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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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유카, 민경욱 역, [죄인이 기도할 때], 소미미디어, 2021.

Kobayashi Yuka, [TSUMIBITO GA INORU TOKI], 2018.

가상의 법, 동해복수법을 내용으로 하는 고바야시 유카의 소설 [저지먼트](예문아카이브, 2017.)를 인상적으로 읽어서 소설 [죄인이 기도할 때]를 연속으로 읽었다. 공립학교에서의 폭력, 괴롭힘을 소재로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인데, (우리도 우리지만)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어 점점 교묘하고 악랄해지는 범행을 고발한다. 여기에는 무관심한 가정, 무책임한 학교, 무능한 공권력이 있고... 가해 학생은 소년법 등으로 보호받지만, 피해 학생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유가족까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부조리한 상황에 쫓겨 자살할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다면 '11월 6일 복수의 날'에 증오하는 상대를 매장해버리고 죽자!(p.13)

주간지에 11월 6일의 저주... 라는 기사가 실린다. 중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던 S는 유서를 남기고 11월 6일에 자살한다. 다음 해 11월 6일에 S의 엄마가 자살하고, 그다음 해 11월 6일에 S를 괴롭힌 Y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열여섯 살인 도키타 쇼헤이는 한 학년 선배로부터 폭력과 금품 갈취를 당한다. 한계에 이른 상황... 주간지 기사를 떠올리며 자살을 결심하는데, 어차피 죽을 거라면 11월 6일에 가해자를 죽이고 나서 자살하는 것을 생각한다. 도시전설처럼, 자신의 희생으로 11월 6일을 복수의 날로 만들어 수많은 복수극으로 학교폭력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날 피에로 복장의 페니에게 도움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자 죽은 아들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왜 죽었지? 죽을 용기가 있었으면 뭐든 할 수 있잖아. 학교가 싫으면 전학을 가면 그만이다. 외국 유학이라는 길도 있다. 집에서 가정교사를 붙여 공부하면 되고, 왕따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로 전학갈 수도 있었다. 선택지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그럼 부모로서 그런 선택지가 있다고 가르쳐준 적 있는가'라고 묻는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구나......(p.92)

마흔다섯 살인 가지미 시게아키는 주간지 11월 6일의 저주... 기사의 피해 가족이다. 아들과 아내를 연이어 잃은 슬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원한이 있다. 한순간에 가정은 붕괴되고... 그리움만, 학교 따위는 목숨을 걸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지 못한 후회만 남는다. 학교폭력 피해자 모임인 라이프세이프에 가입해서 활동하는데, 죽은 아들하고 연관된 피해자를 발견한다.

"사과해서 모든 걸 다 용서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 만약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사과하면 모든 걸 용서해줄 거야?"

아버지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용서받을 수는 없어."

"아버지는 불륜을 저지르고, 어머니는 남자가 생겨 집을 나가고, 나는 아버지의 불륜 상대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고. 만약 아버지 아들이 절망해 주으면...... 내가 자살해도 용서해줄 거야? 살인이라는 거, 타인만이 아니라고."(p.134)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이다. 가정에서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지 못하는 때가 있다. 살인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지만, 극한에 달한 피해자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도키타 쇼헤이는 페니와 함께 가해자를 응징할 완전범죄를 공모한다.

어쩌면 나는 인간은 갱생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특히 미성년이면 개선의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게아키를 자살로 몰아넣은 학생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반성하며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의 무서움을 평생 잊지 않고 살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한심한 생각을 했던 자신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물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고통을 깨닫고 반성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의 부모가 되면 그때는 깨달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음속에 강렬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웃기고 있네.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쳐야 한단 말인가. 녀석들에게 시게아키의 죽음은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의 나에게 묻고 싶다. 이 나라의 연간 자살자 수는 2만 명 이상인데 왜 자기 아들은 자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까.(p.168-169)

가지미 시게아키는 인간의 갱생, 미성년의 교화를 기대하고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들과 아내를 죽임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는 아무런 반성 없이 살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때의 사건을 자랑거리로 여기며 여전히 학교폭력과 괴롭힘을 일삼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시련, 악을 죽여 선량한 목숨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요?(p.228)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도 판사도 아닙니다. 만약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뿐입니다."(p.261)

날로 대담하고 경악스러운 학교폭력의 문제를 다루며 아주 극단적인 담론을 제시한다. 살인은 결코 해서는 안 되고,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임을 강조하면서도...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죽어야 하는가?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를 묻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여야 하고... 누군가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유가족이 아니라 가해자여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전부 동의할 수 없지만, 수많은 청소년이 죽임의 상황에 몰려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소설로 말하는데, 부디 본인의 목숨만은 끊지 말아요!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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