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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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 문희경 역, [바퀴벌레], 비채, 2016.

Jo Nesbo, [KAKERLAKKENE](COCKROACHES), 1998.

  노르웨이의 작가 요 네스뵈의 형사 해리 홀레가 등장하는 시리즈 중에서(지금까지 열 권이 쓰였다고 한다) 두 번째인 [바퀴벌레]이다. 서늘한 기운의 북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라서 여름보다는 겨울이 먼저 연상되는데... 이번에는 1월의 시간이지만, 오슬로가 아닌 태국의 방콕에서 저위도의 무더위를 묘사하고 있어 현재의 계절하고 잘 어울린다. 특히 먼저 출간한 시리즈에서 보았던 주인공의 원숙함과는 다르게 초반부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매번 시리즈가 새로 나올 때마다 책의 제목을 유심히 살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제목이 소설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브레스트](비채, 2013.)에서는 진홍가슴새의 겨울나기 속성을, [박쥐](비채, 2014.)에서는 생태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박쥐의 속성을, [레오파드](비채, 2012.)에서는... 그래서 이 시리즈를 잘 아는 사람하고 책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면, [스노우맨](비채, 2012.)은 바다표범의 생물학적 속성을 언급하고 있어서 제목을 '바다표범'으로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어쨌든, [바퀴벌레]는 까맣고 동그란 벌레의 어떤 속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갈지 처음부터 기대가 된다.

  통신과에서 온 봉투를 열어보니 암호화된 팩스를 해독한 서류에 '일급기밀' 인장이 찍혀 있고, 그 안의 내용은 책상에 흩어진 문서에 커피를 쏟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짧은 메시지에는 상상의 여지가 많았지만 기본적인 요지는 이랬다. 주태국 노르웨이 대사 아틀레 몰네스가 방콕의 사창가에서 등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되었다.(p.22)

  "물론이오. 이번 작전은 외무부를 대표해서 내가 책임집니다. 잘 아시겠지만 다소 민감한 사건이라 태국 경찰과 긴밀히 공조해야 합니다. 대사관이 연루된 사건이오. 우리 쪽에 약간의 재량권이, 외교관 면책 특권 같은 것이 있기는 해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국제 사건과 관련해서 수사 능력도 있고 경험도 있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파견하고 싶군요."(p.27)

  주태국 노르웨이 대사가 방콕의 사창가에서 등에 칼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다. 그는 현 총리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맹 관계로 외무부에서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언론 보도와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원한다. 사건 해결을 위한 태국 경찰과의 공조 수사를 위해 국제 사건의 경험이 있는 수사관을 파견하기로 하는데,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온 해리 홀레를 지명한다. 서른셋에서 서른넷 정도의 나이, 192cm의 장신에 짧은 금발 머리 형사는 근무가 없으면 온종일 술독에 빠져있다. 알코올 중독자로 위태한 생활을 하는 그는 2년 전에 있었던 여동생 쇠스의 성폭행 사건 재수사를 조건으로 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해리는 어스름 속에서 무언가 싱크대에서 움직이면서 더듬이 두 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보았다. 바퀴벌레 한 마리. 엄지만 한 크기이고 등에는 주황색 줄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생긴 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바퀴벌레는 종류가 3천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누가 다가오는 진동을 듣고 숨어버려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면 적어도 열 마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바퀴벌레는 무게가 얼마나 될까? 10그램? 금 간 곳이나 테이블 뒤에 백 마리 넘게 숨어 있다면 방 안에 있는 바퀴벌레가 적어도 1킬로그램은 된다는 뜻이다. 해리는 몸을 떨었다. 자기보다는 바퀴벌레들이 더 두려워할 거라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때로는 술이 해롭기보다는 '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p.113)

  "흠, 소아성애자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낮고 성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자신에게 확신이 없고 성인의 성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실패한 기분에 휩싸이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욕구를 해결할 때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성폭행범 자신이 어릴 때 성적으로 학대당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지... 수치심은 영리하게도 위장술의 대가를 만들거든. 소아성애자들은 대부분 일생동안 성적 취향을 남에게 숨기는 데 도통한 사람들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경찰이 잡아들이는 성폭행범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뿐이야."

  "한 놈을 잡으면 열이 있다."(p.146)

  해리는 미국계 혼혈 태국 경찰 리즈 크럼리 경위의 팀에 합류한다. 수사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행하는데... 보존된 현장에서 직접 시신을 살펴보고 모텔 주인을 만나 청취를 한다. 대사관에서 부대사를 면담하고 죽은 대사의 미망인을 찾아간다. 당일 통화 목록을 조사하고 운전기사와 최초 발견자를 심문한다. 아동성애, 동남아 마약조직, 도박, 사채 빚... 서서히 피해자의 행적이 드러나고 하나둘 용의자가 물망에 오른다.

  "네, 그래도 때로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을 책임지는 편이 더 쉬운 것 같아요.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을 보살펴야 해요, 해리. 산 사람들요. 어쨌든 그런 책임감이 우리를 이끌어주죠."

  책임감. 작년에 해리가 묻어두려던 것이 있다면 바로 책임감이었다. 산 사람을 위해서든 죽은 사람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릴 뿐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아니, 책임감이 어떻게 그를 이끌어주는지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일에 대해서 토르후스가 옳았는지도, 어쩌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은 해리의 동기는 그리 고상하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어리석은 야망에 사로잡혀 사건을 미제로 남기지 않고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혈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건 파일에 '해결' 도장을 찍는 일이, 상대가 누구든 잡아넣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돌아왔을 때 신문 헤드라인과 시끌벅적한 칭찬에 과연, 조금이라도 진심이 담겨 있었을까? 쇠스의 사건을 돌려받기 위해 무엇이든, 누구든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단지 핑계였을까? 그에게 '성공'하는 것이 아주, 아주 많이 중요하다는 것도.(p.213)

  "대신 그들은 뭐든 파헤칠 가능성이 가장 적어 보이는 인물을 골랐어요. 닥핀 토르후스가 조사를 마치고 완벽한 후보를 찾았죠. 절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사람. 해리 홀레는 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 완벽한 후보였겠죠. 밤이면 맥주 상자 앞에 쭈그려 앉아 있고 낮에는 숙취로 조느라 여념이 없을 테니까. 만약 누가 의문을 표하면 해리 홀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사한 사건을 해결하고 추천을 많이 받았다는 구실을 대서 자기네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모자라면 PAS 묄레르가 보증했고, 그야말로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떠넘기면 되니까."(p.315-316)

  이런저런 사연과 이유로 오슬로에서 술에 찌들어 살던 형사는 방콕에서 물만 마실 뿐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것이 어떤 책임감이든 아니면 사건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이든 그는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이면에는 정치적인 음모가 함께 있었으니... 애초에 주정꾼이 선택된 이유로부터... 정치권은 그들 나름의 국가적 안녕을 위해 진실보다는 조용한 해결을 원하고 있다. 심지어 수사를 중단하고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제한된 시간의 압박 속에서 그는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왜 해리 홀레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지? 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왜 주변에 친구가 없는지? 왜 악에 대항하면서 점점 악에 물들어가는지? ... 나온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읽어갈 때마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작은 그림이 모여서 큰 그림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다. 바퀴벌레에 관한 좀 더 명확한 비유와 사건의 연관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의 매력과 특유의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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