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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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권남희 역, [후와후와], 비채, 2016.

Murakami Haruki, Anzai Mizumaru, [FUWA FUWA], 1998.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소설은 물론이고, 수필집, 여행기, 스크랩북, 심지어 기묘한 이야기를 모아 엮은 기담집을 읽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후와후와]라는 제목의 동화집이다. '후와후와'는 일본어로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푹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 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유명 소설가가 쓴 동화는 어떤 재미가 있을까? 예쁜 책이 마음에 든다.

  나는 온 세상 고양이를 다 좋아하지만,

  지상에 사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 중에서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

  책의 출간 배경은, 1998년 직물회사 NUNO는 문화 사업의 목적으로 반짝반짝(키라키라), 와글와글(자와자와), 폭신폭신(후와후와)... 등 직물을 표현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주제로 여섯 권의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유명 작가와 사진가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택한 단어는 '후와후와'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에 관한 추억을 짤막하게 적고 있는데, 정말 후와후와한 기분이다.

  이미 이전에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수필집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비채, 2013.),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비채, 2012.),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비채, 2013.)에서 오하시 아유미의 동판화와 함께 공동작업을 했던 작품을 보아서 그림이 들어간 동화는 매우 편안하게 다가온다. 참고로 안자이 미즈마루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빵가게 재습격],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등 하루키의 소설 곳곳에서 맹활약하는 '와타나베 노보루'가 그의 본명이라고 한다. 두 작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나는 그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털에

  손을 뻗어, 통통한 목덜미며

  골이 동그래진 차가운 귀 옆을, 가만가만

  같은 리듬으로 쓰다듬어주다가

  가르릉거리는 고양이 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일본만큼 고양이가 잘 어울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늙고 폭신폭신한 털을 가진 암고양이 단쓰, 어느 오후에 햇살이 쏟아지는 툇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며 함께 뒹구는 소년은 마치 고양이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고양이의 털, 고양이의 숨결, 고양이의 시간... 평화로운 일상인데, 나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걸까? '단쓰'는 원래 털이 촘촘하고 아주 폭신폭신하면서 무늬가 복잡하고 아름다운 중국의 고급 양탄자이다. 고양이답지 않은 이상한 이름이다.

  그리고 제법 많은 것을 고양이에게 배웠다.

  생명체에게 한결같이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행복이란 따스하고 보드라우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든가.

  생명의 소중함과 행복의 의미는 교훈적이다. 형제가 없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고양이와 함께 놀고, 고양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추억은 자전적인 글과 그림으로 되살아난다. 나도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 같이 살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길을 가다가 우연이라도 집사로 간택 받고 싶은 마음인데, 이왕이면 세월의 흐름을 고려해서 어린 고양이였으면 한다. 그러면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가 될 때까지 사랑할 텐데...

  나는 손가락 끝으로 복잡한 무늬를 더듬으며

  갓 만들어진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생명의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폭신폭신하고 보드라운 감촉은 아주 오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고, 서로를 탐미하는 연인의 모습 같기도 하다. 동화라고 하지만, 내게는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느껴진다. 짧아서 아쉬운 그림 동화 [후와후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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