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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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하루오, 김은모 역, [방주], 블루홀6, 2023.

Yuki Haruo, [HAKOBUNE], 2022.

2022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2 MRC 대상 1위

작년, 2023년에 출간한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은 유키 하루오의 소설 [방주]이다. 아무래도 비슷한 책을 즐겨 읽는 사람끼리의 입소문이기에 의무감과 기대감이 있다. 방주(方舟)는 글자 그대로 '네모난 배'이지만, 대부분은 '노아의 방주'를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 산꼭대기에 3층으로 만든 배에는, 대홍수가 땅의 모든 것을 앗아갈 때 보존한 생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모티브로 하는 클로즈드 서클물인데, 완성도는 매우 높다.

산속에 묻힌 이 화물선 같은 지하 건축물에서 탈출하려면 아홉 명 중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니까.

우리는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할까?

아홉 명 중 죽어도 되는 사람은,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그를 죽인 범인밖에 없다.

범인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제한 시간은 앞으로 약 일주일.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살인범을 찾아내야 한다.(p.9-10)

일종의 폐허 탐험, 대학 등산 동아리 출신 선후배 7명은 깊은 산속에 있는 지하 건축물을 찾는다. 맨홀 아래의 시설물은 오래된 화물선 분위기이고, 지하 1층과 2층은 각 20개의 방이 있고, 지하 3층은 물에 잠겨졌다. 과격파 또는 신흥종교의 비밀 공간으로 예상하는,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만든 곳이다. 싸늘한 밤공기를 피해서 하룻밤 머무는데, 길을 잃은 가족 3명이 합류한다.

"즉, 철골을 제거하고 이 방의 닻감개를 돌려서 바위를 아래로 떨어뜨리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러면 닻감개를 돌리는 사람이 여기에 갇힌다는 건가."(p.69)

새벽에 지진과 산사태로 이들은 모두 고립된다. 커다란 바위가 지하 1층의 입구를 막았는데, 지하 2층의 닻감개를 돌려서 바위를 떨어뜨릴 수 있으나 그러면 닻감개를 돌린 사람은 떨어진 바위에 갇힌다. 더구나 지하 3층의 물이 불어나고 있어서... 한 명이 목숨을 희생해야 나머지가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행 중 한 사람이 목 졸려 살해된다. 지진, 고립, 수몰, 살인이라는 일련의 사건... 우리 중 누군가는 범인이고, 범인이 닻감개를 돌리는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다.

결국 범인이 왜 비상사태가 발생한 와중에 살인을 저질렀느냐는 막연한 수수께끼만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풀어낸들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수수께끼다.(p.106-107)

어쩌면 누가 지하에 남을지 선택하는 일이, 유야와 사야카를 죽인 것보다 훨씬 잔인한 살인일지도 모른다. 다만 꼭 누군가 한 명을 정해야 한다면, 살인을 저지른 자를 선택해야 한다. 괴롭지만 그것이 최선책이라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p.176)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는 사람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는 남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겠지."(p.231)

모두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굳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누군가가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면, 범인이어야 한다는 합의는 올바른 결정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점점 차오르고... 여기에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난다. 목이 잘린 시체, 대담한 범행... 연쇄살인 사건이다. 한정된 시간에 범인을 찾아야 하고,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 과정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의 특징은? 외부하고 연락할 수 없는, 철저히 단절된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이어야 하고... 외부인의 소행이 아닌 정해진 숫자의 내부인 중에서 범인은 나름의 동기와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소설 [방주]는 웰메이드이다. 노아의 방주하고 비슷한 산꼭대기의 지하 3층 건축물은, 홍수가 일어난 것처럼 물이 차오른다. 여기에서 연쇄살인의 동기는 분명하고, 이것을 밝히는 과정은 흥미롭다. 마지막 반전이 별점을 확~ 끌어올리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충격이다. 일본 미스터리의 오락성이라는 측면에서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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