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말하다 1
아라키 노부요시 지음, 백창흠 옮김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아라키 노부요시, 백창흠 역,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PHOTONET, 2012. 

Araki Nobuyoshi, [TENSAI ARAKI SHASHIN NO HOUHOU by Nobuyoshi Araki], 2001.

 

  어린 시절의 꿈은 미술을 하고 싶었다. 전공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판화의 까끌까끌한 질감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한 번의 작업으로 여러 장을 찍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물론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사진의 취미'이다. 더구나 환경이 디지털로 변화하여 약간의 조작만으로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어서 흠뻑 빠져들었다. 아마추어의 열정은 카메라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났고, 빛 좋은 날씨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진 감상이라는 고상한 습관을 갖게 했다. 그리고 기기적인 조작과 예술적인 표현을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카메라의 작동 원리와 촬영의 기본(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 위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아마도 열의 아홉은 바바라 런던, 짐 스톤, 존 업튼이 공저한 [사진학 강의(제9판)](포토스페이스, 2008.)을 이야기할 것이다. 사진의 메커니즘과 표현에서의 응용기법, 사진의 평가와 시각적인 인식의 방법, 현대 사진의 감상... 등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이 집약된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사진의 구성과 표현에서 가장 도움을 받은 책은 한겨레 신문사 곽윤섭 기자의 [이제는 테마다](동녘, 2010.)이다. 수많은 생활 사진가를 만나며 사진에 대한 비평과 조언을 해온 기자는 선, 면, 대비, 패턴, 프레임, 부분과 전체, 공감각, 오감, 상징, 색, 일상, 추상... 등을 통해 사진의 테마를 말하고 있다.

 

 

 

 

 

  한 가지 테마를 주제로 하는 사진은... 1982년부터 '제주도'를 테마로 하여 셔터를 누르고, 1985년 섬으로 내려가 2002년에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故김영갑 사진가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 2003. http://www.dumoak.co.kr/), '가족의 일상'을 테마로 사진을 모은 모리 유지의 [다카페 일기①, ②](북스코프, 2009. http://www.dacafe.cc/), 그리고 '점프'를 테마로 하는 인터넷 공중 부양 소녀(http://yowayowacamera.com/)... 이러한 흥미로운 촬영은 나의 사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고, '테마'와 '패턴'이라는 의미를 깊이 각인시켰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눈부신 형광 분홍색의 표지로 시선을 끄는,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이라는 야릇(?)한 제목을 가진 또 하나의 사진 책... 아라키 노부요시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성과 감정의 사이에서... 일본의 에로티시즘을 찍는 사진가이다. 그가 말하는 사진의 세계는 어떠한 곳일까?

 

  맨몸으로, 몸으로 찍어야 합니다.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거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염탐꾼이 되든가,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든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어중간한 모습은 좋지 않습니다. 낚시하러 가는 차림의 조끼, 특히 주머니가 여러 개 여기저기 달려 있는 조끼를 입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 차림으론 사진을 못 찍습니다!(웃음) 긴자 거리에서 찍을 때와 신주쿠 거리에서 찍을 때는 복장을 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15-16)

 

  나쁜 사진이 나온다는 건 결국 찍는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부족한 거지요. 그만큼 사진에는 자기 자신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정말 사진을 하다 보면 자기가 탄로 나니까 두렵기도 합니다.(p.19)

 

  사진을 하는 사람은 촬영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수전증을 막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안정된 자세는 셔터 스피드를 확보할 수 있고, 그만큼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천재 사진가의 조언은 어깨의 자유로움만이 아니라, 몸의 자유로움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사진을 위해 사진가가 배경에 흡수될 것인지, 아니면 튀어나올 것인지... 그리고 사진의 결과는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사진가 때문인 것을 알려준다.

 

  사진은 일종의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라는 것이 상대로부터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사진은 인터뷰와 똑같습니다. 표현이 아닌 표출. 그러니까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p.37)

 

  (방적공장에서) 처음엔 어째서 자신을 찍는 걸까 의아해하던 공장 노동자가, 자기 사진이 걸린 사진전을 보고는 "마에스트로!"하고 외쳤어요. '어쩌면 내가 이렇게 멋있었나?' 하며 사진을 보고 자신에게 취해버린 거지요. 나는 인간의 존엄을 찍는 거예요.(p.131)

 

  그래서 역시 사진가는 마지막에는 포트레이트로 가는 거예요. 애써 여자의 알몸을 찍었지만, 마지막에는 얼굴만 찍는 거죠. 밀착인화를 보면 그래요. 밀착을 보면 거기가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해서 찰칵 하고 넓적다리를 벌리게 하고 한가운데를 말이죠. 하지만 그 뒤에 보면 마지막엔 얼굴이에요. 젖가슴도 등장하고 음모도 있어요. 그렇지만 마지막은 얼굴인 거에요.(p.129)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은 '포트레이트'(인물)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찍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며 어느 순간부터 모델 촬영을 가거나, 꽃을 찍거나, 사물을 찍는 것으로 바뀌어 간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꽃은 불평하지 않는다." 때문이다. 인물 촬영은 가장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성향은 천차만별이라서...;; 예전에는 무조건 카메라의 성능을 과시하며 쨍한 사진을 찍었는데, 제대로 드러난 얼굴의 잡티 때문에 거북해하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괴짜 사진론은 더 나아가 인터뷰를 하듯이 장점을 끌어내는 촬영을 조언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찍으라고 조언하고, 모델을 제대로 알고 얼굴 촬영하기를 조언한다.

 

  예를 들면, 라이카는 소리도 렌즈도 대상에 스며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대상이 침투해오는 것 같은 카메라입니다. 이른바 명기(名機)지요.(p.43)

 

  인생이라든가 행복을 찍기에는 역시 라이카가 적합해요. 상냥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사람에 대한 건, 결국 자애라는 말로 통할 텐데 라이카가 그 '애지중지'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렌즈고 셔터 소리이고 스타일이죠. 전에도 얘기했지만 라이카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스며들어가요.(p.53)

 

  그리고 모든 사진가의 로망인 라이카 예찬...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은 어느 천재의 허세나 괴팍함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솔함과 담백함으로 대화하는 글이다. 사진의 '테마'와 '패턴'보다는 아라키의 '섬세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사진가의 '열정'보다는 카메라와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물아일체'의 모습이 보였다. 일본 에로티시즘의 대표자이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야하지 않게 들렸고... 유럽에서 일만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전시하고, 썩은 필름을 인화하여 자연이 만들어준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것을 통해 부유함과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한 가지는 그래도 사진과 관련된 책인데, 중질지 이상으로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미색지에 수록된 사진은 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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