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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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영, [이게 바로 누와르], 심심, 2012. 

 

  신인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서 무한한 상상을 누리는 즐거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침침한 눈을 비비며 까칠한 안목으로 책을 대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인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을까? 동시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알로마노 달의 여행') 무작정 선택했다. 나서영이라는 작가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두 권을 동시에 출간하게 되었을까? 놀라운 사실은 이 젊은 작가는 이미 열세 편의 장편 원고를 쟁여놓고 있으며, 더구나 열흘이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고 하니... 무슨 이런 괴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인가? 아니면 노력의 결실인가? 어디 그 솜씨나 한번 구경해보자 라는 심정으로 첫 장을 펼쳤다.

 

  소설의 배경은 1996년, 인구 6만의 작은 도시 용주군이다. 이곳에는 여섯 명의 건달(?)이 '형제'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① 형제부동산을 운영하며 한우리회를 이끄는 이권하, ② 형제헬스장을 운영하는 장신의 근육 돼지 백후연, ③ 형제통닭을 운영하는 못생긴 이성구, ④ 형제오락실을 운영하는 칼잡이 윤구, ⑤ 실전격투 도장을 운영하는 싸움꾼 최동학, ⑥ 형제정육점과 형제식육식당을 운영하는 유동식, 김지원 부부. 이들의 팔뚝에는 '형제'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지만, 이들은 친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우정과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 젊은 시절 방황의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미래의 인생을 내다보며 마음을 다잡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 간다.

 

  한우리회는 번영회의 성격을 가진 친목단체이다. 회원이 되면 몇 가지 혜택이 있는데... 신용담보 없이 급전을 무이자로 융통할 수 있고, 같은 회원들이 매출을 올려주며, 서로 간의 경조사를 챙겨준다. 그래서 군민들은 자발적으로 가입한다. 형제헬스장은 반강요와 의무로 운동을 시키는데... 사람들은 체력과 건강이 좋아지고, 일상의 기분전환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즐거워한다. 형제통닭은 한우리 회원들에게 일정 주기로 통닭을 배달하고, 월말에 일시금으로 청구한다... '형제'는 이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소통'과 '상생'의 방법으로 용주군을 접수한 것이다.

 

  상처 없는 인생, 완벽한 인생이 어디 흔할까? '형제'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은 과거의 그림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 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 집을 나간 형에 대한 그리움... 등. 과거의 상처는 하나씩 '형제'를 찾아오고, '형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 돕는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서울에는 이렇게 큰 가게가 많아. 사람이 많으니까. 또 가게가 크니까 만물상이야. 없는 게 없어. 작은 가게에 없는 것도 많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있단 말이야. 큰 가게는 주둥이가 큰 황소개구리야.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 황소개구리가 득실대는 저수지는 곧 씨가 마르게 돼. 송사리고 개구리고 붕어고 잉어고 전부 먹힌단 말이야. 아가리가 너무 크니깐 다 처먹어버린단 말이지. 아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냥 흘려들어."(p.71)

 

  이러한 마을에 심상문, 심상만 형제가 들어온다. 심상문은 대형 쇼핑몰을 공약으로 군수가 되고, 심상만은 약속대로 '용진마트'를 개장한다. 이러한 변화에 용주군은 잠시 활력을 얻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정치권력'과 '거대자본'은 작은 도시의 모든 소비를 독식한다. 부지 제공자들을 몰아내고, 중소 유통업체를 착취하며, 지역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언론을 조작하여 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용역을 불러들여 시위대를 위협한다. 용진마트가 들어선지 1년 만에 사람들은 고통속에 신음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형제'의 진짜 누와르는 시작된다.

 

  [이게 바로 누와르]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대기업 대형마트의 폐해를 용주군이라는 작은 도시로 축소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소설은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자본이 시장을 잠식하고 수직적 매출성장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문체에 대한 사소한 아쉬움은 있으나, 작품의 구성이 좋아서 끝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인 작가에게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과 같은 드라마틱한 결론을 기대한 것은 무리였을까? 좀 더 극적인 마무리가 그리웠다. 대형마트 CEO가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제공하는 것이 상생이라고 지껄이며 골목 앞까지 진출하는, 그리고 이러한 자가 우리 시대의 멘토를 자청하며 청춘을 위한 책을 써내는 현실을 한탄하며... 이 땅에 진정한 '상도'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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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미 샘터 외국소설선 7
리사 스코토라인 지음, 심혜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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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스코토라인, 심혜경 역, [세이브 미], 샘터, 2012. 

Lisa Scottoline, [SAVE ME], 2011.

 

  매일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 속에 빠져 살면서도, 정작 미국 작가를 기억하고 작품을 찾아서 읽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유일하게 시드니 셀던(Sidney Sheldon)이 있는데, 사실 이것도 청소년 시기에 책을 읽으며 음모와 배신, 복수와 스릴을 즐기기보다는 성적인 묘사만을 탐독하던 시절이라...;; 아무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리사 스코토라인을 통해서 미국 작가와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리사 스코토라인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서스펜스 장르의 선두주자로... 로스쿨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사무관으로 일한 경력을 토대로 법정 스릴러의 대모로 자리하고 있다).

 

  [세이브 미]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에 엉뚱하게도 기욤 뮈소의 [구해줘]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한 편의 영화 포스터와 같은 표지를 보면서, 엄마와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영향이었을까?) 이 책은 엄마의 사랑 '모성애'를 기본 바탕으로 미국 내의 '왕따 문제', '소송 문화', '매스컴의 영향력', 그리고 '대기업과 정치권의 횡포'를 다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뺨에 있던 선홍색 태아 반점... 꽤 큰 둥근 반점은 마치 볼연지를 서툴게 칠해 엉망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의학 용어로는 '화염상 모반'. 피부 아래 정맥 실핏줄이 붉어지는 현상일 뿐이지만, 벨리에게는 '주홍글씨' 그 자체가 되어버린 붉은 반점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멜리는 그 반점 탓에 다른 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 시작했다.(p.12-13)

 

  로즈는 마음속에서 이쪽저쪽을 저울질 하느라 멀미가 났다. 그녀가 아만다와 에밀리를 카페테리아 밖의 운동장으로 내보내면 멜리를 구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멜리를 구하러 가려면 자기 앞에 있는 아만다와 에밀리를 남겨두어야 했다. 로즈는 그 아이들을 남겨둘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그것은 지옥에서 나온, 지옥 속의 선택이었다. 로즈는 멜리를 구하거나, 아니면 아만다와 에밀리를 구할 수 있다. 그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p.22-23)

 

  어린 멜리는 얼굴에 있는 선홍색 반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래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했고, 로즈 매케나는 이런 딸을 위해 학교 '급식 도우미'로 자원한다. 하지만 그날도 식당에서 멜리는 놀림을 당하고 장애인 화장실로 도망을 간다. 로즈는 멜리를 괴롭히는 아만다를 붙잡고 대화를 시도하는데, 그때 굉음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난다. 사방은 불길에 휩싸이고, 로즈는 멜리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아만다를 구할 것인가? 급박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로즈는 한숨을 삼켰다. 여기서는 더 이상 추모 모임 때나 병원에서와 같이 고함지를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녀를 무시하거나 피했다. 그들은 로즈에 대해 말은 하지만, 로즈에게 말을 걸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때 로즈는 생전 처음으로 멜리가 어떤 느낌을 받으며 살아왔던가를 깨달았다.(p.209)

 

  불길 속에서 로즈는 '자원 봉사자'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을 초인적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결과는 순조롭지 못하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온다. 지역 언론과 매스컴은 앞다투며 기사를 쏟아내고,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증폭된다. 그리고 로즈는 딸 멜리가 당했던 것처럼, 그녀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안 돼요. 그건 방향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에 관한 문제라고요. 나는 아무도 고소하거나, 고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협박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바로 왕따를 시키는 거예요. 난 왕따가 지긋지긋해요. 왕따를 시키는 사람이 되기 전에 저주를 받고 말 거예요."(p.357)

 

  "오랫동안 난 멜리의 모반이 틀림없이 나의 업보라고 생각했어. 내가 다른 여자의 아이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내 아이가 벌을 맏고 있다고 말이야. 내가 흠집이 될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멜리에게 흉터(모반)가 생긴 거라고, 그것 죗값이야. 내 원죄의 오점이아."(p.315)

 

  로즈의 남편 레오는 변호사이고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조언한다. 그리고 그가 고용한 변호사들은 최고의 법률 자문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인다. (혹시, 여자라서 이성적인 판단이 부족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답답함만이...) 하지만 작가는 이것을 미리 계산해 두고 있었다. 로즈는 과거의 상처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숨겨진 또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로즈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이를 타겟으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어긋난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시작한다. '모든 엄마는 액션 히어로'라고 했던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사건의 실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모든 것의 뒤에는 커다란 음모가 자리 잡고 있다.

 

  스릴러를 즐기면서 항상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은 철저하고도 통쾌한 복수이다. 하지만 [세이브 미]는 이것을 초월하여 '엄마의 사랑'과 '모성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복수가 아닌 화해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흡입력 있는 문체, 사실적인 묘사, 현실적인 내용, 자연스러운 전개,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음모와 배후의 실체... 등 재미있는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원서의 글맛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너무 많아 글을 읽는데 스피드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전체 분량에서 1/4 정도를 축약하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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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디자인하다
이승한.엄정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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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엄정희. [청춘을 디자인하다], KOREA.COM, 2012. 

 

  도전은 청춘의 특권이다. 바람을 맞서서 도전하는 한 그대는 청춘이다.

  [청춘을 디자인하다]는 한국장학재단 부부 멘토인 이승한 회장과 엄정희 교수가 우리 시대 방황하는 젊음을 위로하고, 도전하는 청춘을 격려하는 인생의 길잡이 안내서이다.

 

  어떤 멘토는 큰 그림에는 좋은 스승이지만 작은 디테일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어떤 멘토는 작은 디테일을 섬세하게 터치하지만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이 두 부분을 함께 붙잡고 사는 보기 드문 멘토들이십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쓰신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전하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p.7)

 

  1. 나는 누구인가?

  긍정적 자아상 만들기...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인생을 만든다. ① 항상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② 자신의 성공 각본을 그림처럼 그려 보라. ③ 인생의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고 바라보라. ④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라. ⑤ 비합리적 시각에서 벗어나라 ⑥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침마다 외쳐라.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도 생각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글을 읽는 것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니, 만약 이를 살피지 아니하고 오롯이 앉아서 글을 읽는다면 쓸모없는 배움에 지나지 않는다.'(율곡 이이, '자경문')

 

  2. 붙들어야 할 삶의 가치

  ① 사랑 ② 긍정 ③ 신념 ④ 도전 ⑤ 신의 ⑥ 봉사

 

  3. 나의 꿈 나의 길 어디로 갈 것인가

  꿈을 찾는 6가지 방법 ① 독서 ② 일기 ③ 대화 ④ 여행 ⑤ 봉사 ⑥ 사랑

  올바른 직업 가치관 ① 일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② 일은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③ 일은 사회봉사와 자아실현의 수단이다. ④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자.

 

  4. 내 삶의 길에 함께 가는 사람들

  인생의 관계 ① 친구 ② 연인 ③ 가족 ④ 이웃 ⑤ 동료

  희망 가족 플랜 ① 눈으로 함께 비전을 바라보라! ② 가슴으로 뜨겁게 감사하라! ③ 귀로 살짝 들어주라! ④ 입술이 닳도록 칭찬하라! ⑤ 발로 걸어 나가 배웅하라!

  청춘 대화법 20계명

 

  5. 따라가는 삶, 이끌어 가는 삶

  팔로워... "리더는 세상을 바꾸지만 팔로워는 리더를 바꾼다."

  VIP리더십... 비전(Vision), 통찰(Insight), 철학(Philosophy)

  휴먼 핵사곤 리더십(눈, 귀, 발, 손, 머리, 그리고 가슴) ① 큰 눈으로 비전을 보아야 한다(眼). ② 큰 귀를 가지고 들어야 한다(智). ③ 부지런한 큰 발로 행동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行). ④ 섬세한 손으로 부하를 용병해야 한다(用). ⑤ 냉철한 두뇌로 인재를 키워야 한다(訓). ⑥ 따뜻한 가슴과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설득의 수단 ① 에토스(Ethos) ② 파토스(Pathos) ③ 로고스(Logos)

 

  6. 나의 인생을 디자인하다

  

  [청춘을 디자인하다]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들은 모든 교양강의를 총망라하는, 지금까지 읽은 모든 교양서적을 총괄하는 듯한 포괄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도전하는 청춘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만을 간추린 상당히 잘 쓰인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한가지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여 그리 큰 감동을 얻지는 못했다.

 

  저자인 이승한 회장은 '홈플러스'의 창업자이자 CEO이다. 업계 꼴찌 12위에서 출발해 4년 만에 업계 2위로, 12년 만에 12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12-12신화'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창업 이후 수직적 매출성장 뒤에는 문어발식 확장, 중소기업 착취, 비정규직 양산, 서민의 생계 위협... 등 보이지 않게 화려함 뒤에 숨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는가? 어쩌면 대기업 대형마트는 청춘의 꿈을 짓밟는 우리 시대 양극화의 상징이 아닌가? '좋은 물건을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 서민을 위하는 것이라며' 그만의 논리로 골목 앞까지 진출하는... 그래서 수조 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 이것이 진정 가치 있는 기업인가? 무한 경쟁시대에 기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마치 이문열의 단편 [그 여름의 자화상]에서 일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친일하게 되었다는 핑계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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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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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권, [시골무사 이성계], 다산책방, 2012. 

 

  우리 곁을 떠난 작가의 유작을 대할 때마다 쓸쓸함과 애절함이 진하게 다가온다. 꺼져가는 불꽃을 사르며 창작에 몰입한 열정이 느껴지고, 다시는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시골무사 이성계]는 누군가의 친구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다가 모두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난 어느 무명작가의 첫 출판소설이자, 마지막 유작이다. 자신의 미래를 미리 짐작이라도 했던 것일까? 평생의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밤낮으로 집필에 몰두하여 원고노동자처럼 살았다는 소개 글을 보며, 인생은 짧아도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골무장, 물정 모르는 변방의 늙다리, 화살 하나 들고 설치는 천둥벌거숭이... 중앙군과 관리들은 그를 그렇게 멸시했다. 여진족과 평생을 보낸 저놈도 별수 없는 야인 오랑캐야.(p.40)

 

  진정 나라를 구하길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라가 뒤엎이길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인가.(p.10)

 

  몇 달 동안 아무도 막지 못한 왜적을 요행히 물리치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앙지원군이 거의 없이 어찌 싸움을 치르라는 것인지, 그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지면 죽음으로 답해야 하고,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싸움.(p.41)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이다.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해석의 차이가 있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된다. 이성계는 고려의 부패를 몰아낸 영웅이기도 하지만, 또한 최영이라는 충신과 비교되어 배반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이성계는 당대의 천재였던 정도전을 품은 대인으로 묘사되지만, 또한 정도전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말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성계는 개국과 함께 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 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또한 아들 이방원의 난을 겪으며 혈육과 동지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뒷방늙은이 신세였다. 이렇게 화려함과 어둠이 공존하는 이성계의 삶을, 작가는 변방에서 구르던 46세의 나이 든 시골무사에서 출발하여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의 전쟁을 통해 인생의 변혁을 꿈꾸는 인물로, 또 다른 시각의 이성계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개경을 부수고 고려를 차지할 것이다. 몽골의 속국 고려를 우리가 해방시킨다. 고려는 우리 땅이다. 여기에서 수십 만 남조군을 만들어 오만한 북조군을 칠 것이다. 남북조의 통일 그것이 우리가 고려에 온 목적이다."(p.93)

 

  북원은 20년이 다 되도록 고려가 유일한 생존의 끈이었다. 고려군을 일으켜 연경을 친다면 반 토막 고토라도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겠다 싶었다. 고려군이 왜적을 이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왜적을 빨리 몰아내고 중앙군의 세력을 응집시켜 연경을 향해 말을 몰아야만 했다. 원의 재촉은 갈수록 강력해졌지만, 명나라 피 묻은 병장기는 서서히 압록강 건너를 노리고 있었다.(p.150-151)

 

  역사는 1380년 고려에 침입한 왜적을 이성계가 물리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서권의 소설은 이러한 역사의 토대 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장대한 팩션을 완성한다. 황산은 단순히 도적 떼와 토벌군의 대치가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북조에게 밀려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은 고려의 땅에서 세력을 회복하고 돌아가 남북조의 통일을 이루기를 원한다. 한때, 대륙의 지배자였던 원은 고려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옛 영광을 되찾기를 원한다. 그리고 새롭게 일어선 명은 고려에 대한 외교를 강화하여 원을 견제하고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황산은 전쟁과 함께 자국의 이권을 두고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격전의 현장이다.

 

  당신들이 왜적을 왜 자꾸 왜구라고만 낮추어 부르는지 그 이유를 내 입으로 설명하지. 침략자들이 다름아닌 왜국의 정규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여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자신들의 과오가 노출될까봐 그게 두려운 게지. 젊은 문무 관료들의 질타가 빗발칠 것이고 자신들의 담합이 위태로워지겠지. 권력의 안주에 깊은 맛이 들어서, 당신네들이 누린 기득권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지."(p.55-56)

 

  소설은 고려와 왜적의 대결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간의 명확한 갈등 구조를 통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전개한다. 군대의 작전권을 두고 이성계와 변안열은 갈등하고, 외교권을 두고 명나라 사신과 원나라 파견관은 갈등한다. 그리고 신진 개혁을 대변하는 삼봉 정도전과 보수 권문을 옹호하는 포은 정몽주의 갈등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어떠한 화해나 해결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세상은 이날 단 하루의 전쟁을 통해서 모든 것이 뒤바뀐다.

 

  [시골무사 이성계]는 마치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들판을 누비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또한, 전장의 긴박감과 박진감,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는 진지한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권력투쟁을 완성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또다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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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사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9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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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 유, 이기웅 역,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 비채, 2009. 

Nagashima Yu, [EROMANGATOU NO SANNIN NAGASHIMA YU ISHOKU SAKUHIN SHUU], 2007.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때마다 생기는 호기심과 기대감은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특히, 나가시마 유는 독특한 집필 과정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출근 걱정 없이 매일 늦잠을 자고, 대낮에 패스트 푸드를 먹으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아마도 창작의 고통을 제외한다면, 책을 좋아하는 모든 현대인이 꿈꾸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는 우리 모두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한발 더 나아가, 문명 세계를 뒤로하고 남쪽 섬으로 떠나 일탈을 꿈꾸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

  여신의 돌

  알바트로스의 밤

  새장, 앰플, 구토

  청색 LED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은 노란 바탕에 빨간 비키니로 무장(?)하고, 멜랑꼴리(?)한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 총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소설의 유쾌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한가지는 하나하나의 단편이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주제의 연관성이나 구성의 통일성이 없어서 책을 읽는 동안 좀처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오쿠다 히데오의 단편을 좋아하는데...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를 모아놓은 [오 해피데이]나 30대 여성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걸]이나 40대 남성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마돈나]처럼 연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모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에도 나가시마 유의 단편은 여운을 남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은 '에로망가 섬에 가서 에로 망가(만화)를 보자!'라는 조금은 엉뚱한 기획으로 잡지사 직원과 스폰서가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문명과 동떨어진 섬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먹을 것을 걱정하고, 여자 친구를 걱정하고, 벌레 물릴 것을 걱정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걱정하는 등 좀처럼 문명의 때를 벗겨 내지 못한다. 이들은 섬에서 에로 망가를 봐야 하는 직업적 책임이 있었지만, 섬 아이들의 순수함 앞에서 한 보따리의 에로 망가를 좀처럼 꺼내 들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기서 평생 살아볼까"라는 말을 한다.

 

  '여신의 돌'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한 건물에 남아 있는 소수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폐허의 이유가 지진 때문인지, 원폭 때문인지, 아니면 고지라의 습격 때문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 안에서 그들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속고 속이는 경쟁을 벌인다.

 

  '알바트로스의 밤'은 골프 선수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골프를 치며 자라난 남자와 야쿠자의 딸로 어릴 때부터 총을 쏘며 자라난 여자의 밀월을 이야기한다. '새장, 앰플, 구토'는 한통의 이메일을 통해서 HM이라는 이니셜의 여자를 찾기 위해 옛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청색 LED'는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의 뒷이야기로 미스터리한 스폰서의 사연을 담고 있다.

 

  책은 두껍지 않고 쉽게 쓰여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편의 특성상 이야기의 확실한 결론이 없어서... 오히려 결론을 상상하고, 남겨진 여운을 느끼느라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문명의 혜택은 없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섬사람들의 여유로움이 그립다. 나도 언젠가는 일본소설을 한 보따리 싸들고 에로망가 섬으로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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