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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트리베니언, 최필원 역, [카티야의 여름], 펄스, 2016.
Trevanian, [THE SUMMER OF KATYA], 1983.
대중의 시선은... 드라마는 익숙한 것을, 영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의 차이인데, 굳이 시간하고 돈을 들여 찾아가 익숙한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이다. 천편일률적인 TV 애정극이 꾸준히 인기인 것을 보면 그럴듯한 얘기인듯싶다. 그렇다면 소설은...? 개인적인 견해로 예전의 글이 연극의 느낌이라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이다. 어떤 소설가는 머릿속의 영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는데, 익숙함과 예측 불가함 사이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것 같다.
여름 별장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과 사고는 스릴러의 단골 소재이다. 특별히 영웅적이지 않더라도 나름의 매력을 지닌 주인공에게 낯선 여인이 다가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여기에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주어진다면... 익숙하면서도, 또 빠져드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대전(大戰) 발발 직전의 마지막 여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꿈같았던 완벽한 날씨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는 새파란 하늘, 산들바람 부는 연보라빛 저녁, 새소리와 노란 햇살이 열어주는 아침. 이탈리아에서부터 스코틀랜드까지, 베를린에서부터 내 고향 바쓰 피레네 산맥까지, 유럽 전역이 한동안 그런 이례적인 화사한 날씨를 누렸다.(p.4)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여름, 1914년 8월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했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아니 포르테로 강한 소리를 내지르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는 오케스트라처럼, 대자연은 고지를 사이에 두고 진창에서 벌이는 4년간의 끔찍한 전쟁을 화창함으로 예견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아름답고 우아하고 쓸쓸하다.
트리베니언은 로드니 윌리엄 휘태커의 필명이다. 1938년 살리 레방, 저자는 우리에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돌아와 고향에서 의사로 살다가 24년 전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치열한 인생의 여정에서 뒤늦게 사반세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살리에서의 첫 여름을 기록하는데, 거기에는 카티야가 있다.
내가 카티야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아주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이곳 강변 공원의 한 고목 아래 앉아 노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명상을 가장한 백일몽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길게 자란 잔디를 헤치고 다가오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밀짚모자 밑에서 내 눈이 가늘어졌다. 백일몽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녀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당한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p.16)
장 마르크 몽장은 바스크 지방의 출신으로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잠시 파시의 정신병원에 몸담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이제는 살리에 있는 그로 박사의 여름 진료소에서 일한다. 같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쌍둥이 남동생을 치료해 달라고 찾아온 여인은 걸음걸이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한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할까? 그날 이후 둘은 아주 가까워지는데, 몽장은 치료를 핑계로 찾아가 카티야와 차를 마시고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애틋하고 낭만적이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얼굴의 모든 부분이 쏙 닮아 있었다. 도톰한 입술, 도드라진 이마와 광대뼈, 단단해 보이는 턱, 숱 많은 밤색 머리. 거의 판박이였지만 성별의 차이 때문인지 그 느낌은 매우 달랐다. 같은 이목구비였지만 그녀에게는 당당한 아름다움을, 그에게는 연약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주었다. 그녀는 우아했지만 그는 가식적으로 보였다. 박정한 비평가라면 그녀는 조금 지나치고, 그는 조금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을지도 몰랐다. 그 닮음 안의 차이는 그들의 눈을 통해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길고 검은 속눈썹과 옅은 회색을 띠는 아몬드 모양의 눈, 모든 게 똑같았지만 묘하게도 정반대의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차갑고 불가해한 느낌만이 풍겨 나올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빛을 흡수했고, 그의 눈은 반사시켰다. 그녀의 눈은 다리였고, 그의 눈은 장벽이었다.(p.26-27)
"카티야? 캐서린을 러시아어로 한 거죠? 하지만 당신은 러시아인 같아 보이지 않아요."
"러시아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름도 캐서린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무시하고 내게 오르탕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너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카티야로 바꿔버렸죠."
"이름을 바꿨다고요? 법적 절차를 밟았나요?"
"아뇨,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걸요. 오르탕스라고 부르면 반응을 안 했어요. 카티야라고 부를 때까지 아무것도 안 했죠."(p.40)
카티야와 폴은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이다. 하지만 몽장의 눈에 비친 그들의 인상은 그의 감정과 함께 매우 상반되어 보이는데, 성별이 다른 것처럼 우아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데, 역경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냐마는... 폴은 몽장과 카티야의 친밀한 만남을 반대하고 나선다. 그녀 또한 뭔가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이고...
파리 사교계의 명망 있는 집안이 모든 걸 팽개치고 시골 마을로 내려오게 된 사연, 마을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쉽게 열리지 않는 연인의 마음, 방해자...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맞아요." 그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폴의 주장을 믿어주는 척하면서 나도 거짓말을 해온 것이죠. 우리 세 식구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진실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p.241)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고 진실을 찾아갈수록... 상처는 드러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시작은 낭만적이고 대화는 재기발랄했지만, 결국 과거의 상흔은 발목을 잡는데... 하지만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처럼 우아한 스릴러가 또 있을까? 마지막 장면의 심리적 전이는 정말 강렬하고 압권이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한여름에 그곳에서 카티야를 만난다면, 남자라면 누구나 몽장하고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그것이 남자의 욕심이고 어리석음일지라도... 올해 만난 최고의 심리 스릴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