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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토어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벤틀리 리틀, 송경아 역, [더 스토어], 황금가지, 2015.
Bentley Little, [THE STORE], 1998.
지난 대선 이전에, 몇 년 동안 국내 대기업 대형마트와 자영업 재래시장에 관한 논의(논쟁)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창고형 할인마트로 특정 거점에만 형성된 매장이 가격 경쟁과 편리함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여 지역 상권을 사로잡고,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지역에 매장을 늘려가면서 경제 순환 구조가 깨지고... 이런 식으로 자본이 시장을 독점한 후에는 가격을 인상하여 어느 순간에 '할인'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대형마트만 남게 되어 부가 편중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게다가 최근에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동네 슈퍼마켓까지 손대고 있으니 이것을 개인이 경쟁하기에는 벅찬 시대이다.
자영업자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4~5년을 주기로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선거! 1인 1표라는 작은 힘이지만, 이것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 (대기업의) 규제 강화보다는 규제 완화 정책을 내세운 정당이 승리하면서 자영업의 몰락은 가속된다. 실제로 주위에서 자영업 상인들이 (어떤 이유로?) 친 대기업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나름 소신껏 재래시장을 이용했던 이들이 앞으로는 대형마트에만 가겠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벤틀리 리틀의 [더 스토어]는 대기업의 거대자본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북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을 잠식해 가는 과정을 공포로 묘사한 호러 소설이다.
2월
더 스토어가 옵니다(p.17)
이성적으로는 더 스토어가 생긴다는 것이 기뻐야 했다. 지역 경제를 크게 부양해 줄 것이고 건설업 일자리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판매직과 서비스직이 영구적으로 팽창할 것이다. 그건 특히 십대에게 좋을 것이다. 또 소비자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작은 소읍은 대도시 같은 할인가와 상품 선택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본능으로 더 스토어의 도착이 불편했다. 그 상점이 그의 절경에 지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지만, 그 체인점이 주니퍼에 생기는 것이 싫었다.(p.22-23)
자연환경의 절경으로 관광업과 목재 제재로 수익을 올리는 주니퍼, 이곳에 더 스토어가 들어올 예정이다. 빌 데이비스는 아침 조깅을 하다가 입점을 예고한 표지판 근처에서 죽은 사슴을 발견한다. 소나무 산골 마을에 도시와 같은 대형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기대할만한 일이지만, 그는 뭔가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불길함을 느낀다. 뭔가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다는 심리는 작품 전체를 음울하고 퇴폐적이고 어둡게 이끌어 간다.
주니퍼의 토지이용 제한법에 따르면 건설회사가 그냥 조망을 심하게 훼손할 수는 없었다. 주니퍼의 종합 도시 계획안은 모든 새 사업이 '지금 존재하는 공동체와 그 건물들의 정신과 방식에 따르고 모든 지형을 유지하고 가능한 한 많은 식물을 보존하도록' 명확하게 요구했다. 그 도시 계획안은 1980년대 초 당시 읍 의회에서 주니퍼와 그 환경의 독특한 성격을 보존하려고 시도하며 초안을 작성한 것이고, 그때부터 모든 읍 의회는 규제 속 성장이라는 소읍의 약속을 강화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더 스토어는 전 과정을 피하고 읍의 경계 내에서 가장 아름답게 뻗은 길 부분을 단독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p.40-41)
"데이비드 씨의 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더 스토어는 다른 소도시들에서 공동체에 책임 있고 존경받는 기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 스토어의 디자인이 주니퍼의 종합 개발 계획에 따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 우리의 지역 법령과 조례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스토어를 우리 읍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 거래가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더 좋은 물건들이 우리 읍민들에게 공급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더 부유해질 것입니다."(p.55)
주니퍼 읍 의회는 경치 좋은 작은 마을의 장점을 살려 경쟁력을 갖추기보다는 대형매장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늘리기 원했다. 지역 건설업자는 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원했고,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핑크빛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규제 속 성장이라는 도시 개발 법령을 무시하고 막대한 혜택으로 더 스토어는 들어선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동물의 집단 떼죽음, 자연환경의 파괴, 감옥 같은 외관, 알 수 없는 비밀 지하실, 고속도로 위의 검은 트럭, 야간에 매장을 돌아다니는 창백한 얼굴의 직원들...
"이 사람아, 시대가 바뀌었다네. 요즘 사람들은 다 파편화되어 있어. 이건 더 이상 나라가 아니야. 일거리, 돈, 매스미디어의 주의를 끌려고 모두 서로 경쟁하고 있는 종족들의 집합이지.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모두 미국인이었지. 그때는 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했어. 옳은 일을, 도덕적인 일을 했지.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편리한 것,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을 해... 옛날 사람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지. 이곳을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기꺼이 했어.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모두 신경 쓰는 건 거기에 얼마나 돈이 드느냐 뿐이야."(p.98)
읍내 상인들 전부 그랬다. 대중들은 언제나 소상공인과 미국의 위대한 개척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들은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졌다고 한탄하고 커다란 기업체가 비인격적이고 대기업이 과잉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그들은 서비스보다 편리함을 선택했다. 질보다 가격을 골랐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의리나, 공동체의 진정성 같은 것은 없었다.(p.322)
우리는 한때 도덕적으로 흠이 있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괜찮다는 대중 심리로 정치 지도자를 뽑은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체감하고 있는데, 경제는 물론 국가의 가치마저 하락했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현실만은 아닌듯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미국은 도덕적 관습이나 국가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경제 현실을 우선시하고 있다. 더 스토어의 입점을 반대하며 보이콧 하겠다던 사람들은 점차 하나씩 그곳에 간다. 그들 중 하나였던 빌도 그곳에서 쇼핑하고, 그의 두 딸은 그곳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개새끼들이 나한테 덤핑을 치고 있어. 그놈들은 내가 도매상에서 사는 돈보다 더 싸게 CD를 팔 수 있다고."
...
"그리고 음악 판매를 독점하려고."
"그럼. 그 다음에는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자기네 가격을 인상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하겠지."(p.153)
"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지, 응?"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뭔데?"
"더 스토어가 그걸 샀어."(p.287)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특혜로 들어와 자연환경을 해치며 자리를 잡은 더 스토어는 처음에는 지역 건설업을 갑과 을의 구조로 착취하고, 건물이 세워진 후에는 가격 경쟁으로 지역 상권을 마비시킨다. 전자부품가게, 커피숍, 카센터, 미용실, 식료품점... 등 때로는 매입을 하며 독점 구조를 형성한 후에는 가격을 인상하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자사의 제품만을 판매한다. 공원 유지를 대가로 증축 허가가 났을 때는 자회사 건설을 이용하고, 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인다. 상권의 마비로 상인들은 점점 밀려나고 이것은 세수 부족으로 주니퍼 읍 의회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된다. 파산 직전의 의회는 결국 경찰서와 소방서를 더 스토어에 아웃소싱한다. 더 스토어는 더 나아가 신문사를 매입하고 초등학교와 도서관의 경영까지 맡게 된다. 그들은 농작물 직판장 판매 금지법, 야간 통행 금지법을 시행하고... 심지어 선거에 출마해 읍 의회를 장악한다.
[직원 성경]
빌은 페이지를 주르륵 넘기며 부제들을 살펴보았다.
'더 스토어는 너의 가정이다. 우리의 일원 되기. 배신자를 취급하는 법. 치욕을 당하기 전의 죽음. 계약 종료 절차.'(p.489)
밤의 매니저들은 무엇일까? 그는 궁금했다. 좀비? 뱀파이어?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신화적인 불사의 생물들이 아니었다. 마법이나 연금술이나 과학으로도 생명을 얻은 시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었다...... 더 스토어의 희생자들이었다. 더 스토어가 붙잡은 사람들.
더 스토어는 그들의 영혼을 붙잡았다.(p.565-566)
기업 흡혈귀 더 스토어를 반대하거나 비난한 사람은 얼마 뒤에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단 한 번도 법정에서 패배를 해본 적이 없는 기업, 창업주 뉴먼 킹은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대도시가 아닌 소읍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려간다. 수상한 종교의식... 빌은 두 딸을 깨름칙한 그곳에서 빼내려 하지만, 법적으로 완벽히 묶여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스토어를 두려워한다.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결말이 찾아올까?
음울하고, 탐욕적이고, 변태적이다. 그리고 독점 자본의 횡포는 아주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