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야쿠마루 가쿠, 김성미 역,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북플라자, 2017.

Yakumaru Gaku, [SEIYAKU], 2015.

  인터넷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인기도서로 눈에 띄는 책이 있다. 소설 부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 2012.), 손원평의 [아몬드](창비, 2017.) 그리고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그렇다. 오래 전에 절박함으로 했던 약속,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다. 두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 책의 원제는 [誓約](서약)이다.

  히스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황무지와 거기서 군생하는 키 작은 식물을 말한다.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8월 하순에서 9월에 걸쳐 황량한 대지 일대에 히스와 엉겅퀴 꽃들이 핀다고 한다.(p.22)

  야쿠마루 가쿠는 일본의 소년법을 소재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이다. [천사의 나이프](황금가지, 2009.) 등 그의 작품은 소년법 개정에 공헌할 정도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소재를 바꾸어 약속(서약)에 관해서이다. 작가로서 2막을 열었다는 평가, 과거를 회상하며 복선과 암시로 전개하는 이야기 구조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봉투를 뒤집어 발신인을 보았다. 주소는 쓰여 있지 않고 '사카모토 노부코'라고만 되어 있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이윽고 그 이름의 주인에 생각이 미치자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해지고 봉투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봉투 입구를 뜯고 안에 든 편지지를 빼냈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편지지에는 그것만 적혀 있었다.(p.28-29)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봉투를 뜯고,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최근 일주일 동안 당신을 지켜봤습니다만, 정말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기나 한 건가요? 지금 당신이 행복한 것은 나와 그 약속을 한 덕분 아닙니까? 만약 당신이 이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 주변에도 나와 똑같은 재앙이 덮칠지도 모릅니다."(p.50-51)

  봉투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장은 운동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며 파친코를 하고 있는 중년남성의 사진이다. 또 다른 한 장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중년남성의 옆얼굴이었다. 모두 멀리서 몰래 찍은 것 같은 사진이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각각 가도쿠라 도시미츠와 이이야마 켄지인 것일까?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을 더 본 순간, 심장을 예리한 것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공원에서 놀고 있는 호노카의 사진이었다.(p.104-105)

  "언제쯤 약속을 지켜줄 건가요?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살펴봐 왔습니다. 약속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당신은 전혀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지 않아요. 할 수 없이 그 남자들의 소재를 알려주는 준비까지 해줬는데 당신은 내 말을 계속 무시하고 있어요."(p.133)

  무카이 사토시는 바텐더로 히스(HEATH)의 공동창업주이다. 아내와 딸, 가게의 동업자와 직원들, 안정되고 평탄한 삶에서 사카모토 노부코의 편지를 받는다. 그들이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어서 약속을 지키라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덮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다카토 후미야였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을 크게 뒤덮은 멍 때문에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라며 괴물로 불리었다. 폭력성으로 소년원을 들락거리고, 범죄에 가담해서 야쿠자에게 쫓기는 길바닥 인생이었다. 그러던 중 사카모토 노부코를 만나 한 가지 약속을 한다. 호적을 바꾸고, 성형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비용으로 500만 엔을 줄 테니 딸의 복수를 해달라는 것이다. 딸을 유린하고 살해한 범인들이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출소하면 죽여달라는... 절박한 상황에서의 거래, 16년 전의 약속이다.

  "내일로 16년간 당신을 옥죄어왔던 것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약속을 완수한 기념으로 가게에서 건배라도 들면 좋겠지요."

  "너는... 너는 악마야. 사람이 아니야."

  나는 모든 증오를 퍼부어 말했다.

  "그러는 당신은 사람이기라도?"

  비웃는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p.177)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목숨의 가치라는 게 다른 것 같다.

  지금이니 드는 생각이지만, 그 무렵의 나는 내 목숨과 인생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존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존재도 있다.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그 무렵과 다르지 않겠지만,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p.277-278)

  그런데 사카모토 노부코는 이미 오래전에 암으로 사망했다. 무심코 지내온 세월... 이제 와서 누가 편지를 보낸 것인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두 사람을 찾아가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카토 후미야에서 무카이 사토시로 신분을 바꾼 것을 아는 사람은...? 편지의 압박은 거세지고, 과거의 범행이 드러나고, 딸이 납치되고... 주위의 눈을 피해 발신인을 찾아야 한다.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스릴러, 로드 무비를 보는 듯하다. 현재를 조여오는 과거의 행적은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반전의 타이밍은 적절하다.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논리를 끝까지 잘 유지하고, 인간의 본성, 원한과 복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 관한, 지킬 수 없는 약속, 상황 윤리의 문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약속을 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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