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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 만들까 과자점
사이조 나카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사이조 나카, 이규원 역, [오늘은 뭘 만들까 과자점], 북스피어, 2019.
Saijo Naka, [MARUMARU NO IGA], 2017.
제3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와,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무슨 감동 공식이 있는 것인가? 살짝 유치하면서 뻔한 내용이지만, 뭔가에 홀린 듯이(공식대로 흘러가서)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에도 시대 1800년대 중, 후반을 배경으로, 3대가 경영하는 작은 과자점 난보시야(南星屋)에는 희비와 애환이 있다. 기억나는 일본 역사소설은 하무로 린의 [저녁매미 일기](비채, 2013.)인데, 쇼군과 농민 사이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무사의 이야기라면... 사이조 나카의 [오늘은 뭘 만들까 과자점]은 전통 과자를 만들어 파는 조닌(도시에 사는 상인이나 장인)의 이야기이다. 둘 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카스도스
와카미도리
이가모찌
오오우쯔라모찌
우메가이
마쓰카제
난텐즈키
에도성 고지마치 6초메 뒷골목에 있는 과자점 난보시야는 매일 정오에 문을 여는데, 일각(2시간) 전부터 사람들은 줄 서서 기다린다. 작은 가게, 정해진 명물 과자는 없다. 단지 계절이나 명절하고 어울리는 과자를 내놓고, 주인장의 기분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 과자를 만들어 판다. 명품 과자를 납품하는 어용 가게도 있지만, 난보시야는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재료를 선택하고 제조를 궁리하여 이문을 최소화하기에 서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설정이다.
지헤에의 아명(에도 시대 무가나 화족 집안의 아이가 어릴 때 쓰던 이름)은 오카모토 고헤이지였다. 오카모토가의 차남이며 한 살 어린 고로가 삼남이다.
열 살에 무가 신분을 버리고 과자 장인의 제자로 들어간 것은 스스로 원해서였다. 같은 시기에 고로도 절에 들어갔다.
큰형이 오카모토가를 계승하였는데, 지금은 타계하고 큰형의 아들이 당주로 있다.
지헤에는 우에노 야마시타에 있는 과자점에서 10년을 수행하고 2년간 보은봉공(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주인이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일정 기간 남아 일하는 것)까지 마친 뒤 에도를 떠났다. 기량을 닦기 위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것은 과자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의 장인이나 거치는 과정이다.(p.16-17)
어머니는 신부수업을 위해 에도 성 내궁에 들어가 일할 때 주군의 성은을 입어 지헤에를 임신했다. 다행히 딸이라도 낳아 측실이 된다면 오카모토가에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걸 바라지 않았다. 오빠 구니에 역시 괜한 욕심을 부릴 사람은 아니어서 지헤에를 아들로 들여 오카모토가에서 키우기로 했다... 당시 친부는 아직 십대로 나이가 어렸고 쇼군직 상속을 앞두고 있었다. 구니에는 누이가 잉태한 아기가 친부의 쇼군직 상속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p.48-49)
이제는 환갑의 나이, 난보시야의 주인인 지헤에는 전대 쇼군의 서자라는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이것을 숨기기 위해 유력 가문인 외삼촌 오카모토가의 차남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고모로, 사촌을 형제로 알고 살았다. 열 살이 되었을 무렵, 우연히 비밀을 알게 되고... 가문의 부담을 덜기 위해 무가 신분을 버리고 과자 장인이 되기로 한다. 5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자에 진심인 그는 10년의 수행과 2년의 보은봉공을 끝내고도 16년 동안 숱한 지방을 돌아다니며 72권의 과자첩을 기록했다. 에도로 돌아와서 딸 오헤이와 손녀 오키미와 함께 여러 지방의 과자를 만들어 파는 완전한 상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여기던 출생의 비밀이 문제를 일으킨다. 과자로 연결된 현재와 과거의 사건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태어났을 때 이미 곁에 없던 친부에게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다만 머나먼 존재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갑을 맞은 올봄, 지헤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뭐 하나 효도한 일이 없구나.(p.47-48)
스이노스케는 눈 깜빡이는 시간마저 아끼려는 양 지헤에의 손을 응시했다. 그 손이 빚어내는 것들 하나하나가 놀랍고 기뻤다. 한편 소년의 무구한 광채는 늙은 지헤에에게는 눈이 부실 정도여서, 그저 웃는 얼굴을 최대한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느새 품게 되었다.
"무사는 무엇을 위해 있는 겁니까?"
스이노스케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전쟁 없는 요즘 세상에 무사에게는 어떤 역할이 있는 걸까요?"
"어떤 역할이라니...... 그거야......"하고 말을 꺼내 놓고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p.80)
"경단처럼 마음도 둥글게. 그게 요령이란다."
"하지만 이가모찌니까 까칠까칠해도 괜찮지 않나요?"
...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구나...... 이가모찌보다는 마루마루처럼 마음을 둥글게라고......"(p.134)
무가에서 태어나 과자점 주인이 된다. 여덟 살 고헤이지도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행복에 겨운 동생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179)
얼마 전 옹이와 이야기할 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그 저택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더 커다란 무엇, 바로 쇼군의 숨겨 둔 아들이라는 자신의 출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에 나서서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았던 것도 에도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p.221)
"마쓰카제를 팔던 가게 주인이 이걸 들고 진지하게 말하더군.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 같다고 말이야."
...
딸이 결혼하는 날은 부모에게 무엇보다 기쁜 날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쓸쓸함이 사무치는 날이다.
"그래도 딸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조금쯤 쓸쓸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p.267)
아버지는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고헤이지에게는 사실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친부인 이에나리에게도 친밀감은커녕 혐오밖에 느낄 수 없었다.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는지 구니에는 꾸짖는 투로 말을 이었다.
"주군은 너를 남몰래 걱정하고 계신다. 종종 내려 주시는 과자가 그 증거다."(p.288)
전대 쇼군의 7주기, 지헤에는 어린 시절에 다른 가문하고 다르게 유독 과자를 하사품으로 내려주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때의 맛을 떠올려 카스도스를 만들었다가 곤욕을 치른다. 어느 무가 소년이 찾아와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자기의 어린 시절이 겹치고, 잠시 손자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헤에는, 딸과 손녀가 드러내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살기를 원한다. 무가에서 태어나 대권과 가업을 포기하고 과자 장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과거가 나오고... 손녀 오키미는 다이묘 가문하고 혼담이 오가는데, 이것은 지헤에의 출생 때문에 자칫 모반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난보시야에는 고향의 맛을 간직한 과자가 있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희로애락이 있다. 즐거움을 나누고, 괴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자 장인은 과자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언짢은 일은 잊어버리고, 행복을 주는 과자... 무사의 칼보다 더 힘이 있는 과자의 이야기이다. 내일은 화과자라도 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