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하원 후 아이와 함께 뒤로 걷기를 해 보았습니다.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책에서 뒤로 걷기를 해보라고 권해주었거든요.
뒤로 걷게 되면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가 들려?"
"풀 밟는 소리, 돌맹이 소리"
"개미 밟히는거 같지 않아?"
"개미 말고 풀 밟혀"
이런 소리를 하며 아들과 저는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봅니다.
우리가 보지 않고 밟게 되면 개미도 밟힐것이고, 돌뿌리도 밟을 것입니다.
그게 위험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 또한 자연입니다.
아이와 함께 짧은 시간 이런 대화를 나누며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작은것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 갖기]
내가 걷는 동안 나를 위해 희생된 풀과 개미, 돌뿌리들..
무심히 지나쳤지만 이렇게 작은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저자가 알려준 방법대로 아이와 함께 뒤로 걷다보니, 작은것들에 감사하는 걸 잊고 살았다는걸 알았습니다.
'명상같구나, 철학적이다.'
이런 신기한 느낌이 들더군요.
가끔 머리에 생각이 많아질때 저도 뒤로 걷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것들'이 있듯 '뒤로 걸으면 보이는 것들'이 따로 있는거 같아요.
저번주에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짧은 서평을 했을때와 완독후의 서평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봅니다.
처음 책을 읽을때는 정보량에 주력하며 독서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권을 완독하고 나니, 힐링이 되는군요.
제가 책을 읽은 것인지, 부모공감 강연회를 다녀온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만큼 독자에게 아주 편하게 다가오는 글솜씨를 가진 책이었습니다.
분명 인문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다루는 책인데, 이 책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녀교육을 다루는 책인데, 부모교육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7명의 생명줄이 끊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예전 뉴스에서 봤던 사건, 아파트 유리를 닦으며 작업을 하고 있는 분을 주민이 시끄럽다고 항의하면서 옥상에 매달아놓은 생명줄 로프를 칼로 끈어버려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사망자는 한명인데 7명의 생명줄?
가장인 아빠(사망)+아내와 아이들(6명) ----> 유일한 가장(사망)
너무나도 성실했던 아빠는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사망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가슴 아팠지만 가족이 7명인걸 책을 통해 이제야 알았습니다.
지금 아빠없이 커야 할 이 아이들은 어떻합니까 ㅠㅠ
너무 가슴이 아파 멍먹합니다. ㅠㅠ
사건의 발달은 유리창을 닦을때 두려움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틀어놓은 음악이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사촌 동생과 당사자에게 항의를 했던 아파트 주민,
항의를 하는 그는 '분노 장애'가 있는 분.
사촌동생은 그의 분노에 음악을 껐지만, 멀리 있던 당사자는 그 항의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소리를 듣지 못해 음악을 계속 틀어놓으니, 이 아파트 주민이 와서 일부러 로프를 자른것이지요.
범죄자 = 분노 장애 = 심신 미약
이젠 이 단어들이 함께 연관되는것 조차 기분 나쁩니다.
요즘 청화대 국민청원에도 심신 미약, 음주, 정신질환 등으로 형을 감형 받는것을 없애달라는 요구가 많은데 정말 법이 개정되어야 할 시기인거 같습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정신병이 있다'라는 것으로 모든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그 이유를 꼭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아이를위한하루한줄 인문학]에서는 이 정신병을 외치는 범죄자가 왜 양산되는지 말합니다.
"모든것은 쌓이고 쌓여 폭팔한다" 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요.
제가 이해한 바로 설명하자면, 작은것에 고마워하는 마음 없이 사소한 불만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분노의 불씨는 커져만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인 분노는 결국 '분노 장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나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기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분노가 생기기 쉽지 않겠지요.
부정적인 시선을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분노가 엄청 커지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자녀교육을 위해 읽기 시작한 인문학책이었는데 지금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삶에서 사소한 것에 만족하고 살고 있는거 맞을까요?
제 자신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아이 또한 그걸 보면서 배우겠지요?
여러분도, 다 함께 [작은 것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이 페이지는 이학산, 이종국 의사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롤모델, 존경받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저는 아직까지 이학산의사 같은 인물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겉은 번드르하며 자기를 포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생활하며 엄청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언젠가 저도 이런 귀인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종국 의사는 돈과 상관없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로 유명하지요?
저는 이종국의사를 알기 전에 드라마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는데요.
드라마 주인공 외과 의사가 실제 인물이란 말에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훌륭한 의사가 하루 아침에 그냥 되는 것은 아닌데,
이학산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와 '의료복지카드'를 하찮게 취급하지 않고 이종국의 아버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주는 그런 의사 덕분에 이종국은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고 결국 정말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있는 어른들은 꼭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어른입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책 뒤쪽에 큐알코드가 있어서 캡쳐해보았습니다.
청림출판사 블로그로 접속이 되는군요. 여기서 [자료실]로 들어가서 필사할 수 있는 노트를 다운 받아보았습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부모와 아이가 각각 책의 내용을 필사하고 느낀점을 쓰는 것이랍니다.
저는 달리는 차에 관한 글을 필사하면서 느낀점이 있었어요.
빨리 달리기만 하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 편안하게 키우고 싶어서 정말 좋은 차를 사서 아이와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속도때문에 우리가족은 대화를 하기보다는 운전에 더 집중할 것이고 자연이 주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거예요.
편안함을 선물한 것이 맞을까요?
부모가 좋은것을 준다고 하면서 정작 아이의 정서는 전혀 선물하지 못한다면 창조적인 두뇌를 가진 아이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죠.
아이를 위한다면서 너무 서두르는건 아닌지,,, 필사를 하며 생각해보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도 필사를 했으니, 필사 후 느낀점을 물어보았어요.
아이는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글을 필사하였고, 제가 다시 문장의 뜻을 해석해주고 나서
하나의 가정을 두고, 같이 고민해보았답니다.
아이는 처음엔 대답을 머뭇거렸어요.
제가 아이와 이런 진솔한 대화를 많이 안한것이겠지요?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데요.
아이는 화가 나도 참고, 친구에게 자기의 불편한 감정을 기분 좋게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처음 책을 읽을때는
"왜? 필사를 하라고 하지? 그냥 읽어도 이해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필사를 하고 나서 보니,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네요.
필사 후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과정이 있으면 더 좋겠어요.
[아웃풋 끌어올리기 : 제대로 말하고 쓰고 듣는다]
1.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을 읽게 하라.
부모들은 아이가 읽기 쉬운 책을 여러권 읽는것이 좋을거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하루 한줄 인문학' 에서는 언어 단련보다는 아이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보다 수준 자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지금 제가 아이와 읽는 책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제 아이는 한국전래동화는 이해하기 쉬운 책입니다.
한국전래동화 > 서양전래동화 > 이솝우화 > 탈무드
고전동화> 창작동화
수학동화> 우주과학
이런식인데요.
모두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두 나눠서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솝우화나 탈무드에 시간을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주과학동화도 아이들에게 어려운데 의식 수준 개선을 위해 더 읽어줘야겠어요.

2.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게 하라.
3.아이가 자신이 쏟은 모든 노력을 기록하게 하라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건너띄며 읽는 습관은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아까 자동차를 빨리 운전해서 목적지만 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한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끝까지 읽어서 자기 생각이 정리된 것을 기록으로 남기라는 것입니다.
저도 감명깊게 읽은 책, 좋은 기억은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1년 뒤, 글을 읽으면 그 당시의 저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현재 시점에서 다시 뒤를 돌아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사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데, 저도 뒤늦게 알게 되었답니다.
공부라는 것이 책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안타까운 현실,
어릴때 책을 읽어야 입시까지 가서도 책 보는게 즐겁지,,,
학업이라는 스트레스를 머리에 이고 있으면 책이 무겁게만 느껴지지 즐겁지가 않은것이 현실이라서,
저는 어릴때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좋아했으면 합니다.
이젠 필사의 기쁨도 알았으니, 아이와 함께 필사도 하겠습니다.
이 기록은 제가 다운받은 파일을 프린트하고 직접 적어본 것들이랍니다.
[하루 한줄 인문학]을 읽기 전에는 자기주도적으로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을거예요.
자녀교육때문에 읽기 시작한 인문학 책이지만, 부모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자녀교육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고마운 책 한권으로 2018년을 마무리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