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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걸 -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그렇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욕망하는 내가 나는 좋다."
- 본문 9쪽
그래서 나도 이 책이 좋다.
이 책의 저자는 결국 타인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욕망을, 나를 욕망하는 그런 '여성'이 되라고 한다.
'성공하는 여성되기' 어쩌고 하는 발에 치는 천박한 처세술보다는
이 거침 없이 막나가는 책이 훨씬 '행복하고 성공한' 여성을 만들어 주리라.
저자가 이 책의 부제를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이라고 한 까닭은 뭘까....
다음 인용글을 보자.
"이상적인 여성이란 매혹적이되 천박하지 않고, 결혼 후에도 매력을 잃지 않으며,
사회적인 일을 하되 남자를 누를 만큼 너무 성공해서도 안 되고,
다이어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날씬해야 하며,
성형외과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영원히 젊음을 유지해야 하고,
잠자리 의무와 아이들 학교 숙제로 쉴 틈이 없어도 언제나 미소 짓는 엄마여야 하며,
가사를 훌륭하게 돌보되 하녀 같아서도 안 되고,
남자보다 덜 교양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우리의 코앞에 들이대며 본받도록 노력하라고 닦달하는,
그러나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 행복한 여성이 사실 내 생각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12쪽
주변에 그런 여성을 본 사람이 있다면 반박해도 좋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아니 가능하지 않다.
사실은, 현실은 말이다.
우리 주변엔 그저 그렇게 '못난' 여자들 투성인게다.
누구나 CEO가 될 수 없고, 발레리나가 될 수 없으며, 힐튼 호텔이나 삼성재벌의 딸로도 태어날 수 없다.
섹시하고 춤 잘추고 노래 잘하는 가수나 배우, 모델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고, 누구나 씩씩하게 직장 상사와 맞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어두운 길을 가다가 그림자에도 흠짓 놀라야 하고,
불특정다수의 남성을 성범죄예비자처럼 두려워해야 하며,
길가다 접촉사고가 나도 말보다는 상대편 남자운전자의 주먹이 겁나고
예쁘면 예뻐서, 못나면 못나서 오해받고 편견 속에서 살아야 하는
늘어가는 나이와 살에 늘 스트레스 받으며 오늘 저녁 반찬은 뭘 지어야 할까 고민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들이다.
그렇게 널리고 평범한 여자들을 모두 '못난' 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여성신화'에 언제까지나 놀아날 것인가.
과연 우리 못난 여자들은 어떻해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 답이 나오냐고? 그건 직접 읽어보면 알테다.
이런 모든 전통적인 가치들은 각각의 성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남성들에게는 국가를 위한 무보수 일꾼의 역할을,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의 노예 역할을.
결국 양쪽 모두가 노예인 셈이며, 성 본능 또한 박탈당하고 구속당하고 얽매여 있다.
언제나 하나의 사회계층만이 있는 그대로를 누릴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욕구들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본문 139쪽
저자는 결국 여성주의 운동을 '계급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그것도 이제는 너무나 교묘하고 은근하게 가부장적인 현대사회에서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계급이며,
이는 나아가 돈과 지위, 권력 등으로 구분된 또 다른 계급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는 것...
4-5 시간만에 후딱 읽을 정도로 글은 경쾌하다. 아니, 막 나간다.
분량면에서도 내용면에서도 결코 어려운 책은 아니며,
'못난' 여자들을 위한만큼 어려운 철학적 담론으로 골치를 아프게 하지도 않느다.
다만 프랑스 여자가 서구 사회를 배경으로 쓴 책이라는 점,
다소 난삽한 번역글이라는 점을 감안해 두고 읽어야 할테다.
2008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