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나서영, [이게 바로 누와르], 심심, 2012. 

 

  신인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서 무한한 상상을 누리는 즐거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침침한 눈을 비비며 까칠한 안목으로 책을 대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인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을까? 동시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알로마노 달의 여행') 무작정 선택했다. 나서영이라는 작가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두 권을 동시에 출간하게 되었을까? 놀라운 사실은 이 젊은 작가는 이미 열세 편의 장편 원고를 쟁여놓고 있으며, 더구나 열흘이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고 하니... 무슨 이런 괴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인가? 아니면 노력의 결실인가? 어디 그 솜씨나 한번 구경해보자 라는 심정으로 첫 장을 펼쳤다.

 

  소설의 배경은 1996년, 인구 6만의 작은 도시 용주군이다. 이곳에는 여섯 명의 건달(?)이 '형제'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① 형제부동산을 운영하며 한우리회를 이끄는 이권하, ② 형제헬스장을 운영하는 장신의 근육 돼지 백후연, ③ 형제통닭을 운영하는 못생긴 이성구, ④ 형제오락실을 운영하는 칼잡이 윤구, ⑤ 실전격투 도장을 운영하는 싸움꾼 최동학, ⑥ 형제정육점과 형제식육식당을 운영하는 유동식, 김지원 부부. 이들의 팔뚝에는 '형제'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지만, 이들은 친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우정과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 젊은 시절 방황의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미래의 인생을 내다보며 마음을 다잡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 간다.

 

  한우리회는 번영회의 성격을 가진 친목단체이다. 회원이 되면 몇 가지 혜택이 있는데... 신용담보 없이 급전을 무이자로 융통할 수 있고, 같은 회원들이 매출을 올려주며, 서로 간의 경조사를 챙겨준다. 그래서 군민들은 자발적으로 가입한다. 형제헬스장은 반강요와 의무로 운동을 시키는데... 사람들은 체력과 건강이 좋아지고, 일상의 기분전환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즐거워한다. 형제통닭은 한우리 회원들에게 일정 주기로 통닭을 배달하고, 월말에 일시금으로 청구한다... '형제'는 이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소통'과 '상생'의 방법으로 용주군을 접수한 것이다.

 

  상처 없는 인생, 완벽한 인생이 어디 흔할까? '형제'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은 과거의 그림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 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 집을 나간 형에 대한 그리움... 등. 과거의 상처는 하나씩 '형제'를 찾아오고, '형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 돕는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서울에는 이렇게 큰 가게가 많아. 사람이 많으니까. 또 가게가 크니까 만물상이야. 없는 게 없어. 작은 가게에 없는 것도 많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있단 말이야. 큰 가게는 주둥이가 큰 황소개구리야.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 황소개구리가 득실대는 저수지는 곧 씨가 마르게 돼. 송사리고 개구리고 붕어고 잉어고 전부 먹힌단 말이야. 아가리가 너무 크니깐 다 처먹어버린단 말이지. 아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냥 흘려들어."(p.71)

 

  이러한 마을에 심상문, 심상만 형제가 들어온다. 심상문은 대형 쇼핑몰을 공약으로 군수가 되고, 심상만은 약속대로 '용진마트'를 개장한다. 이러한 변화에 용주군은 잠시 활력을 얻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정치권력'과 '거대자본'은 작은 도시의 모든 소비를 독식한다. 부지 제공자들을 몰아내고, 중소 유통업체를 착취하며, 지역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언론을 조작하여 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용역을 불러들여 시위대를 위협한다. 용진마트가 들어선지 1년 만에 사람들은 고통속에 신음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형제'의 진짜 누와르는 시작된다.

 

  [이게 바로 누와르]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대기업 대형마트의 폐해를 용주군이라는 작은 도시로 축소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소설은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자본이 시장을 잠식하고 수직적 매출성장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문체에 대한 사소한 아쉬움은 있으나, 작품의 구성이 좋아서 끝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인 작가에게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과 같은 드라마틱한 결론을 기대한 것은 무리였을까? 좀 더 극적인 마무리가 그리웠다. 대형마트 CEO가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제공하는 것이 상생이라고 지껄이며 골목 앞까지 진출하는, 그리고 이러한 자가 우리 시대의 멘토를 자청하며 청춘을 위한 책을 써내는 현실을 한탄하며... 이 땅에 진정한 '상도'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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