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동문선 문예신서 12
존 버거 지음 / 동문선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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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책을 통해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이 책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번역의 완성도에 만족하지 못한 리뷰를 다수 접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원서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글의 논지를 이해하고 따라가는 데 어렵지 않고 명확하여 좋았다.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Our principal aim has been to start a process of questioning."

이 책의 취지는 사람들에게 의문제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7편의 에세이 끝에 다음과 같은 문구로 마무리를 한다.

 

"To be continued by the reader...."

독자들에 의해서 계속....

 

 

존 버거를 포함한 5명이 동명의 방송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 이 책이다. 그들은 7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들의 취지에 맞게 수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진지하면서도, 통속적이고, 냉소적이면서도 포용적이다.

글과 이미지(흑백)을 포함한 4개의 에세이와 그림만으로 포함된 3개의 에세이.

그들이 던진 의문에 따라 이미지로만 구성된 에세이 중에서 이미지 정보를 부가하지 않은 것과 이미지 정보를 삽입한 것이 있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출저는 미주로 담겨있다)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아는 것 사이는 합의점이 없다....라고 시작한 한 에세이.

우리가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본다'는 행위도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행위이며,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것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본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한 시각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테마로 이루어진 4편의 글 에세이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고전 유화에 대한 '신비화'작업의 이면과, 사진술의 발명으로 가속화된 이미지 '재생산'의 의미, 그 안에 포착된 권력 구조와의 관계가 흥미롭다. 또한 남성위주의 그림 소유자의 시각에서 비쥬얼화된 여성의 전형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찰자'와 '관찰당하는 자'로서의 이중적 여성의 정체성과 '벌거벗음(nakeness)'와 '누드'의 상관관계를 고찰한다.

 

또 다른 에세이에서는 '자본'이 어떻게 모든 대상을 물화하였는지, '소유와 재산'이라는 가치로 고전 유화에 담겨진 사물과 인물, 풍경의 '과시욕'을 탐사한다. 

 

마지막 에세이에서는 광고와 PR의 '언어'가 어떻게 고전 유화의 '언어'와 닮아 있는지, 또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준다. 그와 함께 자본주의의 꿈과 희망, 가치로 대변된 현대사회의 화려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나머지 세 편의 이미지 에세이들은 글이 이미지에 부여한 의미와 제한에 대해 심사숙고 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원서로 160페이지에 불과한 이 가벼운 에세이 모음집은 결코 가볍지만은 주제들을 한데 어울어 흥미롭고 박진감 넘친다. 


글의 의도대로 '의문제기'에 충실하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의 안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몫이다.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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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글누림 한국소설전집 6
이기영 / 글누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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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다시 주욱 흝어보아도 가슴이 묵묵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입안으로 웅얼웅얼 목차를 되뇌인다.

 

동경 유학간 희준이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오는 동구밖 풍경에서...

저 멀리 먼동이 트는 하늘을 곱씹으며 언덕을 내려올 때까지.

 

해피앤딩은 없다.

삶, 치열한 삶이 있을 뿐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을 뿐이다.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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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김영현 / 실천문학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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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상황이 초래한 현실의 아이러니와 삶의 굴곡을 짧고 굵게 그려나간다.

'빨갱이'로 죽임을 당한 만기의 아버지,

그의 아내를 취한 남한토벌군 기호의 아버지.

그러나 만기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만기의 아버지는 새아내를 맞이하고.... 기호가 태어난다.

그렇게 만기와 기호는 형제가 되었다.

그들의 성장과정이나 형재애, 갈등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뭉쿨하다.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가족역사가 분단역사와 교차하면서 그 의미는 배가된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유품처럼 폐병을 키워가는 만기와

그런 형의 존재를 통해 기호는 점차 '분단현실'에 새롭게 자각 하게 되고,

학생운동과 연류되어  '빨갱이'로 철창신세를 지기도 한다.

 

작가는 그렇게 한 가족과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젊은 지식인의 각성을 그리고 싶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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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유현종 지음 / 행림출판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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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이고 위정자 중심인 우리의 중고교 역사 교사서와 입시위주의 역사교육의 병폐...

일일이 열거하기 입아프고 손이 아플지경이다.

 

요즘 개편된 역사교과서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세대가 '동학운동'에 대해 배우고 알고 있는 한계도 그 병폐의 하나이다.

 

나는 5년전 '한국근현대사'라는 한 교양과목을 '외롭게' 수강한바 있다.

(취업학교가 되어버린 대학에서 약삭빠른 학생들이 이런 교양과목을 멀리하는 것은 놀랄일도 아니다)

 

어떤 책에 열거된 자신이 존경하는 한 유명인 골라 그의 '전기'를 작성하는 것과,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중에 내가 가장 관심가지고 있던 영화파트의 '장 뤽 고다르'를 선택했었다)

자신의 '역사'를 쓰는 것 등의 과제를 주곤 했던,

지금은 성함도 기억할 수 없는 386세대 교수(?)는 매우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덕분에 나는 괘변의 레포트로도 A+을 받을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그 수업은 나를 대책없이 무장해제 시키고 수업중간에 눈물을 터뜨리게 하기 일쑤였다.

동방공직 여직공의 노동운동이나, 전태일 분신사건을 비롯하여

어린 남매가 유괴당하거나, 길을 잃거나, 교통사고를 당할까 두려워

단칸방 안에 밥상을 들여놓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가야 했던

어느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은 해가져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성냥갑을 가지고 놀다 불이 나고

부모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잠긴 방 안에서 새까맣게 재가 되어있었던 사건이다.

교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들을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한시간 내내 보여주었다.

나는 심장이 터질 듯 격렬하게 울음을 쏟기도 했다.

 

그리고 동학운동이 있었다.

 

그 수업을 통해서 새롭게 접근한 동학운동의 배경과 경과, 그리고 그 결과와 의의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한 충격과 감동에 휩싸였었다.

 

동학운동, 아니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유현종 작가의 역사소설 <들불>은

나에게 5년전 충격과 감동을 다시 안겨주었다.

 

동학을 믿고 반란을 일으킨 아버지 때문에 노예로 팔려간 '여삼'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들불>은

기독교를 앞세운 서양세력과 청일의 이권다툼,

굶어죽는니 싸우다 죽겠다는 빈농들의 동학합류,

한때 여삼을 계몽시키려던 친구 곽무출의 변절과 친일,

양심있는 지식양반층의 각성과 한계,

동도장군 전봉준과 김계남, 손화중과 같은 우리 민중의 진정한 영웅들의 기개와 지혜,

대원군의 유배와 재집권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 등이 역동적으로 스며든 작품이다.

 

무지하고 타율적이며 소극적이던 여삼이

'사람이 하늘이요, 하늘이 곧 사람이다'는 동학의 '인내천'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굶어죽은 여삼의 어머니나 이리저리 노리개로 팔려다니다 목을 메는 여삼의 누이의 기구한 운명은

당시 격변하는 새태 속에 여성들의 위치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태조왕건'이나 '이순신', '주몽'이 다가 아니다.

<칼의 노래>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반면, <들불>과 같은 명작은 잊혀져간다는 것이 통탄스럽다.
의식있는 방송인이나 영화인이 나서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동학운동 관련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순신'에 열기를 조장하는 여론뒤에 군부정권과 독재정권, '힘의 논리'를 지지하는 흑심이 있음을,

오랫동안 진보지식인들이 지적하고 경계해온 바 있다.

우리는 오로지 '동학운동'과 같은 민중의 지혜와 저항, 투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그 일방적 흑심에 균형을 이룰 수 있을것이다.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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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5
장 피에르 모리 지음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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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종교재판은 세간에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후일을 내다본 갈릴레오의 '융통성' 또는 '지조없음', 또는 '현명함'은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의 '고지식', '신조', 또는 '어리석음'과 대조된다.

(어떻게 해석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실상 그 유명한 '스캔들'의 철학적,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그리고 과학적 배경에 대해서

우리가, 아니 내가 아는 바는 매우 피상적이었다.

 

사실 400년 전 갈릴레이의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가령, 기독교(종교)가 절대사명이던 시대에 종교재판에 회부된다는 것의 의미.

그것은 명예나 지위의 실추, 재산 압수는 물론, 고문과 화형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에 확신을 가질무렵 불과 9년 전,

지동설 가설을 내세웠다가 화형을 당한 조르다노 부르노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40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명왕성을 이제는 행성이 아니라고 선포할 수 있는 현대에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의 심리와 충격은 말그대로 '상상'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사실 지구가 중심인 이유도 다 성서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구가 하나님의 창조물인데 그것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의심자체가 대단히 불경한 사상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날이 발전해가는 과학기술과 특히 수학과 천문학의 업적이

어떻게 기존의 신학사상과 성직자와 교황의 권위와 기득권을 위협했는지....

그것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으로 길바닥의 동전도 찍어내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겨우 10배, 20배 확대해주는 갈릴레오의 만원경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실로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 가볍고, 읽기 쉬운, 그리고 재미있는, 그림이 반을 넘는 책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가 다 그렇듯)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보여진 그 빙산의 일각 아래 어떤 거대한 실체가 존재하는지, 

그것을 볼 수 있거나, 또는 보려고 하거나... 그것은 개인의 몫이다.

 

한 때 과학잡지<뉴톤>을 구독하며 우주와 별에 빠졌었던 열정을 추억하며,

400년 전 갈릴레오의 세상을 상상해본다.

열정적인 한 천문학자의 고난과 영광을 그려본다.

 

이 책은 불경한 천문학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선각자의 이야기이며, 현실에 발을 딛고 상상하고 꿈을 꿔야하는 모든 이의 이야기다.

 기득권의 보수성과 권위에 맞서고, 또 타협하는 이야기이며,

과학과 신의 존재를 대립으로 보지 않았던 신념의 이야기이며,

 미지에 세계릉 향한 탐구정신, 모험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빙산의 일각'을 보고 빙산의 실체를 되새기고 고민해야 하는... 그런 책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얇고 짧은 이야기 책 한 권에 이토록 많은 말잔치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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