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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아들입니다 ㅣ 저스트YA 11
탁경은 지음 / 책폴 / 2024년 10월
평점 :
작가의 이야기로 처음 들은 ‘수용자 자녀’
살인이란 흉악한 범죄로 희생당하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아픔을 어찌 머리로 상상할 수 있을까? 희생자의 세상이 사라질 때 그 가족의 세상도 함께 사라졌을 만큼의 고통일 텐데.
흉악한 살인자에 대한 비난과 응징의 목소리에 나도 함께 했고,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끊어버린 범죄에 제대로 예방과 대응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도 지적했을 것이다.
그 커다란 아우성 속에서 작가가 귀 기울인 건,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한 가해자의 아이들 이야기다.
가정 폭력을 일삼던 희철의 아빠가 벌인 연쇄 살인과 다정하고 친구 같았던 우재 아빠의 끔찍한 범죄는 서로 다른 아이들을 하나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증오의 눈빛, 날 선 목소리, 흥건한 침과 함께
저주를 퍼붓는 단어들에 몸과 마음이 으스러지기 일쑤였다.
나도 아빠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또 다른 피해자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 다들 나더라 자격이 없대?
자격 없는 건 죄지은 그 새끼지 내가 아니야.”
“그 인간이 죽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나라고!”
가정 폭력을 일삼던 아빠는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희철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다.
임상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희철의 소원 하나.
최고의 전문가에게 자기 뇌를 통째로 맡겨 보고 싶다는 것. 증거가 필요했다. 악마성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자신이 아니라는 증거가.
“뇌 사진을 찍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악마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아빠들의 범죄가 알려지자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바퀴벌레 보듯 바라보았고,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바로 귀전을 때렸다.
희철은 세상에서 도망쳤다. 이사를 했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희철은 계속 쫓기고 있었다.
그런 희철에게 연락을 해준 유일한 친구 준기가 해준 말.
“부모는 부모일 뿐이고, 우린 우리 인생이 있는 거야.”
준기가 없었다면….
준기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은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 복지실천단체 채움뜰>
깊이 파 놓은 증오의 계곡에서 허우적대는 한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희철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더는 이 구덩이에서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떠난 엄마를 위해 그리고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남은 자신을 위해 달라지고 싶었다.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p120
세빈과의 설레는 세 번의 만남으로 우재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목말을 태워주고 라면을 끓여주던 연말에 묵은 때를 밀러 목욕탕을 함께 가던 아빠는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빠가 사라진 뒤 우재네 집은 점점 망가지고, 우재는 늘 해야 하는 일에 치여 살게 되었다.
몇 년째 실종자였던 아빠는 살인자 딱지를 붙이고 등장하였고 우재에겐 지옥이 시작됐다.
행복해도 될까.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아빠가 저지른 죄와 그로 인해 지금껏 고통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잊은 적이 없다. 어떻게 해도 그들의 슬픔이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보윤 샘 친구가 피해자 가족을 위한 단체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설핏 들었을 때 희철은 생각했다. 그들이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뭐라도 하고 싶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p169
누군가 얘기했다, 여유가 있을 때 착해진다고.
나에게 묻고 싶다, 세상에 버려지고 쌀쌀맞은 눈길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여유가 있는지.
그들에게 손 내미는 것이 감당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 따지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연좌제 폐지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국민 정서법에 기대 그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을 무섭게 구석으로 몰아넣고 린치를 가하고, 린치를 응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가해자 가족의 아픔을 함께 이해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이제 조금은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우리의 주인공은 아직 청소년이니까 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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