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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무라타 사야카, 김석희 역, [편의점 인간], 살림, 2016.
Murata Sayaka, [KONBINI NINGEN], 2016.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그저께 뒤통수를 세게 한 방 맞았다! 신의(信義), 믿음과 의리는 없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못을 박는다. 집에 와서 마음을 잡고 [편의점 인간]을 읽었다. 편의점(便宜店)이 주는 일상의 편리함이 있다. 무라타 사야카는 대학 시절부터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했다고 한다. 작가로서 좋은 경험이었을까? 누구보다 완전한 편의점 인간인 그녀는 소설 [편의점 인간]을 내놓았다. 오랜 경험과 하나의 큰 화두... 매우 사실적이면서 아주 독특한 이야기이다.
편의점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손님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에, 가게 안을 흐르는 유선방송에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아이돌의 목소리. 점원들이 부르는 소리, 바코드를 스캔하는 소리. 바구니에 물건 넣는 소리, 빵 봉지 쥐는 소리,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하이힐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뒤섞여 '편의점의 소리'가 되어 내 고막에 거침없이 와 닿는다.(p.9)
지문이 묻어 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p.13)
대학생, 밴드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프리터, 주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같은 제복을 입고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로 다시 만들어져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날의 연수가 끝나자 모두 제복을 벗고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꼭 다른 생물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p.27)
나는 종종 탁상 계산기로 그날부터 지난 시간을 계산해 볼 때가 있다. 스마일마트 히이로마치 역전점은 하루도 쉬지 않고 불을 켠 채 계속 돌아가고 있다. 요전 날 가게는 열아홉 번째 5월 1일을 맞았으니까 그로부터 15만 7,600시간이 지난 셈이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고, 가게와 점원으로서의 나는 열여덟 살이 되었다. 그날 나와 함께 연수를 받은 점원은 이제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점장도 여덟 명째다. 가게의 상품도 그날의 물건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점원으로 남아 있다.(p.32)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같은 옷을 입고 일하다가도 일이 끝나면 모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마일마트 히이로마치 역전점은 1998년 5월 1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불을 켠 채 계속 돌아가고 있다. 서른여섯 살인 후루쿠라 게이코는 이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톱니바퀴 중의 하나가 되어, 세계의 부품으로 작동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변화하고 있지만, 그녀는 18년 동안 점원으로 남아 있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는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전혀 모르는 채였다.(p.33)
나는 고향 친구를 만날 때는 지병이 좀 있고 몸이 약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하는 곳에서는 부모님이 병약해서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해두었다. 이 두 종류의 변명은 여동생이 궁리해주었다.(p.51)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p.54)
보통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흔히 주변에서 말하는 나잇값을 제대로 하면 되는가? 적당한 때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승진하고, 집을 사고, 노후를 대비하는 삶.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기준(틀)에 맞으면 비로소 보통의 인간이 되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회의 요구와 간섭에 길들어 있다. 그런데 후루쿠라 게이코는 앞서 말한 보통의 인간하고는 거리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조금 이상하고, 특이한 아이로 지목된다. 그녀는 정확한 매뉴얼이 있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가게 주위를 걷는 것은 편의점 점원에게 중요한 정보 수집이기도 하다. 인근의 식당이 도시락을 팔기 시작하면 편의점 매상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 공사가 시작되면 거기서 일하는 손님이 늘어난다. 가게가 오픈한 지 4년째, 근처에 있는 경쟁 가게가 망했을 때는 힘들었다. 그쪽 가게를 이용하던 손님들이 우리 가게로 몰려드는 바람에 점심 피크타임이 끝나지 않아서 잔업을 해야 했다. 도시락이 부족하여 점장이 본사 직원에게 수요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야단을 맞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는 이 거리를 점원으로서 정신 바짝 차리고 찬찬히 살펴보면서 걸어 다닌다.(p.55-56)
"이 가게는 정말이지 밑바닥 인생들뿐이에요. 편의점은 어디나 그렇지만,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주부, 이렇다 할 장래 설계도 없는 프리터, 대학생도 가정교사 같은 수지맞는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는 밑바닥 대학생뿐이고, 나머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온 외국인이죠. 정말로 밑바닥 인생뿐이에요."(p.86-87)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밑바닥 인생으로 폄훼한다. 제대로 된 취업이 아니라 시간제로 일하는 임시직, 주 수입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부업, 잠시 거쳤다 지나가는 아르바이트, 외국인이 일하는 곳... 그러나 주인공은 편의점에서 좋은 부품으로, 늘 한결같이 일하고 있다. 주위 사람은 걱정스럽게 여기며 간섭하지만, 그녀는 편의점 인간으로 변함없는 날을 보낸다.
편의점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니까, 당신도 곧 복원되어버릴 거예요.(p.90)
"정말로 여기는 변함이 없어"(p.94)
전화를 끊은 뒤,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편의점 점원으로 태어났을 때에 비하면 늙어 있었다. 거기에 불안은 없지만, 전보다 피로를 쉽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정말로 늙어서 편의점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여섯 번째 점장은 허리가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몸은 편의점을 위해 계속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p.96-97)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울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p.102)
육체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지도 모른다.(p.105)
18년 동안 그만두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빈틈은 메워져버린다. 내가 없어진 자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충원되고, 편의점은 내일부터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p.172)
편의점에 최적화된 인간에게 세상의 간섭은 갈수록 더해진다. 변명 거리를 만들어 놓아도 왜 취업하지 않아? 왜 결혼하지 않아? 변화 없는 삶을 안쓰럽게 여기고, 삶이 고쳐지기를... 그렇지 않으면 삭제될 것이다. 존재하려면 세상에 길들어야 한다. 가족의 염려를 알 것 같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간섭하는 사회와 간섭받는 인간... 여기에 잘 순응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고작 편의점에서만 적응하는 인간도 있다. 작가의 거침없는 전개가 마음에 든다.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나는 코드가 맞아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편의점 인간이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