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아베 나오미 글, 아베 사토루 사진, 이은정 역, [도시락의 시간], indigo, 2012.

Abe Naomi, Abe Satoru, [OBENTO NO JIKAN], 2010.

  다들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있으신지?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솔직히 도시락보다는 사진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사진집 한 권을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발소를 찾아가 찍은 사진 모음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오리 조명과 함께 'OO 이발관'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는 나름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국을 돌며 촬영한 프로젝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나도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은, 하나의 개념으로 나만의 사진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일본 전국을 돌면서 직접 만든 도시락 사진을 찍을 거야."(p.64)

  한동안 숙대 입구를 자주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구두 가게였다. 그래, 서울의 대학가에서 구두 가게를 렌즈에 담아보자! 원대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촬영금지였다. 아마추어 사진가가 뭔가를 하기에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남편, 아이들, 친구와 연인이 만들어 주는 도시락, 그리고 그 도시락을 먹는 사람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늘 변함없는 맛, 언제나 같은 모습의 도시락을 만나러 가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 여행 덕분에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과 설렘을 여전히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p.13)

  증류소 직원, 간호사 겸 말 체중 측정 담당, 디자인학과 교수, 해녀, 수타면 장인, 모래찜질 온천 직원, 관광 마차 마부, 원숭이 재주꾼, 데와산잔 신사 음악 연주자, 롯카테이 제과 직원, 아이누 예술인, 사찰 승려... 등. [도시락의 시간]은 39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들이 만들어온 그 날의 도시락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서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준다. 저자의 이름을 보면 대략 짐작하겠지만, 아베 나오미와 아베 사토루는 부부로 글과 사진을 분담해서 작업했다. 이것은 일본 ANA 항공의 기내 잡지 [날개의 왕국]에 연재되었고, 바람대로 전시회와 단행본 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p.39)

  해녀 일은 말이야. 보물찾기하고 비슷해. 우리 딸이 어렸을 때 내가 어디 갔냐고 물으면 "엄마는 바다에 돈을 주우러 갔어요."라고 했어. 근데 그 말이 맞아. 그런 느낌, 알까 몰라?(p.50)

  가끔 집사람이 출근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사실 너무 이른 시간이잖습니까? 그런 날은 회사로 도시락을 갖다 주는데, 아이들도 같이 와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갖다 준 도시락이 특히 더 맛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들어 있나봐요.(p.57)

  취재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는 [날개의 왕국]의 복사본을 보내면 일이 쉽게 진행되지만, 처음에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을 찍을 정도의 도시락이 아니라서...", "왜 도시락인데요?"라는 말에 차분히 설득과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언젠가 반드시 사진집과 사진전으로 발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실현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단 세 장(인물 정면, 도시락, 도시락을 먹는 장면)의 사진을 추리고 목소리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듯하다. 더불어 따뜻한 이야기가 함께하니 도시락이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도시락에 대해서는 감히 무슨 말을 하겠어.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나름 맹세를 했지. 만일 부인님한테 싫은 소리 했다가 도시락 안 싸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 아마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허허.(p.99-100)

  노후를 위한 맛있는 절약(p.110)

  신기하다. 도시락을 통해서 느림의 관계가 시작됐다. 자신의 도시락의 시간을 흔쾌히 또는 수줍게 공개해 주신 분들과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겨났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이것은 어쩌면 '도시락의 힘'인지도 모르겠다.(p.281)

  직장 주변의 환경 때문에, 건강을 이유로, 노후를 위해... 가져온 도시락은 만든이의 정성이라 매번 고맙고 감사하다. (어쩌면 일반적인 일본인의 습성인지 모르지만) 저자는 한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서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만들어 연하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비록 멀리 떨어진 느림의 관계이지만, 결혼과 출산... 등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고 하니 이것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인생, 아기자기하고 예쁜 색깔의 도시락,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는 것에 놀라고... 오랜 시간을 들여 프로젝트를 완성한 저자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아, 나도 누가 맛있는 도시락을 싸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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