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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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야 미우, 김윤경 역, [인생 임시 보관 중], 문예춘추사, 2026.

Kakiya Miu, [MANDALA CHART], 2024.

내가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인생 2회차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발칙한 상상이다. 그때 나는 원하던 삶을 살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가키야 미우는 여성과 노인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데, 일본의 불합리한 현실을 꼬집으며 여성주의를 일관성 있게 이야기한다. 소설 [인생 임시 보관 중]은, 63세 주부가 중학교 시절로 타임슬립해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장 기록이다.

좋겠다! 남자들은. 목표를 향해 쭉 달려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에 비하면 여자의 인생은 결혼이나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중단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예순이다.(p.10)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고등학생 때 이미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만다라차트, 세부적인 인생설계도를 만들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오타니의 아내는 헌신적인 내조자로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마사미는 불만을 토로한다. 남자와 비교되는 여자의 삶은 결국 가사와 육아와 뒷바라지뿐이다. 학창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예순이 넘어서도 부엌일을 하며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방해 요소를 전부 배제하고 오타니처럼 꿈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여성이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 하지만...... 여성이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게, 어떤 세상?

그런 장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뭘 해야 할까?(p.40)

그녀는 카페에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며 만다라차트를 쓰다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23년에서 1973년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는데, 그 시절에 좋아했던 아마가세 료이치를 만난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만, 1970년대는 철저히 여자를 무시하는 남존여비의 시대였다. 항상 타인의 이목을 신경 쓰고, 여성을 비하하는 유행가를 부르고, 늦은 결혼은 흠이 되고, 대놓고 외모를 조롱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불편함이 있고, 여자를 대하는 인식의 개선이 절실하다.

이 시대 여자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10퍼센트 정도였는데, 그 대부분이 문학부로 진학했다. 레이와시대까지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자면 왜 모두 한결같이 문학부 외의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당시의 여고생들은 장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먼 앞날을 생각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특히 시골 마을에서는 일반 회사에 근무하며 활약하는 여성들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곳은 신용금고나 농협 등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그나마 결혼하면 퇴직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본보기로 삼을 여자 어른이 주위에 없던 시대였다. 그 결과, 고교 동급생 중에서 대졸 자격을 직업으로 살린 여성은 교사나 약사가 된 몇 명뿐이었다. 바꿔 말해 교사나 약사라면, 여자의 처지라도 계속 일해도 좋다고 세상이 허가를 내준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p.177-178)

마사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레이잔대학교 건축학과에 들어간다. 당시에는 여자가 4년제 대학에서 이과를 전공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고, 4년제 대학을 나오면 오히려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머리 나쁜 남자가 똑똑한 여자를 무시했고, 여자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썩기 시작하는 케이크에 비유되었다.

"우리 회사는 사내 연애로 결혼하는 직원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직원을 채용할 때는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 아닌지를 보게 되어 있다고요."

"신붓감 후보를 찾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뭐야.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 같은 우수한 여성은 우리 회사에는 필요 없습니다. 일하는 건 남자들 역할이니까요. 자, 이제 돌아가주시죠."(p.221-222)

전문대를 졸업하면 두 살 더 어리기 때문에, 어차피 2년 정도 일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퇴사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서... 마사미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내조하는 여자가 사랑받는 세상이다. 여자는 돈벌이하는 남자에게 부속되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까? 정말 세상을 바꾸고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시대상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022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양성평등 실현 조사에서 일본은 146개국 중 116위였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2018년 의대 입시에서 여성을 차별한 사실이 판명되었는데, 지난 몇십 년 동안 점수를 조작해 왔다고 한다.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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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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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세이이치로, 윤시안 역, [밀실수집가], 리드비, 2025.

Oyama Seiichiro, [MISSHITSU SHUSHU-KA], 2015.

제1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추리 소설에서 밀실만큼 매력적인 소재가 또 있을까? 읽기는 쉬워도 쓰기는 어렵고, 독자를 상대로 하는 수수께끼는 기발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세상이 바뀌어 최근에는 범죄의 방법보다 사건의 동기와 이유에 더 관심을 두지만, 그럼에도 잘 짜인 트릭의 짜릿한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소설 [밀실수집가]는 경찰서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밀실수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로, 5개의 단편 모음이다.

버드나무 정원 (1937년)

소년과 소녀의 밀실 (1953년)

죽은 자는 왜 추락하는가 (1965년)

이유 있는 밀실 (1985년)

가야코네 지붕에 눈 내려 쌓이네 (2001년)

현대에는 각종 첨단 수사 기법은 물론이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밀실을 꾸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반영해 밀실을 구성한다. 1937년부터 2001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데, 주로 목격 진술과 시간 추적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밀실수집가가 등장해 명탐정의 추리를 하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64년의 세월이 흐르지만, 그는 서른 살 전후의 잘생기고 독특한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이다.

"범인은 왜 손목시계를 들고 도망쳤을까요?"

꼭 엘러리 퀸이 쓴 탐정소설 같아. 지즈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퀸이 집필한 작품에서는 범인이 피해자의 실크 모자를 가지고 자리를 뜨거나 옷을 들고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범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제일 중요한 수수께끼로 부상한다. 범인이 왜 피해자의 손목시계를 들고 도망쳤는지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기이한 수수께끼 아닐까. 퀸이라면 '일본 시계 미스터리'라는 제목을 붙였을지도 모른다.(p.38)

고등여학교 음악실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음악실의 문은 안에서 잠긴 채 음악 교사가 죽었다. 범인은 온데간데없고, 특이한 것은 희생자의 손목시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는 밀실수집가는 목격자의 이야기를 듣고 곧이어 "진상을 알아냈습니다."라고 말한다.

범인에게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잠시 목숨을 부지한 상황에서 스스로 밀실에 들어간 다음 세상을 떠나면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유형의 밀실을 내출혈 밀실이라고 부릅니다.(p.114)

경찰이 잠복 중인 집에서 소년과 소녀가 죽었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고, 최초 발견자는 경찰이었다. 사귀던 남녀가 동반으로 목숨을 끊은 정황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칼에 찔린 피해자가 스스로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죽는 것을 '내출혈 밀실'이라고 하고, 피해자가 밀실에서 죽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시간차 밀실'이라고 한다.

첫째, 범인은 왜 범행을 마치고 나서 굳이 시체를 떨어뜨렸는가? 또 범행을 마치고 최소 세 시간 남짓 기다렸다가 시체를 떨어뜨린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범인은 시체를 떨어뜨린 다음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와 도망쳤는가?(p.158)

주상복합 빌딩 6층에서 여자가 흉기에 찔려 창밖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녀가 살던 호실은 굳게 잠겨있었는데, 범인은 왜 시체를 창밖으로 내던졌는지 의문이다. 추락할 때 여자는 머리를 아래로 두었는지, 아니면 발을 아래로 두었는지가 추리의 쟁점이다.

여덟 번째 이유는 밀실을 만드는 일에 수반되는 어떤 행위가 범인의 진짜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 행위만으로는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밀실 제작에 그 행위를 포함시켜 범인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했다는 뜻이죠."(p.245)

약점을 잡고 돈을 갈취하던 프리랜서 기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 살해 현장은 밀실이었고, 피해자의 뱃속에서 현관문의 열쇠가 발견되었다. 범인이 밀실을 만드는 여덟 가지 이유는? 첫 번째, 사고사로 꾸미기 위함이다. 두 번째,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씌우기 위함이다. 세 번째, 범죄 입증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네 번째, 시체가 발견되는 시간을 늦추기 위함이다. 다섯 번째, 밀실 현장을 범행 현장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여섯 번째, 자신이 고안한 밀실 트릭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다. 일곱 번째, 현장이 진짜 밀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함이다. 여덟 번째, 밀실을 만드는 일에 수반되는 어떤 행위가 범인의 진짜 목적이다. 번외로, 밀실수집가를 불러내기 위함이다.

"아니요, 저는 밀실 살인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경찰 측에서는 여기 사사노 가야코 씨가 범인이라고 여기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그녀가 결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야코 씨가 결백하다는 말은 범인이 눈밭에 발자국을 안 남기고 현장을 드나들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야말로 밀실 살인 아닙니까."(p.294)

다로를 재우고 다로네 지붕에 눈 내려 쌓이네. 지로를 재우고 지로네 지붕에 눈 내려 쌓이네. 미요시 다쓰지가 지은 '눈'이라는 시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다로와 지로 형제가 사는 집에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또는 다로네 집과 생판 남인 지로네 집에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보인다. 눈 내리는 날에 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현장에는 피해자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

책을 읽는 시종일관 지루함과 호기심이 공존한다. 밀실에 집중해서인지 건조한 느낌이고, 장황한 설명은 다소 복잡하다. 하지만 어떻게 밀실 범죄가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붙들게 한다. 밀실에 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작가의 고민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비슷하고 반복적인 패턴이 발목을 잡는데, 또 누구는 그게 재미라고 하니... 결국 취향의 문제인듯하다. 본격보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더 좋아해서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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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농성
구시키 리우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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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키 리우, 김은모 역, [소년 농성], 블루홀6, 2025.

Kushiki Riu, [SHONEN ROJO], 2023.

내가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는? 간결하고 강렬한 제목, 명확한 글 솜씨와 짜임새 있는 구성, 개성 강한 캐릭터, 논리적이고 개연성 깊은 이야기, 여기에 극적인 반전과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구시키 리우는 처음 만난 작가인데, 소설 [소년 농성]은 이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살인 혐의가 있는 열다섯 살 소년이 경찰에게서 총기를 탈취, 무고를 주장하며 인질극을 벌인다. 진범을 찾으라는 요구, 이와가키시 오아자 도로코베 온천 거리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접객원의 태반이 국가 행정을 믿지 못하고 거기에 의지하지도 못하는 여자들이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 여자. 기댈 곳이 없는 싱글맘.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일가의 어머니. 또는 부모에게 학대당해 가출한 딸. 그녀들에게는 도로코베 온천 거리 자체가 거대한 보호소 같은 존재였다.

폭력과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접객원들은 최대한 숨죽여 기척을 지운 채 일급을 번다. 일단 '생존'하는 것이 고작이라 아이의 교육과 위생 상태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 결과 거리에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갈 곳도 없는 아이들이 매일 뒷골목이나 술집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먹을 걸 찾는다.(p.37-38)

국가 복지와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이 있다. 도로코베 온천 거리에는 갖가지 사연을 안고 들어와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하는 싱글맘과 아이들로 넘쳐난다. 빚쟁이에게 쫓기거나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친 여자는 양육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방치되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제때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폭력과 범죄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그럼 이미 들었겠지만 우리 가게는 어린애 한정으로 모든 메뉴가 백 엔이야. 백 엔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계산해도 되지. 접시를 깨지 않고 설거지하는 아이에게는 돈가스 덮밥. 가게 앞을 청소하는 아이에게는 오야코 덮밥. 손님이 먹은 그릇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는 아이에게는 계란 덮밥을 제공해. 자, 고코나는 뭘 할 수 있지?"

"청소요."(p.20)

야기라 쓰카사와 미요시 이쿠야는 도로코베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다.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일종의 속죄로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이,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리리코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쓰카사는 아버지가 하던 식당(야기라 식당, 일명 어린이 식당)을 물려받아 배고픈 아이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이쿠야는 경찰이 되어 최근에 형사과에서 내근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고자사가와강 하천부지에서 남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래. 이게 요구 사항이야! 짭새 놈들에게 제대로 조사해서 내가 죽이지 않았다는 걸 밝혀내라고 해. 범인을 찾아내면 그 새끼의 이름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의심해서 죄송하다고 내게 사과하는 거야. 그때까지는 이 가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어!"(p.105)

끔찍한 살해 수법으로 난도질당한 시신, 곧바로 특별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용의자를 물색한다. 강도 및 상해 혐의로 소년원에 갔다 온 마세 도마와 와타나베 게이타로는 검문을 받다가 경찰의 권총 한 자루를 빼앗아 야기라 식당으로 들어간다. 쓰카사와 어린이 손님 네 명을 인질로, 그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연쇄 살인의 의혹을 제기하며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한다.

"환경이 안 좋았을 뿐이지. 나도 가정환경이 그랬으면 똑바로 자라기가 어려웠을걸. 그리고 녀석은 고작 열다섯 살이야. 자업자득이라느니, 자기책임이라니...... 그런 말을 던져도 될 나이가 아니야."(p.341)

"세상 사람들은 죽은 아이에게만 관심을 주죠. 살아 있는 동안은 '자기책임'이라고 차갑게 대하면서요. 죽고 나서야 '불쌍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건 싫어요. 동정받아 봤자 죽으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저는 살아있는 동안에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어요."(p.460-461)

하천부지에서 어린아이 시체 두 구를 추가로 찾아낸다. 도로코베는 죽음과 실종에 무감각한 곳으로, 언제 누가 사라져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행정은 마비되고, 공권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빈틈으로 지난 20여 년간 살인을 저질러 왔다. 공공기관의 조직적인 은폐와 비위, 정치권과 지역 유흥업의 유착, 뿌리부터 썩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어난 악랄하고 교활하고 음흉한 농성이다.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의 중요성,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일에 관해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어두운 그늘에 방치되어 돌봄이 절실한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서글픈 비명이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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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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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유타카, 김은모 역, [신 게임], 내친구의서재, 2025.

Maya Yutaka, [KAMISAMA GAME], 2015.

그동안 일본 미스터리를 읽으며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섬뜩하고 잔혹해도, 다소 기괴하더라도 장르적 특성으로 여기고 오히려 그 발칙한 상상을 즐겨왔다. 그런데 내가 읽은 게 성인이 아닌 아동용이라면? 평가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마야 유타카는 신본격 미스터리의 이단아, 문제작의 작가로 알려졌는데, 소설 [신 게임]은 원래 아동용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세계관과 전개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신(神)이 아직 생일이 아니라고 경고하기 위해 이렇게 불길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찜찜했다.(p.9)

고양이 학살 사건이란 내가 사는 가미후리(神降, 신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 시에서 연속해서 발생 중인 악질적인 사건이다.(p.13)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한 요시오는 네 살 이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빠는 형사이고, 하마다 정에 사는 친구끼리 만든 '하마다 탐정단'의 일원이다. 같은 반 단짝 히데키, 짝사랑하는 미치루, 탐정단의 리더 다카시... 그리고 보름 전에 전학 온 스즈키 다로가 등장한다. 지역에서는 '고양이 학살 사건'이 일어나는데, 누군가 연속으로 길고양이를 무참히 죽이고 있었다. 요시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미치루를 위해 범인을 잡고 싶어 한다.

"난 신이야."

"신이라고?"

"그래." 스즈키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역시 도시에서 유행하는 게임 같은 걸까? 하지만 무슨 게임일까. '신 게임'? 적어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본 적은 없었다.(p.34)

"그럼 넌 누가 만들었는데?"

"내가 만들었지. 이렇게 말하면 희한하게 들리겠지만 나한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 삼라만상,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창조물인 이상 나 자신도 내 창조물이야."(p.37)

"그럼 난 몇 살까지 살 수 있어?"

스즈키는 눈을 잠깐 감았다가 "넌 서른여섯 살까지 살 거야"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차단해두었던 미래의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이리라.(p.41)

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전학생 스즈키를 만나는데, 그는 자신을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한다. 요시오는 도시에서 유행하는 게임인 줄 알고 여기에 장단을 맞춘다. 신의 존재에 관해서, 외계인에 관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해서 물어보면 막힘없이 대답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죽인 범인을 알려주는데... 신은 모르는 게 없고, 결국 신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인간을 구하는 건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역할이야. 인간이 멋대로 내게 의지해 살아갈 힘을 얻는 건 자유지만. 종교란 자의식을 지닌 모든 생명체에게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을 그냥 구경할 뿐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 사회가 혼란스러워진 끝에 망하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어. 멸망해도 또 만들면 그만이니까.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래왔어. 인간은 신을 무슨 자신들이 번영하도록 책임져야 하는 수호자인 양 여기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지적 생명체를 포함해 어떤 생물이나 물질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 이렇게 따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또 모르지만. 그니까 특별히 네 소원은 들어줄게. 너랑 이야기하면 여러모로 재미있거든."(p.92-93)

천벌을 내린다! 어린이 탐정단의 활약을 예상한 명랑소설은 신과 인간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담론으로 전개되고, 밀실 살인사건으로 발전해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는다. 일본 미스터리 특유의 성역 없는 소재는 파격적인 재미를 보장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잔혹동화는 반감을 불러온다. 신에 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고, 서른여섯 살에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는 요시오의 미래가 궁금하다.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기대된다. 아, 나를 괴롭게 하는 자에게도 천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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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테라시마 요우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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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시마 요우, 권하영 역,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북플라자, 2025.

Terashima Yo, [KITSUNEGARI], 2023.

제9회 신초 미스터리 대상

제일 먼저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 테라시마 요우의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 경찰 소설이다.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닌 조금 가벼운 느낌으로 경찰 드라마가 연상된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 간의 케미가 훌륭한데, 개성 강한 인물들의 티키타카 활약이 돋보인다.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체계적인 수사의 전개는 재미있지만, 특유의 상명하복으로 진중한 경찰 소설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그때 사고로 너는 약혼자와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어. 원통한 건 알지만, 사고였어. 벌써 3년 전이야. 너도 이제 그만..."

그 말을 덮듯 오자키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게...,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사고 때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에요. 사실은 봤어요."(p.46)

오자키 사에코는 3년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약혼자는 죽고, 동승한 그녀는 오른쪽 눈을 실명한다. 이미 조사가 끝났지만, 그녀는 교통사고의 원인에 의심을 품고 남몰래 수사를 한다. 그리고 사고 현장에 갔다가 오른쪽 눈으로 그날의 일을 또렷이 보게 된다.

유게 타쿠미는 40대 중반으로 만년 경위이다. 진급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갔고, 오른손의 부상으로 악력을 잃어 총을 쏘지 못한다. 경찰서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외톨이로 지내는 괴짜인데, 그럼에도 수사에 관한 통찰력은 아주 뛰어나다.

후자카와 코우키는 30대 중반의 총경으로 토사카 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한다. 아버지는 재계의 거물로서 경찰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는 탄탄한 배경과 실력으로 엘리트 코스를 걷고 있다. 10년 전에 초임으로 타쿠미에게 경찰 연수를 받았고, 오자키도 같이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셋은, 그들만 있을 때는 계급이 아닌 별명을 부르는 친밀한 사이이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각각 다른 광경이 들어오는 눈의 장애입니다. 물건이 이중으로 보이는 혼란시나 복시를 일으키죠. 외상성 사시가 공간이라면 오자키의 경우 시간이에요. 왼쪽 눈은 현재, 오른쪽 눈은 3년 전. 각각 다른 시간의 광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능력이라기보다 오토바이 사고가 일으킨 일종의 눈 장애에 가깝습니다."(p.118)

"일단 그런 능력을 지닌 건 눈뿐이라서 3년 전 광경이 보이기는 해도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자키의 눈은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왼쪽 눈이 보는 것과 똑같은 장소의 3년 전 광경이 오른쪽 눈에 보인다는 뜻입니다. 3년 전 시간대에서 보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그곳으로 오자키가 이동해야 합니다."(p.119)

오자키의 왼쪽 눈은 현재를, 오른쪽 눈은 같은 곳에서 3년 전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양쪽 눈으로 시간이 다른 두 개의 광경을 보면 뇌에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 과부하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타쿠미와 코우키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곧 검증이 이루어지고... 오자키가 당한 교통사고의 원인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능력은 비밀로 하고, 셋은 미제 사건 전담 형사부 특별팀을 꾸리게 된다.

"알겠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오른쪽 눈의 능력으로 알아낸 상황 증거만으로는 여우를 체포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체포한다 해도 자키 씨의 목격 증언을 법정으로 가져갈 수는 없으니 기소 이후에 공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여우를 힘들게 우리에 넣어도 결국 도망치겠죠."(p.340)

미제 사건 전담팀은 첫 번째로, 토사카시 사사즈카 일가 4인 살해 사건을 재수사한다. 일가족이 자택에서 무참히 살해된 미해결 사건으로, 3년 전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사건 현장에서 오자키는 오른쪽 눈으로 살인을 목격한다. 끔찍한 살육이 일어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관자로 무력감을 느끼는데, 범인을 꼭 잡아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보이는 것 안에 단서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 안에 답이 있다. 오자키의 오른쪽 눈으로 알아낸 상황 증거만으로는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 사건 후에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범인을 뒤쫓고, 지금은 철거된 아파트 자리에서 크레인에 매달려 공중수색을 벌이고, 지하철로 사라진 범인의 단서를 하나하나 추적해 나간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진행은 아주 논리적이다. 초능력 형사와 괴짜 형사와 부호 형사의 결합은 기발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주인공 각각의 서사는 분량을 할당해서 좋은데, 일가족 살인 사건이라는 잔혹함과는 별개로 범인의 서사가 약해서 아쉬움이 있다. 좀 더 매력적인 악의를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과 시대의 메시지를 포함하면 좋았을 것 같다.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한 장면으로 끝나는데, 캐릭터의 케미가 좋아서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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