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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영화관
시미즈 하루키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2월
평점 :
시미즈 하루키, 임희선 역, [천국 영화관], 하빌리스, 2026.
Shimizu Haruki, [TENGOKU EIGAKAN], 2024.
연휴에 신간(올해 출간한)을 읽어야겠다는 강박감과 무조건 가벼운 내용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선택한 책이다. 시미즈 하루키는 주로 만남과 이별, 죽음과 죽음 이후에 관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대부분의 일본 힐링 소설이 그렇듯이 특정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모음이다. 다른 점은 현실 세상이 아니라 죽은 뒤 천국을 배경으로 한다. 5개의 연작 단편이다.
빅 피쉬
바다가 들린다
내 어머니의 연대기
빌리 엘리어트
시네마 천국
흔히 죽음의 순간에는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지난날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펼쳐진다고도 하는데, 영화관에서 내 인생을 영화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네, 이 천국 영화관에서는 죽은 후 천국을 찾은 이들의 인생이 영화로 상영됩니다. 스크린에는 그들의 죽음까지의 일상과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비추어지죠. 그리고 그 인생 영화를 다 본 뒤에, 천국 너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p.17)
천국에도 영화관이 있다. 예스러운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극장 같은 모습, 정겹고 고풍스러운 광경으로 구석구석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천국 영화관은 천국에 온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상영한다. 자신의 필름이 언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필름이 도착하면 혼자서 관람할지 아니면 모두가 관람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면 당사자는 천국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 오노다 아키라는 21세에 천국에 왔다. 그는 생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여러 사람의 영화를 보면 도움이 될까 싶어 천국 영화관에서 일하기로 한다.
"혹시 수선화에 담긴 꽃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수선화의...... 꽃말이요?"
...
"수선화의 꽃말은 '다시 한번 나를 사랑해 주세요'입니다."(p.71-72)
도미타 기쿠, 81세 할머니의 필름이 도착한다.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해서 자주 여행을 다녔고, 노년에는 남편이 치매를 앓았다고 한다. 영화는 인생의 명장면을 중심으로 상영되는데, 마지막에 수선화 꽃다발을 받은 일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스즈키 씨의 인생은 블록버스터처럼 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까지 기억될만한 멋진 장면이 있는 좋은 인생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이...... 좋은 인생 영화라고요?"(p.119)
스즈키 히로시, 31세 남성은 아주 평범하게 살아서 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한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반복적인 일상, 한번은 회사를 쉬고 바닷가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부분은 극적이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산다.
"엄마는 충분히 행복했어. 미치카, 너는 항상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내야 돼. 엄마는 사랑하는 우리 딸이 웃는 얼굴을 제일 좋아하니까......"(p.172)
고이와이 미치카, 45세 중년 여성은 친정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셨다. 어릴 때부터 매 순간을 함께하며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간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이 천국에 온 것마저 불편해하고 있다.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삶이 아닐까?(p.204)
10세, 야마토 군의 영화가 상영된다. 아주 어린 나이, 3살 때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날이 갈수록 팔에 꽂은 링거의 수는 늘어갔고, 10살 무렵에는 산소호흡기 관이 코에 연결되어 있었다. 천국에 왔을 때는 자기 몸을 여기저기 훑어보더니 깡충깡충 뛰며 활짝 웃었다.
영화 속에는 행복한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에 남을 만한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장면조차 없었다.(p.254)
천국에 온 지 두 달, 오노다의 필름이 도착한다. 생전의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려서 나름 자신의 인생 영화에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절망적이고 어두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기 영화 같은 인생이 있다.'(p.176)
영화 같은 인생, 그리고 영화에는 반드시 명장면이 존재한다. 결국 삶이란 저마다의 속도로 흘러가는 한 편의 영화가 아닐까? 때로는 고단하고 너무 평범해서 지루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알게 모르게 소중한 순간이 담겨 있다. 막막한 현실에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거나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을 담담히 응원한다. 내 인생의 필름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