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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숨은 골목 - 어쩌면 만날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이동미 글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동미, [서울의 숨은 골목], 중앙북스, 2012.
사진을 좋아해서 외출할 때에는 카메라를 꼭 챙깁니다. 인터넷 사진 사이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여다보고요. 가끔은 도서관에서 사진과 연관된 책을 빌려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사진전에 가서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항상 초보의 열심과 아마추어의 열정으로 사진을 즐깁니다. [서울의 숨은 골목]은 '골목'보다는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정성 들여 보정합니다. 원하는 색을 찾아 인화하고, 마음에 들면 블로그에 올립니다. 카메라 동호회나 유명 사이트에는 '그날의 사진'이라고 해서 게시된 사진의 방문, 추천, 댓글을 점수로 환산하여 일면을 장식합니다. 흔히 일면 사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일면 사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외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낯설고 조금은 신비스러운 공간을 사각의 프레임에 담아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올리면, 사람들은 처음 보는 풍경에 감탄하고 감동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의 사진 사이트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나라 경복궁을 촬영하여 자기 나라의 사이트에 올리면, 그것을 본 외국인들은 원더풀, 판타스틱, 나이스 샷... 을 외치며 환호합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주 익숙해서 소중한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국적인 것에는 호기심과 찬사를 보내면서, 집 앞 골목은 무덤덤할 뿐입니다. 천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500년 이상 된 도시, 서울의 숨은 골목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리에 양은 냄비를 쓰고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른 골목대장의 지시에 아이들이 달려가고 달려오는 골목, 어둠이 내려 땅바닥이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땅따먹기를 하던 골목, 하루 종일 해를 받아 미지근해진 빨간 고무 함지에서 이웃집 아이는 목욕을 했고, 칭얼대는 아기를 업고 나온 할머니는 나지막이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까칠 밤송이가 떨어지고, 빨간 홍시가 간당거리고 나면 '옥황상제의 비듬'이라 우기던 어느 아이의 말처럼 흰 눈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골목은 집보다 큰 세상이고, 우주만큼 끝없이 재미가 솟아나는, 동경과 아쉬움, 슬픔과 '꺼리'가 넘쳐 나는 멋진 세상이었습니다.(Prologue)

성북동 골목길 어귀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한옥, 이곳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문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거처, 심우장이다.(p.28-29)

제기동, 그 골목 모퉁이의 한 집은 화분에 다양한 화초들을 기르고 있었다. 화초들이 엉킨 모습은 마치 울창한 숲의 정원 같다. 재개발로 인해 이사 가게 될 이 집 주인은 저 화분들이 못내 그리워질 것이다.(p.44-45)

종로 순라길, 종로통 네거리에 있는 종루에서 종이 울린다. 스물여덟 번의 종이 울리니 이는 인정(밤 10시경)으로 사대문이 닫힌다는 뜻이다.(p.62-63)

순라길을 걸으면 오래된 가정집들이 어깨를 걸고 있다. 겉보기엔 그저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좀 다르다. 보석 세공하는 집이다.(p.66-67)

초동 맛골목, 충무로는 대한민국 인쇄골목의 메카이며, '영화의 거리'이기도 하다. 충무로 영화인이라면 한 번 이상은 들렸을 40년 전통의 설렁탕집(p.76-79)

사직단,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해서 경복궁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했다. 백성의 농사가 잘되도록 제를 지냈으니 사직제는 해마다 네 차례씩 거행되었다.(p.86-87)

역동적인 대학로 거리, 대학로에서는 연극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p.104-105)

비 오면 특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빈대떡과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피맛골. 그래, 피맛골이다.(p.116-117)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낭만(p.128-129)

서래마을에 진입하면 야트막한 언덕 양편으로 고급빌라가 펼쳐지고 언덕길을 따라 와인 숍이며 빵집, 식료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그저 차를 타고 지나갔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이 길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땅바닥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p.146-147)

홍대 프리마켓,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면 홍대 앞 놀이터에서 프리마켓이 열린다.(p152-153)


홍대 골목의 벽화들, 해마다 가을이면 '거미전'이 열린다. '거리미술전'의 줄임말로, 벽화는 물론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품이 홍대 주변을 가득 메운다.(p.156-159)
봄... 금호동, 성북동, 제기동 약령시장길, 면목동, 종로 순라길, 충무로, 사직단 뒷길, 대학로,
여름... 피맛골, 신당동, 서래마을, 홍대 뒷골목, 이문동, 옥수동, 성내천, 한남동,
가을... 회현동, 정동길, 항동 철길, 동대문, 숭인동, 가회동, 후암동,
겨울... 중림동, 부암동, 아현동, 이화동, 공덕동, 답십리, 서대문.
내가 태어난 면목동이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동네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방배동에서 자라며 서래마을 자락에 땅 한 평 사놓지 않으신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으며, 동대문 짝퉁 신발과 충무로 대한극장의 기억, 대학 시절 그녀와 일주일에 한 번씩 들렸던 옥수동, 입대하기 전에 친구들과 갔던 신당동 떡볶이 골목, 연극에 미친 친구 때문에 한동안 대학로를 기웃거렸고, 카메라 때문에 헤매던 회현동, 공덕동 족발 골목에서의 회식, 그리고...
[서울의 숨은 골목]은 익숙함 보다는 소중함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작가의 부지런함과 세심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색깔별로 담아내었고, 사물의 특징과 사람의 표정을 잘 잡아내어 살아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남다른 글솜씨는 골목의 운치와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역사적 배경과 지역에 대한 설명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곳을 찾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쉬움... 재개발 때문에 서울의 골목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