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제자들 밀리언셀러 클럽 140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노우에 유메히토, 김아영 역, [마법사의 제자들], 황금가지, 2015.

Inoue Yumehito, [MAHOUTSUKAI NO DESHITACHI], 2010.

  책을 읽은 후에 서평이 늦었는데, 일본소설 특유의 가벼움으로 지난여름을 함께한 작품이다. 과체중으로 고민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마르고 허약해서 유행병이 돌면 가장 먼저 병치레를 했다. 매번 고열과 어지러움으로 병원을 가까이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웬만한 병을 다 앓아서 오히려 남과 다른 면역력을 지니게 되어 더 건강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 엉뚱한(?) 상상을 했는데, 악성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때에 내가 가진 면역 체계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MERS)의 유행으로 전국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출간한 이노우에 유메히토의 소설 [마법사의 제자들]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첫인상은 판타지를 연상하게 하는데, 실제 내용은 신종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는 SF이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만, 미국의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와 비슷한 맥락을 보이는데... 유사한 영웅물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는 데서 몇몇은 병을 앓은 후에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흥미롭다.

  어느 신문에선가 쓰기 시작한 명칭이지만 세간에서는 이 신종 전염병을 '용뇌염(龍腦炎)'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류오 대학병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명칭이 널리 퍼져 일본 내에서 거의 고착화된 탓에 세계보건기구는 'dragonviral encephalitis'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채택했다. 직역하면 '드래건바이러스 뇌염'이다.(p.46)

  용뇌염이 발병하면 두통과 함께 높은 발열이 일어난다. 구토가 계속되고 목 근육이 경직되거나 빛을 극도로 눈부시게 느끼거나 환각을 보는 등 여러 의식장애가 나타나고, 길어도 하루, 짧으면 5~6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백신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거의 100퍼센트가 이런 경위를 밟았다.(p.48-49)

  야마나시에 있는 류오 대학병원에서 원내 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으로 <주간 이터니티>의 기자인 나카야 교스케는 취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간다. 병원 측은 빠른 조치로 시설을 격리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상태인데, 그 안에는 입원환자, 외래환자, 방문객, 병원 도우미, 의사, 간호사... 등 대략 450여 명이 격리 중이다. 그러면서 6명, 16명... 점차 늘어가는 희생자의 신원이 알려진다. 이미 병원 입구는 경찰과 취재진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교스케는 기삿거리를 찾아 주변을 수소문하다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약혼자를 찾아온 오치아이 메구미라는 여자를 만나 인터뷰한다. 전날까지 병원에서 약혼자를 만났다는 그녀는 대화 도중에 발병 증상이 나타나고 교스케는 자진 신고로 구급차를 불러 함께 격리된다.

  "지금부터 드릴 말씀을 대부분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실 거라 봅니다. 오치아이 메구미 씨의 염동력, 오키쓰 시게루 씨의 회춘, 나카야 교스케 씨의 투시 능력, 그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 앞으로 제가 드릴 말씀을 믿어 주실 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세 사람에게는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생체 방위 능력이라고 할까요. 방위 시스템 같은 게 갖춰져 있습니다."(p.376-377)

  "최강인 게 최악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 무엇보다 악질인 건 우리가 이 방위 시스템을 일절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거지. 우리들은 체내 박테리아를 무의식적으로 퇴치하고 있어. 선생님들 설명에 따르면 그거랑 같은 것 같아. 우리를 덮쳐 오는 걸 방위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배제해 버리는 거지. 메구미는 자신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태세를 갖출 필요가 전혀 없는 거야. 우리들을 때리려고 팔을 들어 올리면 그 팔뼈가 가루처럼 조각나 버리니까."(p.355)

  보호구를 착용한 이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는... 극도의 공포심... 더욱 뚜렷해지는 증상... 육체적 고통... 열흘간의 의식불명 상태... 의료팀이 연구를 위해 확보한 생존자는 4명이다.

  ① 고바타 고조는 류오 대학에서 근무 중에 가장 먼저 피를 토하고 쓰러진 최초의 감염자이다. 그는 여전히 의식불명이다.

  ② 오키쓰 시게루는 93세 노인으로 고바타 고조가 돌보던 환자이다. 감염 후에 점점 젊어져 20대로 보이게 되고, 유체이탈과 빙의와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된다.

  ③ 오치아이 메구미는 고바타 고조와 약혼한 사이로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자이다. 감염 후에 물질을 마음대로 이동하는 염력과 공중부양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

  ④ 나카야 교스케는 감염 후에 시간과 공간을 투시하여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완벽한 생체 방어 시스템으로 보호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부에서 어떤 위협이 가해지면 신체는 자동으로 방어한다. 가령 이들을 때리려는 사람은 팔이 부러지고, 이들에게 총을 쏜 사람은 총알이 튕겨 나가 쏜 사람이 맞게 된다.

  "역시나 마음은 신체에 깃드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양로시설에서 지낼 때엔 생각한다든가 떠올리는 게 전부 옛날 기억뿐이었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지금이 즐겁다는 생활을 한동안 한 적이 없으니까.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밖엔 하지 않았지. 앞으로의 일 따윈 생각하거나 걱정할 기력도 없었어. 그런데 이렇게 몸이 젊어지고 나니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한 거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엔 급기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려면 젊음이 필요하다는 게지. 이런 사치스러운 불안을 느끼는 것도 회춘한 덕택일세. 고마운 일이지."(p.130)

  보고 싶은 것만이라니, 속이고 있는 게 아닌가. 과거나 미래를 투시할 대상을 고르는 건 할 수 있지만 그 과거나 미래가 어떤 것인지는 볼 때까지 알 수가 없다.

  그 여자아이가 불치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서 생애를 마감하게 될 줄은 투시를 해서 처음 알게 된 일이다. 투시하기 전부터 알던 일이 아닌 것이다. 알고 있었더라면 볼 일도 없었으리라.

  생각해보면 어떤 인간의 미래를 투시하는 일이란 그 인간이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이다. 사람이 가는 길 끝에는 반드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p.230)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이들... 더구나 세상이 믿기 어려운 초능력을 갖게 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하다. 여전히 대학병원의 부속 건물에서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메구미는 바이러스를 병원 밖으로 유출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시게루는 갑자기 젊어져 앞날을 걱정해야 하며... 교스케는 불행한 미래를 보는 것으로 괴로워한다. 병원 밖에서는 이들을 향한 호기심과 증오심이 부풀어 가는데... TV와 매스컴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가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다.

  제목이 왜 '마법사의 제자들'일까? 책을 읽는 동안 어디에도 마법사나 스승은 나오지 않아서 계속해서 가진 의문이다. 출간 타이밍과 연관해서 차라리 제목을 '용뇌염'이나 '드래건 바이러스'라고 했으면 너무 직설적이었을까?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모두가 죽는 상황에서 살아나 특별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설정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마치 앞으로의 시리즈를 기대할 만한 것처럼 작가는 캐릭터와 초능력에 관해서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세밀하고 논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한 권으로 끝나는 아쉬움이 큰데, 혹시라도 깜짝 놀랄만한 후속작으로 제목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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