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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5월
평점 :
마루야마 마사키, 이연승 역, [원더풀 라이프], 블루홀6, 2024.
Maruyama Masaki, [WONDERFUL LIFE], 2021.
독서미터 OF THE YEAR 2021 1위
역시 복잡한 책을 읽어야 하나? 평범한 내용을 두세 번 비틀어서 얘기하니 흥미롭다. 소설은 이렇게 긴장과 호기심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소설 [원더풀 라이프]는 중증 장애인을 소재로 한 가정을 이야기하는데,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과 장애인의 인격에 관한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한다. 구성이 특이해서, 네 개의 사연을 들려주다가 이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에 진실이 드러난다. 왜 제목을 [원더풀 라이프]라고 했을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무력의 왕
한낮의 달
불초의 자식
가면의 사랑
"그때는 나도 죽어."
아내는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다'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죽음은 곧 그녀의 죽음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아내는 살 수 없다. '당신 없으면 못 살아요' 같은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엄연한 사실로서 그녀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p.8)
'무력의 왕'은, 남편은 사고로 경수 손상 환자인 아내를 돌보고 있다. 가슴과 어깨 아래는 감각이 없는 전신마비 상태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증 방문요양 지원을 받고 있지만, 까탈스러운 아내는 요양 보호사를 불편해하면서 남편을 수족처럼 부린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8년 동안 병시중을 해온 남편은 스스로 택한 길이지만,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낀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어?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적이 있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게 전부야."
"그 정도면......"
그 뒤로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친다.(p.57)
'한낮의 달'은, 건축 설계사인 가즈시는 세쓰와 함께 살 집을 직접 설계해서 지으려고 한다. 집에 관해서 상의하던 부부는 아이를 위한 공간을 두고, 출산을 계획한다. 1년을 기한으로 하되 불임 치료는 하지 않는 것으로 했는데, 뜻대로 임신은 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가즈시는 세쓰가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질투의 감정이 솟구친다.
없어.
요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그렇다. 이럴 때 불륜 상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움이 돼 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무가치함을 직시한 느낌이었다.(p.80)
'불초의 자식'은, 이와타는 직장에서 유부남 상사인 요지와 불륜 사이이다. 요지의 아버지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둘의 만남은 잠시 소원해진다. 미래가 없는 관계이지만, 이와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무가치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에 고객사 직원인 구니에다가 호감을 보이며 다가온다.
"그 여자애한테 장애인인 걸 말하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저더러 도시하루 씨인 척을 하라고요? 근데 만나면 금세 다른 사람인 걸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도시하루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너,와,내,가,함,께,찍,은,사,진,을,보,냈,어(p.113)
'가면의 사랑'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도시하루는 테루테루라는 닉네임으로 PC 통신을 한다. 장애인 포럼과 영화 포럼에서 활동하는 GANGO라는 여자를 알게 되는데, 비슷한 취향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친해진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다가 사진을 교환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다. 도시하루는 요양 보호사인 유타에게 테루테루인 척해달라고 부탁한다.
"방금 이와타 씨가 말씀하신 사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데요. 어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남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건도...... 그러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그래서 다들 동정도 하겠지만 아이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죠. 아니, 대부분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은 이것저것 추측하거나 가타부타 이야기하지만, 살해된 아이가 어떻게 느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p.314)
전 아직 말이 서툴던 그가 어머니를 향해 힘겹게 연신 되풀이했다는 그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날 죽이지 마세요.'(p.340)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고, 일상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한다. 욕창과 근육 퇴행을 막기 위해 매일 (두)세 시간 간격으로 환자의 자세를 바꾸고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용변까지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결혼하기 전 아내의 임신 사실은 응어리로 남게 되고, 장애가 있을지 모르는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비정상적인 관계를 쉽게 끝내지 못하고, 결국 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존재한다. 해마다 일어나는 장애인 가족의 비관적 살해 사건은 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고, 중증 장애인의 인격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오지랖 넓은 인생의 대환장 쇼를 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