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난 뒤의 팬티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읍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와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者도 아닌 죽은 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오규원,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문학과지성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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