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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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블록, 이수현 역, [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2015.

Lawrence Block, [HIT MAN], 1998.

  악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와 소설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까? 결국, 독자는 자조적인 판단보다 작가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것은 아닐까?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올림픽의 몸값](은행나무, 2010.)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의 개최를 배경으로 테러하는 범인과 이를 추적하는 경찰의 이야기인데, 마지막에서 부디 범행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쫓는 자의 절실함보다 쫓기는 자의 대의가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로런스 블록의 소설 [살인해드립니다]는 '히트맨'(HIT MAN)이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암살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하드보일드 스릴러이다. 살인청부업자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신출귀몰한 범죄의 트릭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

  말을 탄 사나이 켈러

  켈러의 상담 치료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켈러의 카르마

  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

  켈러의 선택

  현장의 켈러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

  켈러의 은퇴

  뉴욕 맨해튼에서 퀸즈버러브리지가 보이는 1번가, 침실 한 칸짜리 고급 아파트에 사는 켈러는 전화가 오면 기차를 타고 화이트 플레인스 역으로 가서 다시 차를 타고 톤턴 플레이스에 있는 빅토리아풍의 저택으로 간다. 1층에서 도트라는 여성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버저가 울리면 위층으로 올라가 노인을 만난다. 그에게서 이름과 사는 곳이 적힌 인덱스카드와 사진을 건네받으면 곧바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렌터카를 빌린다. 경중에 따라 누가 이것을 대신 준비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진 속 인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 일을 진행한다. 의뢰인이 누구인지? 표적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이것을 알 필요는 없다. 나라의 절반을 날아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면 된다. 킬러 존 폴 켈러가 등장하는 10개의 단편 모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이미 직업 경력이 생겨 있더군. 그게 사람들을 없애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관심이나 소질은 필요가 없더라고. 할 수만 있으면 돼. 처음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두 번째에도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어. 그렇게 스스로를 규정한 후에야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 시작했지. 총, 다른 도구, 무기 없이 발휘하는 기술.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 알아야 할 것들을 말이야.(p.158)

  켈러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해왔고 깔끔한 일 처리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스릴러의 공식(?)... 가령 어린 시절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부모의 복수를 꿈꾸는, 특별한 스승으로부터 고도의 살상 훈련을 받는, 조직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보스의 아들과 문제가 생기는, 누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의도하지 않은 일에 휘말리는, 평소와 다르게 냉정함을 잃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다가 일을 그르치는... 등의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경찰의 추격이나 경쟁자의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고, 살인하고 다니는 주인공을 미화하기 위해 도덕적 딜레마가 없는 일만 골라 처리한다는 권선징악의 영웅 놀이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내용이고? 어떤 재미가 있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다른 의도로 접근한다.

  얼마나 더 할 작정이야.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p.19)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켈러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의 마음을 끈 것은 표지에서 확 두드러져 보인 한 줄의 문구였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내를 죽이기 위해 말을 타고 천 킬로미터를 달렸다."(p.43)

  한 남자가 말을 타고 마을에 달려와서 상황을 살펴보고, 여자를 만나고, 여자와 자고, 그런 다음에 다시 달려나간다? 그런 내용을 영화로 만들었다간 예술영화관에서도 상영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건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 해도......(p.67)

  몇 년 전 일 때문에 갔던 마이애미에서 만난 쿠바인은 항상 2층보다 위에 있는 호텔방을 잡지 말라고 했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급하게 떠나야 할 상황을 생각해보라고. 1층은 아무 문제가 없지. 2층도 문제가 없어. 3층이라면 망할 다리가 부러지겠지."(p.69)

  "보통은 우리 같은 사람을 공정 관리 담당자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분쟁 조정자와 마찬가지이긴 합니다."(p.93)

  켈러는 개를 키울 때 제일 좋은 점은 개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개들은 인간보다 훨씬 훌륭한 청자였다. 상대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나, 혹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는 아닐까, 아니면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 때문에 나를 낮춰 보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개들에게는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개들에게 한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끝났다. 다른 누구에게 전할 리도 없고 싸우다가 그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낼 리도 없었다.(p.156)

  "당신에게는 잘못된 일 같지 않아요. 전 그게 당신 카르마라고 생각해요."

  "운명 같은 거 말인가요?"

  "비슷해요. 카르마는 이번 생애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우기 위해 할 일이에요. 알죠, 우린 여기에 한 번만 오는 게 아니에요. 여러 생애를 살죠."(p.215)

  성숙해져야지.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성숙하게, 만족을 뒤로 미루자. 무엇보다도 전문가다워야 한다.(p.254)

  홈쇼핑 채널 중 하나에서 어떤 여자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우리 둘 다 아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귀고리는 아무리 많아도 넘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죠."(p.220)

  "'사내아이들에게는 보르도 와인, 사나이에게는 포트와인, 그러나 영웅이라면 브랜디를 마셔야지.' 새뮤얼 존슨이 한 말이라네. 조금 잘못 기억했을지도 모르지만."(p.325)

  "켈러는 청부 킬러야."

  "아니야, 켈러는 배신자 킬러야."

  "켈러는 하나 안에 둘, 둘, 두 명의 킬러지......"(p.390)

  여기에는 청부살인과 관련된 10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했을까? 켈러는 시작부터 그만두고 싶어한다. 맛있는 멕시코 식당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소도시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은 충분한데,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부에 가서는 카우보이 영화를 상상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하지만, 직업을 포함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을 수는 없다. 넬슨이라는 이름의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가 생겼다. 상담의에게 하지 못한 말을 개에게는 할 수 있다. 잦은 출장으로 개를 돌보는 도우미를 구했다. 앤드리아라는 여자는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을 한다. 일하다가 보스의 실수를 보스 모르게 처리하고, 아마추어를 상대로 확실한 전문가의 솜씨를 보여준다. 어쩌다 일이 겹치거나 중복되어 곤란한 상황인데, 신중한 결단을 내린다. 때로는 진짜 하고 싶지 않은 살인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사기꾼을 찾아 확실한 복수를 한다. 은퇴하면 취미로 우표를 모을 생각이다.

  이야기는 여유롭게 흘러가다가 매우 급하게 바뀌어 냉혹한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표물을 앞에 두고 머뭇거림이나 한 치의 실수 없이 일을 완수한다. 우연인가? 나비효과인가? 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함축적이면서 상징적이다. 매번 살인하고 여자와 잠자리를 갖지만, 하드보일드답게 한두 줄의 문장으로 넘어간다. 킬러와 개와 여자가 한집에 사는 오묘한 조합이 재미있다. 다른 스릴러와는 다르게 누구를 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죽이느냐의 문제를 다룬다. 시한부 인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살인을 용납할 수 있을까? 켈러는 일을 할 때는 냉혹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감상적이고 순진하다. 그래서 그에게 끌린다. 미국식 언어유희는 흥미롭고...

  - [HIT MAN](1998.)

  - [HIT LIST](2000.)

  - [HIT PARADE](2006.)

  - [HIT and RUN](2008.)

  - [HIT ME](2013.)

  켈러는 주방장이 요리하듯이, 음악가가 악기를 연주하듯이, 소설가가 글을 쓰듯이 자신의 도구를 사용해서 자기의 일을 한다. 청부살인이 다른 전문직처럼 우아하게 보일 정도로 섬세하고 빈틈없이 완벽하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문체와 가벼움이 마음에 드는데, 마치 브루스 윌리스가 킬러로 나오는 코미디 영화 <나인 야드 1, 2>를 보는듯하다. 곳곳에서 주인공의 은퇴를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제부터 시리즈의 시작이다(정말 다행이다). 어느 순간 그의 곁을 떠난 앤드리아와 넬슨이 궁금한데, 후속작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켈러에게도 숨 막히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까? 엘릭시르에서 시리즈를 꾸준히 번역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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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2 - 나선 밀리언셀러 클럽 81
스즈키 코지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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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고지, 김수영 역, [링② 나선], 황금가지, 2015.

Suzuki Koji, [RASEN], 1995.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누가 감히 일본 미스터리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스즈키 고지의 소설 [링② 나선]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떠오른 생각이다. 작가의 바이러스와 유전자에 관한 사전 이해는 문학의 옷을 입고 SF와 호러의 경계에서 [링① 바이러스]를 잇는 또 하나의 걸작을 완성했다. 이것은 흠뻑 빠져드는,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진실을 찾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다. 전작을 발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글쓰기는 아주 매력적이고...

  1편이 주간지 기자의 시각으로 링 바이러스와 야마무라 사다코의 사연을 추적하는 과정이라면, 2편은 법의학 해부의의 시선으로 의문의 질병과 변종 바이러스의 의혹을 풀어가는 구성이다. 1편이 생존을 위해 삭제된 비디오의 내용을 복원하는 것이라면, 2편은 이미 죽은 이가 보내온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1편에서 가즈유키와 류지의 협력이 있었다면, 2편에서는 안도와 미야시타의 합작이다. 1편이 호러의 성격이 강하다면, 2편은 스릴러의 요소가 있고... 이러한 대비가 상당히 흥미롭다.

  '링'

  안도는 그 발음을 확인해 보았다. 영어 RING에는 고리라는 의미의 명사 말고도 울리다, 울다, 알리다, 신호하다 같은 동사 의미가 있다.(p.34)

  천연두(두창)는 백신이 개발되었고 박멸 계획으로 인해 지구 상에서 근절되었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보고된 환자 이래로 전 세계에서 그 발생이 보고된 적이 없으며, 1979년에는 WHO에서 근절되었다는 보고가 발표되었다. 천연두는 사람에게만 감염된다. 그러므로 환자 발생이 없다는 사실은 곧 천연두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마지막 천연두 바이러스는 액체질소 안에 냉동 보존되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연구시설에서 잠들어 있다. 그러니 만약 현재 세계 어딘가에 천연두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어딘가의 연구 시설에서 유출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엄중한 감시 아래 있을 테니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p.51-52)

  K대학 의학부 법의학 교실의 안도 미쓰오는 (1편에서 사망한) 다카야마 류지와 의학부 동기이며, (어젯밤에 죽은) 그의 시신을 맡아 해부한다. 사인은 '좌관동맥 폐색에 의한 심근경색'인데, 인두부에서 궤양을 발견한다. 이것은 마치 천연두 환자의 것과 비슷하다는 소견이 나오고, 혈관 내부에 생긴 육종 등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결과를 얻는다. 의학적인 호기심으로 최근에 같은 증상으로 죽은 사람이 또 있는지 알아보는데... 에이즈처럼 감염되기 어려운 전염병일지 모른다는 가능성, 같은 증상으로 사망 그리고 동시에 사망이라는 특이성을 보고 여기에 뭔가 있음을 짐작한다. 한편 류지의 여자친구이자 제자인 다카노 마이는 그의 방에서 원고를 찾다가 의문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보는데...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이 영상을 본 자는 일주일 뒤 이 시각에 죽을 운명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을 실행하라. 즉, 테이프를 복사해서 새로운 제삼자에게 보여야 한다.'(p.178)

  아사카와가 혼미상태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그는 지금도 계속 자문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주문'이 정말 무엇일까 하고. 이번에야말로 다 풀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답이 슬금슬금 형태를 바꾸어 다가와서 너무나 간단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끝없는 질문. 왜, 왜, 왜, 왜...... 그런데 왜 나는 아직 살아 있지?(p.179)

  출간 후, 4년이라는 세월 때문일까? 작가는 친절하게 1편의 내용을 상세히 요약한다. 아쉽게 1편 후반부의 희망은 2편을 시작하며 전부 무너져 내리지만, 이것을 실망할 틈 없이 곧이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류지의 시신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는 다른 희생자와 다른 차이를 보이고, 그의 DNA는 42개 염기가 반복되어 무슨 암호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세 가지 의문은 몰입감을 더하는데... 첫째, 어떻게 아사카와 가즈유키만 살아남았을까? 비디오를 본 후에 주문을 실행했으나 아내와 딸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왜 주문이 통하지 않았을까? 둘째, 비디오를 본 다카노 마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생사는? 셋째,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여자는 누구인가? 어느 정도 예상을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 가즈유키와 류지가 그랬던 것처럼 안도와 미야시타는 그들이 밟았던 길을 되밟는다.

  "그렇군. 야마무라 사다코와 천연두...... 두 가닥의 끈이 한 가닥으로 엮여서 악마의 비디오테이프가 되었다고 하면, 지금 엮여 있던 실이 풀리고 진화해서 두 가닥의 끈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어. 한 가닥은 물론 야마무라 사다코. 다른 한 가닥은 '링'이지."(p.347)

  "예를 들면, 눈이야. 해부학적으로 너에게 꼬치꼬치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인간의 눈은 끔찍할 정도로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우연히 피부 일부가 각막이나 동공으로 변화해서 시신경이 안구에서 뇌까지 이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 눈이라는 메커니즘이 생겨났기 때문에 물건이 보이게 된 것이 아니야. 그 이전에,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명의 내부에서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런 복잡한 메커니즘이 생겼을 리가 없어. 바다 생물이 육지로 올라온 것도, 파충류가 하늘을 날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러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야."(p.376-377)

  만약에 오늘날 소설이 쓰였다면, 비디오테이프라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CD나 USB의 동영상 파일로 대신할 수 있었을까? 무한한 인터넷망을 이용한 바이러스의 폭발적인 확산이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 전개가 가능하겠지만, 띠 모양의 DNA 구조와 연관해서는 비디오테이프만큼 적절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1편이 공포와 시간의 압박이었다면, 2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허황한 결론이 아닌 과학적이면서 체계적인 사고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그리고 의지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오랫동안 기억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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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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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나오미 글, 아베 사토루 사진, 이은정 역, [도시락의 시간], indigo, 2012.

Abe Naomi, Abe Satoru, [OBENTO NO JIKAN], 2010.

  다들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있으신지?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솔직히 도시락보다는 사진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사진집 한 권을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발소를 찾아가 찍은 사진 모음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오리 조명과 함께 'OO 이발관'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는 나름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국을 돌며 촬영한 프로젝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나도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은, 하나의 개념으로 나만의 사진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일본 전국을 돌면서 직접 만든 도시락 사진을 찍을 거야."(p.64)

  한동안 숙대 입구를 자주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구두 가게였다. 그래, 서울의 대학가에서 구두 가게를 렌즈에 담아보자! 원대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촬영금지였다. 아마추어 사진가가 뭔가를 하기에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남편, 아이들, 친구와 연인이 만들어 주는 도시락, 그리고 그 도시락을 먹는 사람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늘 변함없는 맛, 언제나 같은 모습의 도시락을 만나러 가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 여행 덕분에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과 설렘을 여전히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p.13)

  증류소 직원, 간호사 겸 말 체중 측정 담당, 디자인학과 교수, 해녀, 수타면 장인, 모래찜질 온천 직원, 관광 마차 마부, 원숭이 재주꾼, 데와산잔 신사 음악 연주자, 롯카테이 제과 직원, 아이누 예술인, 사찰 승려... 등. [도시락의 시간]은 39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들이 만들어온 그 날의 도시락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서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준다. 저자의 이름을 보면 대략 짐작하겠지만, 아베 나오미와 아베 사토루는 부부로 글과 사진을 분담해서 작업했다. 이것은 일본 ANA 항공의 기내 잡지 [날개의 왕국]에 연재되었고, 바람대로 전시회와 단행본 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p.39)

  해녀 일은 말이야. 보물찾기하고 비슷해. 우리 딸이 어렸을 때 내가 어디 갔냐고 물으면 "엄마는 바다에 돈을 주우러 갔어요."라고 했어. 근데 그 말이 맞아. 그런 느낌, 알까 몰라?(p.50)

  가끔 집사람이 출근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사실 너무 이른 시간이잖습니까? 그런 날은 회사로 도시락을 갖다 주는데, 아이들도 같이 와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갖다 준 도시락이 특히 더 맛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들어 있나봐요.(p.57)

  취재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는 [날개의 왕국]의 복사본을 보내면 일이 쉽게 진행되지만, 처음에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을 찍을 정도의 도시락이 아니라서...", "왜 도시락인데요?"라는 말에 차분히 설득과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언젠가 반드시 사진집과 사진전으로 발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실현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단 세 장(인물 정면, 도시락, 도시락을 먹는 장면)의 사진을 추리고 목소리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듯하다. 더불어 따뜻한 이야기가 함께하니 도시락이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도시락에 대해서는 감히 무슨 말을 하겠어.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나름 맹세를 했지. 만일 부인님한테 싫은 소리 했다가 도시락 안 싸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 아마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허허.(p.99-100)

  노후를 위한 맛있는 절약(p.110)

  신기하다. 도시락을 통해서 느림의 관계가 시작됐다. 자신의 도시락의 시간을 흔쾌히 또는 수줍게 공개해 주신 분들과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겨났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이것은 어쩌면 '도시락의 힘'인지도 모르겠다.(p.281)

  직장 주변의 환경 때문에, 건강을 이유로, 노후를 위해... 가져온 도시락은 만든이의 정성이라 매번 고맙고 감사하다. (어쩌면 일반적인 일본인의 습성인지 모르지만) 저자는 한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서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만들어 연하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비록 멀리 떨어진 느림의 관계이지만, 결혼과 출산... 등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고 하니 이것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인생, 아기자기하고 예쁜 색깔의 도시락,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는 것에 놀라고... 오랜 시간을 들여 프로젝트를 완성한 저자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아, 나도 누가 맛있는 도시락을 싸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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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맨 그레이맨 시리즈
마크 그리니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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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그리니, 최필원 역, [그레이맨], 펄스, 2015.

Mark Greaney, [THE GRAY MAN], 2009.

  코드명 그레이맨, 코틀랜드 젠트리, 미국인, 36세, 암살 전문가, 한때 CIA에서 일했으나 현재 수배 중, 프리랜서로 활동, 개인적인 윤리와 신념으로 도덕적 딜레마가 없는 케이스만 작업... 북부 이라크의 알 바아지에서 미군의 치누크 헬기가 추락한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그레이맨은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몰려든 알카에다를 저격한다. 신출귀몰한 솜씨로 생존자를 구출하는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마크 그리니의 소설 [그레이맨]은 미국식 액션 스릴러로 마치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본 시리즈'를 보는듯한 기분이다.

  "경께서 그레이맨을 제거하는데 협조해주시면 CSS와의 계약을 현 수준의 세 배까지 늘려드리겠습니다.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동생의 킬러를 잡아 책임을 묻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이죠."(p.30)

  "저희는 아부바커와 그 계약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약서에서 결정적인 허점을 찾아냈어요. 저희는 그 불행한 실수를 부랴부랴 수정했고, 그의 최종 서명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펜만 들면 계약이 체결되고,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운명의 순간에 경의 관리 하에 있는 킬러가 그의 동생을 암살한 겁니다."(p.32)

  같은 시각, 영국의 첼트넘 시큐리티 서비스(CSS)의 경영자인 도널드 피츠로이 경(卿)에게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로랑 그룹의 변호사가 방문한다. 그는 그레이맨의 목숨을 요구하는데, 실제로 피츠로이는 그레이맨의 관리자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정보가 샜는지 모르지만, 매우 파격적이면서 위험한 제안이다. 명예와 신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업계에서 이런 거래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 변호사는 아들 내외와 쌍둥이 손녀를 인질로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배달 팀에게 패키지의 제거를 명령하는데...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틈 없이 작가는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간다.

  "도널드 경, 코트 젠트리의 나침반은 진북眞北을 가리킨 적이 없습니다. 그는 암살자이지만 CIA 소속일 때도 그리고 프리랜서로 뛸 때도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 임무에는 결코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테러리스트, 마피아 두목, 마약 딜러, 죽어 마땅한 놈들만을 제거해왔을 뿐이죠. 코트는 킬러입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그릇된 것들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스스로를 정의의 도구로 여겨왔단 말입니다. 바로 그게 그 친구의 약점입니다. 그를 잡으려면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p.61-62)

  "우린 전 세계 80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난 제3세계 국가 수십 곳의 국가 안보 책임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들은 자국민들과 국가의 적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전문 인력을 갖춰놓고 있습니다... 제3세계 지사들에 연락해보겠습니다. 험소를 뒤져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킬러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반나절이면 회사 전용기로 전부 데려올 수 있어요. 각 팀에겐 똑같은 임무가 내려질 것이고, 그들은 그레이맨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겁니다."

  "콘테스트처럼 말씀이죠?"

  "그렇습니다."(p.73)

  한순간에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그레이맨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로랑 그룹은 나이지리아의 천연가스 채굴권 계약을 앞두고 대통령이 요구한 48시간 안에 그레이맨의 머리를 확보하기 위해 제3세계 정보국 요원을 끌어들인다. 알바니아, 인도네시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보츠와나,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볼리비아... 그리고 한국 등 12개 팀 50여 명 이외에 자사의 인원을 동원 전 유럽을 감시한다. 제거 팀은 100만 달러의 수고비와 함께 그레이맨을 죽이면 2,000만 달러를 보너스로 받게 되는데, 이것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마치 콘테스트처첨... 주인공은 제한된 시간 내에 추적자의 눈을 피해 진실을 찾고 인질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이 상당히 혹독하다.

  김성모는 한국 국가정보원 소속 암살자였다. 그는 국정원 최고의 킬러였다. 아무 지원도 없이 다섯 차례에 걸쳐 북한에 침투해 비밀 작전을 수행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제재 방침을 위반한 북한 인사들을 처단하기 위해 중국에도 일곱 차례나 들어갔었고, 러시아에서는 핵 비밀 제공자들을 암살하기도 했었다. 또한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수정을 필요로 하는 한국인 몇 명도 그의 손에 죽음을 맞았었다. 로랑 그룹은 적지 않은 돈을 써서 서른두 살의 김성모를 용병으로 데려왔다.(p.141)

  "맞습니다, 도널드 경. 사실 우린 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속담이 있죠? 개들과 잠들면 벼룩들과 깨어나게 된다. 우린 아주 오랫동안 많은 개들과 뒹굴고 지내왔습니다. 아부바커는 그 중 최악이죠. 그는 마르크 로랑이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 이후 많은 이가 대륙의 자원에 탐을 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폭군의 파트너가 될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우린 한동안 아부바커를 쥐고 흔들었지만 이젠 입장이 뒤바껴 버렸습니다. 그는 마르크 로랑이 자원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무슨 짓을 벌여왔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간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일이 많이 있었죠. 우린 물러나는 대통령이 계속 침묵을 지켜주길 바라고 있습니다."(p. 243-244)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국정원 요원이 단독으로 사냥에 참여한 것이고 상당한 비중으로 치명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우리의 국가정보원을 국수주의적으로 묘사하고 다른 제3세계의 정보기관처럼 돈을 받고 움직이는 기관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악의 역할인 만큼 차라리 북한의 공작원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다. 외로운 늑대의 싸움은 덫을 피해 서서히 기회를 노리고 있으나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제 남은 선택이 없다.

  이왕 건드리는 거 사전조사로 아프리카 대륙의 독재 권력과 다국적 기업의 음모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추적을 피해 인질을 구해내는 액션 활극으로 되어 있어 기대와 다른(?) 재미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갖은 두 가지 질문은... 첫째, 킬러의 보스는 놔두고 왜 킬러에 집착을 하는가? 둘째, MI5 출신의 보안회사 대표가 다국적 기업에 너무 쉽게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개연성과 논리성의 아쉬움이 있지만, 부분 부분에서는 작가적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의 후속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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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역, [페이스 오프], 황금가지, 2015.

David Baldacci, [FACEOFF], 2014.

  얼마 전 나영석 PD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KBS <1박 2일> 제작 시절에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와의 전화 통화에서 콜라보를 제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것인가? 두 사람은 긍정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갔으나 아쉽게 양측 방송사의 불허로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보면,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주연급 배우를 한자리에 모으기가 절대 쉽지 않았음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글을 쓰는 작가의 경우 출판사와의 계약과 저작권의 문제가 있어서 공동작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셜록 홈즈와 함께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뤼팽이다. 당시에 늘 궁금했던 것은 명탐정 홈즈와 괴도 뤼팽이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 라는 문제였다. 그러다가 결국 [홈즈와 뤼팽의 대결](?)을 읽게 되었는데, 서로 다른 작품의 주인공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이 매우 신기했고, 무엇보다 작가적 자존심이 있을 텐데...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끝까지 호기심을 놓치지 않았다. 결론은... 뤼팽은 범행을 예고하고 신출귀몰하게 값비싼 보석을 훔치지만, 홈즈는 기막힌 솜씨로 단서를 찾아 그를 검거한다. 하지만 뤼팽은 경찰의 이송 도중에 탈출하는 것으로 끝나면서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무승부에 가까운 결말을 끌어낸다.

  전설적인 스릴러 작가들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들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는 설정이 나로선 아주 흥미로웠다. 원래 이런 책은 나오기가 쉽지 않다. 스릴러 작가들은 주거래 출판사와 체결한 계약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에 소속된 작가와 한 팀이 되어 캐릭터들을 합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소설을 쓰면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할지 도저히 결정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3의 출판사가 그 소설을 출판하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고.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 모델, 즉 작가들이 소설을 기부하고, 그 수익금이 협회로 가는 모델만이 이런 협업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실로 평생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을 작품이다.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은 협회 회원들이 기증했고, 모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p.12)

  영미 스릴러의 어벤져스, 스릴러 소설의 가이드북...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페이스 오프]는 현대를 대표하는 20여 명의 스릴러 작가가 참여하여 콜라보 형식으로 엮은 11개의 단편 모음이다. 국내에서는 책을 번역 출간하며 작가 대 작가(캐릭터 대 캐릭터)의 대결 구도로 홍보를 했는데, 실제로는 각각의 주인공이 서로 협력하여 사건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출판 배경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할까? 2004년 10월 9일에 만들어진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는 2007년 결의로 회비를 걷지 않고 협회가 책을 출간하여 그 수익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소속된 작가는 작품(주로 단편)을 기부하거나 편집의 수고를 자원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설은 다음과 같다. 협회에서 낸 첫 책 [스릴러](2006.), [스릴러 2편](2009.), [러브 이즈 머더](2012.), 제프리 디버가 편집한 오디오북 [쇼팽의 원고], 오디오북 [구리 팔찌], 데이비드 모렐과 행크 와그너가 편집한 논픽션 [필독 스릴러 100편], 예비 작가들이 처음으로 쓰고 리 차일드가 편집한 단편 모음 [퍼스트 스릴](2011.)...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데이비드 발다치가 편집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야간 비행

  마이클 코넬리 vs 데니스 루헤인

  해리 보슈 vs 패트릭 켄지

  인 더 닉 오브 타임

  이언 랜킨 vs 피터 제임스

  존 레버스 vs 로이 그레이스

  가스등

  R. L. 스타인 vs 더글라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

  슬래피 복화술사 인형 vs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

  웃는 부처

  M. J. 로즈 vs 리사 가드너

  말라차이 사무엘 vs D. D. 워렌

  팬더를 찾아

  스티브 마티니 vs 린다 페어스타인

  폴 마드리아니 vs 알렉산드라 쿠퍼

  라임과 프레이

  제프리 디버 vs 존 샌드포드

  링컨 라임 vs 루카스 데븐포트

  지옥의 밤

  헤더 그레이엄 vs F. 폴 윌슨

  마이클 퀸 vs 해결사 잭

  정차

  레이몬드 코우리 vs 린우드 바클레이

  션 라일리 vs 글렌 가버

  침묵의 사냥

  존 레스크로아트 vs T. 제커슨 파커

  와이어트 헌트 vs 조 트로나

  악마의 뼈

  스티브 베리 vs 제임스 롤린스

  코튼 말론 vs 그레이 피어스

  대단한 배려

  리 차일드 vs 조셉 핀더

  잭 리처 vs 닉 헬러

  시작부터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라니...^^ 각 단편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와 캐릭터 그리고 작품이 쓰인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는데, 이것은 스릴러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해리 보슈는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의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의 성격상 출장을 갈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보스턴으로 가서 수사하다가 우연히 사립 탐정 패트릭 켄지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한 작가가 처음 몇 페이지를 써서 메일을 보내면, 다른 작가가 뒤를 이어서 쓰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작가마다 개성이 있어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아무튼, 적절한 조화와 역할 분담으로 완성도 높은 긴장을 조성한다.

  여러 작가가 참여한 만큼 다채로운 재미를 보여주는데... 개인의 의뢰로부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해결 사건, <환상특급>의 분위기, 법정 스릴러, 함정과 반전, 판타지 모험, 로드 무비 성격, 액션 활극... 등 사건이나 형식 또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캐릭터뿐만 아니라 보조 또는 파트너 캐릭터가 함께 등장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차려진 밥상의 반찬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기가 부담스러운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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