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링 2 - 나선 ㅣ 밀리언셀러 클럽 81
스즈키 코지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스즈키 고지, 김수영 역, [링② 나선], 황금가지, 2015.
Suzuki Koji, [RASEN], 1995.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누가 감히 일본 미스터리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스즈키 고지의 소설 [링② 나선]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떠오른 생각이다. 작가의 바이러스와 유전자에 관한 사전 이해는 문학의 옷을 입고 SF와 호러의 경계에서 [링① 바이러스]를 잇는 또 하나의 걸작을 완성했다. 이것은 흠뻑 빠져드는,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진실을 찾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다. 전작을 발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글쓰기는 아주 매력적이고...
1편이 주간지 기자의 시각으로 링 바이러스와 야마무라 사다코의 사연을 추적하는 과정이라면, 2편은 법의학 해부의의 시선으로 의문의 질병과 변종 바이러스의 의혹을 풀어가는 구성이다. 1편이 생존을 위해 삭제된 비디오의 내용을 복원하는 것이라면, 2편은 이미 죽은 이가 보내온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1편에서 가즈유키와 류지의 협력이 있었다면, 2편에서는 안도와 미야시타의 합작이다. 1편이 호러의 성격이 강하다면, 2편은 스릴러의 요소가 있고... 이러한 대비가 상당히 흥미롭다.
'링'
안도는 그 발음을 확인해 보았다. 영어 RING에는 고리라는 의미의 명사 말고도 울리다, 울다, 알리다, 신호하다 같은 동사 의미가 있다.(p.34)
천연두(두창)는 백신이 개발되었고 박멸 계획으로 인해 지구 상에서 근절되었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보고된 환자 이래로 전 세계에서 그 발생이 보고된 적이 없으며, 1979년에는 WHO에서 근절되었다는 보고가 발표되었다. 천연두는 사람에게만 감염된다. 그러므로 환자 발생이 없다는 사실은 곧 천연두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마지막 천연두 바이러스는 액체질소 안에 냉동 보존되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연구시설에서 잠들어 있다. 그러니 만약 현재 세계 어딘가에 천연두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어딘가의 연구 시설에서 유출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엄중한 감시 아래 있을 테니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p.51-52)
K대학 의학부 법의학 교실의 안도 미쓰오는 (1편에서 사망한) 다카야마 류지와 의학부 동기이며, (어젯밤에 죽은) 그의 시신을 맡아 해부한다. 사인은 '좌관동맥 폐색에 의한 심근경색'인데, 인두부에서 궤양을 발견한다. 이것은 마치 천연두 환자의 것과 비슷하다는 소견이 나오고, 혈관 내부에 생긴 육종 등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결과를 얻는다. 의학적인 호기심으로 최근에 같은 증상으로 죽은 사람이 또 있는지 알아보는데... 에이즈처럼 감염되기 어려운 전염병일지 모른다는 가능성, 같은 증상으로 사망 그리고 동시에 사망이라는 특이성을 보고 여기에 뭔가 있음을 짐작한다. 한편 류지의 여자친구이자 제자인 다카노 마이는 그의 방에서 원고를 찾다가 의문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보는데...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이 영상을 본 자는 일주일 뒤 이 시각에 죽을 운명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을 실행하라. 즉, 테이프를 복사해서 새로운 제삼자에게 보여야 한다.'(p.178)
아사카와가 혼미상태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그는 지금도 계속 자문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주문'이 정말 무엇일까 하고. 이번에야말로 다 풀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답이 슬금슬금 형태를 바꾸어 다가와서 너무나 간단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끝없는 질문. 왜, 왜, 왜, 왜...... 그런데 왜 나는 아직 살아 있지?(p.179)
출간 후, 4년이라는 세월 때문일까? 작가는 친절하게 1편의 내용을 상세히 요약한다. 아쉽게 1편 후반부의 희망은 2편을 시작하며 전부 무너져 내리지만, 이것을 실망할 틈 없이 곧이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류지의 시신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는 다른 희생자와 다른 차이를 보이고, 그의 DNA는 42개 염기가 반복되어 무슨 암호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세 가지 의문은 몰입감을 더하는데... 첫째, 어떻게 아사카와 가즈유키만 살아남았을까? 비디오를 본 후에 주문을 실행했으나 아내와 딸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왜 주문이 통하지 않았을까? 둘째, 비디오를 본 다카노 마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생사는? 셋째,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여자는 누구인가? 어느 정도 예상을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 가즈유키와 류지가 그랬던 것처럼 안도와 미야시타는 그들이 밟았던 길을 되밟는다.
"그렇군. 야마무라 사다코와 천연두...... 두 가닥의 끈이 한 가닥으로 엮여서 악마의 비디오테이프가 되었다고 하면, 지금 엮여 있던 실이 풀리고 진화해서 두 가닥의 끈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어. 한 가닥은 물론 야마무라 사다코. 다른 한 가닥은 '링'이지."(p.347)
"예를 들면, 눈이야. 해부학적으로 너에게 꼬치꼬치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인간의 눈은 끔찍할 정도로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우연히 피부 일부가 각막이나 동공으로 변화해서 시신경이 안구에서 뇌까지 이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 눈이라는 메커니즘이 생겨났기 때문에 물건이 보이게 된 것이 아니야. 그 이전에,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명의 내부에서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런 복잡한 메커니즘이 생겼을 리가 없어. 바다 생물이 육지로 올라온 것도, 파충류가 하늘을 날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러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야."(p.376-377)
만약에 오늘날 소설이 쓰였다면, 비디오테이프라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CD나 USB의 동영상 파일로 대신할 수 있었을까? 무한한 인터넷망을 이용한 바이러스의 폭발적인 확산이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 전개가 가능하겠지만, 띠 모양의 DNA 구조와 연관해서는 비디오테이프만큼 적절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1편이 공포와 시간의 압박이었다면, 2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허황한 결론이 아닌 과학적이면서 체계적인 사고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그리고 의지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오랫동안 기억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