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던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9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프레드 바르가스, 양영란 역, [트라이던트], 비채, 2016.

Fred Vargas, [SOUS LES VENTS DE NEPTUNE], 2004.

CWA 인터내셔널 대거상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프랑스에서는 추리 소설의 여제로 불리는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트라이던트]를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읽은 프랑스 소설이고, 일본 미스터리나 영미 스릴러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확실한 매력을 보여준다. 트라이던트는 말 그대로 긴 손잡이 끝에 세 개의 날이 붙어있는 삼지창을 의미하는데, 고대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기로서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넵튠)이 사용한 세발작살이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 사건 중에는 몇 가지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 있는데, 뾰족하고 날카로운 흉기로 연달아 세 번 찔린 희생자가 발견된다. 현장에서 만취 상태로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용의자가 체포되고... 세월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로 누구도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특유의 직관으로 유사성을 찾아 연쇄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십수 년에 걸쳐 홀로 수사하는 형사가 있다.

  그렇지만 진술을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담스베르그의 그 애매한 직관이 대부분의 경우 대단히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신통력이 있기에 논리를 뛰어넘어 그렇게 정확하게 들어맞힐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아담스베르그는 승진을 거듭하여 바로 지금 이 자리, 파리 13구 강력계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엉뚱하고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아담스베르그 서장 자신은 이 신통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신통력이라는 말 대신 그저 인간, 인생이라고만 말할 뿐이었다.(p.12)

  장 바티스트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파리 13구 강력계의 책임자이다. 엉뚱하고 다분히 몽상가적인 기질을 보이지만, 남다른 직관으로 매번 사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스릴러는 강력반 반장을 주인공으로 상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누비며 범인을 추적하는 데 반해 여기에서는 서장이라는 직책으로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파트너보다는 보좌관과 부하 직원이 있고, 업무 협조와 함께 대외적인 활동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독자는 사건 해결의 과정을 좀 더 큰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야간에 산책하며 오랫동안 걷는 것을 좋아하고, 평소의 차분함과는 다르게 불의 앞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상대를 압도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여느 스릴러와 마찬가지로 여자관계에서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는 어리숙함을 드러낸다. 형사 아담스베르그가 등장하는 시리즈 중에서 여섯 번째 작품이다.

  술기운에 근육이 굳어지자 아담스베르그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다. 바다의 신 넵튠이라는 존재로 인하여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떠올라 온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침입자, 무시무시한 그 괴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절대로 쳐부술 수 없는 도도한 그 살인자를 그는 '세발작살'이라고 명명했다. 삼십 년 전,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난공불락의 살인자. 십사 년 동안 그가 죽어라고 추격했으며 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번번이 놓쳐버린 민첩한 살인자. 그는 달렸고 달리다가 넘어졌으며, 넘어지면 일어나서 다시 달렸다.(p.35)

  몸의 두려움과 통증은 바다의 신 넵튠의 등장을 미리 직감한 것일까? 캐나다 퀘벡으로 DNA 연수를 앞두고 아담스베르그는 어린 소녀가 칼로 세 번 찔린 채 살해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접한다. 30년 전의 사건...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 두 살 터울의 동생은 세발작살 살인마에 의해 살인 용의자로 누명을 쓴다. 그 후로도 계속된 살인... 그는 동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십사 년 동안 살인마의 뒤를 쫓았지만, 법의 울타리와 권력의 그늘에서 매번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십육 년 전에 사건에서 손을 떼었는데, 이유는 살인마의 사망 때문이다. 이미 무덤에 묻혀 저세상 사람이 되었는데, 같은 방식의 살인 사건이라니... 죽은 살인마의 귀환인가?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주인공의 동생을 의심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모방 범죄를 예상하기도 하고, 죽음을 가장했던 살인마의 등장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능성은 호기심과 집중력을 끌어올리는데...

  "내가 이 상처들의 깊이며 상처들 간의 거리 따위를 재보지 않았을 것 같은가? 난 훤히 다 외우고 있다네. 다른 점, 깊이, 형태, 벌어진 정도 등 전부 다 알고 있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네. 퓔장스 판사는 보통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지. 그자는 항상 똑같은 무기로 살인을 할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네. 그자는 막강한 사람이야. 그런데 좌우지간 세발작살을 가지고 살인을 하지. 그건 그자의 상징이야.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일종의 왕 홀笏이라는 말일세."(p.77)

  부와 권력을 지니고 세상의 존경을 함께 받는 자가 왜 세발작살을 들고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 사건은 홀수 해에 일어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희생된다. 모두 세 번 찔린 것과 같은 치명적인 상처가 있고... 그런데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동생이 살인 누명을 썼다면, 이번에는 아담스베르그가 살인자로 몰리게 된다. 캐나다 경찰의 추적과 프랑스 경찰의 감시 아래에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동화도 있습니까?" 트라벨만은 시동을 걸며 되물었다. "야만적인 [빨간모자], 어린아이를 죽이는 [백설공주], 식인귀가 등장하는 [엄지 왕자]......"

  ...

  "암요. 도처에 살인사건이 난무하죠. 파란 수염 같은 인물은 연쇄 살인마잖아요. 저는 [파란 수염]에서 열쇠에 묻은 핏자국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대목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문지르고 또 문질러서 겨우 없앴나 하면 어느새 다시 나타나죠. 죄의식으로 인한 오점 같다고나 할까요.(p.87)

  "때가 되면, 그자들을 볼 필요도 없을 테지. 목소리도 필요 없고,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의심할 필요도 없단 말이야. 범죄 현장에 가서 땀 한 방울만 채취해 오면 자기 집에 자빠져 있던 범인 놈을 족집게로 콕 집어내듯 잡아올 수 있겠지. 그런 다음엔 놈의 치수대로 만든 상자 안에 가두어버리면 그만이지."(p.199)

  "그렇지. 때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마음이 안 좋을 때 제일 자주 나뭇가지에 걸리곤 하지. 자넨 그 악마 때문에라도 나뭇가지들을 피해야 하네. 자넨 얼음이 얼기를 기다려서 강을 건너선 안 되지. 내 말 알아듣겠나? 모든 걸 밖으로 던져버리고 언덕을 기어올라서라도 꽉 붙잡고 쓰러지지 말아야 하네."(p.237)

  "그다음엔 새로 들어온 가족들이 유령을 짜-증-나-게 만들죠. 왜 그런지 아세요? 이 사람들이 가구를 옮긴다. 벽장을 치운다. 낡은 살림은 버린다. 다락도 말끔하게 정리한다. 이러면서 유령의 영역을 마구 훼손하기 때문이죠. 요컨대 유령의 은신처를 모두 빼앗아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가 유령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요."(p.244)

  "중요한 건 드러난 단서를 읽을 때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짜증나게 만들고, 숨을 곳을 막아버리고, 원죄를 드러나게 하라."(p.245)

  "극단적인 상황인 건 확실해요. 강력계에서 서장님에 대해서 저마다 떠들어대는 것 때문에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서장님은 고독한 산책가이고, 몽상에 잠겼다가 불현듯 먹이를 덮치는 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그런 소문들 말이에요. 그게 독특한 건 사실이지만 저는 거기서 또 다른 면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서장님은 내적인 확신에 따라 행동하신다는 거죠. 사고의 자율성이라고나 할까요. 아니, 다른 사람들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드러나지 않는 고집 같은 거라고 해도 좋겠네요."(p.347-348)

  모친 살해. 범행에 쓰인 도구는 세발작살. 모르당의 말이 부메랑처럼 다시 되돌아왔다. 원죄가 발생하는 거죠. 최초의 살인이 일어납니다. 유령이 등장하게끔 짜인 그런 범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p.438)

  개성 있는 뚜렷한 성격으로 역할이 잘 분담된 등장인물과 함께 범인은 누구이고,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과정을 밝히는 것은 오락적인 재미가 있다. 사건의 동기 또한 신화와 연결하여 그만의 의식을 치르는 과정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다음 희생을 막고 범인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건조한(?) 하드보일드 서스펜스와는 다르게 은유와 상징으로 덧입은 관념적인 언어의 사용은 길을 멀리 돌아가는 기분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에서 이것이 사건의 해결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특히 프랑스와 퀘벡 지역의 언어 사용의 차이, 이름의 어원을 밝히는 과정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데, 앞뒤 구별 없이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라서 초반부는 살짝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을 순서대로 읽은 사람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주인공 아담스베르그의 일생을 지배한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였는데, 전작에서는 과거의 상처와 세발작살 살인마에 관한 어떤 언급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 연인 카미유와의 사연도 알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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