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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레이 셀레스틴, 김은정 역, [액스맨의 재즈], 황금가지, 2015.
Ray Celestin, [THE AXEMAN'S JAZZ], 2014.
영국추리작가협회상
다른 나라의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의 미해결 사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의 여성을 차례로 강간, 살해한 사건으로 이미 살인 공소시효 15년이 지났고, 아직도 범인의 윤곽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에 이러한 범죄가 오늘날 다시 일어난다면, CCTV와 DNA 분석 등의 과학수사를 통해서 충분히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혈액형과 지문 감식 정도의 수사였고, 증거 보존에 관한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재즈 음악을 아주 좋아해. 지옥의 모든 악마를 들어 맹세컨대 내가 말한 시간에 집에서 재즈 밴드가 한창 연주 중이면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 거야. 만약 모두 재즈 연주를 하고 있다면, 음...... 그렇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 한 가지 분명한 건 화요일 밤에 재즈 연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런 자들은 도끼 세례를 받을 거야.(p.16)
[액스맨의 재즈]는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6명을 도끼로 무참히 살해한 미해결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용은 작가적 상상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나 경찰과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도끼 살인마의 편지는 신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서 사건이 발생한 100여 년 전의 현장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타로 카드도 있던가?"
도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장에 손을 뻗고 마이클에게 피 묻은 카드 두 장을 건넸다. 마이클은 카드를 살펴봤다. 정의 카드와 심판 카드였다. 이전 희생자들에게서 발견한 것처럼 이 두 카드는 돈을 많이 들여 손수 그린 것으로 일반적으로 쓰는 카드보다 더 컸다. 강렬하게 빨간색과 자주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테두리는 검정색과 황금색 잉크로 둘렀다. 정의 카드에는 가운을 입은 남자가 왕좌에 앉아서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심판 카드에는 지옥같이 황폐한 풍경 위로 천사가 높이 날고 있고 벌거벗은 한 무리의 죄인들이 땅에서 천사에게 애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보통 카드의 뒷면에는 모두 복잡한 모노크롬 무늬가 있지만, 이 카드는 아주 작은 동물들이 디자인과 얽혀 있었다. 동물들은 서로를 향해 울부짖으며 기하학 양식의 감옥에 갇힌 걸 항의하는 듯했다.(p.34-35)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거나 아니면 희생자로부터 어떤 전리품을 챙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미드 <덱스터>에서 덱스터 모건은 법의 손이 닿지 않는 사이코패스를 대상으로 살인하며 그들의 혈액 표본을 채취해서 보관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도끼 살인마는 범행에 도끼날을 사용하고 시신 위에 두 장의 타로 카드를 남겨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특이한 것은 사건 현장은 모두 안에서 문이 잠긴 밀실 형태를 보인다. 수사는 오리무중이고, 무차별적으로 살인하는 범인은 다음 살인을 예고한다.
뉴올리언스로 돌아가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이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적이고 용서가 없고 서로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의심을 놓지 않는 범죄자와 이민 사회가 넘쳐나는 곳. 하지만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눈부시게 빛나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해서 차별과 악의, 지저분한 거리와 빛바랜 영광에도 불구하고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 홀리기 쉬웠다.(p.47-48)
루카는 이 교도소 마당에 전해 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세계 대전, 1915년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유행성 감기, 스토리빌 지역 폐쇄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흑인 수감자들한테는 어떤 새로운 음악이 도시를 삼킬 만큼 유행하고 있는지 들었다. 헌법 수정 제18조가 통과돼서 금주령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는데, 이해가 충돌하는 화약고 같은 뉴올리언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못 궁금했다.(p.49)
"뉴올리언스, 살기 좋은 대도시, 걱정을 잊은 도시, 초승달 모양의 도시, 미시시피의 파리, 가장 미국 같지 않은 도시. 이 도시에는 왜 이리 많은 이름이 붙었을까요?"
시작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수면보다 약 2미터 낮은 습지에 세워진 도시, 강과 호수 사이에 자리한 도시, 뉴올리언스의 존재는 기적이자 인간의 집요한 본성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도시가 이런 별명을 얻은 이유예요."(p.102-103)
라일리는 뉴올리언스가 만약 사람이라면 늙어 빠진 매춘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지를 덕지덕지 바르고 시샘 어린 미소를 지으며 애처로운 분위기와 자태로 빛바랜 프랑스 실크로 얼굴을 감싼 매춘부. 교태와 장식으로 누추함을 가린 매춘부 말이다.(p.106)
"그것만이 아니야.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도 불법이 됐어. 헤로인도. 이제는 술도 금지하려고 해. 생각해 봐, 여자도 살 수 없고, 술도 대마초도 더 이상 살 수 없다니. 이게 미국이야?"(p.139)
숨겨야 하는 결혼사진은 없었다. 아네트가 임신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그들은 캔자스시티에 가기로 결정했다. 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을 수 있는 도시 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었다. 그들은 길고 먼지 나는 여정에 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중서부 평야를 서로 떨어져서 차에서도 따로 앉고, 승강장도 따로 서고, 역 한 켠에 있는 식당에서도 분리된 공간에 따로 앉아 밥을 먹어야 했다. 여행 내내 아네트는 어지럼증과 더위에 시달렸다.(p.154-155)
"자네가 악마를 쫓고 있다니, 그것도 여기가 제 집인 뉴올리언스 악마를 말이야."(p.174)
하지만 여객선은 뉴욕이나 시카고, LA로 가지 않고, 중서부에 있는 주를 따라가며 대부분 백인들을 위해 연주할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재즈를 악마의 음악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뉴올리언스가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흑인들은 그곳에서 상당히 개인적으로 안전했다. 그런 점에서 루이지애나 주의 다른 지역, 더 나아가 바로 옆 미시시피 주와 비교해 보자면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p.407)
"'오, 루이지애나, 차별 없던 남부의 낙원, 폐허가 된 지금도 그토록 아름다우니 너의 화려했던 그 시절엔 어떠했으랴?'"(p.484)
1919년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된 해이다. 1919년의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는 화려함 뒤에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였는데, 곳곳에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페인계 혼혈인 크리올, 프랑스계 혼혈인 케이준, 아이티인,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시칠리아인, 아시아의 중국인... 등 이민자가 넘쳐나고 마피아 등의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위험하지만, 매력적이라고 해야 할까? 전쟁의 상흔으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신경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정부는 매춘과 마약을 금지하고 심지어 금주령을 계획하고 있었다. 철저한 흑백 분리 정책으로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있었고...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이탈리아인들은 도끼 살인마를 흑인이라고 생각하고, 흑인들은 사악한 백인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다 데이비스는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말단 여직원이다. 그녀는 추리소설 애호가로 탐정이 되기를 원했는데, 실제로 하는 일은 잡다한 서류를 정리하는 것이다. 근무 시간을 피해서 남몰래 도끼 살인마의 정보를 수집한다. 마이클 탤벗 경위는 사건의 책임자이다. 그는 언론과 대중의 비난 속에서 수사를 지휘하는데, 선배 경찰을 밀고한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견제를 당하고 있다. 루카 단드레아는 5년의 실형을 살고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는 카를로 마트랑가의 집안에서 자라나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이 되어 조직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했었다. 연쇄살인은 경찰의 대대적인 압박 수사로 이어져 범죄 소탕의 전과를 올린다. 보스는 경찰보다 먼저 도끼 살인마를 잡아 본보기로 삼고 싶어 한다. 소설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 진행한다.
"있잖아, 아이티에 이런 속담이 있어. 콩플로 플리 포 파세 우앙가."
...
"그러니까 '음모가 주술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야."(p.178)
도끼 살인마의 밤, 도끼 살인마가 살인을 예고한 날에 온 도시는 재즈로 뒤덮인다. 싸구려 선술집으로부터 유명한 나이트클럽에 이르기까지, 평소에는 조용한 가정집에서도 수백 수천 곡의 재즈가 흘러넘친다. 밴드는 악기란 악기는 모두 동원해서 연주하고, 밴드가 없는 곳에는 축음기와 전축이 연주한다. 마치 온 도시가 마법에 걸린 것처럼, 도끼 살인마가 보란 듯이 재즈에 열광한다.
[액스맨의 재즈]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은 책이다. 요즘에 심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어서 집중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었지만, 세 사람 이상이 번갈아가며 서술하는 구조는 다소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들 하나하나의 개인사는 장황한 느낌마저 들게 했는데, 조금 더 간략하게 압축해서 사건에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일어난 미해결 사건을 놓고 쓴 소설이라서 결론이 어떻게 날까? 상당히 궁금했는데, 완벽한 동기 부여와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완성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도 국내를 배경으로 이런 분위기의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