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로렌조 카르카테라, 최필원 역, [아파치], 펄스, 2015.

Lorenzo Carcaterra, [APACHES], 1997.

  십 대 시절에 TV를 통해 방영하는 미국 드라마에서 시작이나 끝 부분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이나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 제작이라는 자막을 보면서,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매주 시선을 잡아끄는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영미 스릴러를 조금씩 읽으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작가가 있고, 그들의 천재성과 열정 그리고 인고의 노력으로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사라지고 읽히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로렌조 카르카테라는 소설과 논픽션, 텔레비전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작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소설 [아파치]는 마치 잘 짜인 미국 드라마 한 시즌을 보는 기분이다.

  부머

  데드아이

  콜롬보 부인

  제로니모

  핀스

  짐 목사

  그리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주인 눈치오 골드먼

  1980년대와 그 이전을 배경으로 프롤로그와 1, 2, 3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은 뉴욕에서 12세 소녀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무한히 자극한다. 솔직히 프롤로그에서는 앞으로 어린 소녀가 겪게 될 잔혹함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스릴러는 끔찍한 시신의 발견으로 시작하지만, 여기에서는 성적인 것을 포함해 아동학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제니퍼는 알고 있었다. 운 좋게 살아서 이곳을 탈출한다 해도 영영 말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언제까지나 그의 포로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이곳에 억류된 채 밤낮을 보내면서 아이는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오래토록 아이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불쑥 튀어나와 지금의 공포와 고통을 다시 떠안겨줄 것이다.

  이죽거리는 남자의 얼굴은 이미 아이 인생의 뗄 수 없는 일부가 돼버렸다. 더 이상 어리고 순진하지 않을 때,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아이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기억에서 그를 지워버릴 것이다.

  제니퍼 산토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맹세했다. 말콤이 먼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p.161)

  1부에서는 6인의 형사 캐릭터를 소개한다. '부머'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좀처럼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어 얻게 된 별명이다. 이탈리아계로 뉴욕 이스트 할렘의 빈민가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은 모든 것을 바꾸었고 복수를 위해 경찰이 된다. 공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악당과 싸우고 범죄를 소탕하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 그래서인지 죽음을 불사하고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의 파트너 '데드아이'는 아프리카계로 브루클린 출신이다. 뉴욕 경찰국 사격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경력으로 얻은 별명인데, 베테랑 총기 전문가이다. '콜롬보 부인'은 노스 브롬크스 강력계 소속으로 무엇보다 살인사건의 해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 형사이다. '제로니모'는 체로키 인디언의 혼혈로 브루클린 폭탄 처리반의 엘리트 요원이다. '핀스'는 보육원에서 위탁가정을 거치며 자랐는데, 기계를 잘 다루는 손재주로 뉴욕 경찰국 최고의 도청 전문가가 되었다. '짐 목사'는 사우스 자메이카에서 마약 중독자이자 알코올 중독자였다. 마약 딜러에게 어머니가 살해된 후에 개과천선하여 경찰이 되었는데, 위장잠입을 전문으로 한다.

  이들은 한때 뉴욕 일대를 주름잡는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수사관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개성 강한 이미지로 나름대로 사연 깊은 인생들인데, 공통점은 임무 수행 중의 치명적인 부상에서 겨우 살아나 이제는 은퇴연금과 장애수당을 받으며 소일거리로 살고 있다. 범죄와 마주하는 긴장이 없는 삶은 무기력하고 옛일을 회상하며 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이다.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매력과 저마다의 사연은 이것을 하나하나 풀어내면 각각의 장편으로 되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부머 프론티에리는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일 외에는 인생의 낙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술집에서 모든 범죄자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을 때 찾아드는 짜릿한 기분은 그 무엇보다도 중독성이 있었다. 범죄자들에게 혹사당해 온 거친 동네의 노동자들이 미소를 흘리며 목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부머 프론티에리는 한 순간도 거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도시의 평화를 위해 항상 범죄와 전쟁을 벌여나갔다.(p.25)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아버지." 데드아이가 말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왜 못 보세요?"

  "세상은 달라졌는지 몰라도 사람은 변하지 않아, 데이비스." 에디가 시가를 입에 물고 일어났다. "그걸 명심해라. 그 바닥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절대 잊어선 안 돼."(p.45)

  강력계 형사들은 스스로를 경찰국의 최고 엘리트라 여겼다. 그들은 늘 그런 자신감과 오만에 차 있었다. 형사들 대부분은 셔츠나 스웨터 안에 자신들의 모토가 적힌 티셔츠를 받쳐 있었다. 분필로 그린 시체의 윤곽 위에는 이런 모토가 적혀 있었다. 당신의 하루가 끝나면 우리의 하루가 시작된다. 강력계.

  강력계 최고의 형사는 누가 뭐래도 실베스트리였다. 사람들은 특출한 재능을 소유한 그녀를 "콜롬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유명한 TV 형사의 여성 버전.(p.53)

  "폭탄에 목숨을 잃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제로니모가 말했다.

  "그럼 뭐가 두려운가?" 노인이 물었다.

  "폭탄이 저를 죽이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제로니모가 말했다. "그게 제 유일한 두려움입니다."

  "전사라면 싸우다 죽어야지." 노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연민을 사는 건 전사의 길이 아니야."

  "폭탄 처리반에 몸담았던 선배들을 가끔 봅니다." 제로니모가 말했다. "대부분 넋이 나간 모습이더군요. 다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팔을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눈들은 하나같이 몽롱해보였죠. 다들 꿋꿋이 살아가는 척 하지만 저는 그들이 자신들을 완전히 끝장내주지 못한 폭탄을 저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 기도를 해, 델가도." 노인이 말했다. "죽음을 부르는 기도."(p.79-80)

  라이언은 얼굴과 이름들이 뒤섞인 고요한 공간들에 갇힌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그는 현실의 차가운 눈빛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것과 자신을 영원히 배신하지 않을 것들만 신뢰했다. 지미 라이언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전자 감시의 냉정하고, 메마른 세상뿐이었다. 그리고 담배 연기 자욱한 볼링장의 번들거리는 갈색 레인은 그의 안식처였다.

  집, 그리고 경찰서와 더불어 그가 당당히 자신의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p.91)

  스카포니의 과거를 알고 있는 거리의 아이들은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택시>에 나오는 극도로 예민한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그를 짐 목사라고 불렀다. 그 별명은 소리 없이 바비의 관할구로 스며들었고, 결국에는 모두의 입에 붙어 버리고 말았다. 스카포니는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모두가 똑똑히 기억할 거리 이름이 생겼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p.109)

  부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이들의 인생을 단숨에 바꾸어 놓는다. 2부에서는 부머와 데드아이가 다시 파트너가 되어 사라진 소녀의 뒤를 추적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점점 잊어가던 희열을 되찾게 된다. 소녀를 구하는 것은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자신을 구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죽음의 경계로 뛰어든다. 그런데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눈치오스를 아지트로 비슷한 경험을 했던 6인의 은퇴 형사는 각자의 장애를 극복하며 비밀 수사 조직 '아파치'를 결성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거대 카르텔과의 전쟁을 시작하는데...

  "아파치." 제로니모가 엄숙한 톤으로 말했다. "아파치라고 부르는 건 어때?"

  ...

  "우리 모두에겐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봐야해." 제로니모가 맴버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면서 말했다. "아파치 전통 중에 이런 게 있어. 전투에서 전사가 부상을 당하면 부족은 그를 버리고 떠나버리지. 남겨진 전사는 홀로 버티다 쓸쓸히 죽는 거야. 따라가면 부족에게 큰 부담이 될 테니까. 그게 우리야, 데드아이. 그게 바로 우리 운명이라고."(p.197)

  이것을 서술형 스릴러라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문장은 빠르게 전개되는 줄거리와 맞물려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만큼 작가는 시각화하여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미국식 유머와 액션 활극인데, 살짝 B급 정서가 담겨 있어서 흥미를 더하고 있다. 문학적인 글맛보다는 대중적인 이야기의 맛을 즐기는 작품으로 충분한 재미를 보장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가볍게 읽기에는 제격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폰트와 빽빽한 문단 편집의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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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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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 최민우 역, [오베라는 남자], 다산책방, 2015.

Fredrik Backman, [EN MAN SOM HETER OVE](A MAN CALLED OVE), 2012.

  작년과 재작년에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 2013.)이 큰 인기였는데, 올해에는 같은 스웨덴 출신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가 시선을 끌고 있다. 약간의 통찰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책의 제목과 표지의 디자인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겠지만, 웃음과 감동이라는 코드로 유쾌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스웨덴식 유머는 이번이 처음인데, 최고의 역설이라고 해야 하나? 북유럽 눈의 나라를 배경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건강 이상으로 은퇴를 권유받아 노년을 맞이하는 까칠한 남자의 괴팍한 일상은 결국에는 따뜻함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블로그 연재를 시작으로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놓았는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여기에는 39개의 짤막한 에피소드와 1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오베는 아내의 친구들이 자신과 결혼한 그녀를 이해 못 한다는 걸 잘 알았다. 사실 그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들이 옳으리라. 그는 그 점을 결코 심각하게 반성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성이 없다'고도 했다. 오베는 이 말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싹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었다.(p.56)

  오베는 59세이다. 그는 평생 사브에서 나온 차를 샀다. 지금은 태블릿 PC와 랩톱 컴퓨터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내와 함께 40여 년을 거주한 집에서 자명종 없이 오전 6:15 이전에 일어나 여과기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아침마다 동네를 한 바퀴 시찰하는데, 주로 공공기물의 파손을 점검한다. 발길질하면서 교통 표지판의 상태를 살펴보고 주차 구역에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을 신고한다. 쓰레기 처리장의 분리수거 상태를 확인하고 자전거 보관소로 간다. 인터넷을 신뢰하지 않으며 집 안의 나무로 된 작업대는 꼬박꼬박 기름칠한다. 그런데 6개월 전에 아내가 죽었다. 더 일하고 싶었지만, 심장이 좋지 않아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무엇을 하지? 사랑하는 아내의 흔적을 찾으며 그리워한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의 곁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준비한다.

  그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장의사에게 돈도 냈고 교회 묘지에 묻힌 아내 옆에 자기 묏자리를 만드는 것에도 동의했다. 변호사를 불러 지시 사항이 분명히 담긴 유언장도 썼다. 그걸 중요한 영수증과 집문서와 사브의 정비 내역과 함께 봉투에 넣었다. 봉투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뒀다. 청구서도 다 지불했다. 융자도 빚도 없고, 그가 가고 나서 이 집에 들어올 사람들은 따로 손볼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컵들도 다 씻어놨고 신문 구독도 끊었다. 그는 준비가 됐다.(p.71)

  그는 그저 평화롭게 죽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인생, 계획한 대로 풀리는 삶이 어디 있을까? 옆집에는 외국인 부부가 이사를 온다. 키는 멀대같이 크고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남자와 임신으로 만삭인 이란 여자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7세와 3세의 여아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털이 반이나 빠진 볼품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창고를 들락거린다. 그는 주택 융자를 다 갚았고 관리비와 세금도 다 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중요한 서류와 유언장을 품에 넣는다. 혹시 몰라 발이 닿을만한 공간에 패드를 대고 천장 고리에 끈을 넣어 매듭을 지었다. 창고 문을 닫고 자동차 배기관을 튜브로 연결해 차량 유리를 통과시켰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사냥총을 장전해 총구를 머리로 가져갔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마다 성격상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래, 이것만 해결하고 죽자! 그래야 아내 곁으로 갔을 때 그녀가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까...

  저녁이면 그는 소시지와 감자를 데쳤고, 식사를 하는 동안 부엌 창을 통해 바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일을 하러 나갔다. 그는 이런 일과가 좋았다. 늘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로,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점점 더 차별을 두었다.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들을 구별했다. 오베는 점점 더 말을 줄이고 점점 더 실천을 했다.(p.106)

  "남자는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남자인 겁니다. 말이 아니라요." 오베가 말했다.(p.112)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p.189)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p.370-371)

  남자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남들과 다른 신념을 지닌 오베라는 남자는 어쩌면 따분한 원칙주의자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는 세상을 정직하게 살았고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때때로 속임수에 넘어가 분노할 때도 있었지만, 자기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한 남자의 인생 파노라마는 쾌활함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는 과연 방해자들(?) 틈에서 무사히 아내 곁으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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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싱 - 돌아온 킬러 의사와 백색 호수 미스터리 밀리언셀러 클럽 119
조시 베이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조시 베이젤, 이정아 역, [와일드 싱], 황금가지, 2015.

Josh Bazell, [WILD THING], 2012.

  한 권의 책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조시 베이젤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된 후에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2009년 전직 킬러인 의사 피터 브라운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트 더 리퍼](황금가지, 2011.)로 데뷔한 후에 이번에는 후속으로 [와일드 싱]을 내놓았다. 영화를 제외하고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미국식 어드벤처(스릴러) 블랙 코미디인데, 번역의 난이도를 계산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쉽게 전작은 읽지 못했는데, 사이사이의 문맥과 친절한 각주를 통해서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의사의 고백, 나는 킬러였다!'라는 부제를 가진 전작에서 과거 피에트로 브라우나는 시실리 마피아와 러시아 마피아 밑에서 악명 높은 암살자로 활동했는데, 이런저런(?) 사연으로 연방 증인보호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피터 브라운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고 있다. 요점은 마피아 사이에서 고위급 중재자로 일했던 데이비드 로카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주인공을 죽이고 싶어한다. 피의 복수를 피해 도망 중인 한 의사의 이야기이다. 후속작은 '돌아온 킬러 의사와 백색 호수 미스터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은 여전히 마피아의 추적을 피해 신분을 감추고 라이어넬 아지무스라는 이름으로 유람선의 의사로 있다. 그리고 한 통의 전보를 받는데,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한다는 뜻이오. 이것 보시오, 난 그냥 선생께서 내 대신에 이번 탐험에 참여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봐 주시오."(p.64)

  실제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듯하다. 가령 독특한 장소에서 천혜의 진미를 먹는 일상 이외에 우주여행을 계획한다든가 하는... 미국에서 열네 번째 부자로 손꼽히는 인물은 특별한 모험 여행에 초대를 받는다. 미네소타의 백색 호수에 가서 괴생물체를 찾는다는 기이한 여행이다. 백만 달러의 참가비와 함께 각계의 다양한 인사가 비밀리에 참여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무엇보다 괴물의 진위가 궁금하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마피아의 추적으로 신분이 묘한 의사를 추천받아 그를 고용한다.

  막달레나가 죽고 난 후 내가 정한 규칙은 간단했다. 어떤 여자가 내 생일이 언제인지 신경을 쓸 정도로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면 그 여자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도려낸다. 나 이외의 어떤 누구도 표적이 되지 않게 한다. 솔직히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선 라이어넬 아지무스의 생일이 언제쯤인지 기억할까 봐, 다시 말해 누군가 좋은 뜻으로 내게 깜짝 파티를 열어 주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p.143-144)

  글을 읽으며 가장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는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다. 겉으로는 털털해 보여도 항상 치밀함을 유지하는 의사 라이어넬 아지무스, 그는 미모의 고생물학자 바이올렛 허스트와 함께 미네소타 주의 작은 마을 포드에 가서 증거를 수집한다. 일하면서 둘은 서로의 매력에 끌려 옷을 벗고 한바탕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마도 과거의 연인이 추적자의 표적이 되어 죽임을 당한 기억 때문에 남자는 의식적으로 여자를 멀리하려고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괴물의 존재를 사실로 믿는 이들과 하찮은 루머로 여기는 이들, 그리고 나름대로 이야깃거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여행 참가자들의 팽팽한 신경전도 볼만하다.

  괴물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고사했거나 아니면 약에 취해 있었다. 마을에 여행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소문이라고 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우여곡절 끝에 백색 호수로 여행을 시작한다.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전작은 흥미진진한 스릴러로 미국 의료업계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했다면, 후속작에서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어드벤처로 자연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끝난 뒤에 실려 있는 부록 및 출처이다. 작가는 무려 70여 페이지에 걸쳐 글을 쓰면서 인용한 구절, 얻은 영감, 부여된 동기, 환경과 관련된 에너지 조약... 등을 하나하나 깨알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백한 표절임에도 발뺌을 하거나 이를 감싸려고 하는 국내 문학계와 비교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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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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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역, [여자 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2014.

Murakami Haruki, [ONNA NO INAI OTOKOTACHI], 2014.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나는 아직 그의 장편을 제대로 소화할 여력이 없어서 에세이와 단편으로 적응력을 키우는 중이다. 한마디로 무게감이라고 해야 하나? 허무함과 난해함을 포함해서 다중적 의미를 가진 몽환적인 글을 읽을 때의 피곤함(?)이 섣불리 다가서기를 망설이게 한다. 더구나 (하루키를 만나면 특히 더) 문학을 그 자체로 즐기기보다는 어떻게든 두뇌 회전을 가속화해서 숨은 은유와 상징을 찾아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는 부작용이 있고...ㅜㅜ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곱 개의 단편 모음이다. 단편소설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대비하여 빠르게 잊히는 속성 때문에(나는 잘 잊어버린다...;;) 하루에 한 개의 단편만을 읽기로 했다. 강렬함을 적당히 순화하면서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한 나름의 처방이다. 그래서 계획은 하루에 한 편씩 칠 일을 계산하고 시작했으나, 날이 갈수록 그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남자의 이야기라서 매우 만족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잠자

  여자 없는 남자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 신은 남자를 만들고 나서 뭔가 부족한듯싶어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의 우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도우면서 살라는, 돕는 배필을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랑과 욕망을 포함해서 상실과 결여로 뭔가가 부족한 일곱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현실의 세계에서 여자 하나 없는 지질하고 매력 없는 남자가 아니라 한때는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혼자이다. 곁에 여자가 있어도 내 여자는 아니다. 어쩌면 매우 기묘한 설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루키는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포함해서 남자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우리도 섬세하고 민감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적잖이 타보았지만, 가후쿠가 보기에 여자들의 운전습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거나. 후자가 전자보다 - 우리는 그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 훨씬 많았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여자 운전자는 남자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물론 조심스럽고 신중한 운전에 불만을 제기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런 운전은 때로 주위 운전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지도 모른다.(p.9)

  "그건 병 같은 거예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p.59)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가후쿠는 배우인데, 한쪽 눈에 문제가 생겨 단골 카센터의 소개로 와타리 미사키라는 여자를 전속 운전기사로 고용한다. 20대 중반의 무뚝뚝하고, 애교가 없는, 예쁘지 않은, 담배를 엄청나게 피우지만...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며 다른 감정보다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는 죽은 아내와 아내가 만났던 남자에 관해서 들려준다. 연기자로 살면서 때로는 다른 인격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아는 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에 일본어로(그것도 간사이 사투리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목욕할 때면 곧잘 큰 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다.

  어제는/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p.63)

  하지만 스무 살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외톨이고 한없이 고독했다는 느낌뿐이다.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연인도 없었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었다. 하루하루 뭘 해야 좋을지도 알지 못했고, 마음속에 그리는 장래의 비전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런 생활이 일 년쯤 이어졌다. 긴 일 년이었다. 그런 시기가 혹독한 겨울이 되어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 귀중한 나이테를 남겼을지,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p.112-113)

  '예스터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만난 한 친구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다니무라는 간사이 출신으로 도쿄에 와서 대학을 다닌다. 아르바이트 중에 만난 기타루는 도쿄 출신이지만, 간사이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특이한 친구이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기류가 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지 않겠느냐는 이상한 제안을 해 온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직 인생의 경험이 빈약한 시절이라 하나하나가 몸에 나이테를 새기는 과정이다. 더 먼 미래에서 현재를 뒤돌아봐도 비슷하겠지만,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길을 멀리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런 빛을 목도하지 않는, 혹은 목도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축복받은(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도 허다하게 존재하지만.(p.117-118)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꾸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 - 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 - 일어나지 않는다.(p.166-167)

  '독립기관'은 항상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은 남자의 순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니무라는 스포츠센터에서 50대 초반의 성형외과 의사인 도카이를 알게 된다. 그는 아직 미혼인데, 특이한 여성 취향으로 평범하지 않은 연애를 하고 있다. 능숙한 기교로 수많은 여자가 그를 거쳐 갔고, 지금까지 여자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얼마 뒤에 임종의 소식이 전해진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바라와 성교할 때마다 그녀는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천일야화]의 왕비 셰에라자드처럼. 물론 그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하바라는 날이 밝으면 그녀를 참수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다(애초에 그녀가 아침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던 적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하바라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늘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하바라를 위로해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혹은 그 이상으로 그녀는 침대에서 - 특히 성행위를 끝낸 뒤 둘만의 나른한 시간에 - 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던 거라고 하바라는 추측했다.(p.173)

  섹스 뒤에 셰에라자드는 더이상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하바라의 피임구를 점검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그곳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칠성장어가 물밑에서 환한 수면을 응시하듯이. 내가 다른 세계, 혹은 다른 시간 속에 있고, 그리고 칠성장어였다면 - 하바라 노부유키라는 특정한 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이름 없는 칠성장어였다면 -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바라는 생각했다. 셰에라자드와 하바라는 둘 다 칠성장어이고, 이렇게 나란히 돌에 찰싹 달라붙어, 물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수면을 올려다보고, 살이 오른 송어가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p.206-207)

  '셰에라자드'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남자와 그를 찾아오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락책의 소개로 하바라가 머무는 집에 일주일에 두 번꼴로 그녀가 온다. 식료품 봉투를 들고 주방에 가서 정리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침실로 이동한다. 섹스가 끝나면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대화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돌아간다. 그는 그녀를 [천일야화]에 나오는 왕비 셰에라자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연히 주어진 관계가 언제 끊어질지 모르기에 그는 조심스럽고 슬프다.

  그 남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카운터 제일 안쪽 의자. 물론 먼저 앉은 손님이 없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그 자리는 거의 예외 없이 비어 있었다. 애당초 손님이 많지 않은 가게인데다 그곳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그리고 그리 편하다고 할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뒤에 계단이 있어서 천장이 비스듬하게 내려와 있다. 일어날 때는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남자는 키가 큰 편이었지만 그 비좁은 자리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p.217)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 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라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p.226-227)

  '기노'는 기노라는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기노는 우연히 출장에서 하루 일찍 돌아와 아내가 직장 동료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그대로 집을 나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이모가 운영하는 가게를 인수해 작은 술집을 만든다. 골목 자락에서 화려함보다는 편안한 장소로 하나둘 손님이 찾아오는데, 올 때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위스키와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는 남자는 잠시 가게 문을 닫고 멀리 피하라는 말을 전한다. 행복은 물론이고 원망이나 분노를 억제하며 사는 남자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위에서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반듯이 누운 자세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의 어둠침침함에 눈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보아하니 그것은 어디에나 흔히 있는 지극히 평범한 천장이었다. 원래는 흰색이나 연한 크림색 계열로 칠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몰고 온 먼지와 때 탓에 이제는 상해가는 우유를 떠올리게 하는 색으로 변했다. 장식도 없고 이렇다 할 특징도 없다. 주장도 메시지도 없다. 천장으로서의 구조적인 역할은 일단 무난하게 해내고 있으나, 그 이상의 의욕은 찾아볼 수 없다.(p.275)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죠." 아가씨는 사려 깊게 말했다.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고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p.308)

  '사랑하는 잠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연상되는데,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에서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해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잠에서 깨어난 잠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은 후,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가운을 찾아 걸친다. 이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현관에는 등이 굽어 몸을 앞으로 숙인 젊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열쇠수리공으로 문고리의 자물쇠를 고치러 왔다고 하는데, 고장난 자물쇠는 잠자가 깨어난 방의 문이다.

  한밤중 한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한밤중의 전화벨은 언제나 거칠다. 누군가가 흉포한 쇠붙이로 세상을 깨부수려는 것만 같다.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든다.

  나지막한 남자 목소리가 내게 전한다, 한 여자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음을. 목소리 주인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내가 지난주 수요일에 자살했습니다. 뭐가 어찌됐건 알려드려야겠다 싶어서, 라고 그는 말했다. 뭐가 어찌됐건. 내가 들은 한, 그의 말투에는 한 방울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마치 전보를 치려고 쓴 문장 같았다. 말과 말 사이에 스페이스가 거의 없었다. 순수한 알림. 수식 없는 사실. 피리어드.(p.315-316)

  하지만 나는 그 남편이 전화로 말한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의심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뒤에도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았고, 누군가와 (아마도)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법을 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뭐가 어찌됐건.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죽은 자의 세계와 깊숙이 이어진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밤의 정적 속에서 그 생생한 연결을 귀로 들을 수 있었다. 팽팽히 당겨진 실의 긴박감을, 그 날카로운 번뜩임을 눈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제쳐두고 - 한밤중 한시 넘어서 전화를 한 것은 그에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낮 한시에는 아마도 이렇지 못했을 것이다.(p.317-318)

  '여자 없는 남자들'은 새벽에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은 남자의 내면 독백이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그녀에 관한 기억, 꿈같은 묘사, 선원과 항해, 여자 없는 남자들... 복잡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은 쉬운듯하면서 잠시 정신을 놓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가던 길을 잃는 어려운 소설이다. 남자를 충분히 배려한 감성이 돋보이는데,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하루키 특유의 음악과 영화에 관한 조예가 잘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 두세 사람이 등장하는 간단한 구조이나 이들의 관계 외에 각자의 이야기를 이중으로 기록하여 입체감이 살아난다. 상처를 가진 남자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탐욕적이고 원색적으로, 때로는 감각적인 내면의 독백으로 풀어간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열쇠수리공 아가씨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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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벤틀리 리틀, 송경아 역, [더 스토어], 황금가지, 2015.

Bentley Little, [THE STORE], 1998.

  지난 대선 이전에, 몇 년 동안 국내 대기업 대형마트와 자영업 재래시장에 관한 논의(논쟁)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창고형 할인마트로 특정 거점에만 형성된 매장이 가격 경쟁과 편리함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여 지역 상권을 사로잡고,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지역에 매장을 늘려가면서 경제 순환 구조가 깨지고... 이런 식으로 자본이 시장을 독점한 후에는 가격을 인상하여 어느 순간에 '할인'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대형마트만 남게 되어 부가 편중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게다가 최근에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동네 슈퍼마켓까지 손대고 있으니 이것을 개인이 경쟁하기에는 벅찬 시대이다.

  자영업자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4~5년을 주기로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선거! 1인 1표라는 작은 힘이지만, 이것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 (대기업의) 규제 강화보다는 규제 완화 정책을 내세운 정당이 승리하면서 자영업의 몰락은 가속된다. 실제로 주위에서 자영업 상인들이 (어떤 이유로?) 친 대기업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나름 소신껏 재래시장을 이용했던 이들이 앞으로는 대형마트에만 가겠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벤틀리 리틀의 [더 스토어]는 대기업의 거대자본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북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을 잠식해 가는 과정을 공포로 묘사한 호러 소설이다.

  2월

  더 스토어가 옵니다(p.17)

  이성적으로는 더 스토어가 생긴다는 것이 기뻐야 했다. 지역 경제를 크게 부양해 줄 것이고 건설업 일자리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판매직과 서비스직이 영구적으로 팽창할 것이다. 그건 특히 십대에게 좋을 것이다. 또 소비자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작은 소읍은 대도시 같은 할인가와 상품 선택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본능으로 더 스토어의 도착이 불편했다. 그 상점이 그의 절경에 지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지만, 그 체인점이 주니퍼에 생기는 것이 싫었다.(p.22-23)

  자연환경의 절경으로 관광업과 목재 제재로 수익을 올리는 주니퍼, 이곳에 더 스토어가 들어올 예정이다. 빌 데이비스는 아침 조깅을 하다가 입점을 예고한 표지판 근처에서 죽은 사슴을 발견한다. 소나무 산골 마을에 도시와 같은 대형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기대할만한 일이지만, 그는 뭔가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불길함을 느낀다. 뭔가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다는 심리는 작품 전체를 음울하고 퇴폐적이고 어둡게 이끌어 간다.

  주니퍼의 토지이용 제한법에 따르면 건설회사가 그냥 조망을 심하게 훼손할 수는 없었다. 주니퍼의 종합 도시 계획안은 모든 새 사업이 '지금 존재하는 공동체와 그 건물들의 정신과 방식에 따르고 모든 지형을 유지하고 가능한 한 많은 식물을 보존하도록' 명확하게 요구했다. 그 도시 계획안은 1980년대 초 당시 읍 의회에서 주니퍼와 그 환경의 독특한 성격을 보존하려고 시도하며 초안을 작성한 것이고, 그때부터 모든 읍 의회는 규제 속 성장이라는 소읍의 약속을 강화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더 스토어는 전 과정을 피하고 읍의 경계 내에서 가장 아름답게 뻗은 길 부분을 단독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p.40-41)

  "데이비드 씨의 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더 스토어는 다른 소도시들에서 공동체에 책임 있고 존경받는 기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 스토어의 디자인이 주니퍼의 종합 개발 계획에 따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 우리의 지역 법령과 조례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스토어를 우리 읍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 거래가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더 좋은 물건들이 우리 읍민들에게 공급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더 부유해질 것입니다."(p.55)

  주니퍼 읍 의회는 경치 좋은 작은 마을의 장점을 살려 경쟁력을 갖추기보다는 대형매장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늘리기 원했다. 지역 건설업자는 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원했고,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핑크빛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규제 속 성장이라는 도시 개발 법령을 무시하고 막대한 혜택으로 더 스토어는 들어선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동물의 집단 떼죽음, 자연환경의 파괴, 감옥 같은 외관, 알 수 없는 비밀 지하실, 고속도로 위의 검은 트럭, 야간에 매장을 돌아다니는 창백한 얼굴의 직원들...

  "이 사람아, 시대가 바뀌었다네. 요즘 사람들은 다 파편화되어 있어. 이건 더 이상 나라가 아니야. 일거리, 돈, 매스미디어의 주의를 끌려고 모두 서로 경쟁하고 있는 종족들의 집합이지.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모두 미국인이었지. 그때는 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했어. 옳은 일을, 도덕적인 일을 했지.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편리한 것,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을 해... 옛날 사람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지. 이곳을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기꺼이 했어.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모두 신경 쓰는 건 거기에 얼마나 돈이 드느냐 뿐이야."(p.98)

  읍내 상인들 전부 그랬다. 대중들은 언제나 소상공인과 미국의 위대한 개척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들은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졌다고 한탄하고 커다란 기업체가 비인격적이고 대기업이 과잉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그들은 서비스보다 편리함을 선택했다. 질보다 가격을 골랐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의리나, 공동체의 진정성 같은 것은 없었다.(p.322)

  우리는 한때 도덕적으로 흠이 있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괜찮다는 대중 심리로 정치 지도자를 뽑은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체감하고 있는데, 경제는 물론 국가의 가치마저 하락했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현실만은 아닌듯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미국은 도덕적 관습이나 국가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경제 현실을 우선시하고 있다. 더 스토어의 입점을 반대하며 보이콧 하겠다던 사람들은 점차 하나씩 그곳에 간다. 그들 중 하나였던 빌도 그곳에서 쇼핑하고, 그의 두 딸은 그곳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개새끼들이 나한테 덤핑을 치고 있어. 그놈들은 내가 도매상에서 사는 돈보다 더 싸게 CD를 팔 수 있다고."

  ...

  "그리고 음악 판매를 독점하려고."

  "그럼. 그 다음에는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자기네 가격을 인상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하겠지."(p.153)

  "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지, 응?"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뭔데?"

  "더 스토어가 그걸 샀어."(p.287)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특혜로 들어와 자연환경을 해치며 자리를 잡은 더 스토어는 처음에는 지역 건설업을 갑과 을의 구조로 착취하고, 건물이 세워진 후에는 가격 경쟁으로 지역 상권을 마비시킨다. 전자부품가게, 커피숍, 카센터, 미용실, 식료품점... 등 때로는 매입을 하며 독점 구조를 형성한 후에는 가격을 인상하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자사의 제품만을 판매한다. 공원 유지를 대가로 증축 허가가 났을 때는 자회사 건설을 이용하고, 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인다. 상권의 마비로 상인들은 점점 밀려나고 이것은 세수 부족으로 주니퍼 읍 의회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된다. 파산 직전의 의회는 결국 경찰서와 소방서를 더 스토어에 아웃소싱한다. 더 스토어는 더 나아가 신문사를 매입하고 초등학교와 도서관의 경영까지 맡게 된다. 그들은 농작물 직판장 판매 금지법, 야간 통행 금지법을 시행하고... 심지어 선거에 출마해 읍 의회를 장악한다.

  [직원 성경]

  빌은 페이지를 주르륵 넘기며 부제들을 살펴보았다.

  '더 스토어는 너의 가정이다. 우리의 일원 되기. 배신자를 취급하는 법. 치욕을 당하기 전의 죽음. 계약 종료 절차.'(p.489)

  밤의 매니저들은 무엇일까? 그는 궁금했다. 좀비? 뱀파이어?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신화적인 불사의 생물들이 아니었다. 마법이나 연금술이나 과학으로도 생명을 얻은 시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었다...... 더 스토어의 희생자들이었다. 더 스토어가 붙잡은 사람들.

  더 스토어는 그들의 영혼을 붙잡았다.(p.565-566)

  기업 흡혈귀 더 스토어를 반대하거나 비난한 사람은 얼마 뒤에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단 한 번도 법정에서 패배를 해본 적이 없는 기업, 창업주 뉴먼 킹은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대도시가 아닌 소읍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려간다. 수상한 종교의식... 빌은 두 딸을 깨름칙한 그곳에서 빼내려 하지만, 법적으로 완벽히 묶여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스토어를 두려워한다.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결말이 찾아올까?

  음울하고, 탐욕적이고, 변태적이다. 그리고 독점 자본의 횡포는 아주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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