고 생각해요.

김        온라인서점만 비대해지는 출판 현실에서, 현장에 계신 출판인들은 하나같이 "힘들다"며 입을 모읍니다. 할인 판매, ?+1 이벤트라도 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으니 출혈을 감수하면서 전쟁에 뛰어든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가장 안 된다는 문학, 인문학 분야에 뛰어드시는 건데 부담은 없으세요?
박        마케팅 측면에서 보자면 문학은 열세인 분야죠. 하지만 사람들이 늘 한 가지만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는다고 봐요. 예를 들어 ?+1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온 국민이 그 책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호응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거고요. 저는 시장은 늘 열려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상황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실 어려운 게 당연하잖요? 돌이켜보면 살아가면서 행복했던 날들이 365일 가운데 얼마나 있었던가 싶어요. 다만 행복해지려고 노력한 날들이 많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겠지요. 누구나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죠.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상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제가 가진 무기 가운데 그런 긍정적 태도가 가장 큰 무기일 거예요. 늘 긍정적으로 시장과 독자를 바라보는 편이에요.

김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죠. 민음사 대표 자리에 오르신 후 10여 개월 만에 물러나셨습니다. '민음사 설립의 후계 체제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가 사유로 알려졌는데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박        오래 다녔던 회사를 떠났다면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아쉬움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아쉬움 가운데 회사가 저한테 준 부분도 있겠지만 제가 회사를 그렇게 생각한 부분도 있겠고요. 청춘의 시간을 그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며 보냈기 때문에 아쉬움을 말하기보다는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김        17년간 민음사에 몸담으셨죠?
박        그렇죠. 1989년에 입사했으니까.

김        젊은 날을 보낸 민음사라는 곳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한데요.
박        그렇죠. 출판이라는 매체를 알게 해줬고 그 매체를 운영하는 데 올바른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 곳이죠. 출판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하고요.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탐구하고 몰두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죠.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늘 변화도 동반합니다. 어떤 변화가 필요했기에 그만 뒀겠죠.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듯합니다.

내 작은 재능들을 꼭꼭 모아
김        민음사 미술부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후 대표 자리까지 오르셨습니다. 디자이너에서 편집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박        회화과를 나왔고 순수회화를 전공했어요.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었죠. 당시에도 화가보다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학작품이 출판되어서 사회화되는 매체인 출판사 쪽으로 오게 됐죠. 입사 당시 디자이너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고 저에게 미술을 전공했던 감각과 기본 테크닉, 책을 좋아하고 원고 읽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서 북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를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요. 다양한 관심과 여기저기 흩어진 제 작은 재능들이 골고루 쓰임새가 있었어요. 남들이 볼 때는 특이한 이력이죠. 제 재능들을 꼭꼭 모아서 한꺼번에 쓸 때 가장 적합한 곳이 출판사였어요.

김        500여 권의 책 표지를 작업하셨죠?
박        네. 작업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어요. 제멋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랄까…. 실험적인 것들도 많이 했었고. 북디자인이라는 일도 참 만족스러웠어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서 또, 이렇게 다른 일을 하는 거겠죠. (웃음)

김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으시다면요?
박        아마 제가 1990년대 문학작품 작업을 가장 많이 한 디자이너였을 거예요. 기억에 남는 작업이라면…, 딱히 꼽기는 힘들지만
『미당 시전집』 『보르헤스 전집』,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이인화의 책, 판매 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책들이 있어요.

김        요즘도 그림 그리고 시도 쓰세요?
박        취미활동을 하기에는 어렵죠…. 아까 저에게 있는 작은 재주들을 꼭꼭 뭉쳤더니 여기 와서 쓰임새가 있더라고 말했는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이기도 해요. 오히려 일을 하면서 충족되는 부분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업무와 업무 외적인 취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죠.

김        책을 만드는 일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 가운데 어느 것에서 더 희열을 느끼세요?박        비교하기는 어려운데… 같다고 느껴지네요. 글을 쓸 때는 희열보다는 고통의 시간이 좀더 많지만 중독되어 잘 못 느끼는 듯해요.

김        오랜 시간 민음사에 계시다 웅진에 새 둥지를 트신 만큼 박 대표님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첫 책에 대한 관심이 클 테고요.
박        첫 책은 추석 지나면 나올 예정이에요.

김        문학작품인가요?
박        문학작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런 책이에요. 첫 책은 문학작품이라고 못 박기에는 좀 차이가 있는 책일 거예요. 다른 책에 비해 조금 더 빨리 진행돼서 첫 책으로 예정됐고요. 두께가 좀 있는 책이 될 듯싶네요. 올 12월이 지나야 한국문학이든 외국문학이든 꿈꿔왔던 결과물들이 나올 듯합니다.

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뿔'의 지향점과도 접점을 이루는 질문일 듯 싶은데요.
박        우리가 지향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문학은 아주 오래됐고, 문학이 추구해야 할 거시적인 형태도 우리에게는 이미 잠정적으로 정의돼 있죠. 그것을 어떻게 신선하게 해석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부여됩니다. 그동안 있었던 문학작품들에 대해서 저를 비롯한 팀원들이 조금 색다른 접근과 시도를 할 거예요. 같은 문학을 하지만 모두 차이가 있듯이. 새로운 실험을 더 많이 할 예정입니다.

김        20여 년 동안 출판에 투신하셨는데 책을 만든다는 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        출판은 나로 하여금 늘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게 했어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실험과 도전을 꿈꾸게 했거든요. 즐겁게 꿈꾸고 실험하는 사람이 되게 한 것? 그것이 저에게 있어 출판이 갖는 가장 큰 의미일 거예요.

김        어떤 출판인으로 남고 싶으세요?
박        편집자는 잊히는 존재죠. 하지만 편집자가 젊음을 바쳐서 꿈을 꾸고 도전했던 책들은 남겠죠. 시립도서관 서가 끝에 꽂혀 있다 할지라도 사라지지는 않죠.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작가들은 기억됩니다. 하지만 편집자는 사라지죠. 저는 그 사라짐을, 소멸을 받아들이는 편집자로 남고 싶어요. 작은 의미일 수 있겠지만, 제가 출판사를 차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진에서 느껴지던 예민함과 날카로움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부드럽고 겸손했다. 소멸이 두렵지 않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역설'처럼 느껴졌다. 북디자이너, 시인, 편집자를 거쳐 출판사 대표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실험을 거듭해온 만능 재주꾼 박상순. '작은 재능'이라는 겸손한 표현 뒤에 감춰진 그의 괴력이 실체를 드러낼 시기가 도래했다.

출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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