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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할런 코벤, 하현길 역, [용서할 수 없는], 비채, 2012.
Harlan Coben, [CAUGHT], 2010.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용서'에 관한 메시지가 가장 강력한 것은 '성경'이다. 성경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하지만, 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대신 죗값을 치르게 하고 인류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용서의 가치와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4)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21-22)
이러한 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영미권 스릴러는 아직 초보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올해 읽은 두 권의 책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구조를 이루며, 똑같이 '용서'를 말하고 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즐기는 이유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독특한 캐릭터, 사건과 추리, 배신과 음모, 공포와 스릴... 그리고 반전과 복수 때문이다. 주인공이 억울함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단서의 조각을 찾아내고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진실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통쾌한 반격과 철저한 복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용서'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복수가 빠져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두 권의 책은 리사 스코토라인의 [세이브 미](샘터, 2012.)와 할런 코벤의 [용서할 수 없는]이다.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라는 차이를 제외하고 이 두 권은 영미권 스릴러, 모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의 파워, 매스컴과 대중의 영향력, SNS의 위력, 법정공방과 사법체계의 문제점, 배신과 음모, 반전과 대활약, 숨겨진 진실... 그리고 용서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 빨간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p.6)
"그 녀석들 말이 옳았어요. 난 끝장난 거라고요. 이제 내게 뭐가 남았죠? 예전에 아무리 좋은 걸 소유하고 있었던 간에 다 사라져버렸는데. 복수가 해준다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라고요. 영혼을 갉아먹어버려요. 난 그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여요."(p.455)
마치 지구가 헤일리를 꿀꺽 삼켜버린 것만 같았다.
한 달이 흘렀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자취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소식이 들어왔다. 마샤의 가슴속에서 커져만 가던 바윗돌이, 그녀의 숨길을 가로막고 꼬박 밤을 새게 만들었던 그 바윗돌이 결국 성장을 멈췄다.(p.19)
댄 머서는 대도시 빈민가 청소년센터 농구팀 감독이다. 고아로 위탁가정에서 자라나 아이비리그의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성공 가도를 달리지는 못했다. 가족에 대한 애착으로 이혼한 부인과는 지나칠 정도로 모범적이고 낙천적이다. 선행과 베푸는 삶으로 누구나 호감이 가는 매력적인 인상이다. 그러나 그 빨간색 문을 열던 날, NTC뉴스의 현장체포 리얼 프로그램에 '소아성애자'로 방송 노출된다. 집에서는 이와 관련된 증거물이 발견되고, 하루아침에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다. 그리고 그는 살해당한다.
헤일리 맥웨이드는 고교 졸업반으로 여자 라크로스 선수이다. 다른 동생들과는 달리 자기 생활에 철저하며, 강박성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정리하는 생활을 한다. 그날도 침대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방에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깔끔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졌다.
처음 2-3주 동안은 헤일리 맥웨이드의 실종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10대 소녀는 납치된 것일까? 가출한 것일까? 소위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헤일리에게 일어났음직한 상황들을 재연하는 광경이 뉴스 속보와 온갖 언론매체에 연신 등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아무리 선정적인 가설이라도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언론이 이 사건에 얼마나 목을 매고 달려들었는지는 신만이 아실 터였다. 매춘부로 팔려갔을 거라는 풍문부터 악마숭배의 희생자가 됐을 거라는 풍문까지 온갖 것을 다 다뤘다. 어쨌든 이 업계에서는 '무소식'이야말로 '나쁜 소식'이었다. 시청자들은 언론이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그런 소식을 전하며 함께 마음 아파하는 시늉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어떤 게 방송돼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사람은 시청자들이었다.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건 계속 방송된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관심을 끊는 순간 방송사들은 대중의 변덕스런 눈길을 사로잡을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p.51)
"프린스턴 대학의 동기생이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던 네 사람이 1년 사이에 모두 스캔들에 휘말렸어요."(p.281)
"댄은 죽었어요. 필 턴볼은 횡령혐의를 뒤집어쓰고 직장에서 해고됐죠. 캘빈 틸퍼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어요. 팔리 파크스도 최근에 곤경을 겪었고요."(p.403)
웬디 타인스는 시사 프로그램의 현장 리포터로, 익명의 제보를 받고 댄 머서가 소아성애자임을 밀착 취재한다. 그녀의 보도를 통해 파렴치한 성범죄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지만, 댄은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살해된다. 매스컴의 영향력과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웬디는 자신의 리포트에 의문을 품고 댄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리고 댄의 대학 시절에 함께 기숙사를 쓰던 네 명의 친구들은 지난 1년 사이에 모두 스캔들에 휩쓸려 곤경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두 가지 의문으로 진행된다. ① 살해된 댄 머서와 실종된 헤일리 맥웨이드 사이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② 과거 기숙사 친구들은 모두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제대로 봤네요. 바로 그게 우리 사법 시스템의 아름다운 점이에요. 사법 시스템은 비틀릴 수도 있고, 뒤틀릴 수도 있어요. 나도 항상 그러고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거예요. 하지만 사법 시스템 내에서 그렇게 한다면 옳든 그르든 어떻게든 작동이 되죠. 하지만 사법 시스템을 벗어난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 균형을 깨뜨렸다고 하더라도 혼란과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어요."(p.312-313)
"요즘 아이들을 보면 우리 때와 똑같이 허황된 꿈을 쫓는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학점을 받아라. 대학입학 자격시험(SAT)에 대비해라. 할 수 있다면 스포츠를 하나쯤 해라. 대학들은 그러는 걸 좋아한단다. 충분한 과외활동을 해라. 가장 평판이 좋은 대학의 입학허가를 얻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라. 이건 마치 네 생애의 앞부부 17년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한 오디션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거와 다를 바 없죠."(p.351)
"난 그들을 용서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그들을 증오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을 증오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을 붙잡고 있어야 해요. 그러는 동안 정작 중요한 건 놓칠 거고요. 그렇지 않겠어요?"(p.412)
[용서할 수 없는]은 할런 코벤의 명성이 절대로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영미권 스릴러가 선 굵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면, 이 책은 두 가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어 마치 미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사건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매스컴과 대중의 영향력, SNS의 두 얼굴, 사법 시스템의 모순, 청소년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용서'라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희석하지 않고, 더욱 명확하게 부각하고 있다.
웬디 타인스는 아주 혹독한 피해자이고, 매우 가혹한 가해자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당신을 용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