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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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아사트, 한정아 역, [다음 사람을 죽여라], 비채, 2017.

Federico Axat, [LA ULTIMA SALIDA(KILL THE NEXT ONE)], 2016.

  어떤 이는 꿈과 희망을... 다른 어떤 이는 가족에 관한 메시지를 쓰고 싶어 하겠지만, 페데리코 아사트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첫 문장부터 독자를 매혹하는...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을 때는 제목과 함께 첫 문장을 유심히 살핀다. 제목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상상하고, 처음 한두 줄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읽고 또 읽는다.

  테드 매케이가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끈질기게.(p.10)

  [다음 사람을 죽여라](KILL THE NEXT ONE)라는 제목에서 연쇄살인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 주인공을 떠올릴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첫 문장인데, 작품성이나 문학성을 뒤로하고라도 이 얼마나 강렬한 시작인가! 테드는 아내와 두 딸을 디즈니랜드로 여행 보내고,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방문을 잠근다. 브라우닝 권총을 장전하여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누군가 끈질기게 초인종을 누른다.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받아 결국 자살하지 못한다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지만, 여기에는 유쾌함보다 진중함이 있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p.12)

  그는 결심의 실행을 잠시 미루고 밖을 내다본다. 낯선 방문자는 이미 그가 하려던 일을 알고 있고, 그것을 말리거나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단지 대상을 바꾸어서 누군가를 죽여주면, 다른 누군가가 와서 대신 죽여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이것은 법망을 빠져나간 범죄자를 심판하는 일이고, 균열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살보다는 타살이 남은 가족에게 그나마 덜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원자를 뽑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방식은 가장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를 뽑을 수 있는데, 문제는 효과가 가장 적은 것으로 판명됐다는 거죠. 애석하게도요. 우리의 대의명분에 동조하고 도와주는 정신과 의사들이 있어요. 그들이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알려줘요. 우리, 그러니까 의사와 다른 조직원들이 환자의 비밀을 지킬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어 약간의 재량권을 우리 자신에게 부여했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강요하진 않아요. 내가 당신 집 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냥 찾아가서 제안하는 거예요. 후보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요. 당신 경우에는 여기까지 들어오는 게 좀 더 극적이긴 했죠. 난 당신이...... 그러니까 내가 너무 늦게 왔나 하고 생각했어요."(p.26-27)

  사흘의 기간, 청부 살인... 나를 죽이는 대신에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죽인다. 다음 사슬의 연결고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테드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두 명을 살해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죽이러 오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그냥 자살을 실행하면 될 것을... 그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시종일관 궁금증을 유발하는 두 가지... 첫 번째는, 테드는 왜 자살을 결심했을까? 두 번째는, 긴박한 순간에 그를 찾아온 사람은 누구인가? 뭔가 얽히고설킨 미스터리는 중반부터 심리 스릴러로 변모한다. 정신과 병동을 배경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자아를 찾는 과정은 아주 극적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서술트릭... 연쇄살인의 과정은 스티븐 킹의 단편 [행복한 결혼 생활](굿 메리지)이 연상되기도 한다. 꿈과 현실, 망상과 기억 속에서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뭔가 색다른 분위기의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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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도 부럽지 않은 똑딱이 카메라 - 전면개정판
문철진 지음 / 미디어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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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진, [DSLR도 부럽지 않은 똑딱이 카메라], 미디어샘, 2014.

  누군가는 이미 경험한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이북(eBook)으로 읽은 첫 번째 책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으로 212ppi의 해상도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저런 기능 없이 오직 300dpi의 해상도를 선택할 것인가? 한동안 최근에 나온 <크레마 사운드>와 이전에 출시한 <크레마 카르타>를 사이에 두고 결정 장애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어쨌든, 지난주에 다 큰 조카 녀석이 작년 말에 사놓고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크레마 카르타>를 던져주고 갔다. 그것도 케이스와 함께...ㅋㅋ 그동안 모아 두었던 이북을 드디어 펼쳐볼 수 있다는 기대가 마구 몰려온다.

  와이파이 접속과 함께 인터넷 서점에 보관된 책을 전부 내려받았다. 프론트 라이트(Front-Light) 기능으로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이것을 켜면, 이잉크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북치고는 배터리 소모가 빠르다. 느린 로딩 속도와 주기적으로 잔상 제거를 해야 하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눈이 편안하게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장점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문철진의 [DSLR도 부럽지 않은 똑딱이 카메라]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서 선택한 책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사람이다."

  "'무엇으로 찍어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라."

  나는 2006년에 코닥에서 나온 똑딱이 카메라를 처음 구매했다. 광각 단렌즈와 표준 줌렌즈 2개의 눈을 가진 특별한 녀석으로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008년에 올림푸스에서 나온 DSLR 카메라를 사서 실제로 촬영한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카메라가 무엇인지? 화각이 무엇인지? 사진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것을 깨우쳐준 고마운 녀석이다. 하지만 역시 화질이나 촬영의 편의성(휴대성이 아닌) 때문에 손을 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사진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제가 묻습니다. "카메라를 바꾸면 사진이 좋아질까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비싼 카메라를 샀는데 왜 사진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찍을 확률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능이 좋으니 사진도 달라지겠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똑딱이의 가장 큰 장점은 휴대성입니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언제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부피나 무게 때문에 늘 가지고 다닐 수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자주 사진을 찍어야 사진 실력도 느는 법입니다.

  똑딱이로 찍으면 얼마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면서 또다시 깨달은 것은 역시 사진은 사람이 찍는 것이고, 화질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의 7할은 구도이고, 여기에 이야기가 담겨 있으면 더 좋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따라서 해보는 것이 도움된다. 구성이나 패턴을 연출하고, 입체감이나 원근감을 살려 보라. 창의적인 시각도 중요하고... 이해가 쉬운 설명과 함께 보여주는 예제 사진은 실제로 유용하다.

  저자는 특별한 비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똑딱이 카메라의 특성을 잘 살린 촬영의 기본을 설명하고 있다. 역시 기본에 충실해야 뭐가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가 찍은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여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함께 들어가야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는듯하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처음 구매했던 똑딱이를 들고 나가 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서평을 쓰면서 꼭 빼놓지 않는 것은 인용문과 페이지 숫자이다. 그런데 이북은 종이 책하고 페이지가 달라서(볼 수 있는 법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뭔가 섭섭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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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이삭문고 2
엄광용 지음 / 산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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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산하, 2006.

  작년, 2016년은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이고, 작고 60주년의 해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이것을 기념하여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이중섭 1916~1956> 전시회를 했다.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지만, 6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4개월간의 전시는 나에게 무척 짧았나 보다. 이런저런 바쁨과 게으름으로 관람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쉬움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은 해가 바뀐 어느 날 저녁, 폐지 수거함에 빈 상자를 버리러 갔다가 우연히 주운 책이다. 표지에 뚜렷이 적힌 1010**학번과 박**이라는 이름, 아마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느 학생이 읽은 책이었나 보다. 날름 집어와 읽기 시작했다.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 부농의 가정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지병을 앓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다. 누구와 어울리기보다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소를 좋아했던 소년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평양 외가로 가서 종로공립보통학교에 다닌다. 졸업 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는데, 여기에서 미술 교사로 화가 임용련과 백남순 부부를 만난다. 당시 임용련은 보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학 미술학부에서 유학하고, 백남순은 일본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둘이 결혼하고 귀국해서 오산고보에 부임한 것이다. 이들 부부의 가르침은 이중섭에게 미술에 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두 선생의 권유로 프랑스 유학을 하려 했지만, 이미 일본에서 형과 사촌들이 유학하고 있어서 중섭의 어머니는 먼 곳으로 가기보다는 일본으로 유학을 원했다. 1935년 도쿄에 있는 데이코쿠미술학교에 입학, 1936년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예술 전문과정인 분카가쿠잉으로 학교를 옮긴다. 동방의 루오, 조르즈 루오는 프랑스 화단에서 이름을 떨치던 화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그린 연작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중섭의 그림은 루오의 그림처럼 선이 굵고 힘찬 율동으로 꿈틀거려 동료들은 그를 동방의 루오라고 불렀다. 그리고 여기에서 2년 후배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난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유럽의 전쟁으로 유학의 길이 막히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격변기 속에서 1945년 원산에서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아내의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꾼다. 다음 해에 첫아들이 태어나지만, 곧 죽는다. 아버지는 아들의 관에 복숭아를 쥔 어린이를 그린 그림 여러 점을 눈물과 함께 묻는다. 1947년 아들 태현이 태어나고, 1949년 아들 태성이 태어난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이중섭에게 정치색이 짙은 선전물을 그릴 것을 요구한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집안의 가계를 책임지던 형 이중석이 행방불명된다. 참혹한 전쟁의 틈에서 이중섭은 그동안 그린 그림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와 피난민 생활을 한다.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종이와 물감을 사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담배를 싸고 있는 은박지에 못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친다.(p.119)

  1951년 따뜻한 남쪽 제주도 서귀포로 잠시 건너간다. 1952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으나 극심한 생활고로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인 송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중섭은 1953년 어렵게 배편을 구해 일본으로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일주일 만에 돌아오는데,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리움을 담아 편지와 엽서 그림을 보내기 시작한다.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미국문화원의 책임자 맥타가트가 은박지 그림 3점을 구매하여 미국 뉴욕 모던아트뮤지엄에 기증한다. 헤어진 가족의 그리움... 그림은 팔리지만, 고독과 외로움은 극에 달하고 이것을 달래려고 술을 입에 달고 산다. 고된 생활고와 거식증은 정신질환을 의심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1956년 영양실조와 급성 간염으로 서울 적십자병원 내과에 입원하고, 한 달가량이 지난 9월 6일에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영안실에 3일간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이것을 알게 된 친구들의 도움으로 화장되어 뼈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일부는 일본에 있는 아내 이남덕에게 보내진다.

  몇 년 전, 국내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에서 이중섭이 1953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화 <황소>가 35억 6천만 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마치 생전의 고흐가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그가 남긴 유작이 다른 대우를 받는 것처럼, 이중섭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우리의 뼈아픈 역사와 함께한 천재 화가의 말년은 생활고와 고독한 예술혼으로 4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바라던 프랑스 유학을 할 수 있었더라면, 가족하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고된 인생길에 남긴 작품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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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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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유키코, 김은모 역,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한스미디어, 2013.

Mari Yukiko, [SATUJINKI FUJIKO NO SHOUDOU], 2011.

  마리 유키코의 소설 [골든애플](비채, 2015.)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단순히 국내 번역이 빠르다는 이유로 원작도 그러려니 하는 착각 속에서 소설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을 읽었다. 다시 말해 작가가 쓴 작품을 순서대로 읽으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거꾸로 읽게 된 셈이다...;; 한동안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함과 따뜻함을 많이 느꼈는데, 이 책은, 역시 일본소설은 이래야 제맛이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짜릿함과 섬뜩함이 있다. 잠시 잊었던 전율이 되살아나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설은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다. 여자는 '살인귀 후지코'라고 불렸다. 적어도 열다섯 명을 참살한 살인귀.(p.5)

  처음에 이 소설에는 '밀랍인형, 톱밥인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즉,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귀여운 아이돌이 사실은 만들어진 밀랍인형이고 그 속에는 톱밥이 채워져 있다는 악의적인 제목이기도 한 것이다.(p.7)

  딸은 엄마를 그대로 닮는 것일까? 유전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삶의 굴곡이나 어떤 인생의 굴레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며 살게 되는 것일까? 열한 살, 초등학교 5학년인 모리사와 유키코는 남들만큼 살지만, 경제관념이 없는 부모 때문에 급식비를 내지 못하거나 속옷을 챙겨입지 못해서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사랑과 관심,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그런데 그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네 일생은 생지옥이야.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발밑에는 분명 지옥으로 통하는 구멍이 뚫려 있겠지. ......네 엄마랑 똑같아. 너도 네 엄마랑 똑같이 살게 될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난 엄마랑은 달라!

  -똑같아.(p.44)

  목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지만, 일가족 피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모 집에서 살게 된 후지코는 언론과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동정의 대상이 된다. 이때 영악한 생존 본능이 작동한다. 그녀는 지난날과 같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것을 적절히 이용한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비정상으로 깨우친 요령으로 자기를 포장하여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엄마처럼 졸업하기 전에 임신하고, 남자친구의 고향 집으로 가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토록 싫어한 엄마를 닮고 있다.

  어른은 정말로 어리숙하다.

  머리가 좋지 않아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얼굴이 못나도 요령만 있으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렇다. 이런 나도 요령만으로 학생회 임원 정도는 될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후지코는 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p.131)

  우정이란 결국 개의 서열 매기기다. 주종관계다. 어느 한쪽이 종으로 돌아서야 비로소 관계가 형성된다. 후지코는 기꺼이 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가치'도 주장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p.168)

  "괜찮다니까 그러네. 전혀 걱정할 거 없어. 들키지만 않으면 돼. 들키지만 않으면 '나쁜 짓'이 아니거든. 잘 숨기면 돼. 잘 숨기려면 토막 내는 게 제일이지. 그럼 설령 시체의 일부가 발견된다 해도 실제로 죽은 시간이나 유야가 죽였다는 증거는 절대 밝혀지지 않아.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겠지."(p.214)

  시끄러 이 할망구야! 뭐야, 그 낯짝은! 완전히 좀비잖아! 당신 상판대기를 보고 있기만 해도 열불이 나. 그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다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후지코는 '그 낯짝'이 찬장 유리문에 비친 자신이라는 걸 알고 등골이 오싹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쑥 들어간 볼, 빠진 앞니, 굽은 등...... 엄마?

  말도 안 돼,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p.244)

  "뭐니, 그 얼굴은."

  "이모!"

  "넌 역시 네 엄마를 빼닮았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 얼굴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네가 네 엄마 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자식은 결국 부모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란다."(p.291-292)

  "네 엄마도 인심 좋게 뭐든지 남에게 줬지. 빚을 내서라도 남에게 퍼줬어. 자기를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거든. 자신감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단다."

  "나는 달라!"

  "아니, 똑같아. 아무리 얼굴을 바꿔도 똑같아. 같은 업을 타고났어. 업만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단다."(p.313)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의 망령은 늘 발목을 잡아당긴다. 무능한 남자를 만나서 다시 돈 많은 새로운 남자를 찾고, 생김새를 바꾸기 위해 성형을 하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남에게 퍼주는 외로운 삶... 딸의 급식비를 밀리고, 무관심한 것까지 전부 엄마의 모습이다. 후지코의 딸은 엄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번역가는 '이야미스'라는 단어로 이 소설을 설명한다. '싫음, 불쾌함'이라는 뜻의 일본어 '이야'와 미스터리 소설의 '미스터리'를 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 불쾌한 뒷맛이 남는 미스터리라고 한다. 사건이나 사건의 해결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딸의 모습을 통해 어두운 분위기가 전체를 지배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매력 있다. [고백]의 미나토 가나에나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의 누마타 마호카루가 연상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음으로 [골든애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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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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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드레아스 빙켈만, 전은경 역, [물의 감옥], 비채, 2016.

Andreas Winkelmann, [WASSERMANNS ZORN], 2012.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소설 [물의 감옥]은 2016년, 올해의 마지막 서평이다. 일본 미스터리와 영미 스릴러를 좋아해서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독일의 스릴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였는데, 강력반의 형사는 나라의 구분 없이 모두 이혼을 했고 여자관계에 문제가 있다. 알코올 중독 같은 잘못된 습관을 지니고 있고, 이것의 원인이 되는 씁쓸한 과거사가 있다. 여기에서 범인은 기상천외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를 물속으로 유인하여 익사하게 하는 파렴치함을 보인다. 거기에 대응하는 홍일점인 여자 형사가 등장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단 3일간의 이야기이다.

  "슈티플러, 과거가 당신을 잡으러 왔어."(p.15)

  "아니, 지금 말을 들어야 하는 쪽은 당신이야.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슈티플러. 그 여자는 지금 수영하는 중이다. 수영하고 있다고. 당신이 제때 발견하지 못하면 그 여자 인생의 마지막 수영이 될 거다. 그 여자가 당신이 어디 있는지 묻더군. 그래서 당신은 너무 겁쟁이라서 도와줄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내 말이 맞지? 여전히 빌어먹을 만큼 겁쟁이인가?"(p.15-16)

  일본은 섬나라의 특성으로 초등학교 시절에 수영 강습을 꼭 한다고 한다. 유럽의 선진국은 생활 체육의 발달로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즐기는듯하고...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물은 물론이고 높은 곳도 싫어한다. 그냥 평평한 땅이 좋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죽임의 과정에서 익사는 몸부림치며 폐 안으로 물이 차 들어가 배가 터질 정도로 부풀어 오르며 극심한 고통을 맞는다고 한다. 작가는 이것을 노린 것일까? 혈흔이 낭자한 끔찍함 대신에 고요한 호숫가에서 여자를 조용히 끌어안아 물속으로 들어가는 살인을 쾌감으로 묘사하여 독자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시신의 배에는 형사 에릭 슈티플러의 이름이 인두로 새겨져 있다. 엽기적이면서 예고적인 살인, 범인과 형사는 과거에 어떤 악연이 있었을까?

  "물의 정령. 슈티플러, 난 물의 정령이야."(p.44)

  그는 여자가 지금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것도 어쩌면 아주 멋진 꿈이었을지도. 하지만 다음 장면은 냉기와 물뿐이잖아? 물이 입과 코와 귀로 들어오고, 사방에 물뿐이잖아. 그러면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공포가 밀려오지.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위아래나 좌우도 가늠이 안 돼. 모든 게 똑같아. 죽음의 공포는 공황상태로 변하지.

  공포에 질리면 빠져죽는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야.(p.175-176)

  에릭 슈티플러에게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가 아는 여자의 익사를 예고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는데, 범인은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듯이 그에게 예고하고 범행을 저지른다. 마누엘라 슈페를링은 갓 경위로 임명되어 4주간의 실습을 위해 배속되었다. 슈티플러의 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뭔가 살인사건 전담팀에서 소외된 기분이다. 라비니아 볼프는 3년 전에 동료를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여전히 그때의 범인이 자기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누군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프랑크 엥글러는 기면증이 있는 환자로 택시 운전을 한다. 라비니아를 태워준 인연으로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물의 정령으로 불리는 범인...

  소설은 이렇게 네 사람, 아니 범인까지 다섯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장면 전환이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초반에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기본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읽기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뭔가 극적인 장면마다 전환이 이루어져 짧은 호흡이 아쉽게 느껴지고... 장을 좀 더 긴 호흡으로 편집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바람이 있다. 저자는 깊고 고요한 호수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통해서 한 남자의 잘못된 집착을 표현하고, 더불어 부패한 경찰 관료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력반의 마초적인 문화와 끼리끼리인 인습을 드러내며 신임 여형사의 활약을 돋보이게 한다.

  물의 감옥에 가두어 서서히 빠져 죽게 만드는 물의 정령,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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