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CURIOUS 12
알프레도 로체스.그레이스 로체스 지음, 이은주 옮김 / 휘슬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문화적 피로란 타문화권에서 장기간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소한 조정 작업을 행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된 상태를 의미한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평가 방식과 판단 습관을 버려야한다. 일견 익숙한 행위에도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고 활동 내용과 방식의 지속적인 변화를 스스로에게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을 의식하듯 의식하지 않든, 또 성공적이건 성공적이지 않건 간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게 마련이라서 누구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스잰튼의 <필리핀에서의 문화적 갈등> 중에서

 

 
이 책은 필리핀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저서까지 편찬한 호주 출신의 작가와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난 저자의 딸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이다.

 

글을 풀어가는 방식은 학자의 탐구적 자세와 상대주의적인 너그러움이 물씬 묻어난다.

'오리엔탈'이나 '지상 천국'의 이미지로 미화된 여행 기행문도 아니고

서구적 잣대로 난도질한 자국자문화 중심의 글도 아니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면서도 지극히 '필리핀'적인 그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또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집 구하기 문제부터 가사보조인과의 문제나 사업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때면

단순히 여행을 하면서 그 문화와 민족에 다가가려고 한 나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토착 문화에서 400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그리고 41년간의 미국 식민지를 거쳐

3년간의 일본 강점과 이어진 미국의 경제문화 식민지로서의 필리핀 근대사를 가볍게 소화시키기엔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필리핀적인 가치와 인간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그려낸 점이 좋다.

다만 여행가이드나 여행 정보를 얻기에 좋은 책은 아니다. 

 

나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엄마와의 필리핀 여행을 앞두고 필리핀 문화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

사실 필리핀에 대한 책을 찾는데 선택권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깊이있는 통찰까지는 아니더라도 필리핀에 어느 정도 머물 여지가 있거나 어학연수를 계획하는 사람,

또는 아예 이민이나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면 필독서로 참고할만하겠다.

 

저자가 서구인이니 만큼 그들이 해석하는 필리핀 문화를 읽다보면

의외로 한국사회와 문화도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사실, 필리핀과 한국 알게 모르게 닮았다.

그 가족 중심, 친족 중심적 문화와 사회적 평판의 중요성, 사회를 이끄는 주요 가치 등이 말이다.

다만 필리핀은 열대 지방의 여유로움과 유유자적함이 더해져

훨씬 소박하고 은근하며 낙천적인 민족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일주일 후면 직접 만나게 될테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답을 얻었다고 자만할 수는 없다.

 

 

2008년 1월

 

 

 

스잰튼의 평화봉사단원들이 미국인은 '목표 지향적'인 반면 필리피노는 '인간 중심적'이며,

미국인은 '실천'에 적극적인 데 비해 필리피노는 '상태'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깨달았다.

문화적 갈등은 바로 여기서 유발되는 것이지,

양립불가한 도덕적 가치들끼리 치고받는 데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갈등은 이 가치들의 절대적 대립이 아닌, 부여된 중요도가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본문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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