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의 눈빛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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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 최재호 역, [형사의 눈빛], 북플라자, 2019.

Yakumaru Gaku, [KEIJI NO MANAZASHI], 2012.

묵직한 장편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야쿠마루 가쿠의 단편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소설 [형사의 눈빛]은 '나츠메 노부히토'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이다. 7개의 연작 단편으로 각각의 사건과 커다란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는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북플라자, 2020.), [형사의 약속](북플라자, 2021.), [형사의 분노](북플라자, 2022.)가 번역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청소년 범죄와 진정한 속죄에 관해서 글을 쓴 작가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아쉬움이 남는다.

오므라이스

빨간 줄

잃어버린 심장

자존심

아버지의 휴일

흉터

형사의 눈빛

10년 전 네리마 구(區)에서 아이를 대상으로 한 '묻지 마 테러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나츠메의 딸인 에미는 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당시 머리를 망치로 맞아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p.251)

히가시 이케부쿠로 경찰서의 나츠메 형사는 원래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아동보호시설의 청소년과 관련해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법무부 소속의 소년분류심사원이 된다. 그런데 10년 전에 딸아이가 묻지 마 범죄로 식물인간이 되어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경찰로 이직해서 형사가 되었다. 온화한 눈빛으로 소년을 관리하던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용의자를 추적한다.

'오므라이스'는, 연립주택의 방화사건으로 불에 탄 시신과 함께 먹다 남긴 오므라이스가 발견된다. 희생된 남자는 사실혼 배우자로 직장을 잃고 놀음에 빠져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빨간 줄'은, 소년원을 나온 남자는 성실하게 살려고 해도 전과자라는 빨간 줄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아파트의 집 주인이 살해되어 경찰이 찾아오는데, 낯익은 얼굴이다. '잃어버린 심장'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남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노숙자가 된다. 공원에서 노숙자가 죽었는데, 알고 보니 상해치사 용의자로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자존심'은, 스토커에 시달리던 여자가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전 남자친구에게 시달렸다고 하는데, 왜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것일까? '아버지의 휴일'은, 아내가 죽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는, 아들이 불량배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일을 쉬고, 경찰인 친구와 아들의 뒤를 밟는다. '흉터'는, 등교거부와 자해를 하는 학생을 상담하는데, 그녀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경찰이 찾아온다. 가정 문제, 현실 도피, 자책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사의 눈빛'은, 10년 전에 일어난 묻지 마 범죄의 목격자가 살해된다. 현재의 사건과 함께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마사유키가 화를 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뭔지 당신이 알아요? 슬픔만이 아냐. 슬픔이 지난 후에는 말로 표현 못할 허무함이 닥쳐온다고. 소중한 가족을 위해서 계속 견뎌왔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가, 누군가가 멋대로 내 행복을 빼앗아갔어. 나는 앞으로 뭘 위해서 힘을 내고 뭘 위해서 살아야 한단 말이야! 힘내라는 말이나 노력하라는 말은 배부른 녀석들에게나 쓰는 말이라고!"(p.154)

"네, 딸은 아직도 입원 중입니다."

'아직도 입원 중이라고...?'

"그날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식물인간이라는 건가.'

나가미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혹시 나가미 씨가 그 사건을 수사하셨습니까?"

"그래..., 비참한 사건이었어."

"'이었어'가 아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 가족에게는 과거형이 될 수 없는 사건이다. 나츠메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p.195)

"그래, 지금 내 일은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야.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죄를 지은 사람은 더욱 그렇고. 그런 사람을 잡는 것이 내 일이야."

나츠메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맑은 눈빛은 옛날과 변함이 없지만, 마음은 다른 무엇과 맞바꾼 것은 아닐까.(p.252)

"요시오 사건이 있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죄를 지은 소년들의 고민이나 범죄에 이르게 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들에게 갱생하는 데 도움을 주자고. 그래서 법무부에 들어가자고. 하지만 딸이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신념이 크게 흔들렸어."(p.300)

"피해자 가족들이 범인에게 바라는 것은 범인이 감옥에 가거나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만이 아니야. 범인 스스로 자신이 범한 죄의 의미를 평생 곱씹는 것, 그리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반성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걸 원하는 거야."(p.420)

다른 글쓰기로 단편을 구성했는데, 상 복 많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범죄와 속죄의 삶에 관해서는 이전의 작품과 비슷한 맥락을 보이고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되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가 교이치로를 떠오르게 한다. 가가 형사는, 자신은 교사로서 실격이라 여기고 경찰이 되고... 나츠메 형사는, 소년 범죄자의 갱생을 위해 소년분류심사원이 되었다가 딸을 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이 된다. 여기에는 불행한 가정환경... 편부와 편모, 가정폭력, 성소수자, 가해자와 피해자 가정이 등장한다. 누구라도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데, 이것에 굴복해서 범죄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삶을 개척해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환경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는 잘 알겠는데, 선을 넘는 반전과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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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조종하는 고양이
사이조 나카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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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조 나카, 이규원 역, [마음을 조종하는 고양이], 북스피어, 2019.

Saijo Naka, [NEKO NO KUGUTSU], 2017.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 사람을 대하는 고양이의 태도는 때로는 정겹고, 때로는 도도하다. 이러한 고양이의 습성을, 혹시 고양이는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실을 연결해서 사람을 조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발칙한 상상을 했나 보다. 사이조 나카의 소설 [마음을 조종하는 고양이]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고양이의 세계를 이야기하는데, 고양이의 문제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고양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7개의 단편 모음이다.

고양이의 괴뢰

흑백점박이 새끼 고양이

도이치와 빨강이

초승달의 원수

또 다른 요리마쓰

3년을 웅크리고 기다려

고양이 마을의 대사건

괴뢰(傀儡)는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인형을 뜻하고,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고양이 세계에는 괴뢰사 고양이가 있는데, 인간을 괴뢰로 삼아 부리고 조종해서 고양이를 위해 일하게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괴뢰사는 훈련을 거쳐서 두령 고양이가 임명한다. 괴뢰사는 단 한 명의 인간을 괴뢰로 정할 수 있고, 괴뢰는 네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한가로워야 하고, 눈치와 감이 빨라야 하고, 호기심이 많아야 하고, 고양이를 좋아해야 한다. 작가는 고양이만이 아니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습성도 같이 연구한듯하다.

"부탁이 있는데, 제발 꽃 도둑이란 누명 좀 벗겨 줘! 그 은퇴 노인이 틀림없는 내 짓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단 말이야"(p.16)

'고양이 괴뢰'는, 두 살배기 수고양이 미스지는 쌀 동네 고양이 마을의 괴뢰사가 된다. 스물네 살의 아지로가 괴뢰로 정해졌는데, 그는 어느 큰 상점가의 차남으로 집을 나와 희곡 작가를 자처하면서 온종일 책만 보는 한량이다. 청동점의 뒤뜰에서 값나가는 나팔꽃 화분을 깨뜨렸다는 고양이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첫 번째 의뢰가 들어온다. 고양이 괴뢰사와 인간 괴뢰의 단짝 활약을 볼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오케이를 납치했으니 몸값을 보내라는 협박 편지가 날아든 거야!"

"......그러니까 구로스케가 환전상 딸과 함께 납치되었다는 건가?"(p.62)

'흑백점박이 새끼 고양이'는, 고양이의 천적은 영리한 까마귀이다. 인간은 똑똑하지만 생각이 많은 게 흠이고, 까마귀는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좋은 눈으로 보고 날카로운 부리를 사용한다. 새끼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환전상의 어린 딸이 납치되었는데, 같이 놀던 새끼 고양이까지 데려간 것이다. 범인은 백 냥의 몸값을 요구한다.

"실은 말이야, 곤경에 처한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이야."

"인간?"

"도이치라는 남자인데, 붉은 영감하고 친해. 게다가 도이치가 곤경에 빠진 데는 영감도 관계가 있거든."(p.93)

'도이치와 빨강이'는, 고양이는 무리를 짓지 않고 외롭게 산다. 괴뢰사는 고양이의 문제에 집중해야 하기에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된다. 미스지는 들고양이로 어릴 때 부모와 헤어졌는데, 그때 도움을 주었던 늙은 고양이가 어려운 상황이다. 목욕탕 주인이 크게 다쳤는데, 늙은 고양이를 돌보던 남자가 폭행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

"그게 뭔지 아나?"

"제가 보기엔 바람총 같은데요."

"바람총이라고?"(p.161)

'초승달의 원수'는, 까마귀는 뾰족한 무기로 공격을 당해 날개를 다치고, 며칠 전에는 젊은 고양이가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죽었다. 입으로 불어서 쏘는 바람총, 무가 집안의 아이가 저지른 것으로 파악된다. 왜 이렇게 잔인한 일을 벌였을까? 고양이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

"'나는 아무래도 고양이의 괴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소'라는."

"고양이의, 괴뢰?"(p.202)

괴뢰의 실수는 괴뢰사가 뒤치다꺼리해 주어야 한다.

그런 의무감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지로 쪽이 다소 불안을 덜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 쪽에서는 뒤처리가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계획은 인간의 의도와는 다르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결말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p.262)

'또 다른 요리마쓰', '3년을 웅크리고 기다려', '고양이 마을의 대사건'은 하나의 이야기로, 미스지의 전임 괴뢰사였던 요리마쓰의 행적을 찾는 내용이다. 괴뢰사로 맹활약하던 요리마쓰는 인간 괴뢰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까마귀의 말로는 내장이 터져서 객사했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 먼저 인간의 행방을 수소문하는데, 여기에는 온갖 사연이 있다. 가업을 계승하고,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고, 고양이 사냥꾼을 막아서고, 원한의 복수를 해야 한다. 고양이는 고양이만의 결말을 만드는데...

창밖에서 고양이의 괴성과 함께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고양이와 까마귀는 철천지원수로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 현장으로 인간을 끌어들이는 괴뢰사 고양이와 호기심 많고 눈치 빠른 인간의 활약은 아주 재치 있고 흥미롭다. 고양이가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하고, 인간이 놓친 일을 고양이가 해결한다. 사람의 문제는 곧 고양이의 문제이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양이는 행복을 되찾게 된다. 내용이 살짝 가벼운데, (가벼운 일본소설을 좋아하지만) 너무 가벼워서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설정을 잘 잡아서 시리즈로 나오면 좋을듯한데, 다양한 고양이를 등장시켜서 고양이의 매력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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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청소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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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문지원 역, [특수청소부], 블루홀6, 2024.

Nakayama Shichiri, [TOKUSHUSEISONIN], 2022.

(일본 미스터리를 읽는) 주위에서 흔히 나카야마 시치리를 히가시노 게이고 다음이라고 말한다. 다작으로 유명하고, 묵직한 글 솜씨에 반해서 나오는 찬사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느 것을 읽어도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번에 [옆방에 킬러가 산다](북플라자, 2020.)와 [특수청소부]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이게 과연 나카야마 시치리의 글인가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크다. 4개의 단편 모음이다.

기도와 저주

부식과 환원

절망과 희망

엇갈린 유산

특수청소는 쓰레기 집이나 시신이 발견된 집 등 사건 사고가 발생한 집을 청소하는 일을 가리킨다. 최근 고독사가 증가하면서 수요가 늘어 성장 산업으로 인기를 끌 정도라고 한다. '엔드 클리너'는 집 청소뿐 아니라 공양, 유품 정리, 가구 매입, 리노베이션, 집 매입까지 의뢰를 받는다.(p.13)

고독한 죽음의 사연, 일반적인 청소가 아니라 쓰레기로 가득한 집이나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직업적 사명, 특수청소업체 엔드 클리너에서 일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떠오르고,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은 아주 좋다. 엔드 클리너의 대표 이오키베 와타루는 경시청 수사 1과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5년 전에 회사를 설립했다. 직원 시라이 히로시와 아키히로 가스미는 코로나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특수청소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일을 적응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의뢰인은 가끔 거짓말을 하거든.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어. 설령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할 방법이 없어. 소원도 다들 비슷하지."

"다들 뭘 원하는데요?"

"내 마음을 헤아려 줘, 라고 나는 생각해."(p.45)

'기도와 저주'는, 한때 외제차 판매회사에서 잘나가던 여자는 실직 후 집에서만 지내다가 뇌경색으로 사망한다. 한 달 반 만에 시신이 발견된 집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유독 옷장의 정장은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다. 엄마는 딸의 유품을 거절하고, 그냥 잘 정돈된 깨끗한 방에서 잠자듯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해달라고 요청한다.

"입지가 아무리 좋아도 문제가 일어난 집이면 의미 없어요."

"그런 집을 되살리는 것도 우리 일이야."

사망한 거주자의 넋을 달래는 것은 승려의 역할이지만 고인의 원한이 서린 집을 정화하는 일은 이오키베와 직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p.86)

'부식과 환원'은, 벤처회사 대표가 온열 욕조에서 목욕 중 급사한다. 시신은 42도의 뜨거운 물에 일주일 동안 방치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녹아버렸다. 평소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여직원과도 사귀었다고 하는데, 갑질을 당했다는 비서와 성희롱을 당했다는 홍보과 직원과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영업과 직원이 찾아와 유품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 특수청소란 사는 곳에 배어 있는 한까지 닦아내는 일이야. 스님처럼 성불시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집에 서린 고인의 넋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집에 서린 넋을 위로한다는 사고방식이 맑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높은 월급과 존경할 수 있는 상사의 존재라는 장점이 3D라는 악조건을 능가했다.(p.156)

'절망과 희망'은, 전기가 끊긴 집에서 젊은 남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다. 보름 만에 발견된 죽음의 자리를 청소하는데, 사망자는 대학교 때 밴드를 같이한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옛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유품을 정리하며 노트북에서 생전에 작곡한 음악 파일을 발견한다.

"제 입장상 대놓고 말하기 뭐하지만 '자손을 위해 기름진 땅을 남기지 않는다'라는 격언은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p.252)

'엇갈린 유산'은, 거대한 부를 축적한 노인이 저택에서 협심증 발작으로 사망한다. 일주일 동안 시신이 방치된 침실을 청소하다가 침대 아래에서 비밀 금고를 발견한다. 금고에는 유언장이 들어 있었고, 세 딸에게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다른 유언장이 배달된다.

특수청소 의뢰를 받으면, 견적을 내고... 방호복을 착용하고, 어질러진 쓰레기를 치우고, 살충제를 뿌리고, 오염 물질을 닦아내고, 탈취제를 뿌리고... 유품을 정리하고, 경찰서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유가족과 동료에게 유품을 전달하는 과정은 매우 전문적이다. 그리고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과정은 추리 소설과 힐링 소설을 동시에 읽는 기분이다. 흥미로운 소재로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뭔가가 부족한 느낌... 따뜻하지 않고, 짜릿하지 않고, 교훈적이지 않은 어정쩡한 느낌이다. 아, 시리즈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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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 킬러가 산다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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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최재호 역, [옆방에 킬러가 산다], 북플라자, 2020.

Nakayama Shichiri, [TONARI WA SERIAL KILLER], 2020.

[옆방에 킬러가 산다]는 로렌스 블록의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다. 하지만 올해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에서 가장 엉성하다. (스포일러 주의!) 가슴이 작은 이유로 큰 가슴의 여자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내용은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사회적 메시지는 물론이고 논리와 개연성이 매우 빈약하다. 아쉽게도 나카야마 시치리라고 해서 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당황스럽다!

외국인 기능실습생은 모국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본에 와서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고용된다. 그것을 빌미로 '니시무라 정밀'에서는 약정된 야근 수당을 지불하지 않고, 기본급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외국인 기능실습생은 그냥 값싼 노동력일 뿐이다.

노동청에 고발할 사유지만 기능실습생들이 항의하지 않는 것은 그들도 나름대로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p.20)

한여름 밤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옆방에서 샤워 소리와 함께 뭔가를 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속 도금 회사에서 일하는 코타리 토모야는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새벽마다 이어지는 수상한 소음으로 잠을 잘 수 없어서... 옆방에서 지내는 외국인 기능실습생 쉬하오란을 의심, 경계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이 연달아 실종되고, 인근에서 여성의 절단된 신체 일부가 발견된다. 작은 체구에 어눌한 말투의 외국인은 정말로 킬러일까?

존재하는데도 호적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p.254)

"타인의 신분을 사서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고죠 미키히데와 처음부터 호적상의 신분 없어 새로운 삶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쉬하오란. 두 사람이 마치 거울에 비친 한 인간처럼 느껴지네요."(p.281)

경찰에 신고해서 옆방을 수색하면 진상은 쉽게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증거주의로 남의 방을 함부로 뒤질 수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코타리는 과거의 실수로 신원을 감추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밤중에 쉬하오란의 뒤를 밟기도 하고, 익명으로 제보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일은 조금씩 꼬여서 상황은 틀어진다. 이제는 자기의 여자친구마저 위험에 빠지는데,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모처럼 읽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인데,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결과가 아쉽다. 탄탄한 구성과 묵직한 글맛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누가? 어떻게? 왜? 에 관해서는 허탈하다. 등장인물의 성격이 일정하지도 않고... 아, 시리즈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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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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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아키코, 이연승 역, [기만의 살의], 블루홀6, 2021.

Miki Akiko, [GIMAN NO SATSUI], 2020.

이번에도 취향 저격, 숨은 명작의 발견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모호한 문학성이 아닌 짜임새와 개연성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계획은 그럴듯했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인간의 욕심,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가문을 되살리려 했고, 사랑을 갈망했지만... 잘못한 선택으로 몰락의 길을 간다. 그해 여름에 일어난 사건은 관련자 전부를 불행의 늪에 빠뜨린다.

그날은 니레 가문의 선대 당주인 니레 이이치로의 오칠일이라 새로운 당주 니레 하루시게를 비롯한 가족과 친분이 두터운 일부 관계자들이 모여 법요식을 치렀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범행과 살인. 실제로 사건이 이보다 큰 모독도 없을 것이다.(p.14)

1966년 7월 니레 가문의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니레 이이치로는 후쿠미시 시의회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고, 법무사무소의 대표이고,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였다. 자신의 뒤를 이을 큰 아들 이쿠오가 갑작스럽게 병사하자, 자수성가한 변호사 하루시게를 데릴 사위로 들인다. 손자 요시오가 장성할 때까지 집안과 법무사무소를 임시로 맡기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이치로가 사망한 뒤 권력을 두고 불안과 혼란, 기대와 야망의 감정이 꿈틀거린다. 장례를 치르고, 오칠일 법요식 행사를 마친 후 가족과 관계자 열 명은 저택의 식당에서 음식과 간식을 먹다가... 큰 딸 사와코와 손자 요시오가 독살된다. 하루시게는 권력욕으로 아내와 양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다.

그러나 그날 사와코와 요시오를 죽인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무죄입니다. 그리고 도코님. 실은 도코님도 제가 무죄인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p.76)

2008년 10월 이이치로의 작은 딸 도코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혐의를 인정하고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었던 하루시게가 42년의 옥살이를 끝내고 가석방되어 연락해온 것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하는 게 아니라 옛 인연을 떠올리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고, 관련자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노령의 나이... 그럼에도 그는 모진 형벌, 영겁의 세월을 억울해하며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형부 하루시게와 처제 도코 사이를 오간 다섯 통의 편지는 옛 기억을 되새기며 추리의 가설과 사실 확인을 통해서 진범을 찾아낸다.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원흉이어도 한때는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 것에 있다.(p.273)

소설 [기만의 살의]는, 한때 권력가로 이름을 날리던 집안이 서서히 침몰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려고, 빼앗으려고 기만과 술책이 난무한다. 딸자식의 혼례를 인맥 활용의 도구로 이용하고... 결국 스스로의 꾀에 빠져서 자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랑과 증오의 상반된 감정이 폭발적으로 작동한다. 완벽한 복수는 무엇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현대문학, 2008.)와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비채, 2012.)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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