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가·나홀로 출판사·출판기획자로 명성 날리는 3인방
과학저술가 이인식씨
선구자적인 길을 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고독하다. 국내에서 ‘과학저술가’의 영역을 확고하게 굳힌 이인식씨(61)는 ‘과학계의 호메이니’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별명에서 보듯이 그는 때로는 과학자로부터 ‘사기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그건 순전히 학벌 중심의 학계 풍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은근히 무시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또 때로는 황우석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곳이 과학계이다.
학사학위가 전부인 이씨가 과학저술가로 명성을 날리자 오히려 과학계로부터 갖은 오해와 ‘구박’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20여 년 동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금은 과학적 지식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저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류 과학자들도 이씨에게 과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며 ‘칭찬 릴레이’에 가세(?)하고 있다. 최근 열린 ‘미래교양사전’ 출판기념회에는 정부와 과학계, 재계의 고위인사들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20여 년 동안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제도권에서도 인정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뒤늦게 과학기술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씨의 힘은 무엇보다 과학을 쉽게 풀이하는 것. 과학과 섹스를 결부하거나 인문학의 위기를 과학적 사유에서 찾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학이라 하면 으레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이씨의 손을 거치면 과학자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과학이 일상으로 내려와 친밀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씨가 처음부터 과학저술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에 금성사에 입사한 그는 1991년까지 20여 년 동안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1985년부터 틈틈이 컴퓨터 잡지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그의 칼럼은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석사와 박사학위가 없는 이씨가 컴퓨터 전문가가 될 수 있던 것은 다름아닌 ‘학습의 힘’이다. 배우고 공부하면서 그는 박사보다 더 컴퓨터를 잘 아는 전문가가 되어갔다. 2년 남짓 칼럼을 쓴 덕분에 1987년에 ‘하이테크 혁명’이라는 책을 냈다. 과학저술가로서의 데뷔작이었다.
1992년부터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과학저술가로 나섰다. 그가 과학 분야의 칼럼니스트로 나서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극구 말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사까지 지낸 그는 더 이상 대기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시대를 몇 발 앞서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가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1992년에는 ‘사람과 컴퓨터’를 내면서 마침내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굳혔다.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책은 지금도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인용할 정도로 고전으로 통한다. 이씨는 이미 14년 전에 요즘 기술적 개가를 올리고 있는 나노기술이나 인공생명 등 첨단기술을 소개했다.
이 책이 나오자 과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박사학위도 없는 일개 회사원이 교수들도 내기 힘든 전문서적을 냈느냐”면서 유명 대학 교수들이 그를 “과학자의 탈을 쓴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교수들도 그가 꼼꼼하게 밝힌 참고문헌 등에는 두손을 들었다. 그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씨가 지금까지 쓴 책은 모두 20여 권.
이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발 앞서 컴퓨터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고 이를 발판으로 과학칼럼니스트이자 과학저술가에 도전했고, 결국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다.
1인출판 서사봉씨
‘백만불짜리 습관’ ‘창가의 토토’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등 베스트셀러는 다름아닌 1인이 운영하는 ‘나홀로 출판사’가 터뜨린 대박 작품이다. ‘1인 출판’은 말 그대로 혼자서 편집·기획·제작·홍보·마케팅 등 출판 전 과정을 도맡는 출판 시스템이다. 1인출판은 자본을 앞세운 ‘규모의 경제’에 걸맞은 출판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할 바에는 고정비용 지출 부담이 없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출판계에서는 등록된 출판사 2만여 개 가운데 15%가 1인출판사라는 추정이다.
1인출판사 ‘용오름’을 운영하고 있는 서사봉씨(43)는 일간지 기자출신이다. 서씨는 출판 등 문화관련 기사를 주로 쓰다 아예 신문사를 박차고 나와 2004년 나홀로 출판사를 차렸다. 퇴직금 2500만 원 등 자본금 7500만 원을 투자했다. 출판사를 설립하고 준비기간을 거쳐 10개월 만에 ‘10년 불황, Hit는 있다’라는 책을 냈다. 이어 두 번째 책으로 자신이 직접 번역한 ‘백만불짜리 습관’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불황기에 읽힐 책이라는 컨셉트로 냈는데 그게 통했던 것이다.
서 대표는 준비된 1인출판가이다. 그는 서울대를 나와 1991년에 ‘한국일보’에 들어가 경제부와 문화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0년 5월 신문사를 나온 그는 누나가 운영하는 벤처회사에서 펀딩을 담당하다 사회평론에서 출판실무경험을 2년 동안 익혔다. 기자로 안주하기보다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일을 하고 싶던 그였기에 경력을 살려 1인출판에 뛰어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그가 한 일은 출판사를 어떤 분야로 포지셔닝 하는가였다. 그는 자신이 경제경영 분야의 ‘표준독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독자가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춘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깊이있는 전문 경제경영서보다 30~40대 직장인에게 필요한 책으로 범위를 한정했다. 특히 그는 불황기에 오히려 직장인들이 책을 더 찾을 것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여기에 맞게 책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심리와 관련된 실용인문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조만간 ‘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서 대표는 창의적인 기획능력이 있다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것을 1인출판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았다. 반면에 자신이 모두 기획해야 하기 때문에 기획의 범위가 좁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자신만의 네트워크나 시스템을 갖추고 필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 대표는 지난 2년여 동안 모두 8권의 책을 냈다. 그는 2년간의 성적표를 굳이 매긴다면 ‘만족’하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나홀로 기획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당분간 1인출판을 견지할 생각이라고 한다.
1인출판사는 어떻게 설립하나? 1. 회사 이름을 정해 구청에 개인사업자로 등록한다 2. 세무서에 사업자 신고를 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받는다
책 1권(번역서)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번역료 300만 원 편집, 디자인비 300만 원 종이, 인쇄, 제본비 300만 원 창고비, 배분비 등 300만 원 총 1200만 원 |
출판기획자 연준혁씨
출판가에서 연준혁씨(H2기획연대)는 베스트셀러 기획자로 통한다. 출판사 근무가 전혀 없던 그가 출판계에 얼굴을 내민 지는 이제 3년 정도. 짧은 기간에 그가 이룬 기획력은 괄목할 만하다. 먼저 50만 권 이상 팔린 ‘평생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를 비롯해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과학만화’가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최근에는 영어만화도 출간됐다.
우리 출판가에서는 아직 출판사와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출판기획자의 입지가 좁지만 그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현재 그는 마포의 한 대형 출판사에서 사무실을 제공받으면서 전속 기획자로 일한다. 물론 출판사에 고용되지 않은 프리랜서 기획자로 자유롭게 근무한다.
출판기획자 명함을 내밀기 전에 그는 주로 학습 사이트 등 주로 온라인 업계에 종사했다. 서울대를 나와 구로동에서 시민운동을 하다 1990년에 웅진미디어에 입사한 이후 줄곧 학습게임을 개발했고 한솔교육으로 옮겨서도 온라인 컨텐츠 개발을 담당했다. 아이들의 온라인 배움터인 ‘재미나라’(www .jaeminara.co.kr)는 그가 개발에 참여했던 사이트다. 이어 북토피아에서는 전자책과 인터넷서점 관련 업무을 하다 2001년 여름에 온라인 교육 사이트 ‘이런교육’을 창업했다. 2년 동안 운영하다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한 그는 미련을 접었다.
그는 이때 지인으로부터 출판기획 일을 제의받고 새출발을 했다. 그는 줄곧 온라인 등 뉴미디어와 전자책과 관련된 일을 했지만 책에 대한 애착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식사회에서 온라인의 역할이 크지만 그래도 책이 경험과 지식전수에 유효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의 출판기획 선택은 어쩌면 대세인 온라인에서 발을 빼고 거꾸로 오프라인인 책으로의 회귀인 셈이다.
연씨가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이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던 것은 다름아닌 ‘인연’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졸업 후 1년 동안 구로동에서 시민운동을 했는데, 이때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김태영 위즈덤하우스 대표를 만났다. 출판기획을 제의한 사람은 다름아닌 김 대표였다. 그는 김 대표가 첫 번째 만난 ‘귀인’이라고 했다.
두 번째 만난 귀인은 다름아닌 ‘평생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의 저자인 김강일 부부이다. 그가 기획일을 하고 두 번째 낸 이 책이 그만 대박을 터뜨렸다. 두 딸의 성장기에 비춰 초등학교 4학년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 연씨는 이와 관련된 책을 기획했다. 마땅한 저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안산에서 과외방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김씨부부가 생각났다고 한다. 김씨부부는 그가 벤처기업인 ‘이런교육’을 운영할 때 안산지사를 맡았던 인연이 있다. 책을 출간하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그는 3년의 짧은 기간에 20여 권의 책을 기획하면서 현재 출판계에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기획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씨가 말하는 출판기획자의 조건
1.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2. 지식인 수준이 아니라 독자 수준의 코드를 맞출 수 있는가 3. 자기만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4. 저자섭외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가 5. 업무 추진력을 지니고 있는가 |
최효찬<객원기자> romai@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