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의 힘 - 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윤상인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7월
절판


한류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곳곳을 넘나드는 사이에, 일류日流 역시 세계 규모로 물줄기를 뻗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서 21세기가 문화 지정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조짐을 발견한다.
하드 파워 시대의 주체가 국가 권력이었다면 소프트 파워 시대에는 민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12쪽

(일본의) 한자는 그 조합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명함의 영문 표기는 내국인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무국적어의 천국이다... 직장여성을 줄여 'OL(office lady의 이니셜)'이라고 부르고... 당돌한 여고생을 '고갸루(高+girl)', 당돌한 직장여성을 '오야지가루(아저씨+girl)' 등으로 계층을 나눠 부르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일본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일본의 문자문화는 때로는 국적까지 넘나들면서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본질에는 언제라도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수용성'과 그것을 체질에 맞게 바꿀 수 있다는 '편집성'이 내재되어 있다. -18쪽

일본은 분명 디자인 선진국이다. 화장품에서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일본의 디자인은 우리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디자인의 표면적인 스타일만을 부러워하거나 흉내 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다나카 잇코의 포스터에서처럼 다테마에 뒤에 감추고 있는 혼네의 칼날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기우라 고헤이/-45쪽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현대문학의 큰 줄기를 다음 세 집단으로 분류해서 설명한 바 있다. 제1집단은 '세계문학으로부터 고립된 문학'으로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가 여기에 포함된다. 제2집단은 '세계문학에서 배워 세계문학으로 향해 되돌려주고자 하는 문학'으로서 오오카 쇼헤이, 아베 고보, 오에 겐자부로가 여기에 속한다. 제3집단은 '세계가 하위(대중)문화로 공고히 얽혀 있는 시대에 전형적인 문학'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그 대표적인 존재이다. -61쪽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은 서양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특수한 세계를 그려서 주목을 끈, 다시 말해서 서양인들의 이국취미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오에의 수상은 일본문학이 비로소 세계문학 속에서 진정한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의의를 지닌다.(서양어의 번역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오에 소설의 문체는 일본어의 토속성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63쪽

(무라카미 하루키) 1979년부터 2004년 사이에 10편의 장편소설과 9권의 단편집을 펴냈고, 총 30권 이상의 여행기, 논픽션, 에세이를 출판했다.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럴드, 팀 오브라이언 등 20세기 후반 미국소설을 중심으로 근 50권에 이르는 번역서를 냈다. 실로 대단한 분출력이다... <양을 둘러싼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새>를 읽은 독자는 작가가 마치 건축설계도와 같은 치밀함 속에서 한 순간도 독자의 집중력을 이완시키지 않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루키에 대한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실제의 독서 경험을 통해 그야말로 진부함을 극도로 거부하는 작가라는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비교적 번역하기 쉽다. 그것은 작가가 일본문화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제3의 영역에서 애써 중성적이며 인공적인 일본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루키 소설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피와 눈물과 땀만이 아니다. '빈곤'도 결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안정되고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구가한다... 하루키가 창조하는 세계는 엄밀하게 말해서 일본어와 미국적 감성의 행복한 결합에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64쪽

(영화) 일본영화는 치밀하고, 섬세하다. 대규모의 제작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대작이나 극단적인 예술영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영화의 촬영 기간은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 치밀하게 프리프로덕션을 하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서는 계획된 것을 정확하게 지킨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고 흠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지만, 조금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커뮤니케이션을 탐구하는 골에다 히로카즈/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1951)/이마무라 쇼헤이, <우나기>(1997, 칸 그랑프리)/작가영화를 대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그리고 영화 파트를 담당한 김봉석-75쪽

(애니메이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대체로 수동적인 관객을 양산하며, 강력하면서도 지속적인 계몽주의적 담론을 재생산해오고 있는 데 반해, 일본 애니메이션은 능동적인 관객을 훈련시키는 열린 텍스트를 전제하면서, 외유내강식의 중독성 있는 메시지를 연속적으로 표면화하고 있다... (디즈니 식의 매너리즘에 대한 대안) 세계 애니메이션 배급사들의 대안적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은 아직도 기존 전통적 2D 애니메이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시나리오의 실험성이 또다른 대중성의 틈새를 자극하고 있다. 또한 다양하면서도 차별적인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비평지대의 확산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마니아층을 세계적으로 확대시키며 안정적인 소비 영역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104쪽

* 데스카 오사무(1928년생, 오사카대 의학부 진학, 졸업, 61년 의학박사 학위 취득) 정글대제/철완아톰/리본의 기사 등
*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마녀 배달부 키키/붉은 돼지/이웃집 토토로/귀를 기울이면/원령공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3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 일본 관객 2,500만명, 한국 관객 250만명 등)/하울의 움직이는 성
* 다카하타 이사오(반딧불이의 무덤/추억은 방울방울)
* 오토코 가쓰히로(미궁물어/메모리즈/아키라)
* 오시이 마모루(천사의 알/공각기동대)-112쪽

다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고 있는 일본식 문화의 전형들이 작품 속의 이데올로기에 무분별하게 용해되어, 일본문화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또 다른 장치로 활용된다는 측면은 나름대로 경계해야 할 점이다.
특히 역사적 시나리오의 재해석 과정에서 일본식 무국적 캐릭터 중심의 내러티브를 확장하고 신화적 상상력을 종교의식의 충돌을 통해 과감하게 도입하는 전략은 일본문화 중심의 새로운 문화읽기을 강요하는 일종의 종교적 주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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