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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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마기, 이연승 역,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블루홀6, 2024.

Inoue Magi, [ARIADNE NO KOE], 2023.

불가능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순간 거기까지라는 한계가 정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노우에 마기의 소설 [아리아드네의 목소리]는 스마트 지하 도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고립된 인명을 구조하는 재난 미스터리이다. 여기에는 최신의 드론 기술을 활용하는데, 지하에 홀로 남은 여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 장애를 겪고 있다.

- 조만간이 대체 언제야? 뭐 됐어. 원래 인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니까.(p.11)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에 해안가의 동굴에서 사고로 형을 잃는다. 사고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라는 형이 남긴 말을 신념으로 여기고 산다. 그 때문일까? 그는 탈랄리아라는 벤처 기업에서 일하는데, 시설물 점검과 재난 구조용 드론을 개발하는 업체이다.

그리고 저는 제가 특별히 소수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처럼 시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농맹인'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이 일본 전역에 무려 2만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덧붙이자면 시청각 장애를 비롯해 신체 어딘가에 장애가 있는 '신체장애인'은 전국에 무려 4백만 명 이상! 놀랍죠? 일본 인구가 약 1억 2천만 명인데 그중 3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신체에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p.48)

WANOKUNI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지하 5층의 스마트 시티가 만들어진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구상으로 지상층은 주거지역, 지하 1층은 상업층, 지하 2층은 사무층, 지하 3층은 생산층, 지하 4층은 인프라층, 지하 5층은 교통층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계획도시이다. 도시 개막 행사에 삼중 장애를 가진 나카가와 히로미가 초대된다. 레이와의 헬렌 켈러라고 불리는 그녀는 장애인의 희망이고, 불가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말한다.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리아드네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는 그 유명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할 때 자신을 흠모하던 크레타섬의 공주 아리아드네에게 받은 실타래를 써서 괴물이 사는 미궁에서 탈출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을 '아리아드네의 실'이라 부르는 것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p.90-91)

도시 개막 행사를 마쳤을 때 거대 지진이 발생한다. 스마트 시티의 건물이 무너지고 지하 도시가 파괴된다. 지하 1층과 2층은 화재로 불이 번지고, 지하 5층은 지하수로 침수되고 있다. 아래는 큰 물, 위에는 큰 불이 덮치는 상황에서 지하 5층에 홀로 남은 생존자 나카가와 히로미를 지하 3층에 있는 비상 대피소로 피신시켜야 한다. 여기에 재난 구조용 드론인 아리아드네를 투입하기로 한다.

-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죠. 그래서 전 '나한테는 불가능해'라고 생각되면 곧장 그 일을 포기하고 조금 더 제가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찾아요. 그쪽으로 목표를 전환하는 거예요.(p.250)

- '불가능'이라는 건 말이지. 일종의 신호야. '이 이상 더 하면 위험하다'라는 의미의, 뇌와 몸이 보내는 신호. 물론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 그 신호가 정말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너무 신중하게 행동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거나,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나머지 무모한 짓을 벌일 수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불가능한지, 아닌지'의 선을 스스로 긋는 거야. 너만의 감각으로, 너만의 의지로 선을 긋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야. 왜냐하면 그 선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 네가 그때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건 그 자체로 옳은 일이야.(p.254-255)

화재와 침수로부터 남은 6시간 내에 드론의 충전과 전파 통신을 확보하고, 캄캄한 지하 도시에 산적한 장애물을 뚫고, 생존자를 찾아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대피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해야 하고... 긴박감과 긴장감을 그리고 기발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나카가와 히로미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움직임을 보여서 장애를 의심받기도 하고, 드론이 추락해서 기체를 분실하는 위기가 오기도 한다. SF와 미스터리의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과거의 사건으로 불가능은 없다는 강박적인 삶에서 벗어나 불가능은 일종의 위험 신호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다는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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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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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키, 이연승 역, [원더풀 라이프], 블루홀6, 2024.

Maruyama Masaki, [WONDERFUL LIFE], 2021.

독서미터 OF THE YEAR 2021 1위

역시 복잡한 책을 읽어야 하나? 평범한 내용을 두세 번 비틀어서 얘기하니 흥미롭다. 소설은 이렇게 긴장과 호기심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소설 [원더풀 라이프]는 중증 장애인을 소재로 한 가정을 이야기하는데,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과 장애인의 인격에 관한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한다. 구성이 특이해서, 네 개의 사연을 들려주다가 이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에 진실이 드러난다. 왜 제목을 [원더풀 라이프]라고 했을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무력의 왕

한낮의 달

불초의 자식

가면의 사랑

"그때는 나도 죽어."

아내는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다'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죽음은 곧 그녀의 죽음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아내는 살 수 없다. '당신 없으면 못 살아요' 같은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엄연한 사실로서 그녀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p.8)

'무력의 왕'은, 남편은 사고로 경수 손상 환자인 아내를 돌보고 있다. 가슴과 어깨 아래는 감각이 없는 전신마비 상태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증 방문요양 지원을 받고 있지만, 까탈스러운 아내는 요양 보호사를 불편해하면서 남편을 수족처럼 부린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8년 동안 병시중을 해온 남편은 스스로 택한 길이지만,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낀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어?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적이 있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게 전부야."

"그 정도면......"

그 뒤로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친다.(p.57)

'한낮의 달'은, 건축 설계사인 가즈시는 세쓰와 함께 살 집을 직접 설계해서 지으려고 한다. 집에 관해서 상의하던 부부는 아이를 위한 공간을 두고, 출산을 계획한다. 1년을 기한으로 하되 불임 치료는 하지 않는 것으로 했는데, 뜻대로 임신은 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가즈시는 세쓰가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질투의 감정이 솟구친다.

없어.

요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그렇다. 이럴 때 불륜 상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움이 돼 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무가치함을 직시한 느낌이었다.(p.80)

'불초의 자식'은, 이와타는 직장에서 유부남 상사인 요지와 불륜 사이이다. 요지의 아버지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둘의 만남은 잠시 소원해진다. 미래가 없는 관계이지만, 이와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무가치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에 고객사 직원인 구니에다가 호감을 보이며 다가온다.

"그 여자애한테 장애인인 걸 말하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저더러 도시하루 씨인 척을 하라고요? 근데 만나면 금세 다른 사람인 걸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도시하루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너,와,내,가,함,께,찍,은,사,진,을,보,냈,어(p.113)

'가면의 사랑'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도시하루는 테루테루라는 닉네임으로 PC 통신을 한다. 장애인 포럼과 영화 포럼에서 활동하는 GANGO라는 여자를 알게 되는데, 비슷한 취향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친해진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다가 사진을 교환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다. 도시하루는 요양 보호사인 유타에게 테루테루인 척해달라고 부탁한다.

"방금 이와타 씨가 말씀하신 사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데요. 어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남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건도...... 그러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그래서 다들 동정도 하겠지만 아이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죠. 아니, 대부분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은 이것저것 추측하거나 가타부타 이야기하지만, 살해된 아이가 어떻게 느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p.314)

전 아직 말이 서툴던 그가 어머니를 향해 힘겹게 연신 되풀이했다는 그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날 죽이지 마세요.'(p.340)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고, 일상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한다. 욕창과 근육 퇴행을 막기 위해 매일 (두)세 시간 간격으로 환자의 자세를 바꾸고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용변까지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결혼하기 전 아내의 임신 사실은 응어리로 남게 되고, 장애가 있을지 모르는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비정상적인 관계를 쉽게 끝내지 못하고, 결국 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존재한다. 해마다 일어나는 장애인 가족의 비관적 살해 사건은 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고, 중증 장애인의 인격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오지랖 넓은 인생의 대환장 쇼를 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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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가족
가와세 나나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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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세 나나오, 문지원 역, [4일간의 가족], 블루홀6, 2024.

Kawase Nanao, [YOKKAKAN KAZOKU], 2023.

최근에 읽은 일본소설의 재미가 부진해서 횟수를 세어보니 이 책을 포함해서 5연속 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잡한 구성을 피하고 일부러 가벼운 책만 찾았는데,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듯싶다. 가와세 나나오의 소설 [4일간의 가족]은 시놉시스만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논스톱 인생 터닝 미스터리는, 감동도 스릴도 없는,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다.

"너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구나. 우리는 죽고 싶어서 죽지만 저 아기는 살고 싶어서 우는 거야. 이걸 못 본 척하는 놈은 사람도 아니라고."(p.44)

인터넷을 통해서 모인 네 사람은 한밤중에 도쿄도 오메시에 있는 국유림에 밴을 세워두고,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기소개와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는 중이다. 하세베 야스오는 60세 남자로, 철공소를 운영하다가 전염병으로 빚더미에 앉게 되어 보증을 서 준 여동생에게 보험금을 남기고 싶어 한다. 데라우치 지요코는 73세 여자로, 스낵바를 운영했는데, 방역 수칙을 무시하고 비밀 영업을 하다가 집단 감염으로 노인들이 사망해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카자키 나쓰미는 28세 여자로, 일종의 자원봉사 같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야쿠자에게 쫓기고 있다. 단바 리쿠토는 16세 미성년 남자로, 자기에 관해서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차 한 대가 산으로 올라오더니 한 여자가 배낭을 버리고 떠난다. 곧이어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 같이 죽겠다는 공동의 목표 외에 모든 것이 다른 네 사람은 운명의 장난처럼 버려진 가방에서 아기를 발견한다.

지요코는 아기를 다시 강보에 싸서 등을 토닥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는 질투심 많은 두 얼굴의 노인은 없고 자애로운 노인만 있었다. 매우 평화롭고 다정한 광경은 피폐하게 살다 못해 자포자기한 내 마음에 독처럼 스며들었다.(p.71)

최악의 상황에서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게 구조된 아기는 잠시 죽음을 뒤로하고 그곳에 평화를 가져온다. 경찰에 신고하면 일은 쉽지만, 네 사람 중 누구 하나 경찰서에 갈만한 처지가 아니다. 범죄 조직하고 연관되었을지 모른다는 우려, 그때 차 한 대가 다시 산으로 올라오고 그들은 일단 자리를 피한다. 그런데 문제는 SNS에서 아기 엄마라는 사람이 아기를 돌려달라는 영상을 올리고, 네 사람은 졸지에 유괴범으로 몰리게 된다. 소셜 미디어의 파급력은 대단해서 네 사람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하나씩 유출, 공개되는데... 어떻게든 경찰과 네티즌 수사대의 추적을 따돌리고, 산에 아기를 버린 범죄 조직의 음모를 밝혀서 누명을 벗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네 사람도 변했다. 고집 세고 배려 없는 인간들의 모임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흔들다리 효과(흔들다리 위에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도가 높아진다는 이론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나타난 신체 변화를 자신의 감정으로 착각하기 쉬운 것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로 맺은 신뢰 관계이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원동력은 아기라는 존재였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구하고 싶다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p.212)

"지금은 여기 있는 게 훨씬 중요해. 나도 나 자신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아 그렇구나. 나는 납득했다. 지난 며칠간 절실하게 깨달은 사실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타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네 사람은 사부로를 구한다는 목적으로 매 순간 스스로를 치유했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다시 살 기회를 탐욕스럽게 잡으려 하는 것이다.(p.273)

[4일간의 가족]은 제목 그대로이다. 이기적인 경제활동과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벼랑 끝에 몰린 네 사람은 버려진 아기를 보호하면서 가치관의 변화와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되는 4일간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아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된다는 치유, 유괴범이라는 누명을 벗는 추리,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마녀사냥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깊이가 부족하다! 파렴치한 인간이 며칠 아기를 돌본다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단지 전화 몇 통화로 범죄 조직의 소굴을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SNS는 신선함이 없고... 뜬구름을 잡는듯한 내용, 강요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아는 인간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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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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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 구세희 역, [헤드헌터], 살림, 2011.

Jo Nesbo, [HODEJEGERNE], 2008.

헤드헌터(Headhunter)는 인재 스카우트 전문가를 의미하고, 사람 사냥꾼을 뜻한다. 북유럽 스릴러의 전설인 요 네스뵈의 소설 [헤드헌터]는 기업 스카우트 전문가와 특수부대 출신의 추격자가 등장한다. 숨은 명작으로 알려진 동명의 영화를 보아서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군더더기 없는 글은 확실한 재미를 주는데, 기업 소설인가 싶다가 범죄 소설로 바뀌고, 추격전이 펼쳐지며, 추리와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블랙 코미디의 요소가 있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포함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아인바우, 리드, 버클리의 9단계 심문 모델'이 전부다. 이런 미소를 짓는 것은 내가 정말로 전문가에, 분석적이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헤드헌터다.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난 그중에서도 최고다.(p.12)

알파 헤드헌팅에서 일하는 로게르 브론은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헤드헌터이다.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고, 복종-자백-진실이라는 FBI의 9단계 심문 모델을 숙지하고 있으며, 면접을 주도하는 재능이 있다. 하지만 그는 키 168센티미터의 작은 남자이다. 그의 아내 디아나는 키가 크고, 아름답고, 예술을 사랑하는 과분한 여자이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운전수였던 아버지는 그에게 작은 키를 물려주었다. 열등한 유전자의 두려움, 아이에게 아내의 사랑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염려... 그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를 향한 아내의 갈망을 덜어내기 위해 좋은 집과 고급스러운 화랑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유지하는 비용이다!

나는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에드바르 뭉크의 '브로치', 다른 이름으로 '에바 무도치'라고도 불리는 그림의 고해상도 사진을 찾아냈다. 그 그림은 현재 시장에서 35만 크로네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러면 암시장에서는 27만이 채 안 되니 내 그림보다 겨우 2만 비싸군. 장물아비에게 50퍼센트, 우베에게 20퍼센트를 떼어 주고 나면 내겐 8만 크로네가 남는다. 늘 그런 식으로 배분해 왔는데 사실 그림을 훔치느라 겪는 고생은 고사하고 그 위험부담을 감수할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p.50)

로게르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은 미술품 그림을 훔치는 일이다. 헤드헌터를 찾아온 이들을 심층 면접하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런데 갈수록 값비싼 그림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화랑에서 아내의 소개로 알게 된 클라스 그레베를 면접하면서 그가 루벤스의 그림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로게르는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클라스는 네덜란드의 특수부대 출신으로 추격전 전문가이다.

"그러면 군대로 복귀한 후 살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명하죠?"

"덜미가 잡히지 않게 해야죠. 석시닐콜린 같은 걸로."

"독인가요? 독화살 같은?"

"그게 우리 같은 헤드헌터들이 쓰는 거죠."(p.144)

심리전으로 항상 상대보다 우위에 섰던 로게르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클라스는 이미 FBI뿐만 아니라 CIA에서 사용하는 심리 분석을 꿰고 있었으며, 이기는 것에 익숙한 인물이었다. 로게르는 루벤스의 그림을 훔치러 클라스의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아내의 휴대전화를 발견한다. 계획된 함정? 로게르가 가는 곳마다 클라스가 바짝 뒤를 쫓는다. 이제는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사냥꾼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궁지에 몰린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사투를 벌인다. 논리적 개연성으로 짜임새 있는 구조, 장엄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 뒷이야기로 충분한 설명, 등장인물의 개성...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스릴러이다. 요 네스뵈의 매력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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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눈빛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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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 최재호 역, [형사의 눈빛], 북플라자, 2019.

Yakumaru Gaku, [KEIJI NO MANAZASHI], 2012.

묵직한 장편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야쿠마루 가쿠의 단편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소설 [형사의 눈빛]은 '나츠메 노부히토'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이다. 7개의 연작 단편으로 각각의 사건과 커다란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는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북플라자, 2020.), [형사의 약속](북플라자, 2021.), [형사의 분노](북플라자, 2022.)가 번역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청소년 범죄와 진정한 속죄에 관해서 글을 쓴 작가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아쉬움이 남는다.

오므라이스

빨간 줄

잃어버린 심장

자존심

아버지의 휴일

흉터

형사의 눈빛

10년 전 네리마 구(區)에서 아이를 대상으로 한 '묻지 마 테러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나츠메의 딸인 에미는 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당시 머리를 망치로 맞아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p.251)

히가시 이케부쿠로 경찰서의 나츠메 형사는 원래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아동보호시설의 청소년과 관련해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법무부 소속의 소년분류심사원이 된다. 그런데 10년 전에 딸아이가 묻지 마 범죄로 식물인간이 되어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경찰로 이직해서 형사가 되었다. 온화한 눈빛으로 소년을 관리하던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용의자를 추적한다.

'오므라이스'는, 연립주택의 방화사건으로 불에 탄 시신과 함께 먹다 남긴 오므라이스가 발견된다. 희생된 남자는 사실혼 배우자로 직장을 잃고 놀음에 빠져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빨간 줄'은, 소년원을 나온 남자는 성실하게 살려고 해도 전과자라는 빨간 줄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아파트의 집 주인이 살해되어 경찰이 찾아오는데, 낯익은 얼굴이다. '잃어버린 심장'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남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노숙자가 된다. 공원에서 노숙자가 죽었는데, 알고 보니 상해치사 용의자로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자존심'은, 스토커에 시달리던 여자가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전 남자친구에게 시달렸다고 하는데, 왜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것일까? '아버지의 휴일'은, 아내가 죽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는, 아들이 불량배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일을 쉬고, 경찰인 친구와 아들의 뒤를 밟는다. '흉터'는, 등교거부와 자해를 하는 학생을 상담하는데, 그녀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경찰이 찾아온다. 가정 문제, 현실 도피, 자책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사의 눈빛'은, 10년 전에 일어난 묻지 마 범죄의 목격자가 살해된다. 현재의 사건과 함께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마사유키가 화를 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뭔지 당신이 알아요? 슬픔만이 아냐. 슬픔이 지난 후에는 말로 표현 못할 허무함이 닥쳐온다고. 소중한 가족을 위해서 계속 견뎌왔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가, 누군가가 멋대로 내 행복을 빼앗아갔어. 나는 앞으로 뭘 위해서 힘을 내고 뭘 위해서 살아야 한단 말이야! 힘내라는 말이나 노력하라는 말은 배부른 녀석들에게나 쓰는 말이라고!"(p.154)

"네, 딸은 아직도 입원 중입니다."

'아직도 입원 중이라고...?'

"그날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식물인간이라는 건가.'

나가미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혹시 나가미 씨가 그 사건을 수사하셨습니까?"

"그래..., 비참한 사건이었어."

"'이었어'가 아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 가족에게는 과거형이 될 수 없는 사건이다. 나츠메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p.195)

"그래, 지금 내 일은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야.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죄를 지은 사람은 더욱 그렇고. 그런 사람을 잡는 것이 내 일이야."

나츠메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맑은 눈빛은 옛날과 변함이 없지만, 마음은 다른 무엇과 맞바꾼 것은 아닐까.(p.252)

"요시오 사건이 있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죄를 지은 소년들의 고민이나 범죄에 이르게 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들에게 갱생하는 데 도움을 주자고. 그래서 법무부에 들어가자고. 하지만 딸이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신념이 크게 흔들렸어."(p.300)

"피해자 가족들이 범인에게 바라는 것은 범인이 감옥에 가거나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만이 아니야. 범인 스스로 자신이 범한 죄의 의미를 평생 곱씹는 것, 그리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반성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걸 원하는 거야."(p.420)

다른 글쓰기로 단편을 구성했는데, 상 복 많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범죄와 속죄의 삶에 관해서는 이전의 작품과 비슷한 맥락을 보이고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되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가 교이치로를 떠오르게 한다. 가가 형사는, 자신은 교사로서 실격이라 여기고 경찰이 되고... 나츠메 형사는, 소년 범죄자의 갱생을 위해 소년분류심사원이 되었다가 딸을 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이 된다. 여기에는 불행한 가정환경... 편부와 편모, 가정폭력, 성소수자, 가해자와 피해자 가정이 등장한다. 누구라도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데, 이것에 굴복해서 범죄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삶을 개척해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환경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는 잘 알겠는데, 선을 넘는 반전과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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