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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매튜 매서, 공보경 역, [사이버 스톰], 황금가지, 2016.
Matthew Mather, [CYBERSTORM], 2013.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특정 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들춰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안전해지는 것일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더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펼치면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한 마디로 대박이다. 그동안 SF와 재난이라는 소재는 많이 경험하지 못했지만, 영화의 단골 메뉴라서 아주 익숙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푹 빠져서 읽었다. 사이버 세상의 문제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 이상이고, 여기에 대응하는 인간은 생존마저 힘겹고 처절하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려면 물리적인 영토를 지배해야만 가능했어. 그런데 그 고리를 최초로 부순 게 뭔지 알아?"
"사이버?"
...
"아니. 우주 시스템이야. 1957년도에 스푸트니크 호가 우주로 발사된 이래로 우주 공간은 정보를 수집하고 세계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군사적 거점 역할을 해왔어."
"그게 사이버랑 무슨 상관이야?"
"그 고리를 두 번째로 부순 게 바로 사이버거든. 사이버는 우주를 대체하는 새로운 군사적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어. 역할은 똑같아.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p.44-45)
가상의 미래가 아닌 현재,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 첼시의 어느 아파트, 세계 최고의 도시는 인터넷이 지배하고 있다. 은행 거래를 포함해서 건물의 냉난방은 물론이고... 편리함과 저렴함을 이유로 예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작동하던 것을 이제는 컴퓨터가 정보통신으로 제어한다. 사회 시스템은 최첨단 기술의 집약 적용으로 완전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술함이 있다. 보안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여전히 위협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마음먹고 해코지를 해온다면, 이것을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인다. 단순히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새로운 사이버 무기를 개발 중이고 아무도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뿐이야. 핵무기라고 하면 일단은 너부터도 겁을 내지. 히로시마나 비키니 섬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건은 잘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데 사이버 무기라고 하면 파괴력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양국의 정부 기관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사회기반시설을 사이버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거라고. 크리스마스트리에 지팡이 모양 사탕을 매달 듯이 가볍게 최후의 심판일을 도래시키는 거야."(p.46-47)
마이클 미첼은 양육과 진로의 문제로 아내와 가벼운 다툼이 있었지만, 연휴를 맞이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데, 다소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면 옆집에 사는 찰스 멈포드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데,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을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주의이다. 그래서 지하 창고에 비상 발전기와 생필품을 저장해 두고 있다. 12월 23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500대 기업의 경우, 취약점 목록은 언제든 수만 개를 상회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백만 개의 취약점들을 손보지만 해커는 구멍 하나만 있으면 파고들어 올 수 있으니 애초에 해커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기업이든 정부든 모든 조직은 미지의 취약점이나 제로데이에 대비해 이미 알려진 취약점의 목록을 계속 업데이트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공격 백터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방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p.66)
제1일, 처음 시작은 조류 독감 주의 경보였다. 잠시 뒤에 인터넷이 마비되고, 기상청은 뉴욕에 폭풍우를 예고한다.
제2일, 건물의 전기가 끊기고 난방을 멈춘다. 도시에 식량, 난방, 응급의료 서비스에 비상이 걸린다. 사건 사고 소식과 함께 미국은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라 생화학 공격과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는 소문이 돈다. 눈보라가 몰아친다.
제3일, 자동차에서 휘발유를 빼내어 발전기 연료로 사용한다. 아파트에 남은 주민은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제4일, 약탈자에 의해 창고가 털린다. 피난민 몇 명을 받아들인다.
제5일, 물이 나오지 않는다. 건물에 남은 사람과 물품 목록을 작성한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일어나고 하수처리장이 기능을 상실한다.
제6일, 러시아와 중국의 협공이라는 소문이 돈다. 병원의 폐쇄로 환자 이송 자원봉사를 한다. 물과 음식의 부족으로 사람들은 식료품점을 약탈한다.
제7일, 침입자를 잡는다.
제8일, 도시는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인다. 교도소는 형 집행을 일시 정지하고 가벼운 형벌의 범죄자를 석방한다. 침입자를 경찰에 넘기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제9일, 몇몇 건물에 화재가 일어나 도시가 불타오른다.
제10일, 아파트 1층 로비를 임시 병원으로 하고 화상자를 돕는다. 도시는 배설물과 쓰레기 때문에 악취로 뒤덮인다.
제11일, 이틀 치 식량만 남아, 식량을 나누고 개별 생존으로 전환한다. 침입자가 석방된다.
...
제16일, 씻지 못해 몸에 이가 생긴다. 도시에 콜레라가 유행한다.
제17일, 2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등유 난로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제18일, 침입자가 다시 쳐들어온다.
제19일, 군용 수송기로 비상 식료품을 투하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가지려고 싸움을 일으킨다.
제20일, 대통령 특별담화, 맨해튼 섬은 격리된다.
제21일, 이란의 야시야니 해킹 그룹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발표를 한다.
...
제23일, 눈을 녹여 물을 사용하지만, 배고픔으로 사람들은 쥐를 잡아먹는다.
제25일, 탈진.
제26일, 피난민들이 아파트로 들어오려고 해서 총을 쏴서 쫓아낸다.
제27일, 인육을 먹는 사람이 생긴다.
...
"꼭 그렇지도 않아. 여긴 지구상에서 인터넷이 제일 잘 연결된 나라야. 인터넷을 통해 모든 곳에 접속이 가능해. 반면에 중국에서는 발전소며 상수도 시설 대부분이 스위치, 레버 같은 수동 장비로 작동되지."
"우린 기본적으로 자유로이 인터넷에 접속을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다른 나라들은 인터넷에 대한 접근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니까. 우리가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 건 사실이야.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단 위험에 훨씬 덜 노출이 돼 있어."(p.162)
"우아한 퇴보라는 말로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현재 시대의 방법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과거의 방법으로 돌아갈 길도 없다는 뜻이야."
"예를 들면?"
"이번에 선적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물류 시스템이 한 예지. 예전에 큰 회사들은 한 도시 안에 십여 개의 지역 창고를 둬서 각각 저장과 분배를 할 수 있게 했어.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중앙 창고 몇 개만 두고 주문을 받자마자 바로바로 배송을 한단 말이야. 창고에는 거의 물건이 쌓이질 않아."
"공급망이 망가졌을 때 지역 창고에 물품이 남아 있지 않은 게 문제다?"(p.214)
"이런 짓을 벌이는 자를 반드시 추적해서 잡는다는 걸 알려줘야 돼요. 그러려면 우선 보안을 강화해야겠죠. 나라 안팎으로요. 겁이 나서 똥을 지리게 만들어줘야죠."
로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공포를 무기로 쓰자고? 공포에 기반을 둔 전쟁 억제는 냉전 시대의 유물이야. 우리가 겁이 나니까 상대를 겁에 질리게 만들자, 그런 계획인 거야? 공포에 기반을 둔 사회는 권력이 한곳에 몰리게 되어 있어."(p.219)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자유도 없다!"
로리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우린 테러리스트가 두려워서, 정부가 우리의 위치,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도록 허용하고 있죠. 사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게 내버려두고 있고요."(p.239)
"개인의 이메일과 모든 기록, 하고 있는 일, 다니는 모든 장소를 다 들여다볼 권리를 정부에게 주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진 거 아십니까?"
"몰랐습니다."
"정부가 돌격용 자동 소총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을 두겠다는 기미만 보여도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겼다고 발광을 하죠. 그런데 이 법은 동의도 얻지 않고 개인이 하는 모든 활동을, 살짝 훔쳐보는 것도 아니고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주는 겁니다." 로리는 한층 더 목청을 높여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저는 개인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유는 시민적 자유를 의미하고, 시민적 자유의 토대는 사생활의 보호입니다.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건 시민적 자유를 못 누린다는 것이고, 이는 자유롭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정부가 전 국민의 지문을 채취하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p.240)
"정부가 그 정보를 어디에 쓰겠느냐가 바로 문제인 겁니다. 이 나라 곳곳에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용의자로 취급받는 게 좋습니까? 정부가 그쪽의 개인 정보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고 정말 믿어요? 지금까지 발생한 최대의 데이터 누출 사고는 정부가 보유한 개인 정보 누출 사고였습니다. 악당들은 항상 정부 데이터를 털죠. 사기업 정보를 훔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사생활 보호가 되질 않죠."(p.241)
"우리 조상들은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르망디 해변을 급습했는데, 후손인 우리는 두렵다는 이유로, 조상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겁니다. 로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우리를 차례로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척 씨가 말한 것처럼 우린 어떤 개인적인 위험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우리를 범죄 용의자로 취급할 권리를 갖도록 허용해 버리죠. 두려움 때문에 자유를 포기하는 겁니다."(p.242)
"사회를 대상으로 게임 이론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보면, 범죄자라는 요소를 포함시킬 때 사회가 더 강력해져."
"시뮬레이션?"
"범죄자는 사회를 향상시켜. 사회 기관과 네트워크를 강하게 만들어 약점을 없애주는 거지"(p.283)
"이렇게 생각해 봐. 나한테는 불법적인 일이 너한테는 합법적인 일일 수도 있어. 우리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거나, 아니면 네 도덕적 기준이 네가 살고 있는 사회의 법과 다르다거나."
"그게 어떤 식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데?"
"사회가 진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당시에 노예제도는 합법이었으니까 그가 노예를 부린다고 해서 그를 범죄자라고 부를 수는 없어. 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그는 범죄자지. 인도에서 소금법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던 간디도 당시에 범죄자 취급을 받았어. 두 사람 다 지금은 영웅이잖아. 범죄자는 사회의 경계선을 밀어내는데 도움이 돼."(p.284)
"그렇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전에 우리가 논의했던 주장과 연결이 됩니다. 사생활 보호가 시민적 자유의 토대라는 주장 말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사이버 공간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고,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도 개인적 자유를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면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사이버 공간에 늘 정보의 흔적이 남게 되죠."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완벽하게 안정적인 인터넷은 모퉁이마다, 집집마다 설치된 감시 카메라처럼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녹화한다. 오히려 감시 카메라보다도 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인터넷상에서의 상호 작용을 전부 완벽하게 기록하므로 누구든 그 정보를 확보한 자는 우리의 생각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가 있는 것이다.(p.370)
현대화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받침대 역할을 하는 다리 몇 개를 쓰러뜨리면 전체 시스템이 멈추고 만다. 도시들은 복잡한 시스템에 의존해 늘 완벽하게 작동하지만,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도시 사람들은 급속도로 죽어간다.
시스템 몇 개를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해 당장 복구가 불가능해진다. 응급 구호 서비스에도 과부하가 가해지는데, 그로 인해 그 전 시대의 기술이나 시스템으로 내려앉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모두 정체되고 마비되어버린다.
정치인과 군대는 핵무기라는 끔찍한 위험을 안고서, 기존의 적을 억제하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교전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이버 무기에 관해서는 전문 지식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교전 규칙도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p.523)
[사이버 스톰]은 눈보라와 함께 찾아온 사이버상의 문제가 현실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미국 드라마 한 시즌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일자별로 한 회가 끝나는 느낌이다. 나름의 반전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있고... 무엇보다 처음에는 이웃과 동료를 챙기고 자원봉사를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배고픔과 질병 그리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논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겨울의 눈보라와는 다르게 전기와 인터넷으로 제어되는 세상에서 사이버 테러는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공황으로 몰아넣는다. 점차 사회 시스템은 망가지고 국가는 무기력하다. 등장하는 인물 간의 대화는 공포 정치의 무력감을,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에 관해서, 사회 진화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테러 방지와 범죄자 색출을 위한 무분별한 개인 정보 이용과 사생활 보호 사이의 합의점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전 국민의 지문 등록이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또 다른 법령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지나치게 통제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사이버 테러를 막기 위한 총체적인 점검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잘 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