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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평점 :
하퍼 리, 공진호 역, [파수꾼], 열린책들, 2015.
Harper Lee, [GO SET A WATCHMAN], 2015.
1. 무엇을 먼저 읽을 것인가?
워낙 유명해서, 미디어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하퍼 리라는 이름과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2015.)라는 제목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장벽과 감성이 메마른 삶을 살다 보니 아쉽게 책을 읽지 못했다.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기억에서 다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되새기게 한 것은 잊힌 원고의 발견과 55년 만의 출간이라는 [파수꾼]의 소식 때문이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의 관계를 알아야 하는데, 긴 세월만큼 새로운 책을 출간하기까지 작가와 작품이 가진 이야기는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 더 흥미롭고 뭔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퍼 리는 편집자들의 제안에 따라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개고한 원고를 제출하고 10월에 J. B. 리핀코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테이 호호프는 원고를 달리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의 관점에서 쓴 [파수꾼]은 당시 한창 일어나고 있던 시대 상황의 뜨거운 이슈에 너무 가깝고 직접적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하퍼 리는 그녀의 조언에 따라 이번에는 스카웃이라는 어린이의 일인칭 목소리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제한적인 삼인칭 목소리로 쓴 [파수꾼]과는 전혀 다른 [앵무새 죽이기]가 1960년 7월 11일에 탄생했다.(p.396-397)
하퍼 리는 1926년 앨라배마 주 먼로빌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헌팅턴 여자 대학교와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1949년 뉴욕으로 간다. 1956년 글쓰기에 관심과 재능을 보인 그녀를 위해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1년 치 생활비를 주면서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해서 1957년 [파수꾼]이라는 제목으로 원고가 만들어진다. 책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편집자는 과거로 돌아가 작중 인물인 진 루이즈의 아버지 애티커스에게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했고, 작가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글을 다시 써서 1960년 [파수꾼]과는 전혀 다른 [앵무새 죽이기]를 완성한다.
그래서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뒤의 이야기지만, 작품의 순서상 먼저 쓰였기 때문에... 두 책의 관계는 [파수꾼]을 [앵무새 죽이기]의 전작이자 후속작이라고 하고, 하퍼 리가 쓴 최초이자 최후의 작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설명하면 [앵무새 죽이기]는 늦게 쓰고 먼저 출간하였으며 1930년대를 배경으로 6살 어린 아이의 시선이다. [파수꾼]은 먼저 쓰였으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뒤늦게 출간하게 되었으며 1950년대를 배경으로 20대 중반 여성의 시선이다. 이미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독자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파수꾼]을 읽으면 되겠지만, 두 권을 처음으로 만나는 독자라면 어느 것을 먼저 읽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쉽지 않은 선택으로... 나는 작가의 원고 수정 과정을 뒤따르고 싶어서 [파수꾼]을 먼저 읽기로 했다.
2. 논란과 실망 그런데도
[앵무새 죽이기]는 작품의 호평으로 1961년 퓰리처상을 받고 40여 개 나라에 번역되어 4,00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1962년 그레고리 펙을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되고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책으로 평가되어 단숨에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작가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출간한 뒤 소설 한 편을 더 쓰고 일단 보류했던 [파수꾼]을 낼 생각이었지만, 결국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지만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그녀가 바라지 않았던 규모의 인기와 관심이 숨 막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앵무새 죽이기]를 능가하는 작품을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집필 계획을 세우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앵무새 죽이기]가 마지막이었다.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등 성공과 인기는 그녀의 사생활을 앗아 갔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 그런 인기와 명성은 바라지 않았다.(p.397)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중의 반응으로 하퍼 리는 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전작의 가치를 훼손할까 두려워 작품활동을 중단한다. 최근까지 [앵무새 죽이기]는 그녀의 유일한 소설로 알려졌었다. 그리고 2015년 하퍼 리의 변호사 토냐 카터는 그녀의 안전 금고를 조사하다가 [파수꾼]이라는 원고를 발견한다.
저자의 동의로 출간한 [파수꾼]은 영미권에서 논란과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주위의 비난에도 신념을 지키며 흑인의 인권보호에 앞장섰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파수꾼]에서는 전혀 다른 늙은 인종주의자로 변해 있었다. 독자의 일부는 미국의 영웅으로 여기던 핀치 변호사의 변절을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는 비판을 하고, 일부 평론가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보여주었던 서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미숙한 초고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출판계에서는 올해의 베스트셀러를 기대하고 있다.
3. 내가 만난 최고의 성장소설
[파수꾼]이 공개된 후에 안타깝게도 아주 오래전 작가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인지 모르지만, [앵무새 죽이기]의 미래 독자까지 흥미를 떨어뜨리게 한 소설이니 차라리 출간하지 말았어야 할 책이라는 언론의 싸늘한 탄식이 있었다고 한다(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이 책을 읽으므로 오히려 [앵무새 죽이기]를 바라보게 한다. 지난 50여 년간 문학은 짜릿한 감동으로 독자를 매료하는 수많은 글쓰기 기법이 발전해왔다. 현대의 시선으로 요즘에 나오는 소설과 비교해서 어쩌면 투박하고 클라이맥스가 아쉬운 구성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파수꾼]은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이사야 21:6)
[앵무새 죽이기]에서 6세이던 스카웃은 [파수꾼]에서 26세의 진 루이즈 핀치로 그려진다. 1950년대는 흑인 인권운동의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던 시대로 의견의 대립과 다툼이 빈번했다. 뉴욕에서 개방된 삶을 살다가 잠시 고향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갈등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흑인을 변호하며 평등하게 대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법 정의를 실현했을 뿐, 흑인을 비하하는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하고 논쟁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사랑은 아무하고나 해도 결혼은 동류와 한다. 진 루이즈에게 그것은 본능에 해당하는 금언이었다.(p.19)
그녀는 그와 거의 사랑에 빠졌다. 아니, 그런 건 있을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면 빠진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모호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물론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든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p.26)
"고모, 아빠한테 필요하다면 내가 여기 와 있을 거란 거 고모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어요. 그건 아빠가 알고 내가 알아요. 오빠가 이렇게 되기 전 우리가 살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가족의 회복은 훨씬 더딜 거란 걸 모르세요? 고모, 내가 고모를 이해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가 정말 아빠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길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거예요. 독립해서 내 인생을 사는 거라고요. 그걸 모르겠어요?"(p.48)
"여자는 노련하면서도 마음을 터놓지 않는 남자를 원해, 네게 그런 요령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자들이 무력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특히 불쏘시개로 쓰는 소나무 그루터기도 거뜬히 들 수 있는 여자란 걸 알아도 말이야. 여자 앞에서는 절대로 자신을 의심하면 안 돼. 여자를 이해 못 하겠다는 말도 하면 안 되고."(p.71)
그녀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과거의 아주 작은 음성이었다. "여러분, 제가 이 세상에서 믿는 구호가 하나 있다면,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권을, 특권은 없습니다."(p.154)
애티커스는 변호사 인생을 걸고 모험했다. 변호인으로서 배심원 앞에 서서 기소장의 부정확한 점을 이용하여 메이콤 군에서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두었다. 강간 혐의로 기소된 그 흑인 청년은 무죄라는 선고를 얻어 낸 것이다. 검찰 측의 주요 증인은 백인 소녀였다.(p.155)
진 루이즈가 생각할 수만 있었더라면, 아주 옛날부터 있던 돌고 도는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관련된 중요 사건은 2백 년 전에 시작되어 현대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전쟁과 가장 가혹한 평화도 파괴시키지 못한 당당한 사회에서 펼쳐졌고, 이제는 어떤 전쟁도 평화를 구할 수 없을 문명의 황혼기로 되돌아와 개인의 장에서 다시 펼쳐질 참이었다. - 각주) '2백 년 전에 시작된 사건'은 독립 전쟁을,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전쟁'은 남북 전쟁을, '그 후의 가장 가혹한 평화'는 전쟁은 안 하지만 인종 차별이 존재해 온 시기를, '자존심이 강한 사회'는 남부의 백인 사회를, 마지막 문장은 진 루이즈의 개인적인 것을 나타낸다.(p.173)
그들은 어째서 소름이 돋지 않지? 그들은 어떻게 예배 시간에 듣는 모든 것을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말들을 하고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데 토 나오지도 않나?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는 다른 무엇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껏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은 그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인데. 똑같은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문제인 거야, 그들이 아니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p.234-235)
눈이 멀었거나, 그게 내 모습이다. 나는 눈을 뜬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다. 얼굴만 살짝 봤을 뿐이다. 완전히 눈이 멀었다, 돌처럼...... 스톤 목사. 스톤 목사는 어제 예배에 파수꾼을 세웠다. 그는 내게 파수꾼을 세워 주었어야 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매 정시마다 보이는 것을 공표해 주는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것을 의미한다고, 가운데 줄을 긋고 한쪽에는 이런 정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저런 정의가 있다고,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 줄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나가서 그들에게 그 모든 스물여섯 해는 누가 장난을 치기에는, 그게 얼마나 재미있든 너무 긴 시간이라고 공표해 줄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p.254-255)
"자, 그런데 말이다, 스카웃." 핀치 박사가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남부와는 맞지 않는 어떤 정치 철학이 강요되고 있는데, 남부는 그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우리는 지금 곤경에 처했다는 걸 깨닫고 있단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반복되고 있어. 인간이 인간인 한, 확실히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것 같지 않구나. 정말이지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피를 덜 흘리는 재건이 되기를 바란다."(p.278)
"하나만 물어보자, 하나만.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 말해 봐,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거야?"
"어떻게? 겉만 번지르르한 네가 주민 협의회에 가까이 가지 않길 원해! 아빠가 네 맞은편에 앉아 있든, 영국의 왕이 네 오른편에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네 왼쪽에 앉아 있든 어떻든 상관없어. 나는 네가 남자답게 살기를 원해, 그뿐이야!"(p.329)
"욕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다음과 같은 점을 잘 생각해 봐. 강 건너 애봇 군은 문제가 심각해. 거의 인구의 4분의 3이 니그로야. 유권자의 수는 이제 거의 반반이란다. 거기에 있는 그 큰 사범 학교 때문이지. 저울이 반대쪽으로 기울면 어떻게 될까? 군에 완전한 등기소를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니그로가 투표로 백인을 서서히 밀어내면 결국 군청의 모든 지국에 니그로가 들어가 있을 테니까."(p.342-343)
"저는 아빠가 변호한 그 강간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어요. 아빠는 정의를 사랑해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런데 그건 사건 적요서에 항목별로 열거된 추상적인 정의인 거죠. 그 흑인 청년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정연한 사건 적요서를 좋아하신 거죠. 그 소송 사건이 아빠의 정연한 기질과 충돌한 거예요. 그래서 아빠는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어야 했던 거죠. 그건 아빠에게 있는 강박 충동이에요. 그리고 이제 그게 아빠에게 자업자득이 되어 돌아오는 거고요."(p.350)
"......그런데 진 루이즈, 이 아가씨야,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인간의 심장을 가진, 인간의 결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지. 그것을 깨닫는 게 쉽지 않았으리란 것은 내가 인정한다. 형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형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실수를 하기는 해. 너는 정서적 불구자였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항상 네 답이 곧 아버지의 답일 거라 가정하고 답을 구해 왔지."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인물의 말을 경청했다.
"네가 우연히 지나치다 네 아버지가 그의 양심에, 즉 너의 양심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하는 것을 봤을 때, 너는 그야말로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육체적으로 아팠던 것이지. 네 인생은 생지옥이 되었고. 너는 너 자신을 죽여야만 했는데, 네 아버지가 너를 독립된 실체로서 살아가게 하려고 너를 죽여야만 했던 거야."(p.372-373)
이번에 집에 온 뒤로 줄곧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들을 들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너는 예의 군마(軍馬)에 올라 무조건 그들을 쳐서 쓰러뜨리기는커녕 돌아서 달아났어. 너는 그럼으로써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지, '나는 이 사람들이 행하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까 나는 이들과 상대하지 않아'라고 말이야. 이것아, 그들과 상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거야. 예순 살이 되어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그러면 너는 내 조카가 아닌 괴짜가 되는 거야. 너는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는 여지를 안 주는 편이야, 그들의 생각이 네 생각에 아무리 어리석어도 말이야."(p.375-376)
"좋다, 멜번이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내 말로 바꿔 말해 주지. 친구에게 네가 필요할 때는 친구가 틀렸을 때란다, 진 루이즈, 친구가 옳을 때는 네가 필요 없지."
"무슨 뜻이죠?"
"요즈음 남부에서 살려면 특정한 종류의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뜻이야. 너한테 아직은 그게 없지만, 그 근본이 조금 보이거든. 너는 겸손한 마음이 없어서......"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지혜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그거야. 겸손."(p.383-384)
4.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파수꾼]은 크게 7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부는 분명한 색채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1부는, 진 루이즈 핀치(스카웃)는 매우 독립적이고 뚜렷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뉴욕에서 생활하는데, 2주간의 휴가로 고향 집에 온다. 2부는, 앨라배마 주 메이콤 군에서 핀치 가문이 자리 잡게 된 배경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앞으로 미국 남부의 전통적 세계관과의 갈등을 암시한다. 3부는,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변해버린 마을과 주민 협의회에서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를 보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논란이 되는 내용의 시작이다. 4부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으로 어린 시절에 잘못된 지식으로 겪었던 웃지 못할 일과 현재의 잘못된 상황을 풍자적으로 나열한다. 갈등의 심화로 흑인 운전자에 의해 백인이 사망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5부는, 지역 주민이 가지고 있는 흑인에 관한 편견과 남부의 보수적인 전통에 얽매여 닫힌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대화이다. 이들은 흑인 인권운동 세력을 공산주의로 매도한다. 6부는, 갈등의 최고조로 분노하고 논쟁하고 좌절한다. 7부는, 갈등의 해소와 화해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것 참. 아 이것 참, 그래.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해" - 각주)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미완의 장편 [뤼사앙 뢰방](사후 1894년 출판)의 원고 여백에 남긴 메모. 소설은 추상적인 생각을 나타내기에 앞서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p.264)
하퍼 리는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인권운동과 의견대립이 한창인 시대에 시종일관 빈틈없는 논리로 강력한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진 루이즈 핀치를 주인공으로 과거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현재의 하고 싶은 말을 재치있게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작가는 단 한 권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후에 천문학적인 인세를 받으며 평생을 유유자적하게 산 것으로 오해했다. 글을 읽으면서 [앵무새 죽이기]의 성공 이후에 후속작을 준비하는 그녀가 받았을 심리적인 압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 글을 쓰는 것은 인생의 의미이고 생명을 위해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작가에게 글을 쓰지 않는 고통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정치적 신념으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성숙한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