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나카마치 신, 현정수 역, [천계살의], 비채, 2015.

Nakamachi Shin, [TENKEI NO SATSUI(THE APOCALYPTIC FUGUE)], 1982. 2005.

  "크리스마스에 뭐 하세요?"

  우울한 얘기가 될 수 있지만, 모 결혼정보회사의 설문 조사에서 애인이 없는 미혼 남성 10명 중의 8명은 나 홀로 집에 있을 계획이라는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매우 정확한 통계인 것 같다. 지난 크리스마스와 주말 내내 일본 미스터리를 붙잡고 있었으니...;; 연인과 같다고 해야 하나? 나카마치 신의 소설 [천계살의]를 읽었다. [모방살의](비채, 2015.)에 이어서 또 하나의 '살의(殺意) 시리즈'라고 하는데, 이전의 작품을 토대로 한 계단 올라선 서술트릭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가능하면 순서대로 읽으시길...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있어서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매번 자극적인 소재와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와의 두뇌 싸움을 벌이는데, 이제는 '탐정이 곧 범인이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미 드러난 공식을 가지고 다시 독자를 속일 수 있을까? 서술트릭을 쓰는 작가가 가진 선입견과 눈속임이라는 무기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했던 우려가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차라리 맞서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기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

  "네. 어떤 작가가, 이 경우에는 제가 되겠군요. 제가 쓴 '문제편'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고 추리하게 한 뒤에 '해결편'을 집필하도록 하는 겁니다. 즉 범인 관점으로 쓴 '문제편' 바로 다음에 상대 작가의-탐정 역이라고 불러야 할까요-'해결편'을 싣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눈으로 쓴 '해결편'을 다시 싣는 구성입니다. 뭐, 두 사람의 지혜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죠."(p.11)

  추리소설 작가 야규 데루히코는 월간 <추리세계>의 편집부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일명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이라는, 한 작가가 문제편을 집필하면 다른 작가가 원고를 읽고 해답편을 쓰는 방식이다. 그는 먼저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라는 문제편을 전달하며 해답편은 탤런트 겸 소설가인 오노미치 유키코가 써주길 요청한다.

  천계(天啓)처럼 어떤 생각이 라이조의 머리를 스친 것은, 그로부터 반 시간 뒤였다.(p.54)

  잘못된 배달. 신문 홍보원의 해코지. 봉투 좌측 상단의 타버린 자국......(p.56)

  사소한 말다툼으로 집을 나간 아내는 친구의 집에 들러 온천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편지를 쓰고 사라진다. 며칠 뒤 싸늘한 죽임으로 발견되었는데, 편지의 배달부터 아내의 행적까지 평소와는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가령 그녀가 초밥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고 하는...

  아스코는 예전부터 본격추리의 참맛은 밀실이라든가 알리바이 트릭의 재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곡예와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야규에게도 한 적이 있다.(p.59-60)

  아스코는, 야규의 원고가 바라는 수준은 아니지만, 릴레이 소설의 문제편으로는 적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기억? 실제로 여섯 달 전에 있었던 의문의 살인 사건을 원고지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이었다. 인명과 지명... 모두 신문에 난 기사와 일치하는데, 작가는 마치 미궁에 빠진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대로는 잡지에 실을 수 없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하지만, 곧이어 야규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그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진범이 누구인지 알았던 것일까? 하필이면 유키코를 지명해서 해답편을 써달라고 했을까? 둘은 어떤 관계인가? 아스코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찾아간다.

  당신은 추리소설의 프로이니 일부러 어려운 말을 사용하자면, '머니퓰레이트(manipulate)'라고 하던가요? 어쨌든 이 원고는 대단한 마력을 가졌습니다.(p.299)

  저는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이든 필포츠의 1922년 작품)에 대한 에도가와 란포의 평을 좋아하는데, 암기할 정도로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란포는 읽을 때마다 만화경처럼 양상이 변해가는 소설이다, 라며 칭찬했습니다. 조금 지나친 찬사인지도 모릅니다만, 야규 씨의 이 소설은 읽는 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참으로 신비한 작품입니다.(p.299)

  인생은 자기가 개척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추리소설에 관한 열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몰입하는 작가의 인생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에게 추리소설을 쓰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을까? 아니면 신이 정해 놓은 궤도였을까? 여기에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작가가 정해놓은 대로 움직인다. 물이 파인 길을 따라 흘러가듯이 작가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서 차례로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어떤 암시로 체면에 걸린 듯한 기분인데, 자칫 책 안의 문제편 소설과 책의 내용이 뒤섞이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책 안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착각하는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극단적인 한계에 다가서며 수없이 고치고 고쳐 쓰는 과정은 서술트릭의 진수를 보게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번역의 과정에서 문제편과 책의 페이지를 맞추었더라면, 현실과 허구가 정확히 일치하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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