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크리스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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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글,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역, [마더 크리스마스], 소미미디어, 2018.

Higashino Keigo, Sugita Hiromi, [SANTA NO OBASAN], 2001.

히가시노 게이고의 크리스마스 그림 동화이다. 우리가 아는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바로 그 히가시노 게이고가 맞다. 다작으로 유명하고,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에세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림 동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라서 한 달 전에 읽었더라면, 좀 더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으로 읽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핀란드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산타협회 회의가 열린다. 회의실 풍경은, 회의에 참석한 열두 명의 산타클로스는 옷차림과 피부색은 제각각 다르지만, 하나같이 수염과 눈썹이 하얗다. 이날 안건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미국 지부를 담당하고, 회장직에 있었던 산타의 은퇴로 차기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둘은, 미국 지부를 담당할 새로운 산타를 뽑아야 한다. 회의는 각 나라 지부를 담당하는 산타클로스의 만장일치로 진행된다. 작가는 회의 과정을 통해서 현실을 풍자하고, 산타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먼저, 회장 선출은 부회장 산타가 이어서 회장이 되는 것으로 한다. 만장일치로 통과, 부회장이던 네덜란드 지부 산타가 회장이 된다. 다음으로, 미국 지부를 담당할 산타 후보를 추천하는데, 여기에서 살짝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어쨌든 회원 모두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독일 지부 산타, 피부색 때문에 후보 시절에 곤란을 겪었다는 아프리카 지부 산타, 이것을 위로하는 영국 지부 산타...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북유럽계인데, 실제 산타 모델인 성 니콜라스는 서아시아계라는 얘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선물이 좋을지 고민하고... 회의는 우왕좌왕이다.

"이번에 후보자를 선정하면서 나는 지금까지의 제약을 모조리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아프리카 산타의 입회 승인 회의 때였어요. 그를 지켜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후임자가 될 미국 산타에는 흑인도 대상에 넣어야겠다고요.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인간적인 자질 외에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여기 이 여자 분이 미국 산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어요."(p.30)

은퇴를 앞둔 미국 지부 산타는 후임으로 제시카를 추천한다. 여성 산타클로스가 가능한가? 규칙을 점검하는 독일 지부 산타, 수염이 없음을 지적하는 프랑스 지부 산타... 산타는 꼭 남자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네덜란드 지부 산타, 산타클로스는 부성(父性)의 상징이라는 일본 지부 산타... 여성 산타클로스를 두고 회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저도 부성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시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또한 산타는 부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성을 부여받은 것은 반드시 남성만은 아니겠지요. 또한 모성을 부여받은 것도 반드시 여성에 한정된 일은 아닐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저는 산타에 지원했습니다."

...

"겉모습 따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아프리카 산타가 중얼거렸다.(p.54)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되고... 제시카는 아들 토미 모르게 빨간 맞춤 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하면서 세 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에 오른다. 큼직한 선물 보따리... 밤새 미국 전역을 돌아야 한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닌 산타클로스 아줌마 이야기이다. 산타클로스가 되는 웃지 못할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는데, 각 나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시대정신을 포함하고 있고... 아기자기한 삽화는 이야기하고 매우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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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 - 15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누마타 신스케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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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신스케, 손정임 역, [영리], 해냄, 2018.

Numata Shinsuke, [EIRI], 2017.

제157회 아쿠타가와상

분가쿠가이(문학계) 신인상

왜 제목을 영리(影裏), 부제(제목 설명)를 '그림자의 뒤편'이라고 했을까? 그림자 영(影), 속 리(裏)를 썼으니 '그림자의 안쪽', '그림자의 내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림자의 뒤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상상되지 않는다. 작가는 제목을 전광영리참춘풍(電光影裏斬春風) "번갯불이 봄바람을 벤다."(p.96) 인생은 찰나이지만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발췌했다는데, 뭔가 아리송하다.

대략 90여 페이지 단편 소설이다. 예전에는 번역 출간할 때 나름대로 엄선 과정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상을 받으면 무조건 판권부터 사 오는 듯하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고 해서 재미를 보장하지 않는다. 상을 받은 배경은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누군가 써야 할 글을 썼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서 동떨어진 느낌이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의 무책임성으로 별다른 감동은 없다.

강이 완만히 굽어지면서 제방 전체가 양 기슭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림자로 푸르게 비치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마치 온종일 햇빛이 닿지 않는 정원 구석 같은 곳이었다. 풀꽃과 나무가 지금까지 본 것보다 적고, 가냘픈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여린 잎사귀의 테두리가 살짝 비친다. 어느 것이나 여러 해 동안 자외선을 피해 왔던 노력이 보상을 받은 듯 온몸에 선명한 초록빛 윤기를 휘감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p.8)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이와테현의 자연환경, 오이데강의 특별한 풍경... 자외선을 피해서 선명한 초록빛을 휘감은 여린 잎사귀, 그곳은 햇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의 이면이 아니라) 그림자의 내면 세계가 있다. 작가는 그림자의 내면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햇빛을 등지고 전쟁, 태풍, 지진, 쓰나미... 등이 몰아치는 곳이지만, 어두운 그림자의 내면에서 일본은 여전히 버티고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1장에서 곤노 슈이치는 회사 동료인 히아사 노리히로와 친하게 지낸다. 같이 술을 마시고, 지난 1년 내내 낚시를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히아사는 퇴사하고, 잠시 연락이 끊긴다. 허전함과 그리움이 있는데, 히아사는 상조회사로 이직해서 나타난다. 2장에서 곤노는 오랜만에 헤어진 동성 연인과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히아사의 부탁으로 상조회에 가입하고, 같이 낚시를 즐긴다. 3장에서 지진 재해가 일어나고, 히아사는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뜻밖의 채무가 있음을, 곤노는 히아사의 본가에 방문해서 그의 아버지로부터 모르던 얘기를 듣는다.

한마디로 동일본대지진을 전후로 게이와 사기꾼의 이야기이다. 문학성을 이유로 성소수자를 중심에 두고, 앞뒤 모르는 모호한 전개는 매우 불친절하다. 껄끄러운 번역은 더 불편하고...

사회 문제를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시작과 끝을 포함해서 뼈대를 만들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구성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성과 개연성을 점검하고... 재미까지 주는 대중소설이 훨씬 친절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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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 사중주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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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키 아사코, 김난주 역, [달콤 쌉싸름 사중주], 한스미디어, 2016.

Yuzuki Asako, [AMAKARA QUARTET], 2011.

아,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구나~ 살짝 유치하면서 발랄한 드라마 같은 소설을... 자아의 발견이고, 완전히 취향 저격이다. 유즈키 아사코의 연작 단편 [달콤 쌉싸름 사중주]는 서른을 앞둔 네 여자의 일과 사랑, 음식과 우정에 관해서이다.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경력을 쌓아야 하고, 가슴 뛰는 사랑을 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야 하고, 진한 우정을 유지해야 하는...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때이다.

사랑하는 유부초밥

수줍은 아마쇼쿠

가슴 술렁이는 하이볼

바쁜 와중에 고추기름

설음식 사중주

구즈하라 사키코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후카자와 유카코는 요리 블로거이다. 다치바나 마리코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이고, 시마다 가오루코는 출판 편집자이다. 네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사키코의 집에서 모임(파티)을 하는데, 열네 살 때부터 이어온 소중한 습관이다. 성격이나 하는 일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이어온 우정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약속(규칙)은 '일과 연애의 기회는 우정보다 우선한다'(p.220)이다...ㅋㅋ

"우리가 이렇게까지 나설 수 있었던 건 사키코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네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 거라고. 친구의 능력은 곧 나의 능력, 그 정도는 뻔뻔해도 좋잖아. 안 그러면 늘 친구들과 비교만 하면서 시시하게 살 뿐이라고."(p.41)

사키코는 불꽃축제에 갔다가 우연히 손이 큰 남자로부터 유부초밥을 얻어먹는다. 지금까지 먹어 본 유부초밥 중에서 최고의 맛... 연락처를 모르는데,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이 얘기를 들은... 가오루코는 출판사의 맛집 기자를 대동해 도쿄 전역의 유명 식당을 방문하고, 마리코는 남자 친구와 동호회(연구회)를 조사하고, 유카코는 그 특별한 맛을 재현해 보려고 한다. 유리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았듯이 유부초밥의 맛으로 남자를 찾아야 한다.

"유카코는 그냥 유카코 스타일대로 하면 돼. 다른 사람 눈만 의식하느라 갖고 있는 가능성을 버리면 안 되지."(p.85)

유카코는 따라 하기 쉬운 요리로 인기 있는 블로거이다. 레시피를 모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뜻하지 않게 악플에 시달린다. 안티 게시판에서 베끼기 논란이 있고, 이것을 본 그녀는 의기소침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키코와 마리코와 가오루코는 집으로 찾아가서 컴퓨터를 끄고, 화분에 물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유카코의 어린 시절 맛의 기억과 친구를 찾는다.

"미안해요. 당신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마리코 편이에요. 안녕히 계세요."(p.130)

마리코의 남자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 도쿄에 올라와 술집을 차렸다고 한다. 하이볼과 안주를 잘 만드는 어린 시절의 친구, 그것도 술집 여주인이라는 것은 충분히 의심 가는 상황이다. 사키코와 유카코와 가오루코는 몰래 술집에 찾아가 하이볼을 주문한다. 덩치 큰 여자가 만든 하이볼은 다른 맛이 있다. 의심은 풀렸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모델이 무슨 필요가 있어. 아내는 이래야 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유카코의 격한 발언에, 가오루코가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안이하게 '이상적인 아내' 이미지를 추구하는 출판사나 드라마에는 염증이 났다. 자신은 어쩌다 요리를 잘하고, 그것을 일로 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든 집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과자를 척척 구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든 육아든 집안일이든, 전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매스컴이 강요하는 이미지에 괴로워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키가 커서 자기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가오루코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가오루코 너는 너야. 너는 너만의 가정을 꾸리면 돼. 남편도 있고, 우리도 있으니까!"(p.163)

가오루코는 결혼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단란한 가정을 꾸릴 것으로 생각했다. 이혼 가정에서 자라나 더욱 가정에 충실하고, 일도 성공하는 이상적인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일도 가정도 뭐 하나 제대로인 것이 없다. 밤늦은 퇴근,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서 신혼인데도 출장 간 남편을 고마워하고,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때 누군가 집 앞에 고추기름 한 병을 놓고 간다. 살짝 뿌리기만 해도 음식의 풍미와 맛을 살려서 일상을 회복하는 것 같다. 누가 보낸 것일까?

사키코는 아직 보지 못한 나머지 찬합 하나를 상상했다. 가능성의 찬합. 거기에는 뭐가 들어갈까. 가오루코와 시어머니의 새로운 관계일까, 또 새로 시작된 마리코의 사랑? 유카코의 요리 연구가로서의 새로운 비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려 한다. 새로운 일과 그 사람과의 관계. 괜찮아.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아군이 있으니까. 넷이서 하나. 하지만 혼자서도 얼마든지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p.285)

스물아홉 마지막 12월 31일, 이제 곧 서른 살이다. 결혼하고 처음 새해를 맞는 가오루코는 시어머니에게 4단 찬합 설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내일 시어머니가 오기 전까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머지 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계획은 각자 일을 마치면 가오루코의 집에 모여 준비한 음식으로 4단 찬합을 만들고, 저녁으로 해넘이 메밀국수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로 모든 게 꼬인다. 사키코는 아르바이트하고 오는 길에 철도 운행 중단으로 발이 묶이고, 마리코는 백화점 새해 이벤트 준비로 야근을, 유카코는 방송국 촬영에 붙잡힌다. 더구나 가오루코의 시어머니는 하루 일찍 왔다. 초조하고 숨 막히는 전개... 그녀들의 새해맞이는 아주 혹독하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우정, 개성 있는 네 여자 캐릭터가 사랑스럽다. 누군가에게 도움받기를 끔찍이 꺼리는 일본의 정서, 우리하고 매우 다른 여성성을 볼 수 있다. 갈등을 키우고 경쟁하기보다 격려와 응원을, 손익을 따지며 상처 주기보다 화해와 협력을 말한다. '일과 연애의 기회는 우정보다 우선한다'(이것이 명확하지 않아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는가?)는 명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의 건강한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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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눈꽃에디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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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오 슈스케, 김은모 역, [수상한 중고상점], 놀, 2022.

Michio Shusuke, [KASASAGITACHI NO SHIKI], 2011. 2014.

수상한 시리즈의 전성시대인가 보다(이미 유행이 지났을 수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동 시리즈가 있고, 집 모양을 표지로 하는 힐링 시리즈가 있다.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 [수상한 중고상점]은 굳이 따지자면, 힐링 미스터리라고 해야 하나..? 국내 번역은 2011년에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으로, 2022년에 [수상한 중고상점]으로 개정 출간했다.

미치오 슈스케를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위의 호평(모두 그를 좋아하고, 별로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몇 번을 시도했지만, 완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터팬 콤플렉스라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최근작은 딱히 그렇지 않은듯하고...), 또는 중요 인물로 등장시킨다는 서평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졸리고, 청소년기의 얽히고설킨 거친 인생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봄, 까치로 만든 다리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

가을, 남쪽 인연

겨울, 귤 나무가 자라는 절

내 마음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왜 그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캐릭터에 공을 들이고, 이야기의 짜임새와 구조가 좋아서 미스터리의 교과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적자에 시달리는 중고상점을 배경으로... 동갑내기 친구, 엉뚱한 추리력을 발산하는 점장 가사사기 조스케와 아무도 모르게 뒤처리(뒷감당)를 감행하는 부점장이자 직원 히구라시 마사오... 그리고 정체불명의 중학생 소녀 미나미 나미... 세 명은 우당탕탕 사건에 휘말린다.

"영의 무생물 이동의 법칙이라.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라도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는 곳까지는 이동할 수 있다......' 과연."(p.13)

"머피의 법칙 가운데 네게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이 하나 있지. 오브라이언의 고찰. '어떤 물건을 가장 빨리 찾아내려면, 그것이 아닌 다른 물건을 찾으면 된다'. "(p.25-26)

"제이컵의 법칙.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인간다운 일이다. 그렇지만 다른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더욱 인간다운 일이다.'"(p.77)

"볼드리지의 법칙. '무슨 일에 말려들지 사전에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p.158)

"울프가 말한 기회의 법칙......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란 지금 당신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p.203)

"'만약 처음에 성공하더라도 깜짝 놀란 표정은 짓지 마라'...... 나도 원, 멜닉의 법칙을 완전히 잊고 있었어."(p.252)

이전의 진지한 분위기하고 다르게 글을 썼다는데, 시트콤처럼 경쾌한 분위기이다. 히구라시는 프로레슬러 같이 생긴 주지로부터 중고매입 바가지를 쓰고 돌아온다. 방과 후 온종일 중고상점에 있는 나미는 한 마디를 하고, 가사사기는 머피의 법칙을 읊조린다. 그리고 이상한 손님... 청동 제품을 만드는 회사 사람이 청동 제품을 사러 오고, 목공점에 배달을 가니 방화 사건이 있었고, 가재도구를 보러 간 집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귤을 따먹으러 절에 갔다가 주지 스님의 사연을 접한다. 모른 척,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을... 가사사기는 오지랖 탐정 부심을 부리고, 히구라시는 측은지심으로 뒤처리한다. 이 과정이 유쾌하다.

"뭐든지 매입합니다"

...

"비싸게 사서 싸게 팝니다"(p.10)

"어째서 강이 굽이굽이 휘어져 있는지 아시나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말을 이었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해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은 이렇게 구부러지면서 뻗어나가지요. 이 강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요. 하지만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p.142)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몰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법이거든.(p.239)

"알겠느냐, 소친. 언젠가 가르쳐준 대로 귤은 접목으로 늘리는 거다. 우리 밭의 귤나무도 가지에 열리는 열매는 온주귤이지만 뿌리와 줄기는 온주귤이 아니야, 기주귤이지. 하지만 맛있지?"

소친은 고개를 끄덕했다. 주지는 반들반들하게 깎은 아들의 머리에 다정하게 손을 올렸다.

"생각해보려무나, 소친. 맛있는 온주귤 열매가 자신의 줄기와 뿌리는 온주귤이 아니라고 고민한다면 웃어넘기고 싶지 않겠느냐?"(p.317)

작가는 왜 중고상점을 배경으로 했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독자에게 뭐든지 팔 수 있고, 비싸게 팔고 싸게 사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복잡한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은 빠르게 정리하고, 필요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주지 스님이 진정한 승자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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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목욕탕
마쓰오 유미 지음, 이수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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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오 유미, 이수은 역, [수상한 목욕탕], 문예춘추사, 2022.

Matsuo Yumi, [ARASHI NO YU HE YOKOSO !], 2021.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목욕탕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뭔가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고 싶었는데, 음... 절반의 성취와 여전히 의문이 남는 소설이다. 수상함을 콘셉트로 하는 작가의 의도는... 시작은 동화 같고, 전개는 탐정 미스터리이며, 갑작스러운 이세계 판타지와 로맨스로 절정에 이르더니, 어정쩡한 결말로 마무리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마쓰오 유미의 희한한 소설 [수상한 목욕탕]이다.

"옛날식 공중목욕탕, 흔히 말하는 대중목욕탕 건물과 그 토지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다지 신식 건물이 아니고, 입지로 봐도 역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사업이라는 건 그 목욕탕의 경영입니다. 아주 순조롭다고 할 순 없지만, 매우 적기는 해도 계속해서 흑자를 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업 - 목욕탕 경영을 가능한 한 계속해나가며, 건물과 현재 근무하는 두 직원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상속 조건에 해당합니다."(p.23-24)

사쿠마 리오와 사쿠마 사오 자매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3년 전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동생 사오는 학교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려 등교를 거부하고, 집에서 살림을 한다. 언니 리오는 직장에 다니지만, 회사의 사업 축소로 생활이 위태로운 상태이다. 이러한 때... 존재를 알지 못했던 외삼촌의 사망과 유산으로 목욕탕을 남겼다는 소식을 접한다. 언덕 위의 오래된 목욕탕, 자매는 행운목욕탕을 상속받는다. 동화 같은 시작이다.

"우리가 물어보는 게 다양하거든. 의논해도 별수 없는 것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고 사실 의논할 것까지도 없는 내용도 많았을 거야. 근데 그 중간?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오는' 그런 고민도 있잖아? 왜 아까 말한 '목에 걸린 가시'처럼"

...

어쩌면 목욕탕의 단골들, 혹은 그중 일부는 삼촌이 그런 식으로 '가시'를 제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언덕을 올라 행운 목욕탕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66-67)

자매는 목욕탕에 딸린 집으로 이사하고, 외국인(?)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예전처럼 사오는 집안일을 리오는 목욕탕 카운터를 보며 영업을 재개한다. 노인 손님의 입소문 네트워크, 행운목욕탕에 단골이 있는 것은 고민 해결 때문이다. 삼촌은 지난 15년간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고민을 듣고, 그것을 제거하는 역할을 했다.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 리오는 손님의 얘기를 들어주고, 사오는 명탐정이 되어 해답을 찾아낸다. 여기까지는 아주 흥미롭다.

"예전에 내가 말했잖아. 글렌은 돌을 깎아서 만든 인형이고, 엘렌은 물가의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인형이라고."(p.121)

"그들이 야기할 혼란을 막기 위해서 저희들이 실시하고 있는 작전이 바로 '불의 그물'입니다. 지구상의 여러 지점에서 '그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힘을 지닌 '특별한 불'을 피우는 거죠"(p.153)

목욕탕 경영의 비밀, 갖가지 사연과 고민 해결, 등교를 거부하는 사오의 과거와 세상으로의 발돋움... 수상한 목욕탕 행복목욕탕에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응? 죽음과 환생, 초월자와 세계질서, 정령과 마물이 등장하고... 응? 선과 악의 전투, 불의 그물을 위한 작전 거점으로의 목욕탕... 응? 여기에 연애 감정이 펼쳐지고... 아, 혼란하다. 일부러 쉬운 책을 찾아 읽은 것인데,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하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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