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에 가기로 했다
이인규.홍윤이 지음 / 버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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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홍윤이, [뉴올리언스에 가기로 했다], 버터북스, 2023.

올해는 순문학을 포함해서 일본소설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여행 에세이(와 미술 에세이)의 유혹을 참지 못했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이 '여행 및 지리 분야 특성화'라서 읽을 책은 충분하다. 북아메리카 대륙,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가 눈에 들어왔다. 외국으로... 나라가 아닌 특정 도시로 떠나는 여행, 그것도 반복해서 찾는 곳이라는 게 흥미롭다.

여행지에서 버스킹하는 뮤지션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스스로 무장해제되었고, 이왕이면 더 많은 음악을 느슨하게 듣는 여행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뉴올리언스에 가고 싶었다.(p.15)

여행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건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여비나 일정 같은 건 마음이 준비되면 따라오게 돼 있다.

...

우리는 2017년에 처음 뉴올리언스를 여행했다. 그리고 뉴올리언스를 잊지 못해 각자 한 번씩 더 방문했다. 이 책은 우리가 따로 또 같이 뉴올리언스를 여행하는 틈틈이 쓰였지만, 함께 여행한 첫 여행에 무게를 더 싣고자 했다. 출간 시점을 기준으로 달라진 상황은 추가 여행과 취재를 통해 보완했다. 이 책을 시작할 때 서점에는 (어린이책 한 권을 제외하면) 제목에 '뉴올리언스'가 들어가는 책이 없었다.(p.24-25)

이인규는 엔터테인먼트에서, 홍윤이는 디자인하고 관련한 일을 한다. 두 여자가 함께 또 따로 여행한 뉴올리언스는 입체적이면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죽기 전에 꼭 가야 하는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라 즉흥 연주가 흘러넘치는 곳에서 자유로운 여행을 말하고 있다. 여행의 준비는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코로나19 이후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은 꽃과 음악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광장이지만 과거엔 피로 가득한 공개 처형장이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스페인 식민지로,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다가 결국 미국 땅이 되기까지의 아픈 역사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위함일까. 이곳에는 프랑스, 스페인, 미국 국기가 모두 게양대에 걸려 있다.(p.36)

케이준과 함께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바로 크리올이다. 크리올은 유럽계와 아프리카계 혼혈을 뜻하는 단어이자, 그들이 먹는 음식을 뜻하기도 한다. 크리올 음식의 정의는 대개 이렇다. '미국 남부 지역의 음식으로 프랑스, 스페인, 서아프리카, 미국 원주민, 아이티, 독일, 이탈리아 음식이 섞인 것.' 이 정의에 슬쩍 다른 나라를 끼워 넣어도 아무도 틀린 걸 못 알아차릴 정도다!(p.138-140)

뉴올리언스(New Orleans)는 미시시피 강변에 위치한 재즈의 고향이고, 프랑스와 아프리카 문화가 융합된 용광로 같은 곳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스페인의 지배를 당한, 아프리카계 노예의 설움과 흑백 혼혈의 갈등,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 윌리엄 포크너의 첫 번째 소설 [병사의 보수]를 집필한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까지... 이것은 크레올과 케이준을, 재즈 음악을 비롯한 문화적으로 융성한 도시를 형성했다. 도시 전체가 음악이고, 문화이고, 맛집인 곳이 또 있을까? 글과 사진만으로도 몸을 들썩이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재즈' 페스티벌과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싶은 두 사람은 그렇게 재즈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다. 재즈 페스티벌 기간에 뉴올리언스에 가려면 우선 경비가 조금 더 든다. 페스티벌은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2주간 열리며 이때가 뉴올리언스 여행의 성수기다.(p.99-100)

뉴올리언스에서는 연간 약 130건 이상의 축제가 열린다. 1년이 약 52주인데 축제가 130건 이상이라니... 역산하면 이곳에선 매주 두 건 이상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p.142)

축제의 도시로 떠나는 여행은... 잭슨 스퀘어, 버본 스트리트, 프리저베이션 홀, 유러피언 재즈펍, 프렌치먼 스트리트, 뮤지컬 레전드 공원, 프렌치 쿼터, 뉴올리언스 재즈 앤드 헤리티지 페스티벌, 레코드숍에서의 재즈를 안내한다. 케이준과 크리올 음식, 굴 축제, 맛없는 검보, 흙 맛 나는 커피와 쿠바에는 없는 쿠바 샌드위치, 카페 뒤 몽드와 카페 베녜에서의 맛 경험은 경이롭다. 로열 스트리트, 현대 미술관, 포크너 하우스 북스, 루이 암스트롱 공원, 스트리트 카, 미시시피 강, 재즈 박물관과 남부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여행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행의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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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용을 보여 주는 거울 -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5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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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파주, 배형은 역,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 내인생의책, 2013.

Martin Page, [TRAITE SUR LES MIROIRS POUR FAIRE APPARAITRE LES DRAGONS], 2009.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어서 크게 고민한 때가 있었다. 5년 전 엄마의 죽음으로 심리 치료 상담을 해야 하고, 아침에는 기르던 개가 죽었다. 의사인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는지 잠옷 차림으로 진료를 하고, 무엇보다 첫사랑의 실연은 열네 살 소년의 마음을 괴롭힌다. 마르탱에게 몰아친 상실의 아픔이다. 지금은 첫사랑이 언제?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나이에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마르탱 파주의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을 읽었다.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에 대하여]는 다니엘 아리스가 [회화의 역사]에서 인용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학자 파올로 토스카넬리가 쓴 신비서의 제목이다...(p.4)

책을 읽을 때마다 제목에 집중한다. 작가는 조금 특이한 제목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 의미를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어느 신비서에서 인용했다는 것, 아름다우나 제대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 용과 거울은 등장하지 않고 은유적 표현이라는 것... 우울한 위트가 넘치는 짧은 소설이다.

마리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마리의 머리칼은 다른 여자애들의 머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 애의 몸짓은 조금 느리거나 조금 빠르다. 고양이 눈을 가진 마리에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어도 절대 그 속에 섞여 들지 않는다.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피처럼 주위로부터 도드라져 보인다. 마리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의 초록빛이 가시고 하늘의 푸른빛은 바래며 비도 촉촉함을 잃는다. 마리는 특별한 동시에 자연스럽기 그지없다.(p.15)

주인공 마르탱은 작가의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경험을 기록한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라고 한다. 전부 상상이고, 단지 그 시절의 감정이라고 한다. 아무튼, 마르탱의 삶에 고양이 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마리가 들어온다. 같은 반,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도서관에서 마리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한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지만, 당황과 충격... 서투른 사랑은 60분을 넘기지 못한다.

"있잖아, 우리는 아무래도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속의 원자 폭탄이 하나하나 차례로 터지며 나를 가루로 만들었다. 내가 말했다.

"아."

마리는 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다. 이것이 내 첫 번째 러브 스토리다. 이게 마지막이면 좋으련만.(p.19-20)

(나도 제일 듣기 싫었던 말...)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마리는 60분 만에 사랑 고백을 철회하고 떠나간다. 마르탱의 이별, 아픔, 위로와 성장에 관해서이다.

우리 개는 활기차고 충직했으며 행복한 삶을 누렸다. 오늘 아침 개가 죽은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개 때문만이 아니라 사라져 버린 마리의 사랑 때문에, 엄마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때문에, 썩어가는 이 집 때문에, 살짝 제정신이 아닌 아빠와 쉽지 않은 게 분명한 미래 때문에.(p.28)

"내가 나비라면 마리와 사귄 시간이 진짜 멋졌을 텐데."

나는 펄럭펄럭 날갯짓을 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역시나 내 개그는 실패였다.

내가 노렸던 포인트를 바카리가 이해하고 다른 애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나비의 수명은 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야. 그러니까 만약 마르탱이 나비였다면 마리와 사귄 시간은 정상 범위에 들어갈 거라는 얘기지."(p.49)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돌아다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주 궁금해하곤 했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지켜 준다. 엄마는 늘 곁에 있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 라든가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것들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하지만 엄마의 자리가 비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빈자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나와 함께할 것이다.

마리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일은 좀 다르다. 마리가 남긴 빈자리는 계속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사라짐, 사라지고 말 사라짐이니까. 몇 주, 몇 달 뒤면 내 사랑의 슬픔은 다 나을 것이다(설사 그때를 오늘은 떠올리기 어렵다고 해도).(p.74-75)

엄마를 잃었고, 개를 잃었고, 마리를 잃고... 언젠가는 아빠도, 친구들도 잃게 되겠지... 이별과 상실의 아픔, 그리움... 후회와 원망, 슬픔... 그리고 이런 게 모여서 나를 만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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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스 2 - 우리 자리로 돌아오다 옹동스 2
Snowcat(권윤주)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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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권윤주), [옹동스②], 위즈덤하우스, 2016.

  봄은 날씨가 좋아서, 여름은 더워서... 이런저런 핑계로 두 계절 동안 독서를 하지 못했다.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하고 다르게 몸은 그냥 늘어져 있었는데, 반가운 선물을 받았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나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책 선물이 제일 좋다. 커피 물을 끓이고, 조용한 음악을 틀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책을 펼친다. 고양이 사진, 고양이 엽서, 고양이 이야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옹동스'라는 제목은? 작가가 오랫동안 함께한 고양이 '나옹'과 새로 들어온 고양이 '은동'을 붙여 만든 합성어이다. 문득 1권이 궁금한데...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라는 인터넷 짤방으로 유명하다. 솔직히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고양이는 신비롭다!

  저는 괜찮아요.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그때 가서 되돌아보면

  지금 이 고단한 삶은

  찰나와도 같을 테니까요.(p.93-95)

  나옹이는 시크한 수고양이이고, 은동이는 호기심 많은 암고양이이다. 한집에 사는 고양이 관찰기,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 나이 든 나옹이의 투병기... '우리 자리로 돌아오다'라는 부제는 아픈 고양이를 키우며 일상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거스르는 경험을 했는데, 2016년 당시 12년을 함께한 나옹이는 담석을 앓고 있었다. 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나옹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은동이는? 아, 알고 싶지 않은 현재이다.

  책 읽기, 사진 찍기, 글쓰기는 늘 열망하는 것인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 하나씩 일상을 회복하기를,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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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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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룬, 진실희 역,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한스미디어, 2021.

Kun Lun, [獻給殺人魔的居家淸潔指南], 2018.

  처음으로 읽은 대만소설이다. 그래서 인명과 지명이 낯설었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매우 잔인한데, 그동안 일본 미스터리를 읽으며 단련한 정서인데도 소화하기에 버거웠다. 웹 소설? 인터넷 연재를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번역이 수려하다). 한마디로 '미소년 청소 살인마의 복수극'이라고 해야 하나... 잘생긴 주인공은 어린 시절을 암울하게 보냈다. 생사를 오가는 경험으로 결벽증과 복수심을 갖게 되었고, 연쇄 살인마를 찾아 제거하는 연쇄 살인마이다. 미드 <덱스터>가 떠오른다.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큰 실례입니다." 소년은 천보에게 그렇게 말하며 직접 제조한 얼룩 제거제를 배낭에서 꺼냈다. 가방 속에는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전부 청소도구였다.(p.19)

  스녠(十年)이라고 불리는 소년은 지나치게 깨끗하다. 보육원 출신으로 이름과 호적은 없고... 대학생처럼 보이지만, 그는 살인마를 감별하는 특별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정보제공자의 도움으로 살인마를 해치우는데, 죽어가는 상대에게 청소에 관해서 조언한다. 택배 배달원으로 위장한 시체청소부가 와서 시신을 가져가면, 남은 현장을 말끔히 청소한다.

  'WE ARE JACK'은 살인마 집단 '잭'의 슬로건이다. 이들은 유명한 살인마 잭 더 리퍼를 광적으로 숭배하는 살인마 조직으로, 세계 각지에 조직원이 분포되어 있다. 그들이 납치, 감금, 학살 등 범죄를 일삼는 이유는 오직 잭 더 리퍼를 본받아 신선한 피로 악명 높은 살인마의 전설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p.81)

  잭(Jack)은 세계적으로 조직원을 둔 살인마 집단이다. 다크 웹을 운영하는데, 그들이 벌이는 살인은 고스란히 녹화되어 인터넷에 올라온다. 살인마 잭 더 리퍼를 광적으로 숭배하여 가슴에 J자 흉터를 새기고 있다. 스녠은 이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사냥 같은 살인을 한다. 아무도 모르게...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은 매우 뚜렷한데, 단순히 죽이고 죽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의 사연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왜 살인마 집단을 증오하는지... 누구의 복수인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때로는 몽환적으로, 때로는 역동적으로 전개한다.

  배를 가르고 피의 의식을 치르는 살인마는 항상 사냥꾼의 역할만 하다가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당황해한다. 피의 굶주린 욕구를 채우던 기세는 사라지고, 청소에 관한 타박을 들으며 죽임을 맞이한다. 길거리 납치범, 영화관 영사 기사, 초등학교 선생님, 공장 기술자... 여기저기에 살인마는 본색을 감추고 있다.

  이 책은 웹 소설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간결한 문장, 명료한 전개, 화마다 호기심의 자극, 캐릭터의 매력, 사건의 충격, 현실의 반영, 블랙코미디의 요소... 등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로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폭력 일기]와 [판매상에게 잊힌 시체 보관 기록 노트]가 있다고 하는데,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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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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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오코너, 신선해 역,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다산책방, 2008.

Barbara O'connor, [HOW TO STEAL A DOG], 2007.

  악마 같은 아이가 나오는 [나의 아가, 나의 악마](RHK, 2021.)를 읽으며 감정의 소모가 커서 이왕이면 가볍고 따뜻한 책을 읽고 싶었다. 바바라 오코너의 소설 [개를 훔치는 방법]은 아동-청소년 문학이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극한에 몰린 어린 소녀의 성장기이며, 가족 소설이다. 국내에서 제작, 입소문 난 동명의 영화를 보아서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영화하고 다르게 주인공의 절친인 루앤의 역할은 빈약하고, 개를 훔치는 과정도 영화의 각색이 더 좋다. 아, 그동안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너무 물든 것일까?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내 평점은 달랐겠지...;;

  내가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 날은, 내 가장 친한 친구 루앤 고드프리가 내가 자동차에서 산다는 걸 알아챈 바로 그 날이었다.(p.7)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아빠는 가족을 버리고 사라졌다. 집세를 내지 못해 엄마와 남동생 토비 그리고 조지나 헤이즈는 고물 자동차에서 살게 된다. 불편함보다 친구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자존심이 상한다. 엄마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당장의 해결책은 없다. 이틀마다 주차 장소를 바꾸는데, 우연히 개를 찾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사례금 500달러... 어른의 세계하고는 다르게 금전 개념이 불명확한 소녀에게는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 정도 돈이면 집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조지나는 개를 훔치기로 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1단계, 개를 찾는다... 시끄럽게 짖지 않아야 하고, 물지 않아야 하고, 혼자 밖에 있어야 하고,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개 주인은 개를 위해 돈을 펑펑 쓸 수 있어야 한다. 2단계, 개를 발견하면, 얼마 동안 감시한다... 정말 짖거나 물지 않는지, 대문이 잠겨 있는지, 가죽끈이나 밧줄을 사용할지, 옆에 시끄러운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한다. 3단계, 준비하기... 정말로 훔치기에 적당한지, 개 줄이 필요한지, 어디에 숨길지 결정한다. 4단계, 목록 점검하기... 딱 알맞은 개를 찾았다고 확신하는가? 마당 대문을 열 수 있는가? 밧줄이나 끈을 가지고 있는가? 개를 숨길만한 장소를 마련했는가? ... 모든 항목에 '그렇다'를 표시할 수 있으면 드디어 개를 훔칠 준비가 된 것이다.

  순수한 초등학교 저학년 소녀가 개를 훔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멍청한(?) 토비를 데리고 엄마 눈을 피해서 일을 저질러야 한다.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거다. 너한테도 신조가 있냐?"(p.200)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p.203)

  쿵쾅대는 가슴으로 개를 훔치고... 덤불 속 낡은 옛집에서 만난 무키 아저씨는 현자와 같은 조언을 한다.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하다는...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는... 조지나는 뒤틀리기 시작한 삶을 바로잡기로 한다. 집 없는 설움을 극복하기 위한 어린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깨닫게 한다. 어린 시절 개를 잃어버린 상실감 그리고 늘 진실하고 정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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