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마리 유키코, 김은모 역,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한스미디어, 2013.

Mari Yukiko, [SATUJINKI FUJIKO NO SHOUDOU], 2011.

  마리 유키코의 소설 [골든애플](비채, 2015.)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단순히 국내 번역이 빠르다는 이유로 원작도 그러려니 하는 착각 속에서 소설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을 읽었다. 다시 말해 작가가 쓴 작품을 순서대로 읽으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거꾸로 읽게 된 셈이다...;; 한동안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함과 따뜻함을 많이 느꼈는데, 이 책은, 역시 일본소설은 이래야 제맛이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짜릿함과 섬뜩함이 있다. 잠시 잊었던 전율이 되살아나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설은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다. 여자는 '살인귀 후지코'라고 불렸다. 적어도 열다섯 명을 참살한 살인귀.(p.5)

  처음에 이 소설에는 '밀랍인형, 톱밥인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즉,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귀여운 아이돌이 사실은 만들어진 밀랍인형이고 그 속에는 톱밥이 채워져 있다는 악의적인 제목이기도 한 것이다.(p.7)

  딸은 엄마를 그대로 닮는 것일까? 유전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삶의 굴곡이나 어떤 인생의 굴레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며 살게 되는 것일까? 열한 살, 초등학교 5학년인 모리사와 유키코는 남들만큼 살지만, 경제관념이 없는 부모 때문에 급식비를 내지 못하거나 속옷을 챙겨입지 못해서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사랑과 관심,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그런데 그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네 일생은 생지옥이야.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발밑에는 분명 지옥으로 통하는 구멍이 뚫려 있겠지. ......네 엄마랑 똑같아. 너도 네 엄마랑 똑같이 살게 될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난 엄마랑은 달라!

  -똑같아.(p.44)

  목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지만, 일가족 피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모 집에서 살게 된 후지코는 언론과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동정의 대상이 된다. 이때 영악한 생존 본능이 작동한다. 그녀는 지난날과 같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것을 적절히 이용한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비정상으로 깨우친 요령으로 자기를 포장하여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엄마처럼 졸업하기 전에 임신하고, 남자친구의 고향 집으로 가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토록 싫어한 엄마를 닮고 있다.

  어른은 정말로 어리숙하다.

  머리가 좋지 않아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얼굴이 못나도 요령만 있으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렇다. 이런 나도 요령만으로 학생회 임원 정도는 될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후지코는 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p.131)

  우정이란 결국 개의 서열 매기기다. 주종관계다. 어느 한쪽이 종으로 돌아서야 비로소 관계가 형성된다. 후지코는 기꺼이 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가치'도 주장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p.168)

  "괜찮다니까 그러네. 전혀 걱정할 거 없어. 들키지만 않으면 돼. 들키지만 않으면 '나쁜 짓'이 아니거든. 잘 숨기면 돼. 잘 숨기려면 토막 내는 게 제일이지. 그럼 설령 시체의 일부가 발견된다 해도 실제로 죽은 시간이나 유야가 죽였다는 증거는 절대 밝혀지지 않아.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겠지."(p.214)

  시끄러 이 할망구야! 뭐야, 그 낯짝은! 완전히 좀비잖아! 당신 상판대기를 보고 있기만 해도 열불이 나. 그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다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후지코는 '그 낯짝'이 찬장 유리문에 비친 자신이라는 걸 알고 등골이 오싹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쑥 들어간 볼, 빠진 앞니, 굽은 등...... 엄마?

  말도 안 돼,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p.244)

  "뭐니, 그 얼굴은."

  "이모!"

  "넌 역시 네 엄마를 빼닮았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 얼굴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네가 네 엄마 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자식은 결국 부모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란다."(p.291-292)

  "네 엄마도 인심 좋게 뭐든지 남에게 줬지. 빚을 내서라도 남에게 퍼줬어. 자기를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거든. 자신감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단다."

  "나는 달라!"

  "아니, 똑같아. 아무리 얼굴을 바꿔도 똑같아. 같은 업을 타고났어. 업만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단다."(p.313)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의 망령은 늘 발목을 잡아당긴다. 무능한 남자를 만나서 다시 돈 많은 새로운 남자를 찾고, 생김새를 바꾸기 위해 성형을 하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남에게 퍼주는 외로운 삶... 딸의 급식비를 밀리고, 무관심한 것까지 전부 엄마의 모습이다. 후지코의 딸은 엄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번역가는 '이야미스'라는 단어로 이 소설을 설명한다. '싫음, 불쾌함'이라는 뜻의 일본어 '이야'와 미스터리 소설의 '미스터리'를 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 불쾌한 뒷맛이 남는 미스터리라고 한다. 사건이나 사건의 해결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딸의 모습을 통해 어두운 분위기가 전체를 지배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매력 있다. [고백]의 미나토 가나에나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의 누마타 마호카루가 연상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음으로 [골든애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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