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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 사중주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유즈키 아사코, 김난주 역, [달콤 쌉싸름 사중주], 한스미디어, 2016.
Yuzuki Asako, [AMAKARA QUARTET], 2011.
아,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구나~ 살짝 유치하면서 발랄한 드라마 같은 소설을... 자아의 발견이고, 완전히 취향 저격이다. 유즈키 아사코의 연작 단편 [달콤 쌉싸름 사중주]는 서른을 앞둔 네 여자의 일과 사랑, 음식과 우정에 관해서이다.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경력을 쌓아야 하고, 가슴 뛰는 사랑을 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야 하고, 진한 우정을 유지해야 하는...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때이다.
사랑하는 유부초밥
수줍은 아마쇼쿠
가슴 술렁이는 하이볼
바쁜 와중에 고추기름
설음식 사중주
구즈하라 사키코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후카자와 유카코는 요리 블로거이다. 다치바나 마리코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이고, 시마다 가오루코는 출판 편집자이다. 네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사키코의 집에서 모임(파티)을 하는데, 열네 살 때부터 이어온 소중한 습관이다. 성격이나 하는 일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이어온 우정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약속(규칙)은 '일과 연애의 기회는 우정보다 우선한다'(p.220)이다...ㅋㅋ
"우리가 이렇게까지 나설 수 있었던 건 사키코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네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 거라고. 친구의 능력은 곧 나의 능력, 그 정도는 뻔뻔해도 좋잖아. 안 그러면 늘 친구들과 비교만 하면서 시시하게 살 뿐이라고."(p.41)
사키코는 불꽃축제에 갔다가 우연히 손이 큰 남자로부터 유부초밥을 얻어먹는다. 지금까지 먹어 본 유부초밥 중에서 최고의 맛... 연락처를 모르는데,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이 얘기를 들은... 가오루코는 출판사의 맛집 기자를 대동해 도쿄 전역의 유명 식당을 방문하고, 마리코는 남자 친구와 동호회(연구회)를 조사하고, 유카코는 그 특별한 맛을 재현해 보려고 한다. 유리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았듯이 유부초밥의 맛으로 남자를 찾아야 한다.
"유카코는 그냥 유카코 스타일대로 하면 돼. 다른 사람 눈만 의식하느라 갖고 있는 가능성을 버리면 안 되지."(p.85)
유카코는 따라 하기 쉬운 요리로 인기 있는 블로거이다. 레시피를 모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뜻하지 않게 악플에 시달린다. 안티 게시판에서 베끼기 논란이 있고, 이것을 본 그녀는 의기소침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키코와 마리코와 가오루코는 집으로 찾아가서 컴퓨터를 끄고, 화분에 물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유카코의 어린 시절 맛의 기억과 친구를 찾는다.
"미안해요. 당신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마리코 편이에요. 안녕히 계세요."(p.130)
마리코의 남자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 도쿄에 올라와 술집을 차렸다고 한다. 하이볼과 안주를 잘 만드는 어린 시절의 친구, 그것도 술집 여주인이라는 것은 충분히 의심 가는 상황이다. 사키코와 유카코와 가오루코는 몰래 술집에 찾아가 하이볼을 주문한다. 덩치 큰 여자가 만든 하이볼은 다른 맛이 있다. 의심은 풀렸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모델이 무슨 필요가 있어. 아내는 이래야 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유카코의 격한 발언에, 가오루코가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안이하게 '이상적인 아내' 이미지를 추구하는 출판사나 드라마에는 염증이 났다. 자신은 어쩌다 요리를 잘하고, 그것을 일로 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든 집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과자를 척척 구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든 육아든 집안일이든, 전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매스컴이 강요하는 이미지에 괴로워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키가 커서 자기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가오루코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가오루코 너는 너야. 너는 너만의 가정을 꾸리면 돼. 남편도 있고, 우리도 있으니까!"(p.163)
가오루코는 결혼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단란한 가정을 꾸릴 것으로 생각했다. 이혼 가정에서 자라나 더욱 가정에 충실하고, 일도 성공하는 이상적인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일도 가정도 뭐 하나 제대로인 것이 없다. 밤늦은 퇴근,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서 신혼인데도 출장 간 남편을 고마워하고,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때 누군가 집 앞에 고추기름 한 병을 놓고 간다. 살짝 뿌리기만 해도 음식의 풍미와 맛을 살려서 일상을 회복하는 것 같다. 누가 보낸 것일까?
사키코는 아직 보지 못한 나머지 찬합 하나를 상상했다. 가능성의 찬합. 거기에는 뭐가 들어갈까. 가오루코와 시어머니의 새로운 관계일까, 또 새로 시작된 마리코의 사랑? 유카코의 요리 연구가로서의 새로운 비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려 한다. 새로운 일과 그 사람과의 관계. 괜찮아.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아군이 있으니까. 넷이서 하나. 하지만 혼자서도 얼마든지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p.285)
스물아홉 마지막 12월 31일, 이제 곧 서른 살이다. 결혼하고 처음 새해를 맞는 가오루코는 시어머니에게 4단 찬합 설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내일 시어머니가 오기 전까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머지 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계획은 각자 일을 마치면 가오루코의 집에 모여 준비한 음식으로 4단 찬합을 만들고, 저녁으로 해넘이 메밀국수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로 모든 게 꼬인다. 사키코는 아르바이트하고 오는 길에 철도 운행 중단으로 발이 묶이고, 마리코는 백화점 새해 이벤트 준비로 야근을, 유카코는 방송국 촬영에 붙잡힌다. 더구나 가오루코의 시어머니는 하루 일찍 왔다. 초조하고 숨 막히는 전개... 그녀들의 새해맞이는 아주 혹독하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우정, 개성 있는 네 여자 캐릭터가 사랑스럽다. 누군가에게 도움받기를 끔찍이 꺼리는 일본의 정서, 우리하고 매우 다른 여성성을 볼 수 있다. 갈등을 키우고 경쟁하기보다 격려와 응원을, 손익을 따지며 상처 주기보다 화해와 협력을 말한다. '일과 연애의 기회는 우정보다 우선한다'(이것이 명확하지 않아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는가?)는 명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의 건강한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